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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김판기
  • 편집부
  • 등록 2006-08-02 14: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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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작가

도예가 김판기

편리함과 감각적인 성향이 주를 이루는 생활방식 속에서 전통기법을 고수하는 도자기가 현대인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 색감과 기법에 있어 전통성이 더욱 짙은 청자는 더더욱 그렇다. 경기도 이천에는 많은 전통도예가가 있다. 그중 김판기(48)는 ‘전통기법을 익혀 현대적 감각으로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한 현대인이 공감하는 청자작품’을 만드는 도예가다.

박물관서 만난 비색청자에 끌려 도예가 길 선택
전라북도 순창이 고향인 김판기는 고교 졸업 후 미술대학을 지망했다. 국내 유명 미술대학을 목표로 그림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들른 박물관에서 만난 청자와의 인연은 그를 도예가의 길로 이끌었다. 전시실에서 만난 고려청자의 비색을 보고 흔들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5일 동안 박물관을 찾아가 청자를 감상하고 또 감상했다. 그 청자의 비색은 곧바로 미술대학 진학의 꿈 접게 했고 그를 무작정 이천으로 이끌었다. 1983년 11월의 일이다.
경기도 이천에 내려가 처음 찾아간 곳은 수광리의 우당 한명성씨의 요장이었다. 그곳에서 허드렛일로 시작해 5년간 흙 작업의 기본을 닦았다. 낮에는 요장일을 돕고 늦은 밤에는 자신의 작업을 했다. 당시 깨달은 것이 있다. “늦은 밤 작업실 주위에 적막이 흐르면 그 자리에는 흙과 저 단둘만 남습니다. 그때 흙과 사람이 대화할 수 있고, 교감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후 10년간 이천지역의 여러 요장으로 거처를 옮겨 다니며 청자제작에 필요한 성형과 문양, 유약, 번조기술들을 습득했다. 일하다 지쳐 1년간 벌통을 메고 전국을 방황한 것 외에는 한 번도 가마터를 떠나지 않았다. 그는 당시에 대해 “흙 작업의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회의감에 빠져 짐을 싸고 방랑길에 나섰죠. 그러나 청자의 비색이 아른거려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벌통을 내던지고 다시 이천으로 돌아와 청자연구에 빠져들었습니다.”라며 기억한다.

반복된 실패와 시도과정 감내해 얻은 성과
유수 공모전서 최고상 수상 연이어 차지
1994년 이천 신둔면 고척리 설봉산 자락 깊은 골짜기 수백 년 지난 팽나무 그늘 밑에 자신의 요장 <지강도요>를 차렸다. 그간 힘들게 고생하며 싸인 앙금은 씻어내고 외부와 단절된 시간 속에서 오래전 박물관에서 만난 청자 비색 연구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매일같이 장작을 패고 질밟고, 만들고, 그리고, 파내고, 불 지피는 일에 열중하고 또 열중했다. 청자연구에 따르는 반복된 실패와 거듭 시도되는 모방의 과정을 겪으며 차츰 자신만의 작품을 찾아낼 수 있었다. 1995년부터는 국내에서 열리는 유수도자공모전에 지속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다. 1997년부터 입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 후 2000년에는 <제28회 동아공예대전>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전라남도 강진에서 열린 <제1회 강진청자공모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전통기법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 현대적 이해를 찾고자 노력한 끝에 얻은 성과였다. 동아공예대전의 대상 수상작품은 「청자과반」이었다.(사진1) 이 작품은 ‘유약의 발색이 맑고 인물을 연속적으로 흑상감한 것이 매우 정교해 기물의 품위를 돋보이게 한 수작’이란 평을 받으며 당시 큰 관심을 모았다. 2001년 강진청자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품인 「진사 빗살무늬 과반」은 ‘청자의 유약층 아래 태토의 질감이 선명히 들어나는 맑고 투명한 담록의 맛을 잘 살린 작품. 청아한 청자유와 화려한 동진사는 보색 병존하고 있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김판기는 “세간에서 저에게 상복이 많다고들 합니다. 저는 결코 상복이 많은 것이 아니라 깊게 고민하고 많은 괴로움을 감내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경험해야할 과정을 겪어서 인지 이젠 작업과 함께 유희할 줄 알게 된 것 같습니다.”고 전한다.

