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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오전위高振宇 - 중국도예의 현대와 전통의 경계에 서서
  • 편집부
  • 등록 2006-06-09 17:5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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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Ceramic Art - Artist

까오전위高振宇

- 중국도예의 현대와 전통의 경계에 서서

글 우관호 _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교수

까오전위. 금년 43세. 이싱宜興출신. 난징南京미술학원 졸업, 일본 무사시노武藏野 미술대학 대학원 졸업. 현재 중국예술연구원 연구원, 뤄신魯迅대학 객원교수. 1997년 베이징 소재 중국미술관 개인전 이후 중국내외의 단체전과 초대전에 출품하였으며 올해 4월 다시 중국미술관에서 개인전 개최.

지난 4월 8일부터 16일까지 중국미술관에서 치룬 그의 개인전에는 약 150여점의 다종다양한 작품들이 선보여졌으나 그 동안 중국에 체재하면서 보았던 몇 작가의 작품들과 뚜렷이 비교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몇 차례 작가와의 만남과 대화를 통해 중국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상황과 그 안에서 고군분투하는 작가의 생각들을 읽을 수 있었으며 작품의 내용에 대해서도 조금씩 구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사실 지금 중국 현대도예의 상황은 지난 70, 80년대의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 더욱이 우리보다 훨씬 전통의 영향과 역사의 질곡이 강한 중국이기 때문에 현재의 작가들이 고민하는 바는 무엇보다도 다양하고 복잡한 상황이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면, 명明·청淸교체기의 징더전景德鎭의 몰락과 60년대의 문화대혁명이다. 명청교체기의 징더전의 몰락은 도자무역의 경로를 바꾸는 동시에 중국도자의 후퇴와 일본도자의 진보라는 결과를 초래하였으며 그 영향은 지금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두 번째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이루어졌던 근대도예의 암흑기이다. 문화대혁명 당시에 만들어졌던 도자들은 하나같이 노동자와 농민의 단결과 부르조아의 타도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으며 마오쩌뚱毛澤東과 인민해방군의 노고와 영광에 보답하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사회적 상황은 중국도자의 진보를 저해하는 걸림돌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개인 작가들의 사고를 경색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따라서 현재의 중국도예는 앞서 말한 70, 80년대의 우리나라의 상황보다 오히려 더 경직되어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까오전위의 작품과 의식에 대해 주목하는 것은 그래도 그의 작품 환경이 남다르고 다른 작가들에 비해 비교적 이른 시기에 현대성과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번뇌의 과정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는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이미 이싱宜興 즈샤紫砂에 대한 수련과정을 거쳤다. 작고한 아버지 까오하이캉高海庚과 생존해 있는 어머니 조우꾸이전周桂珍 역시 현재 중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즈샤의 장인이며 부인 또한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이싱 즈샤의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자연스럽게 그 전통을 숙지하였으며 아버지의 스승이자 즈샤의 태두로 불리는 구징조우顧景洲로부터 엄격하고 면밀한 교육을 받았다. 주지하다시피 즈샤의 제작과정은 다른 어떤 종류의 도자들에 비해 혼신의 힘과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형태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표면을 마감하는 단계까지 오랜 시간과 공력을 필요로 하며 특히 유약을 바르지 않는 특수성 때문에 옥을 깎는 것과 마찬가지의 인내를 요구하기도 한다. 까오전위 작품의 첫 단추는 이렇게 끼워졌으며 그것은 작가에게 오랜 시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을 뿐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지탱하게 하는 원동력의 하나라고 술회하고 있다.
이싱 즈샤에 대해 수련 중이던 1984년 그는 새로운 경험에 직면하게 된다. 당시 이싱을 방문하였던 미국의 화교 도예가가 행한 데몬스트레이션에서 보다 자유롭고 박진감 넘치는 그리고 순간적인 감성으로 표출하는 추상표현주의 도자의 한 갈래를 느꼈던 것이다. 약관의 나이였던 그에게는 적지 않은 충격이었고 그로 인한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은 그의 내부에서 점차 커져갔다. 이후 난징미술학원에서의 수업에는 나름대로의 조형적 실험과 번민을 거듭하였으며 대학 졸업 후 대학원 진학을 위해 여러 길을 모색하던 중 현재 칭화淸華대학의 교수로부터 일본행을 권유받아 90년 초 중국의 일본유학 1호가 되어 무사시노미술대학에서 수학하게 되었다. 무사시노 미대에서 3년간 수학 후 그는 다시 중국으로 돌아왔고 그에 대한 결과로서 작품들을 97년 중국미술관에서 선보이게 되었다.
당시의 전시에 대해서 중국미술사학자 구선顧森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였다. “우리의 도자기 예술이 우수한 전통문화와 빗나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오늘의 중국에 누군가가 혼신의 힘을 바친, 송·원·명·청의 것과 같이 우아한 곡선미, 정교한 조형, 미묘한 유약색 등을 갖춘 예술성 높은 도자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려왔다. 지금 까오전위의 작품이 바로 그러한 꿈의 실현이 된 것이다. - 중략 - 이상은 9년 전 까오전위의 작품에 대한 소감이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 때의 작품을 보고 한편으로는 흥분했지만 한편으로는 조금 우울했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하더라도 그의 작품에 일본문화의 잔재가 남아 있어 그랬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와 같은 평을 듣다보면 중국의 상황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가고 또 중국전통의 그늘이 얼마나 넓은지 쉽게 알 수 있다. 당시 중국의 현대도예 작품으로서는 그 역량이 인정되지만 일본에 유학하였다는 사실로 인해 미루어 짐작하는 풍토, 바로 이러한 점들이 까오전위라는 작가가 고민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었다.

