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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 린
  • 편집부
  • 등록 2003-07-11 10:48:44
  • 수정 2016-04-12 22: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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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 린 새 기법 벽걸이 펑판작업 우리 도예계 새 지평 열어 고체유약덩어리 이용 채색재료 존재 드러나지 않아 지난해 가을 서울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생소한 이름의 한 작가가 일반적인 액체 유약 사용방식을 탈피한 고체 유약 덩어리를 이용한 특이한 표면효과의 벽걸이 도판형식의 작품을 선보여 큰 관심을 모았다. 도예가 이 린(47세)의 전시였다. 미국 15년 이민생활 작업, 98년 귀국 네번째 개인전 도자조형 개념 새 전개 이 린은 1979년, 단국대 요업공예과(현, 도예과)를 졸업하고 82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15년간 이민 생활을 했다. 이민 생활 중 처음 4년간은 어학연수과정과 1987년 캔사스예술학교(KANSAS CITY ART INSTITUE)에서 도예를 수학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98년까지 11년간 미국에서 도예작가로 활동 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생소한 이름일 수밖에 없다. 지난해 10월, 서울 인사동의 인사아트센터 전시장에서 도예가 이 린의 네 번째 개인전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체 조용히 열리고 있었다. 기자가 우연히 들르게 된 전시장에는 도예작품이라기 보다는 추상회화에 가까운 독특한 평판작품 20여점이 벽에 나란히 걸려 있었고 전시장 중앙에는 남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는 형태와 화려한 색감을 지닌 기(器) 작품 3점이 선보이고 있었다. 유화 12호 정도크기의 벽에 걸린 평판작품중 몇몇 점은 점묘법과 같은 새로운 문양(?)으로 만여 개가 족히 넘을 듯한 하얀색의 점이 어두운 바탕위에 반복적으로 나열돼 마치 분청사기의 인화문을 찍어낸 것과 비슷한 효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사진1> 4회 개인전에 선보인 작품에 관해 미술평론가 신항섭씨는 “벽걸이용 평판작업은 이제까지와는 비교대상이 없을 만큼 독자적인 발상과 제작기법에 의해 새로운 도예의 지평을 열고 있다. 고려상감문양청자나 청화백자 또는 분청사기 따위의 전통적인 채색재료와는 확연히 구별되는 점이 있다. 무엇보다도 채색재료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특이하다”고 평했다. 그 드러나지 않는 채색재료의 존재는 고체 유약 덩어리였다. 작가는 미국 생활 시절, 그곳에서 배운 다양한 사실을 기반으로 독자적인 연구 노력에 의해 새로운 유약 사용법을 고안해 냈다. 초벌도판위에 유약흘리고 그 위에 유약 주사기로 2~3만개 점 시문 그의 작업과정을 보면 초벌된 도판위에 검은색의 흐르는 유약을 의도하는 위치 따라 두껍게 혹은 얇게 바르고 그 위에 주사기로 2~3만개의 점을 촘촘하게 흰색의 유약재료(미국 Lagulana Clay사의 Satin White유)로 시문한 후 도판을 세로로 세워 2차 번조한다. 번조 과정에서 두껍게 바른 유약 부분은 많은 양이 아래로 흘러내리게 된다. 작가는 불에서 구워지는 작품의 완성단계에서 절반은 본인의 의도로 표현하고 절반은 요변에 일임하는 것이다. 이 부분은 어느 도예가에게나 같은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도예가 이 린에게는 남다르다. 그는 “제가 사용하는 유약은 정립된 데이터가 아닌 단지 ‘흐르는 유약 위에 이 유약을 올려놓으면 어떻게 되겠나’하는 상상을 표현하는 재료일 뿐이다. 이 방법은 나에게 항상 상상외의 결과를 준다. 