치밀한 계획과 몇배의 끈기로 얻는 자신만의 청자기법
김판기의 청자작품에는 형태의 자연미와 색감의 자연미, 문양의 자연미가 적절히 어우러져 있다. 그의 작품이 ‘부드러우며 선이 곱고 섬세하고, 정교한 표현이 돋보인다.’는 평을 자주 듣는 이유다. 그는 즉흥적인 작업은 안한다. 아니 할 수 없다. 정확한 구성과 스케치를 준비한 후 작업에 들어간다. 성형과정을 비롯한 문양상감, 시유, 번조과정도 미리 치밀하게 계획한다. 김판기만의 기법으로 잘 알려진 직각에 가까운 과반형태나 청자그릇 안쪽 장식으로 주로 등장하는 빗살 상감은 더욱 그렇다. 특히 빗살 상감은 예리한 조각도로 빗살을 음각하고 그 위에 흑상감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수직된 형태의 직선 상감이 잔잔히 표현되기 위해선 몇 배의 시간과 끈기가 필요하다. 가마불도 그렇다. 요변에 의한 우연성은 용납하지 않는다. 우연의 효과를 기대하기 보단 정확하고 집중적인 작업을 통해서만 전통의 청자 빛을 얻을 수 있다. 그는 매순간 전통의 참뜻을 터득하고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움을 찾기 위해 고민한다.

옛 청자의 미적의식에 실용 더한 청자그릇전 선보여
김판기는 예술적 완성도와 함께 도자의 기능성과 실용성을 강조한다. 단순하면서도 격조 있는 전통도자 본연은 살리되, 늘 곁에 두고 싶은 청자 그릇을 만들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그가 꿈꾸는 미래 청자그릇이다. 지난해 10월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가진 첫 번째 개인전을 통해 그 꿈을 펼칠 수 있었다. 전시에 선보인 「청자디너세트」, 「진사 앞 접시와 잔」 등의 상차림은 그 꿈을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다. 청자그릇으로 가능한 현대상차림의 새로운 제안은 큰 호응을 얻었다. 그는 청자의 현대화를 주창하는 작가지만 예술성 이전에 실용성을 항상 되뇐다. 옛것을 극복해 내려는 의도와 과거를 통해 옛 청자에 담긴 미적의식과 감수성을 작업에 불어넣어 새로운 전통을 창조하고자 노력하는 것이다.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하며 현대인이 공감하고 아껴줄 수 있는 전통작품을 제작하는 일은 어렵다. 따라서 현대인이 지닌 전통적 고정관념을 파악하고 현대적인 문양과 중량 있는 작품의 무게, 강도에서 떨어지는 상감청자의 단점을 해결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자신의 노력에 대해 “사실 백자와 분청에 비해 청자는 현대화에 대한 제약이 많습니다. 하지만 전통 청자에 대한 사명감이 있기에 이러한 노력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그가 최근 열중하고 있는 작업은 얇은 기벽으로 성형된 청자그릇이다. 얇은 도자기가 더 소중하게 다룰 수 있는 그릇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청자비색에 빠져 시작한 작업이 벌써 스물세 번의 해를 넘기고 있다. 작가는 오늘도 반복된 실패와 거듭 시도되는 모방으로부터 허물을 벗으며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길 위에 서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에서 자라는 미래 청자그릇의 꿈을 흙에 담아 불속으로 내던지고 있다.
김태완 기자 anthos@paran.com


1 「청자과반」 2000년 작, 동아공예대전 대상작품(일민미술관 소장)
2 「시조」 2001년 작 

3 「유영」 2003년 작
4 「노을」(deteli), 2005년 작
5 물고기문양 상감작업
6 「청자디너세트」 2005년 개인전
7 「작품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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