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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태흥
  • 편집부
  • 등록 2004-07-24 01:25:44
  • 수정 2016-04-05 17:3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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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작업은 현대인의 초상담은 영웅 만들기 인체조형은 사상을 담아 표출하는 매개체 도조작업은 현대미술에 있어 회화적(painting 또는 drawing)이거나 조각적(sculptural)인 순수예술과 디자인적, 공예적 기술요소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표현의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이태흥(40)은 이러한 가능성에 매료돼 도예가의 길을 택한 작가다. 그의 작품 주제는 인체를 이용한 이상주의적 ‘영웅’이다. 작가 자신이 상상하는 인물로 설정된 남성적이고 강직한 인체조형물과 다양한 이미지의 프린팅 기법은 현대사회상을 담고 있다. 또한 다리 두상 상반신 등 인체의 일부분을 기하학적 물체와 조합한 형상 표현이 과감하다. 체육학 출신 미국 유학중 도예입문 남다른 이력 작품표현에서 드러난 작가의 개성은 작가의 도예입문 계기와 배경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도예가로서 독특한 이력을 지녔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수영코치로 활동하다 91년 어학연수를 위해 미국 오하이오로 유학을 떠났다. 2년간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체육행정학을 배우기 위해 오하이오 주립대에 입학했다. 대학원 과정 중 우연히 청강하게 된 미술 전공 디자인 수업에서 재미를 느끼고 자신의 남다른 재능을 발견했다. 곧바로 공부 중이던 체육행정학 석사과정을 포기하고 미술전공으로 전과해 학부로 편입했다. 전공 수업 중 도자수업을 수강하면서 숨은 재능과 함께 한국인 특유의 진득함이 점토를 다루는데 장점으로 작용, 현지 학생들에 비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그는 학부 졸업 후 미국 에딘보로 펜실베니아 주립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으로 도예작업에 매진했다. 대학원에서는 학부과정과는 달리 대형 기(器)와 조형물을 성형하면서 또 다른 매력을 느끼게 됐고 소금유, 소다 번조기법을 경험하면서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작가는 “미국 유학생활은 제 인생을 바꿔놓은 중요한 시기였고 당시 흙은 내게 끊임없이 도전하게 했고 나를 만족시켰다.”고 당시를 기억해낸다. 대만서 첫 개인전 한국전통이미지 담은 도조작품 소품 선보여 이태흥의 초기작업은 물레를 이용해 변형한 조형성이 강조된 대형기물이었다. 학부시절 물레작업만을 주로 지도한 교수님의 영향과 도조작업의 시도로 형성된 표현방법이었다. 그 대형기물 표면에 장식된 전사 이미지는 대부분 한국적인 것이다. 한국전통이미지를 주로 활용한 이유에 대해 “미국에서 바라본 한국역사는 중국과 일본의 역사사이에서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고 싶었다.”고 설명한다. 그의 첫 개인전은 99년 대만에서 열렸다. 학부시절 인연을 맺은 대만인 친구의 도움으로 갖게된 전시로 대만의 풍산인쉐라는 소갤러리에서 열렸다. 작은 전시공간에는 소다번조로 표현된 기하학적 형태의 조형작품과 그것을 응용한 컵 등의 생활소품을 선보였다.<사진 1, 2> 2·3회 개인전, 기계적 비개성적 인간상 조형물로 표현 대학원을 마칠 즈음, 그의 작업은 주제와 기교, 크기 등 모든 면에서 새롭게 시도되고 있었다. 주된 주제는 인체였다. 인체를 택한 것은 도예를 배우기전 체육학을 전공하고 운동선수로서의 꿈을 이루지 못한 배경을 담아내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작품이 가진 본질적 의미는 현대 인간상이었다. 2001년에 가진 2·3회 개인전은 미국과 대만에서 연이어 열렸다. 전시에는 실제 인체크기의 흉상을 비롯해 반신상, 다리 등을 형상화한 작품을 선보였다. 