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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도예인의 일본 도자 답사기
  • 편집부
  • 등록 2006-11-06 15: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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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지 탐방

초보 도예인의 일본 도자 답사기

글+사진 심분녀 _ (전)KBS 제작편집감독

방학을 맞아 문화답사회 ‘단디도’의 일원으로 일본에 있는 한국문화재 답사를 떠나기 하루 전인 8월 15일 아침, 고이즈미 일본총리의 신사참배로 우리나라의 외교통상부가 강경하게 대응한다는 뉴스가 시간마다 흘러 나왔다. 지금 본인은 비록 자연인으로 돌아왔지만, 금년 3월까지 38년 동안 KBS에서 다큐멘터리 제작편집감독으로 매주 , <역사스페셜> 등을 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사와 역사에 남다른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년 광복60주년을 맞아 특별기획 프로그램을 8월 내내 방영하여 그 영상影像들이 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이렇게 미묘한 시점에 일본을 가야 하는가. 마음이 무거웠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통해 영상으로만 일본 도자문화를 접했던 내가 직접 그곳에 가서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은 내 마음을 설레게 하는데 충분하였다.


답사첫날, 우리는 시가라끼 도자마을을 먼저 찾아갔다.(사진1) 오츠에서 시가라끼까지 가는 길은 유난히 목조건물이 많았다. 일본은 지진 때문에 목조 건물이 많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숲과 목조건물이 한편의 영화 장면처럼 아름다워 보일 줄은 몰랐다. 시원한 숲을 가르고 지나가는 아침. 숲과 나무들을 훼손시키지 않기 위해 많은 도로가 양방향을 통틀어 한 대만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도로였다. 바쁜 아침 출근길, 양쪽 차가 1차선으로 양보하며 자연스럽게 기다려주고 지나가는 모습이 새삼 새로웠다.

우리는 먼저 시가라끼 도자마을이 한눈에 보이는 현립도예미술관을 찾았다.(사진2) 마침 개관 10주년을 맞아 세계 25개국 594명의 작가가 참가한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는데, 전시작품은 실생활 용기보다 조형적인 작품들이 많아 개별 국가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몰라 작품을 깊게 이해할 수 없었다.
작품 중에 대만 작가의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모차르트의 음악」이었다. 세 사람의 인형이 모차르트 음악을 연주하는 각기 다른 모습을 담고 있었다.(사진3) 석고 틀로 인형 3개를 성형하고 초벌 소성한 것으로 가마에 놓는 위치에 따라 표면색이 다르고, 유약 없이 재가 자연스럽게 날라 붙은 농도의 변화가 흥미로웠다. 다음에 한 번 해 보고 싶은 마음에 관련 도록을 구입하였는데, 9백50엔 밖에 되지 않았다. 의외로 도록이 무척 싸서 이유를 물었더니 “일본은 전시회를 개최하면 대략 만권 정도의 도록을 인쇄하지만, 한국에서는 이천권 정도 인쇄하기에 한 권당 인쇄단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을 들으며 한국의 출판 시장이 영세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도예미술관을 나온 후, 우리는 언덕을 내려와 도예마을로 들어갔다.(사진4) 우리가 도착한 시가라끼는 세계적인 도자기 마을이다. 숲과 요장이 조화를 이루며 깨끗하고 아담한 마을, 너무나 소박해서 보통 마을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았다. 규모는 여주, 이천보다 3분의 1정도 밖에 안 되고 80% 이상이 산림으로 뒤덮인 산간마을이다. 이 지역의 특산물은 도자기와 차이다. 도자기 제조업체는 1백 30여개이며 연간 판매액이 4백억엔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가 들어간 요장은 120년 된 가마를 갖고 있는 집이었다. 지붕이 새까맣게 그을렸고 그리 크지 않았다. “왜 천정이 새까맣냐”고 물었더니 “간사이 지방이 워낙 추워서 옛날에 도자기를 만들 때 불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안내한 도공이 이야기하였다. 선조들의 흔적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교훈으로 삼는 그들, 우리 같으면 그을음 다 걷어버리고 반짝반짝하게 새로 칠했을 텐데. 이 요장은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필터가 들어있는 정수기 도자기를 만들고 있었다. 우리 부엌에 놓여있는 플라스틱 정수기 대신 도자기정수기를 사용하는 그들, 도자기가 생활과 밀접하게 이어져 있는 그들이 부러웠다.

