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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스 원로 초대석 - 최상흘 공학박사 한양대 명예교수
  • 편집부
  • 등록 2006-03-02 16:34:53
  • 수정 2010-08-17 16: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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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스 원로 초대석
최상흘 공학박사  한양대 명예교수

시멘트 콘크리트는 살아있는 재료… 따뜻한 애정가진 우리나라 대표 시멘트 연구자
“시멘트 콘크리트는 살아있는 재료입니다. 사람처럼 호흡하고 물을 마시고 살아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웃는 인상이 정겨워 보이는 최상흘 박사는 시멘트를 사람에 비유했다. 많은 건자재 중에서도 가장 딱딱하고 건조해 보이며 인간적인 느낌이 덜 나는 시멘트에 대해 이처럼 따뜻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최상흘 박사는 역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시멘트 연구자였다. “사람을 잘 키워서 쓸모있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이 시멘트 콘크리트도 잘 양생하여 쓸모있는 재료로 만드는 것이 우리 시멘트인의 몫입니다”
최상흘 박사는 30년이 넘게 시멘트 연구와 인력 양성에 힘쓰며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 발전에 기여해 왔다. 최 박사가 세라믹스 분야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양대학교에 요업공학과가 처음으로 개설된 62년 당시 요업공학과 조교로 근무하면서부터이다. “제가 6.25 참전으로 대학입학이 좀 늦었습니다. 56년 한양대 화공과에 입학하여 60년에 졸업했는데 당시 남기동 교수님께서 요업공학과를 창설하셨고 저는 교수님을 모시고 요업공학과 첫 조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최 박사와 시멘트의 인연은 좀 더 빨랐다. 최 박사는 “대학 3학년 때 현장 실습을 새로 건설된 문경시멘트 공장으로 갔습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라고 회상했다.
당시 요업공학과 조교로서 최 박사는 세라믹과 현대과학 그리고 실생활에 대한 홍보에 적극적이었다고 한다. “당시는 세라믹에 대한 일반인의 지식이 요즘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미팅과 같은 학생들의 모임에서 세라믹에 대해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여학생들에게 거울이나 TV에 사용되는 유리가 세라믹 제품이라는 것을 설명하기도 했고 인공위성에 세라믹이 어떻게 응용되는가를 강의하기도 했습니다”

