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한·일 국제세라믹스세미나 25주년 기념 좌담회
  • 편집부
  • 등록 2009-05-28 15:41:29
  • 수정 2009-05-28 17:52:39
기사수정

 


한·일 국제세라믹스세미나 25주년 기념 좌담회                                  
시작을 되짚으며 앞으로의 25년을 준비한다.


한·일 국제세라믹스세미나는 지난 1984년 ‘뉴-세라믹스 분야 일본학자·기술자 초청세미나’로 시작해 올해로 25주년을 맞게 되었다. 대한민국의 세라믹산업의 발전에 있어서 적지 않은 역할을 수행해온 이 행사의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당시 행사를 주도했던 원로 세라미스트들이 10월 16일 요업회관에 모였다. 한국세라믹총협회 전병식회장의 사회로 진행된 좌담회에서는 그분들이 어떤 고민들을 했고 또 어떤 노력들을 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는 오늘의 우리들이 생각하고 고민해야 할 문제들에 대해서도 의미 있는 이정표로 작용하지 않을까 한다.

 


전병식 회장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세계금융시장을 초토화시킨 미국 금융위기가 선진국의 공조로 한숨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위기의 후폭풍을 모든 분야가 이겨내야 합니다. 세라믹도 예외가 아닙니다. 일본은 세미나를 시작하던 4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세라믹분야에서 세계정상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간에 극복해야할 어려움도 적지 않았으나 두 나라는 세미나라는 교류의 장을 마련하여 꾸준히 지켜 오면서 좋은 파트너 관계를 유지해 왔습니다.
우리는 세미나를 시작할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면서 보다 나은 공조의 모델을 모색하기 위하여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세미나를 통해서 맺어진 끈끈한 인간관계 위에서 이루어진 공동연구의 성과도 우리 젊은이들과 기업의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세미나를 기획하고 준비하는 방식과 내용에 대해서도 많은 충고를 들었습니다. 이 자리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좋은 말씀을 기탄없이 나누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먼저 세미나가 개최되기까지의 배경 등에 대해서 말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하이영 당시 대원통상회장   
제1회 세미나는 일본 지찌부秩父 시멘트의 자회사인 사이마렉의 하기와라 마사히로萩原昌浩 사장이 통상성에 건의하여 개최되었습니다. 당초 하기와라는 사이마렉의 센서에 대한 기술세미나를 한국에서 개최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이왕 세미나를 하는 김에 좀 더 크게 개최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했던 것이 25년을 이어온 배경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 주한 일본대사 마에다前田씨가 남기동 회장님의 동기였던 것도 큰 도움이 되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국립공업시험원(현 기술표준원)이 주최하는데 대한 비판도 있었으나 양국의 국공립연구기관이 주축이되어 개최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간관계를 맺고 친해지는데 유의하여 인간관계부터 만들었기 때문에 논문이나 기술로는 만들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남기동 총협회 명예회장 
25년 전에 전병식 당시 국립공업시험원장이 참 수고했지요. 나도 일본에 아는 사람이 많았지만 외교관계상 대학동기인 마에다 대사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또 마즈모도 고오지松本厚治 주한일본상무관의 보이지 않는 지원이 컸습니다. 첫 세미나에서 장성도 박사가 고생을 참 많이 했습니다. 일본에서는 11분의 산·학·관을 대표하는 강사들이 참가했는데 국내에는 이 분야에 대해 참여할 사람이 거의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장성도 박사가 고생한 덕분에 그나마 체면이 섰던 셈이지요.
초기에는 크게 주목을 끌지 못하였으나 거듭할수록 양국 간에 호응도가 높아지고 자진해서 논문을 내고 할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1회에 이어 즈꾸바에서 열린 2회때 70여명이 참가하는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25회 세미나가 강릉에서 열리는데 열심히들 준비하고 있는 것 같아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동안 세미나로 인해 많은 친분과 정보교류를 얻었고, 우리는 당시의 멤버들이 모두 건재한 편인데 일본은 당시 멤버들이 많이 바뀌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SCI 학술지 게재가 추진되어 세미나의 권위가 섰고 젊은 사람을 많이 양성해 내기도 했습니다. 세미나를 개최하면서 힘들었지만 오래 산 보람이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장성도 박사
당시는 지금처럼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아서 서신이나 팩스로 정보교환을 하던 시절입니다. 83년도에는 세미나를 개최하기 위해서 공업시험원에서 수많은 회의를 진행했었습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걱정이 많이 됐었지요. 일본은 당시만 해도 세계 제일의 파인세라믹스 강국이었고 한국은 컨덴서를 생산하던 삼화전자와 뚝섬에 모토로라가 있었을 뿐 그 외의 기업은 전무하던 시절입니다. 당시 한국의 파인세라믹스 현황을 발표하기 위해 동분서주 했었지만 막막한 심정이었습니다.
결국 83년에 ‘한국의 파인세라믹스 현황’이라는 자료를 만들었고, 상대국가에 한국에도 파인세라믹스가 있다는 인식을 심는데 일조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몇 분과 공업시험원 연구원들이 발표를 했지만 일본 수준에 비교하면 미흡한 점이 많아 안타까운 심정이었습니다.
사이또 신로꾸 齊藤進六 당시 일본파인세라믹협회장이 KAIST 강당에서 일본의 파인세라믹스 현황에 대해 발표할 때 “두개골이 압전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물론 과학적인 근거에 이론한 내용은 아니지만 머리에 충격을 받으면 눈에서 불이 번쩍한다는 것을 통해 압전세라믹에 대해 설명한 강연은 인상적이었습니다.
또 83년은 아주 재미있는 시기였습니다. 세계 파인세라믹계에 일대 경쟁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도 역시 선두주자였던 일본을 위시하여 유럽, 미국도 여러 가지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파인세라믹스에 서로 뛰어들던 때였습니다.

