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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업도자 식기의 패러다임을 말하다/ 정호정
  • 편집부
  • 등록 2013-11-05 09:54:07
  • 수정 2015-02-21 11: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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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산업도자 식기의 패러다임을 말하다

행남자기
정 호 정_ (주)모디 상무

 

우리 밥상의 변천사와 함께한 도자식기
현대 생활에 있어서 많은 생활양식과 기호, 트렌드 변화를 겪었지만 그중에서도 우리네 밥상의 변천사는 도자식기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서구 문화의 유입으로 인한 식생활의 변화도 있지만 문명의 발달로 음식을 담는 그릇의 재질에 따른 변화의 폭도 크다. 우리는 그러한 변화 속에 어떻게 적응해가고 어떻게 생활해가고 어떠한 제품들을 만들었고 만들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선, 과거 우리네 조상님들이 주로 사용하였던 식기들을 회상해보자. 오늘날 높은 예술적 가치와 기술력을 평가받고 있는 고려청자부터 조선백자까지 도자식기에 대한 사용도는 높았다. 하지만 실상 도자기는 서민층이 주로 사용하였던 식기류였고 상류층이나 높은 양반네들은 유기를 주로 사용하였다.
아무래도 금속류의 재료 채취 및 가공의 어려움과 무기제조의 희소성 등을 고려할 때 유기보다는 도자 및 토기류 등이 원재료 수급면에서나 월등히 수월하였기에 대중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외에 자연적인 원재료로 만들어진 식기들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목기류를 많이 사용하였다. 저렴한 대나무를 활용한 소쿠리부터 옻칠한 식기, 그리고 표주박을 말려 만든 바가지 등이 대표적이다.
근대사에 이르러서는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까지 전쟁물자 착출이라는 명목하에 유기의 사용은 줄어들고 일부 지방별 작은 가마터에서 도자기라기보다는 토기에 가까운 그릇들이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정전 후 경제 성장기에는 잘 녹슬지 않고 튼튼한 스테인레스 그릇들이 인기였고 석유화학 공업이 발달하면서 플라스틱류의 그릇들이 쏟아져 나왔다.
오늘날의 경우에는 다양한 소재가 개발되고 활용되면서 식기류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유리가 잔이나 병류 형태로 밖에 쓰임이 적었다면 지금은 유리에 색을 입혀 다양한 형태의 그릇으로 변화하였다. 더욱이 실리콘이나 합금류의 재질을 통한 다양한 쓰임세의 기능적 역할에 충실한 제품들도 많이 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근대부터 오늘날이 오기까지의 현대인의 식문화 속에 우리 도자기 역사를 살펴보자. 근대화에서 산업화를 경유하여 현대화 시기라고 일컫는 기간동안 도자기의 시장은 점진적인 성장세를 이루어 왔다.
6.25 전쟁이후 물자가 빈약했던 시기에 흙은 그릇을 만들 수 있는 저비용의 재료였다. 오죽했으면 당시 시멘트는 부족해도 모래는 넘쳐났기에 벽돌 하나를 만들어 무도인에 격파를 요청하면 부서질 정도였다는 우스갯소리처럼 도자기를 만들 흙만큼은 자급자족이 가능하였다.
주로 여주, 이천 등지의 경기도권에 군소의 작은 가마들이 동란 후에도 유지되고 있었고 각 시도별 작은 공방 등이 있었는데 주로 원재료와 땔감이 용이한 지역에 주로 산재돼 있었다. 만들어지는 그릇들은 지역 특성 및 원재료 성질에 따라 각기 달랐는데 주로 가정에서 사용되는 주발, 대접, 면기류 등이었다. 가난했던 시절 매 끼니도 거르기 일쑤였기에 밥상 위의 반찬이 넘쳐 났을 리는 만무하였기에 찬기류의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이후 몇몇 고급 한정식을 통한 도자기 식기류의 구색이 갖추어진 곳도 있지만 이마저도 유기와의 식기 쟁탈전에서 밀려나는 경우도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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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기면기

2. 「수, 복 공기대접」. 1940년대

대접과 면기류. 19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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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식문화와 도자식기
이후 70년대 산업화에 힘입어 높은 경제 성장을 이루고 소득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식문화도 달라졌다. 특히, 미국 주도의 외국문화와 문물이 유입됨에 따라 식탁의 분위기도 바뀌었다. 치즈, 버터 등의 유제품이 들어오고 커피라는 기호식품의 유입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전국에 없던 다방들이 시도군별 이외에도 면단위 소재지까지 들어오고 덩달아 커피식기의 수요도 증가하였다. 이 당시 기준으로 국내 대표 도자기 업체들의 주요 생산품과 수출품 역시 커피잔 세트가 주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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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남자기 산정공장 내부

아이보리차이나-인테리아커피세트. 19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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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식문화와 도자식기
80년대 이후부터는 경제성장의 징표로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각종 올림픽 대회 개최 등을 통해 그 성장을 전 세계에 여실 없이 보여주었는데, 당시의 식생활에도 적잖은 파장을 몰고 왔다. 지금의 서울 내 호텔들이 당시 올림픽 개최에 맞물려 생겨났을 정도로 호텔은 우리 소득 수준의 업그레이드를 단적으로 표현해주는 예였다. 일반인들은 호텔 내 양식은 비싸기에 엄두는 못 내었지만 시내 곳곳에 저렴한 경양식집의 등장은 양식의 대중화를 이끄는 계기였다. 물론, 당시 가족의 외식이 주로 중식당의 짜장면이었던 시절이었지만 간간히 아빠 손을 잡고 설렘으로 찾아 가는 경양식집은 돈까스라는 새로운 음식의 체험 장소였다. 이를 통해 양식과 더불어 양식에 어울리는 식기의 존재 가치도 급상승하게 되었는데 본격적인 도자기의 시대가 도래된 것이었다. 집집마다 손님 접대를 위한 커피세트는 기본으로 갖추어졌고 신혼살림의 혼수품 리스트에 도자기 홈세트는 당연한 품목이었다.
당시 도자기 홈세트의 기본 구성은 8인 이상이었다. 물론 주로 판매돼 나가는 제품은 10인 이상 제품이 주류였다. 지금과 달리 당시에는 가족구성원이 대가족이었거나 시집살림이 대다수였고, 집들이 행사 역시 집에서 직접 장만한 음식을 통해 손님 접대를 하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사용횟수도 지금과 달리 잦았기 때문에 깨질 것을 염두 하여 필요 이상으로 구비된 홈세트를 선호하였다. 그 당시를 대변하는 식문화 중에 예로, 시장 내 그릇 가게 근처에는 항상 밥상이나 교자상을 판매하는 가게가 있었다고 한다. 한 가정에 교자상을 두 개 이상 구비한다고 했을 때 식구 수나 손님상을 역으로 계산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이 시대 신혼집은 반대로 식탁은 사더라도 교자상은 구매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 세상이 변한 것 역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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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톤웨어 1차 수출 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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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하 생략- 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13년 9월호를 참조 바람.>

 

정 호 정
1975. 2  전남대학교 요업공학 졸업
1978. 3 ~ 2001. 10  행남자기 연구원
2001.11 ~ 2005. 12  (주)모디 이사, 공장장
2004. 3 ~ 2008. 12  명지대학교 도자기기술학과 강사
2012. 5 ~ 현재  (주)행남자기・모디 기술연구소장,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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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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