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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인화무늬 장군
  • 편집부
  • 등록 2023-01-31 16:06:07
  • 수정 2024-07-04 16: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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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23]

분청사기 인화무늬 장군
粉靑沙器印花紋獐本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사진1)「분청사기 인화무늬 장군(粉靑沙器印花紋獐本)」 조선시대 | 높이 31cm, 입지름 4.5cm, 굽지름 9cm

 

도자기나 도기, 옹기로 만들어진 ‘장군’은 조선시대 가장 활발하게 사용되었으며 재질이나 크기에 따라서 용도가 다르게 사용되었다. 농업용이나 제사용, 일상생활용 등 신분의 높고 낮음에 따라서 차별화가 있었지만 여러 방면에서 다양하게 활용되었다.


  『세종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는 ‘장군’이 술병으로 기록되어 있고 제사를 지낼 때는 도자기로 만든 장군에 술을 담아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특히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백자 장군’과 ‘분청사기 장군’이 무덤에서 출토되는 사례가 많아 유교사회의 제례와 관련된 유물로 판단되며 위 문헌의 내용을 실증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 반면에 불교국가였던 고려시대는 현재까지 도자기로 만든 ‘청자 장군’이 발견된 사례가 없다. ‘백자 장군’은 조선시대 중기까지 경기도 일원의 관요백자 가마에서 순백자나 철화백자로 제작되었고 ‘분청사기 장군’은 상감분청, 철화분청, 인화분청, 박지분청, 조화분청, 덤벙분청 등 종류도 다양하게 전국에서 만들어지고 일부는 관납용으로 진상되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이 끝나면서 17세기 이후에는 도자기로 만든 장군은 거의 사라지며 나무나 옹기, 도기로 만든 장군이 농업용으로 제작되어 조선말기까지 명맥을 이어간다.


  사진1)의 「분청사기 인화무늬 장군(粉靑沙器印花紋獐本)」은 15세기경에 제작된 인화분청으로 꽃 모양의 도장을 온몸에 여백 없이 찍은 후 백토로 메운 다음 질 좋은 유약을 입히고 소성한 진상용 작품으로 명품에 속한다. 몸통의 가운데는 조선 초에 유행하던 물결무늬를 백상감기법으로 새겨서 띠처럼 둘렀고 맨 윗부분에는 약간 턱이진 원안에 한 송이 꽃을 백상감으로 새겨 넣었다. 사진2~4)


  주둥이의 끝부분은 밖으로 약간 벌어졌으며 낮고 짧아서 몸통 속에 담겨진 술이나 물 등 내용물이 잘 보관되도록 만들었다. 몸통을 기울여서 옆으로 뉘어 놓아도 안정감이 있어서인지 별도의 굽을 만들어 붙이지는 않았으며 바닥은 굽깎기도 하지 않아서 세워 놓을 경우에도 안정감이 높다. 사진5)


  굽바닥까지 바람개비 모양의 상감 무늬가 있는데 도자기의 바닥에도 무늬가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리움 소장의 작품 중에도 같은 종류의 유물이 있는데 거의 같은 시기와 가마에서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사진6, 7)


  정선된 태토와 투명한 청자유약, 몸통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인화무늬는 특별한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주문된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인화무늬 분청사기 작품 중 명품 반열에 드는 예술성 높고 귀중한 작품이다.


  삼국시대부터 도기로 제작되기 시작한 ‘장군’은 조선시대 말기까지 약 2천 년을 우리 민족과 함께해온 유물이다. 상류층부터 서민층까지 가장 오랜 기간 동안 한민족의 느낌이 가장 잘 배어있는 유물이 ‘장군’이다.

 

-----이하 생략

<</span>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23년 2월호를 참조바랍니다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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