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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영역에서 도예의 범위는?
  • 편집부
  • 등록 2003-07-11 10:41:25
  • 수정 2016-04-11 20: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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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특집 Feature Article 도자예술은 미술의 새로운 개념이다 미술영역에서 도예의 범위는? 글/임창섭 미술평론가 넓다”. 미술영역에서 도예의 범위를 묻는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미 미술이라는 영역이 있고, 그 영역안에서 도예의 영역은 얼마나 차지하는가라는 질문이라고 해석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 질문이 이런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뜻이 있을까. 혹시 이런 숨은 뜻을 가진 것은 아닐까. “도예는 미술영역에 속하는가?” 아니, 좀 더 직설적으로 “도예는 미술인가?” 이런 질문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아니면, “도예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뭐, 이런 질문이 정작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드러난 질문과 숨겨진 질문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하고 나니까, 왜 이런 질문이 일어나는가라는 의문이 다시 꼬리를 문다. 이런 의문에 의심은 도예만이 아니라, 한때 공예계가 화두로 삼았던 ‘정체성 찾기’라는 의식의 잔재가 여전히 나의 뇌에서 작동하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이미 너무나 진부해진 질문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답이 나와 있지만, 여전히 가슴이 시원하지 않다. 보물상자를 앞에 두고도 열쇠를 찾지 못한 답답한 심정이 이럴까도 싶다. 프로축구나 야구에는 2부리그가 있다. 2부리그에 있는 선수들은 사력을 다해 1부리그로 올라가려 한다. 혹시 공예도 같은 맥락은 아닐까. 왜 그럴까. 프로스포츠에서는 1부와 2부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고 한다. 부와 명성에 천양지차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이기 때문이란다. 그렇다면 2부에 속해있는 선수들은 1부리그를 목표할 것은 당연지사다. 그런데 공예는 왜 기를 쓰고 미술이라는 곳에 들어가고자 할까. 그쪽에 가도 부와 명성이 보장된 것도 아닌데 말이다. 오히려 자신만의 영역을 공공히 구축하는 편이 낳지 않을까. 미술은 미술이고 공예는 공예라면 말이다. 몇 달 전에 이런 비유를 들은 적이 있다. 유명한 시인이 있다. 그는 정말 열심히 시를 발표했지만, 무언가 충족되지 않는 자신을 발견하곤 심혈을 기울여 기나긴 글을 썼다. 누가 읽어도 그것은 소설임에 분명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시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소설’이 아니라, 그것을 ‘시’라고 우겼다. 왜 우겼을까. 그는 시인이 외도했다는 주변의 시각을 의식했기 때문이다. 자신이 의식하는 눈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그런 우격다짐을 한 것이다. 우리의 공예가 꼭 이렇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시인이 소설 썼다고 그것이 시가 될리도 없고, 시인은 소설을 쓰지 말라고 정해논 법도 없다. 요즘은 만능주의가 오히려 우대받는 시대아닌가. 시인이 소설까지 썼다면 그의 능력을 더욱 높이 사야하는 것이 아니가. 그런데 문제는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 혹은 그 결과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화가가 수묵화를 도자기에 그렸다고, 그가 도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화가가 그릇을 빚었다고 역시 도공이 되는 것도 아니다. 마찬가지. 도예가가 유화를 그렸다고, 그를 화가라고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그가 그린 것이 공예일리 만무다. 그것은 명확하게 그림이다. 아주 명쾌한 문제이지만 무언가 때문에 그렇게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는 공예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예가는 공예를 해야 하고, 미술가는 미술만을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다. 시인은 소설을 쓰면안된다는 관념과 같다. 또 공예는 아름다움과 쓰임새를 두루 갖추어진 것이어야 한다는 확고한 고정관념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현대공예니, 현대도예니 하는 것을 보니 이런 관념에 들어맞는 것은 찾아보기가 어렵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정체성 찾기는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에 표면적 행위로 이어진 것이다. 그러니까 문제를 잘못 읽은 것이다. 고정관념 때문에 문제 아닌 문제가 생긴 것인데, 그 원인을 밖에서 찾으려고 하니 그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 그리고 앞으로도 끊임없이 변화할 것이다. 당연히 공예도 변화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변화할 것이다. 그런데 공예에 관한 의식은 고정관념으로 높은 담장에 쌓여있는 것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나누고 구획하고 틀을 지워 놓으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이런 의식이 각 부분의 학문과 다양한 문화현상의 분석에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이렇게 자신만의 영역을 주장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고집스런 영역의 고수에 박수를 보내던 시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의 현대미술을 세계미술로 만들어버린 ‘클레멘트 그린버그’의 ‘모더니즘’론은 경직된 ‘자기환원론’ 때문에 폐기처분되었지 않은가. 그래서 ‘장르간의 혼합’이니, ‘탈 장르’니 하는 말이 나온 것이다. 