김병호 고려대 명예교수
84년 생체재료 쪽 좌장을 맡으면서 세미나에 동참하게 됐었지요. 일본은 기업 측 연구원이 많이 참석했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일본 측의 협조를 얻기 위해 영어 대신 일본어로 발표할 수 있도록 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아마도 97년 14회부터 뉴세라믹에서 뉴가 빠지고 국제라는 말이 들어갔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한일 양국을 중심으로 동남아를 아우르는 국제세미나로 확대시키자는 것이었지만 한일 중심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한일 양국의 젊은 교수들이 공동 연구할 수 있는 부분에 메리트가 있는가하는 반성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젊은 교수들은 미국이나 유럽에서 교육받은 이가 더 많기 때문에 그들이 관심을 갖게 하기 위해서는 고민이 필요합니다.

황호연 월간세라믹스 발행인
지난 20년간 세미나를 꾸준히 다뤄왔습니다. 국내에 세라믹 관련잡지가 없다는 점이 아쉬워 월간세라믹스를 창간까지 하게 됐습니다. 그만큼 기술력이 부족하고 제대로 된 정보가 없던 시절이었지요. 남기동 선생님이 국내에서 최초로 개설한 한양대학교 요업공학과 1기생으로 이 자리에 있는 이경희 교수와는 대학동기입니다. 군 제대 후 산업계에 가보니 기술자가 정말로 없었습니다. 서울공대 출신이 몇 분 계셨지만 당시 산업계는 기술정보가 매우 아쉬웠던 시절입니다. 
원로 선배님들이 주축이 되어 활동하셨지만 학계도 산업계와 마찬가지로 어려울 때였고 모든 면에서 일본에 비해 열악했습니다. 지금은 양국 간 협력의 활성화 방안은 무엇인가 고민하고 원로와 젊은 세대가 합심해서 세라믹산업을 발전시켜야 할 때입니다.
요업계 발전을 위한 사명감만으로 애써왔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월간세라믹스를 적극 활용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이경희 명지대학교 교수     
세미나에 크게 기여한 바는 없고 그저 통역하라고 하면 열심히 통역을 하고 다녔지만 논문보다 정다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어 좋았습니다. 학문냄새가 너무 풍기지 않으니까 더 잘 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담 없이 만나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한국에 오겠다는 일본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학문도 좋지만 친구 집에 가서 한번 자고 오는 것도 유대관계를 맺고 정보교류를 하는데 큰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중국도 끼워 넣고 제3국도 끼워 넣어서 국제적으로 학문을 떠나 생각하는 바를 나누고 서로 회포를 푸는 쪽으로 특징을 살려나가는 것이 어떨까 생각합니다. 
   
