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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도예(전북 부안군 이은규씨 운영)
  • 편집부
  • 등록 2003-02-13 13:35:50
  • 수정 2016-04-17 22:3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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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도예 전북 부안군 이은규씨 운영 고려청자 관요 있던 곳에서 20여년동안 청자 재현 청래미덩굴 재유로 비색 황청까지 다양한 색감 표출 50배 확대경으로 청자파편에 나타난 비색의 신비 찾아가 형태 문양까지 철저한 재현으로 양산 어려워, 수준높은 국내외 고객 선호 전북 부안은 고려청자가 번성했던 도요지이다. 중국과의 해상교역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중국의 청자가 처음 유입된 곳이고 규사와 장석이 많이 함유된 양질의 흙으로 우리나라에서 양질의 청자를 처음 생산한 곳이다. 한반도 최대 규모 평야인 호남평야의 기름진 농토는 도자기를 만들기에도 좋은 원료가 된다. 지난해 가을 군산 비안도 앞바다에서 발견된 우수한 청자들이 바로 이곳에서 만들어진 청자일 것이라는 추측이 유력하다. 부안의 유천리도요지는 사적 69호로 지정돼 있으나 아직 발굴도 시작하지 않은 채 방치돼 있어 관심 있는 사람들을 애타게 한다. 고려청자의 관요가 있던 지역으로 한때 청자문화가 번성했던 지역이지만 지금은 그때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현재 이곳에는 부안의 옛청자를 재현하기 위해 모인 요장 서너개가 자리를 잡고 있다. 그중 이은규(50)씨가 운영하는 유천도예는 이곳에서 가장 오래된 요장이다. 이천의 해강도요에서 작업을 시작해 그의 형인 이은구씨가 운영하는 청파요에서 작업하다가 83년 부안으로 내려왔다. 20년째 부안에서 유천도예를 운영하고 있는 이은규씨도 유천리 도요지를 방치해 두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청자에 대한 애정만으로 더 깊이 연구하고 고려청자를 그대로 재현하고 싶어 고려청자가 번성했던 부안으로 내려와 부안의 흙을 이용해 전통의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흙을 직접 채취하고 수비하고 거른 것을 발로 밟아 토련하고 가마터 주위에서 주워온 청자파편을 관찰하며 당시의 신비로운 청자의 빛을 관찰한다. “이 지역의 흙은 점력이 떨어져 성형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습니다.” 유약은 전라도말로 맹감나무라고 하는 청래미덩굴을 태운 재를 사용한다. 청래미덩굴 재유는 불에 따라 비색에서 황청까지 다양한 색감으로 변화한다. 우리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먼저 알아차린 일본인들은 청자를 ‘인간이 자연에서 얻어지는 재료로 만든 것 중 최고의 보석’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이곳의 청자 유적지가 알려진 것도 일본인에 의한 것이었다. 옛 가마터에서 수집한 청자파편은 한눈에 보기에도 그 빛이 몹시 투명하고 맑다. 맑게 개인 하늘을 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내다보는 것처럼 투명하면서도 신비로운 푸른빛을 띤다. 때문에 청자표면에 흔히 보이는 크랙의 단면이 투명유리에 금이 간 것처럼 선명하다. 잘못 생각하면 요즘에 흔히 볼 수 있는 청자보다 크랙이 깊은 것으로 오해 할 있으나 탁한 유리에서 갈라진 면의 깊이를 알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요장 주인의 설명대로 50배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니 예전 청자파편에는 맑은 물방울모양의 구슬의 선명하게 보인다. 요즘의 청자들은 그 물방울 모양의 구슬이 미세하거나 흔적도 미비하다. 유천요는 이 청자의 맑은 빛을 원래의 것과 가깝게 재현해 문화재 관련인들과 청자애호가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다. 유천요의 상감청자는 화장토부분과 태토부분의 수축율차이로 상감부분이 양각처럼 도드라진다. 유천요는 길이가 10미터 정도 되는 용모양 가마가 인상적이다. “원래 청자를 굽던 우리가마는 통가마였습니다. 등요는 나중에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일본인들에 의해 개발된 가마입니다.” 전통의 재현도 좋지만 굳이 개선된 가마를 두고 재래식 가마를 쓸 필요가 있을 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옛청자를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이은규씨의 외곬이 엿보였다. 이 가마는 폭이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좁고 긴 구조이다. 그렇기 때문에 번조가 어렵지만 그만큼 요변이 잦아 뜻하지 않은 결과물을 얻기도 한다. 유천도예의 재현청자들은 ‘고려청자운학문매병’, ‘연화문 향로’, ‘죽문병’, ‘음각 다완’ 등으로 그것들의 외형을 흉내내는 데에만 그치지 않는다. 옛 청자들에 관한 사진자료를 꾸준히 접하며 매병의 어깨나 주병의 병목이 흘러내리거나 아둔해지지 않도록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다. “고려청자 운학문매병에 원안에 들어있는 학문양이 7줄이 들어가 있습니다. 그것을 재현했다는 사람들 중에는 작업이 조금 편하자고 6줄에 그치고 5줄에 그치는 사람도 있더군요. 안타까운 것은 그것뿐이 아닙니다. 옛것을 보면 학의 형상도 요즘 것들처럼 얼버무리지 않고 날개의 깃과 다리쪽의 깃이 확연히 구분돼 있습니다.” 유천도예의 청자들이 달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섬세한 관심에서 비롯한다. 아무리 작은 구름문양 하나라도 옛도자기에 담겨진 것을 그대로 모방하고 따라하려 노력한다. 그것이 진정 ‘재현’이라는 말의 의미이다. ‘재현’이 자신의 것을 창조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이유는 정확한 잣대를 가지고 있으므로 평가할 수 있는 오차가 인정되지 않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유천요의 작품을 즐겨 찾는 사람들은 산사의 스님들과 이미 그의 작업을 오래전부터 봐 오던 애호가들이다. 문예진흥원 등에서 식기나 주기를 주문해 오기도 하지만 ‘양산을 하게 되면 작품의 질이 떨어진다’는 생각에 그런 주문이 달갑지 않다. 그는 오늘도 인적 드문 외지에서 묵묵히 청자파편을 살피고 흙과 불을 연구하며 청자를 재현하는데 몰두하고 있다. 주소: 전북 부안군 보안면 유천리 166-41 전화: 063-583-1905 서희영기자 rikkii77@hotmail.com 1 유천도예 전시장 2 상감 청자 진사포도문 호리병형 주전자 3 상감청자 운학문 매병 4 상감청자 운학문 매병(문양확대) 5 용머리 모양 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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