시가라끼에는 도자기를 상징하는 이곳만의 특산물로 ‘다누끼’라는 너구리 인형이 있다.(사진5) 모자를 쓴 까만 너구리는 부富와 풍요豊饒를 의미한다고 한다. 도시의 빌딩, 상가, 가정집 할 것 없이 마을 전체가 너구리 인형을 건물 앞에 진열해 두고 있었다. 인형이 시가라끼 도예마을의 상징물인 셈이다. 전통의 보존과 변화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며 자기들만의 특색을 갖고 소박한 도요지의 전통을 이어가는 그들. 이 유명한 너구리 인형을 보고 만지면서 자란 아이들은 도자기를 얼마나 자연스럽게 대하게 될까?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요장은 이천과 여주이다. 이 지역은 일본의 도자마을보다 규모 면에서 훨씬 크고 화려하다. 어떤 요장은 궁궐같이 크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도자기 색깔이나 간판들이 제각각 울긋불긋 특색이 없고 시장 물건처럼 밖에 내어 놓고 파는 것이 고급스러운 도자기 이미지와 맞지 않는 것 같다. 제주도 돌하루방을 여주에서도 살 수 있는 것이 우리나라 문화관광상품의 현실이다. 올해 들어 강진 청자골 답사를 두 번이나 갔다. 역사의 주요 도요지였던 강진은 상상했던 것보다 침체되어 있었다. 다시 개발하는 강진이 외형만 비대해지는 것보다 내실을 기하고 이참에 새로운 이미지 캐릭터도 만들어 보았으면 한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옛 도공들의 혼을 되살리는 도요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강진은 도예가들이 개인 요장을 만들 수 있도록 박물관 앞에 터를 다 닦아 놓았다. 요는 우리가 관심을 갖고 함께 모여 다시 불을 지펴야 하는 곳이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전통이 계승되고 판매 또한 활발하게 이루어져 세계적인 도예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도예촌을 떠나 근처에 있는 음식점을 들어갔다. 36도나 되는 더위에 지친 우리는 우선 물을 청했다. 우리 일행은 14명이었는데 점원은 달랑 물 한 잔만 가져다주었다. 우리나라 식당은 손님이 들어가면 의례히 물을 통 채로 갖다 주고 주문을 받는데 말이다. 식사 또한 조금씩 나오는 음식, 한마디로 양이 적어서 감질났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음식이 나올 때 마다 그 음식에 맞는 형태와 문양이 다른 그릇이 눈에 띄었다. 그러자 다음에는 어떤 그릇이 나올까 기다려졌다. 그들은 철저히 자기 고장에서 나온 흙으로 빚은 그릇만 쓴다고 한다. 그들이 차리는 밥상에서부터 만날 수 있는 생활화된 도자기들은 감동적이었다. 우리의 큰 음식점이나 가정의 식탁은 대부분 외국의 유명한 상표가 붙은 똑같은 그릇들을 세트로 쓴다. 우리도 일본처럼 각 가정과 음식점에서 우리가 손으로 직접 만든 다양한 도자기를 사용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 것이며, 또한 도자기 빚는 사람들에게도 힘이 되고 신바람이 날까.
우리는 이번 답사 중에 일본관광명소인 사찰들로 금각사, 은각사, 동대사, 흥복사, 법륭사, 청수사도 둘러보았다. 사찰은 일본에서 관광산업으로 빼 놓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사찰의 조경이 전통적인 느낌보다는 인공을 가미하여 얄미울 정도로 예쁘게 가꾸어져 있었다. 그리고 철저히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절 안에는 들어 갈 수 없게 만들었다. 우리는 외세침략으로 문화재가 많이 파손되기도 했지만 보존을 소홀히 한데서 더 많이 훼손된 것 같다. 지난달에 남도 답사 때 송광사 절 내부를 들어가 1시간 동안 스님에게서 송광사의 역사에 대해 들었던 것과 너무나 비교되는 모습이다. 또한 사찰 구석구석에서 철저히 돈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한 시간 정도 절을 둘러보는 동안 손 씻는 물 이외엔 물을 모두 사 먹어야 하고, 또 관람객들이 부적을 사서 소원을 빌게하고, 심지어 석탑을 바치고 있는 사자의 입과 꼬리에도 동전을 넣게 하는 그들이 밉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였다. 