이종민 요업기술원 초대원장 
83년 국립공업시험원 요업과 과장으로 있을 때 세미나 성사를 위해 일본에 건너가서 열심히 활동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당시 국제적인 세미나를 준비하던 여러 분야 가운데 요업기술세미나도 그 하나였습니다. 조직위원회와 실행위원회 등에서 10년 동안 열심히 일했습니다. 당시에 학계와 업계의 교류도 활발했었지요. 오늘의 요업기술원은 공업시험원이 공동연구, 기술자교류 등을 통해 도자기시험소의 활성화를 도모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원의 요업과도 많은 일을 했는데 여기 계신 최용식 박사도 함께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요업기술원의 탄생이 세미나의 진전과 무관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공업시험원의 인력과 장비는 매우 열악하였기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전병식 원장이 내린 고육지책중의 하나가 한일세라믹세미나의 지속적인 개최였던 것으로 압니다.

최용식 한국세라믹총협회 전무
세미나가 누구에 의해서 운영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초창기에는 우리나라 세라믹산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황이어서 공업시험원이 주관하고 요업학회와 대학교수의 힘을 빌리는 형태로 꾸려 나갔습니다. 세미나를 중심으로 붐이 조성되면서 학회와 대학이 활성화되고 정밀요업협회도 생겼습니다. 정밀요업협회가 사무국 역할을 하는 시기를 거쳐 현재는 총협회가 조직위원회의 운영과 사무국 역할을 맡아하고 요업기술원이 학회의 도움을 받아 실행위원회 역할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전병식 회장
일본의 일간공업신문사가 1984년 10월에 발행한 ‘파인세라믹스 전쟁’이라는 책에 제1회 세미나의 개최 경위와 내용이 간략히 수록되어 있습니다. 제1회 세미나의 공식명칭은 ‘뉴세라믹분야 일본학자·기술자 초청세미나’였습니다. 이 책에서는 “지찌부 시멘트의 자회사인 사이마렉사가 자기상품을 팔기위해 왔다가 한국에서 세미나를 하자는 요청을 받았다. 일본 통산성의 초대 파인세라믹실장인 나까지마 구니오中島邦雄가 일본 세라믹의 여러 분야를 대표하는 11명의 호화 강사진을 이끌고 한국으로 건너갔다. 천여 명이 참여한 세미나가 성황리에 끝난 후 일본과의 정기적인 교류가 이루어져 제2회 행사가 진행됐다”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사실 당시 일본 측은 지속적인 세미나 개최에 부정적이었다. 3회 이후에 비해서 비길 수 없이 많은 어려움을 2회 세미나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겪었지요. 
마산도자기시험소는 전두환 대통령의 특별재가덕분에 서울로 올라 올 수 있었습니다. 요업기술원의 일취월장 하는 모습을 볼 때 참으로 다행스러웠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주제를 바꿔 성공적인 협력을 위한 모델을 만드는 것에 대해 논의를 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제1회 세미나 당시 일본은 국제협력은 경쟁을 위한 기초토대를 만드는 것으로 긍정적으로 받아 드리고 있었습니다. 승부를 위한 경기장을 만드는 것이며, 국제협력은 국제적인 공통의 재산이라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의 일본은 국제협력을 구가하면서도 자국이 지닌 파인세라믹의 강점을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높은 수준에 올려놓고 세계시장에서 압도적인 Share를 누리고 있습니다. 부가가지가 낮은 일반적인 세라믹은 국제협력을 통해 문호를 개방하겠지만 고기능성 제품은 개방하지 않겠다는 전략을 갖고 있는 듯합니다. 국제협력을 강조하면서도 일본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전략과 전술은 확고하다는 말입니다.