영역이란 말이 나왔으니, 예술과 미술과 공예간의 일차원적 구분을 해보자. 한자권에서는 예술과 공예는 비슷한 의미였다. 아주 먼 옛날에는. 심지어 영어의 Art는 이 두 가지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점차 미술이라는 것이 예술에서 분리되고, 또 공예의 의미가 변화된 것이다. 이 세가지 말은 계속적으로 의미의 변화를 일으켜 이제는 한마디로 그것을 정의하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그러나 변함없는 것은 미술도 예술이고, 공예도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공예 속에 잠재한 고정관념은 자신이 가지고 마이너리티를 숨기고, 정체성 찾기에 나선 것이다. 손에 안경들고 찾는 격인지도 모른다. 공예와 미술이 분화되기 이전에는 한 몸이었다. 분화되고도 그것들은 여전히 예술이다. 우리는 이미 우리의 공예에 대해 너무나 많이 공부했었다. 그러니까, 중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것을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미 우리는 공예를 배웠더라는 것이다. 그것도 혹독한 입시문화때문에 달달 외울 정도로 공부했던 것이다. 물론 그 과목의 이름은 공예사가 아니라 ‘국사’였다. 각 단원에 나오는 문화의 대부분은 알고 보니 공예의 역사였던 것이다. 빗살무늬토기에서부터, 탑, 건축, 불상 어느 것하나 공예가 아닌 것이 없었다. 적어도 ‘미술’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까지 그랬다. 공예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니, 인간이 삶이라는 것을 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래서 공예는 생활이었고, 문화였고, 삶의 방식이며 태도였던 것이다. 공예가 그렇다는 것이다. 도예도 마찬가지이다. 흙으로 그릇을 만들어 불을 구울때부터 그것은 생활의 하나였다. 그것이 진화하면서 도기도, 자기도 나온 것이다. 물론 좀더 가깝게, 가깝게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자 한 수많은 도공의 노력이 뒷받침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공예가일 뿐만 아니라, 위대한 예술가였다. 「빗살무늬토기」에 그려진 선들이 모르긴 몰라도 쓰임새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토기기마인물상」이 생활에 얼마나 많이 이용되었을까. 고려청자는 그릇이지만, 이미 위대한 예술의 자리에 올라 선 것이 아닌가. 이런 위대한 예술을 행한 이들이 그것을 미술이라고 불렀을까. 아니 심지어 예술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닐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사회가 요구하는, 그리고 시대의식이 담긴 것을 만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현대미술에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그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면 공예에 대한 고정관념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우리의 의식 속에 정착한 것이다. 공예를 배우면서도 그것이 공예인줄 몰랐듯이, 도자기가 이미 예술로까지 진전되어 왔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곤 어느 순간에 미술이라는 이름을 가진 영역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영역을 내준 것이다. 그리곤 뒷전에서 공예란 무엇인가를 외치기 시작한 것이다. 도예는 그릇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혹시 이런 주장을 할지도 모른다. 공예가 가지고 있던 역할은 산업혁명이후 발전된 산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그래서 도예는 자신의 새로운 영역을 찾아 떠난 것이라고. 그렇다면 도예는 제대로 찾아간 것일까. 대답은 “아니다”이다. 이미 위에서 말했듯이 도예는 지금 현대도예의 모습 아니, 미술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또 이렇게 주장하기도 한다. 찬란하고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단절된 도예는 서구에서 배워 온 예술가 의식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이유가 전혀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한때 우리는 서구의 것이라면 ‘무조건’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우대한 적이 있다. 지금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쓰임새보다는 조형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최신의 정보와 경향을 소개하고 그것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 그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장려해야 될 것이다. 근대에 우리사회 아니 우리생활이 일본자기에 침식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알고 있다. 그때도 역시 서구의 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빗어진 것일까. 아니다. 사회가, 생활이 변하고, 시대가 변하면서 요구하는 의식을 수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공예가 그리고 미술이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것이 누구의 책임인가. 사회 구성원들은 그들이 속한 이들이 만든 공예와 미술을 무조건 받아들여야만 하는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그것이 그들의 정서와 감정을 대변하지 못하는 데도. 이 역시 대답은 “아니다”. 외부의 변화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 말것인지 스스로 결정할 일이다. 그리곤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맞는 아니, 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이 받아들일 만한 것으로 발전시키는 것은 공예계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몫이다. 도예에 몸담고 있는 이들의 몫인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냐, 마느냐는 미안하게도 상대방의 몫인 것이다. 