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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흥복 도예전
  • 편집부
  • 등록 2004-12-27 01:4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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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17 - 2004.11.23 통인옥션갤러리 관람자 창출의 매체 : 최근 이흥복의 도자 연작 글 이희영 _ 미술평론가, 경희대학교 강사 이흥복의 도자 연작은 뉴욕 미술가에 의해 새롭게 시도된 특징들을 요약하고 있다. 이 연작들은 이흥복을 기억하는 국내의 이웃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모습으로 비쳐진다. 도자기의 기능적 포맷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진열 방식과 매끈한 표면의 단호한 형태는 이 생경함을 한 층 더 증폭시키고 있다. 이흥복의 이웃들은 과거 그의 도자 작품들이 흙의 질퍽한 재질과 미술가의 손길이 그대로 완성된 작품에 노출되는 외관을 기억하고 있다. 이점은 뉴욕에서 미술가와 함께 생활했던 그들이 생각하는 이흥복의 동질성이다. 재료의 물리적 속성과 미술가의 몸짓이 고백되는 과거의 외관을 염두에 둘 때 최근의 것들은 분명 상당한 비약으로 감지된다. 과거의 이와 같은 특성은 도자기의 전통적 기능에 대한 이흥복의 개별적 주장일 것이다. 과거 이흥복은 도자라는 오브제의 제작을 통해 도자기의 전통에 대해 반응하는 한편 새로움을 추구하는 개인으로서의 제작자 입장에서 자신의 신체를 온전히 그 오브제에 기록했던 것이다. 그래서 과거 이흥복의 도자 오브제는 표현주의적 진솔함으로 그의 이웃에게 각인 되었던 하다. 이번 통인에 진열된 이흥복의 도자 작품들 각각은 직사각형 평면이 2인치 남짓한 두께를 유지한 채 벽면에 걸리는 형식을 하고 있다. 이 돌출은 부조relief와 동일한 공간적 조건을 갖는다. 부조는 분명 조각의 영역이지만 회화공간pictorial space의 조건으로 현실에 감지된다. 부조와 회화의 판독은 그 앞에 선 관람자가 정면으로 대면하는 조건을 요구한다. 이러한 최근 이흥복의 연작이 유지하고 있는 공간적 조건은 그것이 벽면으로부터 상당히 돌출하고 있는 점에서 1950년대 말 제시된 ‘회화도 아니고 조각도 아닌 특수한 대상’의 개념을 환기한다. 여기서 나는 이흥복의 도자가 회화공간의 판독 조건을 획득함으로써 전통적 기능에 종속된 도자기의 감상 조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으로 본다. 그와 함께 특정의 장르에 기울지 않으면서 실재하는 공간인 벽면에 대한 뚜렷한 반응을 갖는 포맷을 획득하는 점에서 제스쳐나 온기와 같은 인본주의로부터 그의 매체를 결정적으로 자유롭게 한 요소로 파악된다. 결국 기능적 전통과 인본주의로부터 벗어난 매체 앞에서 그의 이웃들은 당황해 한 것이다. 하지만 이흥복은 과거 그의 동료들이 목격한 동질성을 버린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동질성을 구성하던 자신의 실험을 한층 더 극단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도자가 맹목적으로 감동하는 몰입자의 생산보다 오히려 진지하게 주목하고 해석하는 관람자를 산출하기 때문이다. 이흥복이 구멍을 내거나 도려낸 도자의 표면에는 그것을 보는 이에게 표현된 특정의 이미지로 보이는 한편 실재하는 구멍으로도 판독된다. 이미지는 현실에 없는 예술적 주장이자 그 영역이다. 그러던 이 이미지의 실체가 결국 관람자가 점유하고 있는 실재하는 공간과 동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 관람자는 자신의 존재에 대해 되물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이흥복의 매체는 단순한 감상의 만족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의 각성을 촉구한다. 매체를 진지하게 바라보면서 자신의 존재를 각성하는 이는 방관자나 몰입자가 아닌, 바로 관람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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