장성도 박사
우리나라의 금년도 국가예산은 273조원이고 2010년까지 R&D에 쏟는 돈을 5%대까지 확대한다고 합니다. 이중 정부가 1.5% 민간부분이 3.5%를 담당하게 됩니다. 한·일 국제세라믹스세미나를 전면에 내세울 기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의 연장선이기도 합니다.
노태우 대통령 당시 일본 수상에게 ‘기술을 달라’고 했더니 수상이 도울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해서 탄생한 것이 바로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이고 이 재단의 ‘기업현장기술지도 사업’을 통해 4년 전부터 파인세라믹협회의 30개 업체가 지원을 받아왔습니다. 국내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기술을 선정해 일본 기술자나 학계 전문가를 초청해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으로 1년에 평균 10명을 초청해 지금까지 30개 기업이 혜택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25명의 전문가가 초빙되어 나름대로의 성과를 보이고 있습니다.
또, 지식경제부 후원으로 강릉테크노파크 내에 세라믹 신소재산업 클러스터사업단이 만들어 졌고 세라믹클러스터 사업을 위해 연간 150억 원이 지원되어 총 500억 원이 지금까지 지원됐습니다. 정부에서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세미나도 개최할 수 있습니다. 기관을 앞세우면 정부의 지원을 유치해 행사를 큰 틀로 확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총협회와 파인세라믹협회가 공조하고 역할을 분담해야 합니다. 
이 세미나가 국제 세미나가 된 것도 일본 통산성 때문입니다. 국제행사여야만 예산을 지원할 수 있다고 해서 세미나 명칭에 국제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 세계는 한일만을 고집할 때가 아닙니다. 몇일 전에 중국 규산염연구소 사람이 요업기술원을 방문하여 회의를 했고, 동남아 각국은 지금 한국과의 협력을 바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세미나를 키우고 우리의 역량도 키워야 합니다.
요업기술원이 중국과 밀접한 관계로 가고 있으며 말레이시아 사람이 기술표준원에서 국제표준에 대한 트레이닝을 받기 위해 와 있습니다. 한국이 동남아를 리드할 수 있는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한일만이 아닌 글로벌 차원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려면 예산이 필요합니다. 출연연구소를 앞세워 정부지원을 받자고 하는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예산이 중요하다. 해마다 파인세라믹협회가 150여명의 참관단을 이끌고 해외전시회를 참관합니다. 이중 100명 정도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미래의 원동력이 될 주목할 만한 아이템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이들을 국제적 시스템으로 만들어 주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에서 이에 대해 적극 뒷바라지를 해야 합니다. 

전병식 회장
참여국의 확대가 국제화시대에 무시할 수 없는 추세이지만 칠레와의 FTA처럼 양국 간의 배타적 관계가 중요시되는 경우도 있고 한일세라믹 세미나처럼 양국 간의 교류가 기조를 이루되 좀 더 개방하자는 경우도 있습니다. 개방은 언제나 중요한 화두임이 분명합니다. 일본과의 종래의 관계를 존중하면서 관계 다변화의 시대적 세계적 요청에 어떻게 부응해 나갈 것인지 잘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세라믹이라는 산업에 정부 예산을 많이 투입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이제는 마무리하는 의미에서 현재 주목받고 있는 분야와 세라믹 산업의 미래, 그리고 함께했던 양국 원로들을 기억하는 시간쪽으로 화제를 바꾸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어떤가 생각합니다.