물레성형과 코일링으로 성형해 접합한 인체조형물은 다소 무의식적이고 무표정한 기계와 같은 이미지로 인간다움을 빼앗긴 기계적 비개성적 인간상을 상징화하고 있다.<사진 3> 작품 「Wireman in History」는 조선시대화가 윤두서의 자화상과 Wireman이라고 명명돼 여럿으로 복제된 인물을 펼쳐 세운 고서(古書)형태의 기물 표면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작가가 지닌 한국 전통에 대한 이미지가 시각적으로 강하게 드러난 작품이다.<사진 4> 국내 첫 개인전, 현대상 다각적 관점으로 재해석한 영웅 연작 선보여 이태흥은 자신의 작품을 “꿈속의 혹은 상상 속에서 나타나는 완벽한 영웅, 혹은 번민하는 영웅”이라고 설명한다. 언제나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는 일반적인 영웅만이 아니다. 고독한 영웅의 쓸쓸한 초상이기도 하다. 2001년 8월, 10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영웅’ 만들기를 잠시 접고 근 2년간 국내 생활에 적응하는데 온힘을 기울였다. 대학과 도자기축제장 등에서 열리는 워크숍, 세미나 등을 빠지지 않고 찾아다녔으며 운영시스템이 좋은 도자기공방을 방문해 조언을 듣기도 했다. 2년간의 준비 끝에 2003년 1월, 경기도 분당 서현동에 작업공간 ‘클레이 스페이스’를 마련했다. 그리고 그간 쌓아온 모든 경험을 발산하며 영웅만들기에 착수, 지난 11월 국내 첫 전시를 갖게 됐다.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가진 4회 개인전에서는 ‘현대인의 초상’을 담은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자신만의 ‘영웅’을 다양한 관점으로 접근, 해석해 ‘현실타파에 대한 상상과 열정에 사로잡힌 한 인간의 이미지를 시각화한 영웅’과 ‘소외와 상실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존재로서의 영웅’을 동시에 작품에 담아냈다. 그에게 있어 인체작업은 “사상과 생각을 담아 표출하는 매개체”이다. 특히 지난전시 작품 중 「the Future」는 무의식적으로 서구화 돼가는 한국의 현실 이미지를 담은 작품으로 한복을 입은 전통여성과 현대여성들의 얼굴이 프린팅된 피라밋을 인체의 일부분인 다리가 위에 올라 밟고 서있는 형상을 한 반추상적 신표현주의 작품으로 눈길을 끌었다.<사진 5> 새롭게 시도한 해학적 신영웅만들기 기대 국내에서의 활동기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에 작가 이태흥을 아는 사람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미국에서의 활동기간 동안 ‘2000 Student NICHE Awards Winner’ 최우수상 수상을 비롯해 10여회의 공모전에서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으며 단체전 11회, 펜실베니아 주립대 도예학과 강사, Project Enhance 도자조각 클래스 강사로도 활동했다. 귀국 후에는 남서울산업대에서 강의 했으며 현재는 서울산업대 도예학과에서 ‘표현과 발상’ 과목을 맡아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작가의 경험은 든든한 배경이다. 그는 새로운 것에 대한 시도와 도전이 두렵지 않다고 한다. “나에겐 아직까지 많은 아이디어와 계획이 있다”고 한다. 그의 작업 공간 곳곳엔 오는 10월경 대만과 한국에서 가질 개인전을 위한 접시작품이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인체의 이미지를 접시위에 해학적으로 재구성해 화려한 색으로 입힌 작품들이다. “바쁜 일과 속에서 지나치게 물질주의만을 쫓는 것에 짓눌려 가끔 인간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는 유난히 변하지 않은 것들에 애정과 호감이 간다고 한다. 올가을,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고 변하지 않은 좋은 기억만을 골라 담아낸 또 하나의 ‘영웅’ 시리즈가 기대된다. 김태완 기자 anthos@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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