그래서 내 작업은 새롭다”고 한다. <사진2> 도예가 이 린은 단국대 학창시절 물레성형에 관심이 많았다. 그의 대학 선배인 박종훈, 심유승, 김갑순 등의 영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물레성형시 옹기토에 연탄재를 섞어 성형하는 등의 독특한 질감 찾기에 더 관심이 많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3년만인 1982년, 아랍문화회관에서 첫 개인전을 갖었다. 첫 개인전에서는 그간 익혀온 물레성형기법을 응용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그는 첫 개인전을 가진 직 후 미국으로 건너갔다. 물레성형을 기본으로 물성을 가미하고 질감의 다양함으로 조형성을 강조한 작품을 만드는 그에게 주변에서는 ‘물레조각가’란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이 린씨는 “그리 좋은 물레실력은 아니었는데… 대형 물레 성형기법을 보기 쉽지 않았던 그들의 눈에는 대단해 보였나 봅니다”라고 한다. 작가는 미국생활 중 학교를 다닌 4년을 제외하곤 바깥출입을 거의 하지 않고 작업에만 열중했다. 그 이유는 언어문제가 해결이 안됐기 때문이다. 이 린은 실기에는 자신 있었지만 유독 언어가 늘지 않았기 때문에 이론과목 성적에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무엇이든 쉽게 빠져드는 성격”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는 혼자서 작업실에 틀어박혀 있기를 좋아한다. 15년간 생활해온 미국에서도 개인전은 한번 밖에 갖지 않았을 만큼 작업실에서 작업에만 전념하길 좋아했다. 미국에서의 개인전도 자신이 사용하고 있던 작업실에서 경영하는 화랑인 Leedy Voulkos 갤러리에서 마련한 한번의 전시였다. 작가는 지난 98년 한국에 다시 들어와 이제 자신만의 독특한 작품세계가 확립됐다는 의지 때문인지 귀국 2년만인 2000년부터 숨겨뒀던(?) 자신의 작품을 꺼내 보이기 시작했다. 3회 개인전은 2000년 10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아미아트갤러리에서 가졌다. 이 전시에서는 ‘생명-삶’을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여체의 둔부와 남성의 성기를 형상화한 옹기토로 성형한 항아리 위에 고체 유약 덩어리를 덮어 번조하는 방식의 작업으로 “전혀 새로운 개념의 표면 문양과 질감을 지닌 작품”이란 평을 얻은 전시였다. 특히 작품 ‘삶-정상’이란 작품은 “옹기토로 성형된 기물의 표면에 작은 돌을 박아 넣어 마치 하나하나 붓으로 그린 듯한 정교하면서도 우연성이 풍부한 문양으로 표현됐으며 휴화산에 쌓인 만년설을 연상케하는 독특한 형태는 유약 자체가 형태에 직접적으로 관여케 한 도자조형의 개념을 확대한 작품”이란 호평을 받았다.<사진3> 이후, 2001년 5월에는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마니프(MANIF)’행사에 참여해 ‘정상’이란 주제의 작품 10여점을 선보였으며 지난해 10월에는 자신의 4회 개인전을 가졌다. 개인전을 끝 낸지 얼마 지나지 않았음에도 경기도 과천시에 위치한 작가의 작은 작업실 안에는 벌써부터 성형돼 건조중인 작품들로 가득차 있다. 그는 “지난 20년간 도자기 하나만을 바라보며 방황했다. 이젠 지금까지 찾아놓은 것을 정립하고 깊이 파고드는 시점이다. 제 머리엔 너무나 많은 아이디어들이 있다. 그것은 작업을 통해서만 풀린다. 그래서 매일 작업 한다”고 한다. 도예가 이 린이 가진 숨겨놓은 생각들이 흙과 유약이라는 매개를 통해 실험적 조형의지로 어떻게 탄생될지 앞날이 기대된다. 김태완 기자 anthos@hitel.net <사진1> 「삶 중에서(Life Series)」 <사진2>번조과정에서 흘러내린 유약이 고여 독특한 형태를 만든다 1 <사진3> 「정상(The Peak)」 3회 개인전 작품 2 「생명(Life on the Earth)」 1998년 作 3 작가의 작업실 내부는 성형된 기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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