둘째 날부터는 박물관 관람이 시작되었다. 교토국립박물관, 나라국립박물관, 오사카시립역사박물관, 고려미술관, 라꾸박물관, 다도미술관 등을 두루 관람하였다. 그 중에 1000년간 수도를 지낸 교토 박물관에서는 곳곳에 그들의 역사가 숨 쉬고 있는 것과 자존심이 한눈에 보였다. 일본 관서지역은 고대 한반도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가장 중요한 요충지로, 한국에서 전해진 많은 선진기술을 바탕으로 일본고대 아스카 문화를 발흥시킨 지역이다. 특히 천년의 수도 교토는 우리의 경주와 같은 곳이다. 세계적인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는 일본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에서는 세계적인 명품으로 대접받는 우리나라의 도자기를 볼 수 있었다. 이번 일본 도자기 답사를 도운 최선일 박사(문화재 감정위원)의 안내로 박물관의 역사와 개별 유물의 중요성을 들으면서 세계 도자사에서 차지하는 한국 도자기의 위상을 새삼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침 박물관에서는 <고려청자 매병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최근 오사카에서 고려청자 매병 편이 발견되면서 전시회를 주최하게 되었다는 가다야마 마비상의 안내를 받을 수 있었다.(사진6) 전시된 많은 도자기들을 보면서 그동안 TV영상과 수업시간에 익혔던 문화재들이 머리에 떠올랐다. 어느 책에서 읽은 구절이 생각났다. “미국이 우주선을 만든 것은 송나라가 도자기를 만든 일과 같다”는 말, 도자기가 인류 최초의 고부가가치 상품이었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1996년 11월 세계적 경매회사 크리스티에서 조선 백자철화용문항아리 한 점이 63억원에 경매되었다. 도자기 경매사상 최고의 가격이었다. 일본의 조선도자기에 대한 열정은 임진왜란이 도자기 전쟁이라고 불릴 정도이다. 현재 일본은 채색도자기에 있어 새로운 양식을 개발, 유럽에서 선풍적 인기를 얻어낸 것에 이어 일본 내에서 ‘자포니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세계적인 미술가, 음악가, 패션디자이너들이 일본에 와서 색감과 디자인을 배워 간다는 것이다. 또한 중국은 유럽의 식탁을 바꿔 놓았다고 한다. 그 뿐만이 아니다. 중국의 현대 작가들, 사회가 자본주의로 변하면서 생활이 비대해지고 시장경제가 주는 장단점을 비판하는 작가들이 만든 오브제, 도조작품들이 없어서 못 팔정도이고, 지금 미국 시장에서 중국 작가들이 가장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번 답사에서 세계적인 작품을 통해 흙과 불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오사카 시립역사박물관의 옆 건물이 일본 NHK방송국이다. 본인이 방송국 재직 시에도 가보지 못한 곳이다. NHK건물 로고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찍었다. 올 3월에 KBS를 정년퇴직하고 까맣게 잊었던 직장동료들이 떠올랐다. 내가 이번 답사팀에 동행하고 싶었던 가장 큰 동기가 된 것도 2004년에 KBS가 야심차게 내 놓은 를 본 것이었다. 세계 도자기 마을과 박물관들을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이 꿈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재일교포의 삶이 배어있는 고려박물관을 방문하였다.(사진7) 일본인들이 조선에서 갖고 간 모든 다완茶碗들의 이름을 고려다완 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일본에서 고려라는 간판을 보면서 마음이 조금 울적해졌다. 일본에 끌려온 조선 도공들의 서러움과 정신적인 고통을 안고 도자기를 만들고 있는 그 모습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대형박물관은 한국작품들이 한쪽구석에 초라하게 놓여있는데, 이곳 고려미술관에선 당당히 우뚝 서있는 선조들의 작품들이 자랑스러웠다. 이국땅에서 한국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있는 고려미술관은 1989년 재일교포 고故 정조문 이사장이 평생 일본에서 수집한 1,700여점의 우리나라 문화재를 기증하여 설립된 곳이다. 낯선 땅에 와서 학대와 멸시를 받으면서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여 조국의 얼을 이어가고 있는 이사장님은 높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이국땅 일본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그들에게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 미국이나 유럽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죽을 때 자기재산을 모두 국가에 바친다고 한다. 그것이 국가 전체가 잘 살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이다. 미국의 허리우드 거리도 한사람이 자기 땅을 모두 나라에 헌납하면서 거리의 이름을 허리우드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돈과 명예보다는 공공의 이익과 작품이 영원히 남길 바라는 그들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 관람을 마치고 우리는 2층 홀에서 더위를 식히면서 도록 한 권씩을 사가지고 나왔다.

4박5일의 답사일정을 마치고 느낀 것은 우리가 도자기를 열심히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본다는 것도 값진 일이라는 점이다. 이제 우리도 잠자던 가마에 불을 다시 지펴 세계시장으로 나아가야 한다. 미술가나 문학하는 이들은 나라에서, 지방자치단체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도와준다. 그들을 위한 예술인 마을이 여러 곳에 있다. 우리는 왜 예술인 대접을 못 받고 있는가. 이제 우리도 일만 하는데 그치지 말고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국가조직에서 우리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도자산업이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는 것이다. 세계문화산업에서 가장 부가가치가 큰 도자기. 세계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중국, 영국, 일본을 따라잡고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역사의 맥을 다시 이어가야 한다.
이제 방학도 다 끝나간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 단국대 평생교육원 동기 한 사람이 ‘재벌번조가 있으니 시유하라’고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그 메시지를 보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흙 묻은 작업복을 입고 싶어졌다. 때때로 일상이 지루하고 답답할 때 문화답사여행을 떠나는 것은 도예에 대한 새로운 의지와 활력을 불어넣는다. 나는 내가 선택한 이 도예인의 길을 사랑하고 즐기며 살아갈 것이다.


1  시가라끼 도자마을 전경
2  현립도예미술관
3  특별전 내부 전경
4  요장 입구
5  부와 풍요를 상징하는 다누끼 인형
6  오사카에서 처음 출토된 청자상감운문매병 편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전시)
7  고려미술관 내부 전경
8  일본 도자기 답사를 같이한 ‘단디도’ 회원들

필자는 38년간 KBS제작편집감독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도예교육을 받고있으며 문화답사회 ‘단디도’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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