황호연 월간세라믹스 발행인
꼭 돈으로 기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의 영향은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리 좋은 일도 예산이 없으면 마음속에서 끝날 뿐입니다. 총협회도 재원을 마련할 방법이 있어야 하겠으며 정부협조로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업계도 도움을 받고 도움을 받으면 힘을 보탤 것입니다.
그리고 어떤 행사든지 사람이 많이 모여야 합니다. 가장 시급한 것은 예산입니다. 요즘 뜨고 있는 태양전지 산업이나 LED, 고체산화물전지 등의 아이템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과학비즈니스벨트 사업과 한·일국제세라믹스세미나를 연결시키는 방법도 한 가지 아이디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 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한일 양국이 중심이 되면서도 중국, 러시아, 동남아는 물론 유럽 등의 세라믹소재 전문가들을 초청해 세계적인 행사를 개최하는 것도 검토해볼 일입니다.
상품을 전시하는 국제적인 세라믹박람회는 많이 있지만 연구자들 중심의 세미나는 아직도 가능성이 열려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석학들을 초청해 세라믹 분야에서 만큼은 세계 최고의 행사를 만드는 데는 그리 큰 예산이 들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노벨상처럼 세라믹분야의 최고 권위 있는 상을 수여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이렇게 몇 년 만 개최되어 권위 있는 행사로 자리하게 되면 이에 따르는 전시산업, 관광산업, 교육산업, 기술료 거래 산업 등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세라믹계가 이에 대한 구체적인 사업계획을 만들어 정부에 건의를 한다면 충분히 실현가능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제1회 한일세라믹세미나가 파인세라믹스의 붐을 조성했듯, 과학비즈니스벨트가 제2의 세라믹산업의 르네상스를 불러올 첨병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병호 고려대 명예교수
그동안의 노력으로 인적관계를 바탕으로 발전해 왔지만 정부지원이나 자금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합니다. 세라믹총협회, 요업기술원, 학회가 모두 함께 만들어가야 합니다. 다른 학회에 비하면 정부지원이나 기업지원이 제일 적습니다. 그러니 일을 하려면 힘이 듭니다.
또 일본 측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남 회장에서 전 회장으로 이어진 연결 구도를 이어갈 다음 주자가 필요합니다.
대일무역역조의 원인은 세라믹입니다. 극복하기 위해서는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는 명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제 거름이 되어야 합니다. 젊은 교수들이 돈을 쓰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후배들에게 바톤 터치를 잘 해야 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이를 슬기롭게 하지 못하면 지난 25년이 순식간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파인세라믹은 이제 나노 세라믹, 고분자 복합재료, 세라믹패키지, 고분자 패키지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고분자와의 융복합기술을 오픈마인드로 발전시켜 나가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이경희 명지대학교 교수
미국에 유학한 친구들도 한일국제세라믹세미나에 참여하고 싶어 해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일본을 알고 싶다고들 합니다. 국제대회에서는 우리나 일본이나 서로들 피하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는 공해 등 환경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 세라믹이 기여를 했으면 합니다. 일본 친구들이 국가과제로 버릴 때 환경오염을 적게 만드는 라디오의 프로세스를 연구하는 것을 보고 느낀바가 많았습니다. 우리도 이 같은 연구들을 고민했으면 합니다.

하이영 당시 대원통상회장
미래의 기술도 필요하지만 현재 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문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교수들이 현장에 가보면 왜 이렇게 하고 있느냐고 할 만한 과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초를 가르쳐야 합니다. 원로들이 나서야 합니다. 
장성도 박사
원로들도 봉사해야 합니다. 변두리 공장들을 찾아다니며 고생을 해야 합니다. 1년에 두 번씩 나노테크놀러지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동경에 갑니다. 솔직히 파인세라믹스 전시회는 참가해도 별로 놀랄 것이 없습니다. 이미 국내에서 다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 파인세라믹스 기술이 일본을 거의 따라 갔다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일본의 파인세라믹스 전시회에 참가하면 참 놀랄만한 것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또 한국의 훼라이트 산업을 보면서도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일본에 인수된 이수세라믹이나 삼화전자가 세계 선두기업이었지만 이제는 중국기업의 도전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각광받는 것으로 클레이 인터칼레이션이 생각납니다. 1963년에 초창기 연구가 막 시작될 당시 생명의 기원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며 연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40년이 지난 지금 범퍼 등에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유기와 세라믹의 강점을 결합시킨 이 같은 분야에 대한 연구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태양전지나 고체산화물전지 등도 좀 더 발전이 필요한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전병식 회장
긴 시간 귀한 말씀 주신데 대하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세미나의 4반세기에 걸친 긴 역사 속에는 여러분들의 희생과 헌신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ファインセラミックス’(1984)이라는 책의 저자는 일본열도를 열광시켰던 당시의 파인세라믹 휘버를 “신석기시대의 개막”이라 했고 그 해 2월29일부터 3월4일까지 나고야에서 개최되었던 ‘파인세라믹훼어 84’를 가리켜 ‘파인세라믹 휘버’가 바로 그 곳에 있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나기 전인 동년 5월31일과 6월1일 양일간 공업시험원에서 한일 간의 첫 세라믹세미가가 열렸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많은 체험을 했고 많은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오늘 제한된 시간에 못 다한 말씀은 다른 기회에 경청하도록 하겠습니다. 장래의 주역이 될 후배들을 위하여 많은 협조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일본의 사이또 신로꾸선생, 고이즈미 미쯔에선생, 하야가와 시게루선생, 오까자끼 기요시선생, 야나기다 히로아끼선생, 하기와라 마사히로선생, 후까가와 다다시선생의 명복과 공업시험원의 이경원 박사의 명복을 빌며 좌담회를 마치겠습니다.
안광석 기자 doraz@naver.com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02이삭이앤씨 large
03미코하이테크 large
대호CC_240905
EMK 배너
01지난호보기
09대호알프스톤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