세라믹의 대중화에 관심… 홍보와 학회 편집위원 활동에 주력
이처럼 최상흘 박사는 일반 대중들에게 실생활에 세라믹이 어떻게 자리잡고 있는가를 설명하면서 세라믹을 쉽게 이해시키는 것에 큰 관심을 가졌다. 이 같은 최 박사의 관심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후에 학회활동에서도 편집과 관련된 일을 주로 담당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 지난 10월에 개최된 세라믹학회에서도 ‘시멘트 콘크리트와 생활환경’이라는 주제를 발표하기도 했다.
요업공학과 조교로 활동하며 최상흘 박사는 대학원 석사과정에서 남기동 교수의 지도로 시멘트를 전공하게 된다. 시멘트와의 본격적인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66년 일본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동경공대에서 유학을 하게 된 최상흘 박사는 일본 시멘트 연구계의 대가인 Kondo(近藤)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시멘트 연구를 지속했다. 일본 유학생활 중 최 박사는 시멘트 전공자로서 매우 중요한 경험을 했다. “당시 일본의 시멘트계는 68년에 동경에서 열리는 제5회 시멘트 국제학술회의(V-ISCC)의 준비로 시멘트 연구계와 학계, 산업계가 매우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 속에서 밤낮을 가리지 않는 연구 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밤낮을 가리지 않았으니 시간을 두 배로 활용한 셈”이었다는 최 박사는 그 결과 한국인 최초로 시멘트 국제학술회의에서 논문을 발표하는 성과를 이뤘다. “그 해 V-ISCC에서 시멘트 클링커 생성반응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이 후 정년퇴임 때까지 이 학술회의에 계속 참가했고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여러모로 저와는 인연이 깊은 학술회의입니다”.
70년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최상흘 박사는 귀국 후 한양대 요업공학과 교수로 돌아와 세라믹 인력양성과 함께 요업학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 세라믹을 전공한 교수가 많지 않아 한양대 뿐 아니라 연대와 고대에서도 강의를 했으며, 73년에는 요업학회에 시멘트부회를 만들어 국내시멘트심포지엄을 시작한 것이다. 또 석고석회심포지엄 개최도 주도했다. 최 교수는 이와 함께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 발전을 위한 연구를 본격화 했다. 연구과제는 시멘트 관련 기초과학에서부터 특수 기능성시멘트 개발, 제조공정 연구, 시멘트계 재료와 환경 관련 연구 등 시멘트 분야를 총망라한 것으로 매우 다양하다.
“당시는 지금처럼 연구비가 많지 않았습니다. 적은 연구비를 아껴 쓰며 기자재를 구입하고 조립하여 실험을 했지요. 또 인하대 한기성 교수와 함께 동양, 쌍용, 한일, 유니온 등 여러 시멘트 업체의 연구진, 생산기술진과의 산학연 공동연구를 통해 공정을 개선하고 신품종을 개발하는 등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 발전에 공헌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시멘트 관련 산학공동연구 수행, 시멘트 인력양성 등 시멘트산업 발전에 공헌 
최상흘 박사의 이 같은 연구개발 노력으로 70~80년대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은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다. 외국에서 기술을 이전받아오던 데서 벗어나 외국에 우리 기술을 이전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최상흘 박사는 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유니온백시멘트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백시멘트 제조공정을 습식냉각공정에서 건식냉각공정으로 바꾸는 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 에너지 절감과 품질향상을 이루어냈다. 또 개발기술에 대한 특허도 받았다. “이 기술은 특수 기술이어서 선진국에서 견학도 불허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교 연구실의 실험 결과를 백시멘트 공장 연구진, 기술진과 함께 현장에 적용하며 개선을 해나가는 방식을 택했고 성공을 한 것입니다”
이 기술의 축적으로 필리핀 백시멘트 공장을 건설했으며, 이는 우리 기술로 해외 시멘트 공장을 건설한 첫 사례였다. 공장 건설에 이어 공장을 가동하는 데도 우리 기술진이 지도를 했다고 한다.
최상흘 박사는 이 같은 연구개발 과정을 대학원 학생들, 현장 연구진들과 함께 했고 그들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전한다. “당시 대학원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열심히 동참해 주었습니다. 업체와의 산학 공동연구에서는 매주 학교와 공장 연구소를 오가며 토의하고 여름 방학 때는 숙식을 같이 하며 세미나도 하고 등산도 하면서 심신을 단련했습니다. 그 학생들이 졸업 후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계의 주력 기술진이 되어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삼척의 시멘트 공장 1개가 가동되던 데서 세계 5~6위 규모로 성장한 우리나라 시멘트 산업은 최상흘 박사와 연구실 멤버들의 이 같은 노력이 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98년 최상흘 박사의 정년퇴임 이후 한양대 시멘트 연구실은 문을 닫았다. 이에 대해 최 박사는 “안타까운 일이지만 타 대학도 비슷한 실정이고 전반적인 경향”이라며 “건자재 시멘트 연구 뿐 아니라 생체재료 등 첨단 신재료와 파인세라믹스에 대한 연구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담담하게 말한다. 또한 많은 것이 Fusion화 되어 가는 상황에서 세라믹 또한 융합기술에 대한 연구가 더욱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세라믹은 가마와 굴뚝이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 산업… 새로운 발상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자!
편집관련 학회 활동을 활발히 수행한 최상흘 박사는 요즘 세라믹학회 50년사 편집위원장을 맡아 분주하다. 2007년 학회 50년을 맞아 50년사를 편찬해야 하는 중요한 책임을 맡고 있는 것이다. 이밖에도 일반인들이 세라믹을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교양책자의 발간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이처럼 분주하고 활발한 활동을 위해 걷기와 등산으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는 최상흘 박사는 ‘old와 new의 조화’의 필요성과 함께 세라믹스의 의의, 세라믹 산업의 가능성을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세라믹스는 인류문명과 함께 발전하여 온 과학이며 예술이며 산업입니다. 가마(窯)가 있고 굴뚝이 있는 소위 굴뚝 산업이며 이 가마와 굴뚝은 앞으로도 어떤 형태로든 세라믹스와 함께 계승되면서 우리 인간에게 새로운 세라믹 소재를 제공해 줄 것입니다. 가마와 굴뚝이 있다고 해서 낡은 산업이 아닙니다. 세라믹은 가마와 굴뚝이 있는 새로운 과학기술 산업입니다”
마지막으로 최 박사는 후배 세라미스트들에게 “나노기술, 하이브리드 기술이 기술 혁신의 핵으로 떠오르고 유비쿼터스 사회로 들어서고 있는 지금, 새로운 발상으로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고 새 것을 개발하여 새로운 과학기술 시대에 적응하는 과학기술인으로 새 시대에 동참하자”는 말을 전하며 마무리를 지었다.
박미선 기자 

<사진설명>

1.최상흘 박사
2.시멘트심포지엄에서 발표하는 최상흘 박사
3.시멘트공장 기술진과 함께 현장을 보고있다
4.제10차 시멘트 국제학술회의에서 좌장을 맡은 최상흘 박사
5.국제학회에 참가한 제자들과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6.정년퇴임 고별강의를 마친 최상흘 박사


  최상흘 박사 주요 약력
    1960년  한양대 화공과 졸업(학사)
    1962년  한양대 화공과 대학원(석사)
    1970년  동경공대(공학박사)
    1961년  한양대 요업공학과 조교
1965년~1998년 2월 한양대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소, 교수
1966년~1969년 동경공대 연구원
1983년~1984년 동경공대 객원연구원
1994년~1995년 요업학회 회장
1998년~현재  한양대 명예교수

학회 활동
1971년 편집이사로 학회지 편집 실무
1974년 학회 단독으로 요업학회지 계간 발간(현재는 월간)
1986년 ‘요업재료의 과학과 기술’지 발간(편집위원장)
1994년 학회장 재임시 기술지 격월간 증간
1995년 영문학회지 ‘The Korean Journal of Ceramics´(계간) 발간
1973년 부회 활동으로 처음 시멘트심포지엄 참여
        학회의 세라믹관련 서적 출간사업 참여
        - 요업학회 25년사(1982년)
        - 고도기술 세라믹스(1986년)
        - 세라믹실험(대학교재)(1989년) 편집위원장
        - 세라믹 용어집(2000년)
        - 세라믹 용어사전(2005) 편집위원장
        - 세라믹학회 50년사 편집위원장
1987년 한미요업학회 학술교류시 실무담당
1994년 AUSTCERAM 94에서 한호세라믹 분야 학술교류 체결
1996년 Pac Rim 2 개최 시 Pac Rim 3을 한국 경주에서 개최키로 결정

논문발표현황
국내외 학술지 발표논문 150여편
국내 시멘트 석회 석고 관련 심포지엄 발표논문 40여편
기술논총 등 70여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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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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