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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철화 용구름무늬 장군
  • 편집부
  • 등록 2021-11-02 15:58:19
  • 수정 2024-07-04 16: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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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철화 용구름무늬 장군
白磁鐵畵雲龍文缶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 문화재 평론가

 

사진01 「백자철화 용구름무늬 장군白磁鐵畵雲龍文缶」 조선시대 17세기 | 길이 30cm. 입지름 6cm. 바닥지름 12cm


왜란과 호란의 전쟁으로 피폐해진 조선 왕실 재정은 고가의 코발트 안료를 수입하여 도자기를 만들 수 없는 처지에 노였다. 코발트 안료를 사용해서 생산한 청화백자는 사치품으로 왕실이나 특권층의 전유물로 인식되었고 일반인의 소유는 엄두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코발트 안료의 수입이 막히자 당시 코발트 안료를 대체할 수 있던 것은 산화철 안료로 철화백자를 적극적으로 생산하게 된다. 철화 안료는 고려시대에도 널리 사용되어서 제작이나 사용에는 문제가 없던 터였다. 사옹원은 급한 대로 순백의 자기와 철화백자를 생산하여 왕실에 납품하게 되며 그로 인하여 조선 시대 중기의 대부분은 철화백자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경기도 일원의 왕실용 철화백자 가마는 신대리, 선동리, 탄벌리, 상림리, 유사리 등에 있었고 철화백자의 문양은 회화성의 수준이 높은 작품과 해학적인 작품으로 나뉜다. 이 시기의 문양은 주로 포도문, 초화문, 운룡문, 사군자문양이 주류를 이룬다.
  사진1)의 「백자철화 용구름무늬 장군」은 이 시기에 제작된 왕실용 작품으로 유태가 경질이고 15세기 상감 백자처럼 해학적이면서 추상화되고 문양은 대담하면서도 불필요한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하는 특징을 그대로 살려서 계승하였다. 한 마리의 용이 구름 사이에 여의주를 두고 승천하는 모습으로 도자기의 몸통을 휘감고 있다. 부리부리한 눈과 휘날리는 갈기, 뾰족한 이빨, 날카로운 발톱, 단순화시킨 뿔 등이 역동적이다. 서기를 발산하는 여의주는 병의 입구 옆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용과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쾌활하고 대담한 붓질로 거침없이 그려낸 용은 그동안의 엄격한 규율과 형식을 타파한다. 예로부터 용은 삼라만상의 왕으로 제왕을 나타내며 왕실의 문양이나 궁궐의 장식에 사용되었고 불교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수호신으로 중요하게 여겨졌다.
  장군의 굽은 성형 후에 별도로 붙였으며 옆부분의 바닥 굽 유약을 일부 닦아내고 가는 모래 받침으로 세워서 소성하였다. 병을 세우거나 눕혀서 사용할 수 있도록 몸통에 두 개의 굽이 있다. 초기 백자처럼 빙열은 없고 발색이 좋으며 철화 문양의 색도 좋다. 몸통의 크기도 일반적인 장군보다 커서 대형 작품에 속하며 중국풍 백자의 정형화된 기법이 완전히 사라지고 전쟁 이후에 왕실과 상류층의 실추된 권위의식이 반영된 결과로 일정한 형식에서 벗어난 한국적인 백자의 시발점이 되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이 장군의 명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왕실에서 술이나 꿀 등 액체류를 보관하는 용도로 사용된 것으로 보인다.
  현존하는 17세기 왕실 가마의 「백자철화 용구름무늬 장군」은 수량이 매우 희귀하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한 점만이 확인되고 있다. 사진4)

-----이하 생략

 

<</span>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21년 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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