그렇다면 대학에서 서구의 최신 경향을 가르치고 공부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 것인가. 있기는 있다. 공예의 마이너리티를 조장했다는 것이다. 도예의 마이너리티. 다시말하면 바로 자신들의 영역을 비주류로 스스로 인정해버렸다. 어쩌면 그동안 대학이 만들어낸 상아탑이라는 표상에 자신이 걸맞지 않다는 의식이 커져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런 인정과 의식의 내용은 다음과 같은 현상을 조금씩, 조금씩 키워갔던 것인지도 모른다. 상아탑은 세상의 속된 아니 점잖치 못한 일에 관여하지 않고, 오직 책과 씨름만 해야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대학은 순수학문이 대우받는 곳이다. 이런 일은 불과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순수문학, 순수연극, 순수미술만이 눈에 들어오게 했다. 그런데 공예 아니, 도예는 쓰임새 즉 생활과 직접관련이 있는 예술을 하는 곳이니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것이다. 좀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현대미술이 자신의 모습을 한없이 변화시켜 도무지 무엇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변해가고 있을 때, 도예는 그릇과 그리고 실험적인 몇몇 가지를 끌어안고 있었다. 현대미술은 온갖 서구이론의 수입으로 자신을 중무장할 때, 도예는 자신을 보호할 별다른 이론이나 텍스트를 발견해내지 못했다. 현대미술이 자신의 의식변화만이 아니라, 사회의식까지도 담아내려 할 때, 도예는 여전히 미와 용이라는 문제가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것이 공예의 그리고 도예의 정체성 찾기를 부추긴 원인의 하나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순수예술을 지향하는 회화라는 것이 메이저, 미와 용을 지향하는 도예는 마이너라는 의식이 부지불식간에 자리잡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스스로도 모르게 인정하고 말았는지도 모른다. 물론 아니라고 부정할지도 모른다. 아니 인정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서구의 현대미술을 가르치고 배우면서 최신의 경향을 모른다거나 동조하지 않으면 은연중의 따돌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불안감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런 마이너리티는 쥐도 새도 모르게 우리의 공예계를 점령하고 말았다. 도예도 예외는 아니다. 이것이 아니라면 왜 전통적인 방법을 고수하고 있는 수많은 도예가들은 작게는 공예계에서 크게는 미술계에서 외면당하고 있는가. 혹시 도예를 고집스럽게 지향하는 이들조차도 은연중에 그들을 따돌림하고 있지 않았던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방법으로 작업하는 도예가들만이 대안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리고 이런 말은 최근의 대학이 변하는 모습에서 전혀 틀린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곰곰히 그런 면이 전혀 없지는 않았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또 하나의 고정관념을 주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공예와 미술을 구분하는 하나의 기준으로 생각되는 것이 있다. 공예 즉 도예는 생활에 필요한 물건 제작하던 것이 아름다움을 겸비하면서 생활문화의 하나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여기서 아름다움에 대한 욕망에 대한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이 아름다움이 점차 하나의 독립된 문화로 정착되면서 그것이 인간모습을 모방하면서 모습을 갖추어 나간 것이 미술이다. 즉 공예는 생활용품에서, 미술은 인간모습을 모방에서 분화된 것이라는 기준이다. 이 두가지가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아름다움을 하나의 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예가 갈고 닦은 아름다움에 대한 기술과 의식이 그대로 미술로 전달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온전히 제 모습대로 이어온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오히려 미술영역은 아름다움을 다루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을 확대해 나갔다. 그에 비례해서 공예는 자신의 역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산업혁명으로 인한 대량생산된 공산품이 일상생활에 침입하면서 공예의 역할은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도예의 새로운 위상을 위하여, 찬란한 옛모습을 재현하기 위하여, 도예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미술영역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한다고 변화되는 것은 없다. 왜냐하면 이미 도예는 미술영역을 오래전부터 포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공예의 영역 아니, 도예의 영역, 미술의 영역이 분명히 나누어진다면 말이다. 그렇다고 도예와 미술이 같은 곳을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도예와 미술의 제 역할은 있다. 단지 그것의 선택은 어디까지나 개개인의 몫일뿐이다. 남의 눈을 의식하는 선택이 아니라, 당당히 자신의 길을 결정하고 선택하는 몫으로 남겨져 있는 것이다. 도예는 미술의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미술이 도예에서의 새로운 개념이다. 공예의 새로운 개념인 것이다. 현대미술은 적어도 우리 삶으로부터 거리를 둔지 오래다. 미술관을 찾는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고개를 가웃거린다. 도대체 도예는 미술의 무엇을 닮고 싶어하는가? 김성연 作 오만철 作 「Dream of Africa」 신상호 作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저서, ‘현대공예의 반란을 꿈꾸며’, 꿈을 그린 화가 김환기’ ‘비평으로 본 한국미술(공저)’등 외 다수 논문 전시기획, ‘Wow Project전’, ‘Dreammetro전’ 등 현, 홍익대 대학원, 경기대 대학원, 경희대 대학원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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