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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빚는 도예가 김문호
  • 편집부
  • 등록 2006-11-29 14:5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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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만난 작가

 

집 빚는 도예가  김문호

 

흙으로 집을 빚는 도예가 김문호(49). 흙 작업 26년의 숙련된 손은 자유자재로 집을 지어낸다. 손가는 대로 만들어진 지붕 도리와 그 밖으로 내민 처마의 기세는 그의 가마불 속에서 또 한 번 휘어 오른다. 그의 집 빚기는 형식없이 손끝으로 표현되는 감흥의 형상이다.


김문호의 고향은 목포다. 목포대학교 미술과에서 조각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졸업 후 도예가 윤광조에게 사사한 후 16년 전 전라남도 무안군 청계면 월선리에 들어와 요장 ‘승광요’를 짓고 터를 잡았다. 청계면 월선리는 승달산 자락을 끼고 있어 옛부터 분청 가마터가 많았다고 한다. 그는 이곳에서 꿈의 흙, 적토赤土를 만났다. 월선리의 적토는 장석류가 많고 철분, 사토질, 와목 성분도 들어있어 점력이 매우 뛰어나다. 이 때문에 흙벽이 두껍고 커도 불속에서 잘 갈라지지 않는다.
김문호는 대학에서 조각을 전공한 탓인지 물레를 돌려 흙 빚는 일보다 점토판으로 입체기물을 만드는 작업이 더 수월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흙으로 빚는 기와집이다. 고서古書의 기와집 자료를 보다가 우연히 책을 거꾸로, 옆으로 돌려보았다. 관점의 변화로 독특하고 재미난 형태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누구를 흉내 내는 건 싫었습니다. 나만의 것을 찾고 싶었죠. 흙 작업에 있어 형식과 절차 무시한 시도는 남다른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작업에 임하기 전 종이에 스케치하는 법이 없다. 밑그림을 그려보았지만 그대로 빚어진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의 의도에서 벗어나 엉뚱한 형상이 빚어질 때 독특한 맛과 생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흥을 손끝에 모아 집을 빚어야 더 자연스런 생동감이 생기는 것이다.

무안적토 강진청토 화순백토 재유가 불을 만나 기세 넘치는 집으로 승화
작가의 집 빚기에 쓰이는 태토의 종류는 다양하다. 태토는 무안의 적토와 강진의 청토, 화순의 백토를 채취해 섞어 사용한다. 그중 철분이 많아 가마에서 번조된 후 검은색을 띄는 ‘무안적토’와 성형된 기물 위에 화장하는 용도로 쓰이는 ‘화순백토’는 특히 많이 사용되는 주된 재료다.
무안적토를 이용한 도판은 집의 바닥을 다지고 벽을 세운 후 지붕을 올리는데 쓰인다. 벽과 지붕은 집 전체의 비례와 중량감에 맞춰 대략 손가는 대로 만든다. 기와지붕은 마치 경사진 산비탈에 지어진 다랭이논을 연상케 한다. 성형이 완성되면 화순백토로 만든 묽은 화장토를 붓에 묻혀 척척 바른다.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아 언뜻 보면 거칠게 보이지만, 질박한 정감이 묻어나는 분청그릇의 또 다른 형상처럼 느껴진다.
초벌 번조된 기물에 바르는 유약은 2가지의 재유다. 콩을 태워 만든 재를 섞은 콩재유와 여러 가지 나무를 태운 숯을 섞은 잡재유를 바른다. 적토 혹은 청자토 그리고 백자토 등 태토의 종류에 따라 같은 유약이라도 다양한 효과를 갖게 되기 때문에 더 이상의 다양한 유약은 필요치 않다고 한다.
초벌 후 유약이 발라진 집들은 재벌가마로 다시 들어간다. 1300도의 뜨거운 불기운 속에서 지붕 끝의 휘어 올라간 처마는 다시 한 번 기세를 높이며 휘어 오른다. 특히 철분이 많은 무안적토로 만든 검은색 집은 불속에서 색감의 깊이가 한없이 깊어진다. 오랜 노력과 숙련된 솜씨에도 불구하고 판 작업은 물레작업과 달리 두께가 균일하지 않기 때문에 얇은 부분이 불 속에서 주저앉거나 찌그러져 어쩔 수 없이 파가 생긴다. 작가는 어차피 생겨날 파를 이용해 오히려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 기와집 벽과 지붕에 생긴 파는 오래 묵은 바위에 낀 이끼처럼 오히려 고색창연하다. 혹시라도 그것이 없었더라면 밋밋한 집이 되고 말았을 것 같다.
김문호가 빚은 집은 모두 빈집이다. 문이 없이 커다랗게 나있는 구멍은 큰 입을 벌리고 소리지르는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고, 무엇이든 담아내는 사각 그릇 같기도 하다. 그의 집들은 자신을 바라보는 이들을 깊고 넓은 집안으로 이끌고 들어와 많은 이야기를 상상하게 한다. 이것은 김문호의 작품에 제목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상자가 자유로운 관점으로 작품을 보고 해석할 수 있도록 한다.

흙 빚은 기와집에서 자연과 우주를 만나다
김문호의 작업실도 흙집이다. 작업실 안으로 들어서니 시원하다. 흙집이라서 그런가보다. 작업실 한켠의 독특한 공간이 눈에 띤다. 요상하게도 1~2m폭의 긴 공간이다. 그마저도 맨 끝은 폭이 1m도 채 안 된다. 땅모양이 그렇게 생겼단다. 긴 공간의 흙 담을 따라 고가구가 놓여 있고 그 위에 흙으로 빚은 기와집과 탑이 가득하다. 커다란 흙집 안에 또 다른 작은 흙집이 가득 찬 형상이다.
작가의 오랜 지인인 수필가 조승기씨는 “김문호가 빚은 한옥 귀퉁이에 서면, 흙 담을 넘어가는 살구나무 꽃빛이며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바람소리, 건너편 산의 잡목에 머물러 있는 소쩍새 울음까지 들리고 보인다. 그의 집을 바라보노라면 산이 성큼 다가서고 숲을 헤치면 나뭇잎 뒤에 숨은 암자가 눈에 들어온다. 풍경소리, 독경소리, 새벽녘까지 남아있는 석등의 낡은 불빛마저 그려진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감꽃을 만나고, 외로움 끝의 고적함을 만나고, 좀 더 견디면 산 그림자를 만난다. 내친 김에 떠오르는 달이나 지는 달까지 만난다. 부처가 중생을 건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김문호의 한옥을 지나 속세로 돌아온다. 그렇게 해서 고전미의 절정을 빠져나온다”고 한다.
수필가의 은유대로라면 작가의 흙으로 빚어진 기와집 작품 한 점이 불러일으키는 연상의 끝은 한이 없다. 아마도 오래전 우리의 한 선조가 살았던 으리으리한 집 한 채가 작품을 은유하는 이의 마음속으로 들어왔나 보다. 작가와 얘길 나누고 작품을 바라보는 동안 수많은 현대식 건축물들의 미적 구조 속에 길들어버린 기자의 마음속에도 고적함 가득 지닌 옛집 하나가 들어온다.
휘어오른 지붕 추녀의 곡선 아래,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한없이 머물고 싶다.
김태완 기자 anthos@paran.com

 

 

< 더 많은 사진은 월간도예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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