이번 개인전에 출품된 작품들은 즈샤와 일본 수학후의 작품과는 또 다른 시도의 결과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사실 필자는 중국에서의 외국인이고 또 그렇기 때문에 중국의 전통을 기반으로 그의 작품을 읽어 낼 능력도 없고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의 예술 환경적 배경에 대해서는 이미 앞에서 서술하였기 때문에 지금의 작품에 대한 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작품들을 물리적 또는 기법적으로 해석하면 백자토를 재료로 물레로 성형한 후 적당한 시점에서 형태를 변형하고 다시 면을 쳐내는 것이다. 이후 균열이 없는 청자유를 두껍게 시유해 잘라낸 면의 모서리 부분은 얇게 나머지 부분들은 두껍게 나타나도록 해 명도와 색조의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같은 방법에 의한 것이지만 적색점토를 사용하여 유약을 바르지 않고 장작가마에서 구워 불에 의한 자연스러운 색과 질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방만한 시각으로 그의 작품을 보면 앞서 말한 것처럼 괄목할만한 비상함은 없는 듯하다. 그러나 작품이 물레에서 성형하기 힘든 크기가 되고 나면 면을 쳐낸 과감성은 다른 작품들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박진감과 힘을 느끼게 한다. 다시 말해 형태를 위해 면이 있는 것이 아니라 면을 위해 형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만큼 그의 작품에서 면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면 하나하나의 조형성은 물론 면과 면 사이의 밸런스에 역점을 두고 이루어지는 작업은 작품의 성공률 또한 50%미만으로 밑돌게 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즈샤만큼이나 많은 공력을 필요로 하며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면을 찾아내는 감수성의 결정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무작위적이다. 또한 유약의 두께와 함께 어우러지는 면과 면사이의 경계, 그 모서리에 존재하는 긴장감 역시 그의 작품이 입체이긴 하지만 평면의 간결함과 강렬함을 동시에 용해하고 있는 결과이기도 하다.
한편 그의 작품을 지켜보아 온 미술사학자 구선顧森의 시각을 다시 인용해보자.
“까오전위의 이번 작품들을 보면서 나는 예술의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이전의 작품과는 다른 종류의 느낌이다. 이전의 작품을 ‘기器의 미美’라 한다면 이번 새 작품은 ‘예藝의 용用’이라 말할 수 있다. 전자는 비교적 고정적이고 약속된 형태 속에서 완전함을 추구하는 것으로서 결국은 흠잡을 곳 없는 그릇인 것이다. 후자는 조형적 작품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부여되는 기능을 가진 것으로 결국 기품이 있는 예술품이다. 정성들여 깎아낸 다면체는 깊은 조각적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들은 새로운 느낌을 주는 동시에 또 전에 알고 있었던 것 같은 익숙함도 주고 있다. 그것들은 선, 면의 급격한 리듬으로 강렬한 현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간결한 질감과 그 온유한 광택은 초자연적인 품위와 중국 전통문화의 성격을 농후하게 전달해 온다.”

이쯤 되면 까오전위의 작품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어느 정도 공통된 기준 속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까오전위의 작품은 크게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진다. 첫 번째는 자신의 예술 환경의 배경이 되는 전통적 즈샤이고 두 번째는 일본유학 후 당분간 집중하였던 백자계열의 작품들이며 세 번째는 이번에 발표한 것으로서 비교적 현대적 성향이 강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작품들의 저변에는 전형적이면서 배제되지 않은 실용성이 깔려있으며 그것은 곧 중국전통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여운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까오전위의 작품들은 내용적이나 형식적인 측면 모두에서 전통과 현대의 경계선상에 놓여 있지만 한편으로 중국 현대도예의 방향성을 유도하는 축으로서의 역할을 하는데도 모자람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공예디자인과 졸업
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유리과 부교수
개인전 5회(서울 후쿠오카 교토)
국내외 단체전100여회
한일현대도예4인전(이타미시립공예센터, 일본)
싸이코드라마(성곡미술관, 서울)
국제도예초대전(포샨, 중국)
한미일 현대도예 교류전(긴자갤러리, 일본)
EX:CHANGE(마이애미,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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