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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4 백자금채 매죽문 소병(白磁金彩梅竹文小甁)
  • 편집부
  • 등록 2021-07-29 10:48:14
  • 수정 2024-07-04 16:5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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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④]

백자금채 매죽문 소병(白磁金彩梅竹文小甁)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 문화재 평론가

 

30년 전 필자는 전남 강진군 계율리 논둑에서 화금청자 파편(畵金靑磁 破片){청자편호(靑磁編壺)의 어깨 부분}을 최초로 지표 수습하였고 부안청자박물관에 기증하였다. 그동안 화금청자 파편이 도요지에서 발견된 사례는 없었기 때문에 화금청자 파편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환희와 감동은 대단했었다. {화금청자(畵金靑磁) : 완성된 청자(靑磁)에 수금(水金)을 칠하고 저화도로 번조해 청자의 표면에 화려한 금색무늬를 입힌 청자로 ‘금채청자(金彩靑磁)’ 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의 화금청자는 국내에 4점, 북한에 1점, 일본에 3점이 전해지고 있으나 금박이 거의 떨어져서 금채의 흔적은 미미하게 확인될 정도인데 다만 일본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청자금채 매화문 대접」은 금채의 문양이 잘 남아있다. 고려시대 화금청자는 완성된 도자기의 문양에 홈을 내어 파진 홈 속에 금채를 하여 종속 문양으로 사용되는 방법과 도자기의 표면에 문양을 직접 그려 주 문양으로 사용되는 방식이 있지만 제작방법은 전해지지 않으며『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과 남겨진 몇몇 유물로써 확인만 될 뿐이다.
  중국에는 송대의 정요자기에서 처음 금채백자를 제작하였으며, 주밀(周密)의 저서인『계신잡식(癸辛雜識)』에서 ‘금채장식 정요완은 마늘즙에 금분을 개어 도자기 표면에 그림을 그린 후 가마에 넣어 번조하여 완성하였다’고 한다. 원대에는 제왕만이 이 금채자기를 사용할 수 있었으며 명나라 후기부터 청대에는 오채자기와 더불어 많은 양이 제작되었다. 이처럼 꾸준히 맥을 이어온 중국 금채자기와 달리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이후에는 금채자기가 소멸된 것으로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필자는 화금청자 파편을 최초로 발견할 당시의 감동만큼 큰 감동을 일본에서 경험하게 되었다. 조선 초기에 제작된 화금백자(畵金白磁){금채백자(金彩白磁)}를 최초로 실견한 것이다.
  이 화금백자는 조선 초에 경기도 광주 일대의 왕실 관요에서 제작된 최상품의 갑번자기로 초벌과 재벌구이를 마친 백자에 금채로 매화나무와 대나무를 대칭으로 그리고 저화도로 한번 더 번조한 것이다. 약간 낮고 넓은 굽과 안정적인 몸통의 볼륨에 알맞은 목선이 조화를 이룬 전형적인 조선 초기의 왕실 관요 백자병이다. 도자기 표면의 금채는 상태가 양호해 보이지만 현미경사진을 보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다. (금채의 긁히고 떨어져 나간 부분과 오랜 기간 매장되어 침윤된 흙. 사진5)
  몸체에는 설백색의 백자유약이 골고루 시유되어 있으며 굽바닥에는 가느다란 모래 받침을 사용하여 번조한 후 갈아낸 흔적이 있다. 몸체의 양면에는 대칭으로 꽃이 만개한 매화나무와 바람을 맞는 대나무인 풍죽을 당시에 유행하던 화법인 몰골법의 능숙한 필치로 그려 넣었다. 현재까지 조선시대 백자에 금채를 한 유물이나 백자 파편은 발표된 사례가 없었으며, 따라서 화금백자는 생산하지 않은 것이 정설처럼 여겨졌다. 조선시대 금채자기 생산에 관한 문헌 또한 밝혀진 사례가 없으며 대한제국 시기에 들어와서 대한제국 왕실 용기의 이화문장에 금채가 사용되었을 뿐이었다.
  <사진1>의 작은 백자병은 하얀 설백색雪白色의 몸통이 설경의 바탕이 되어 눈 위에 피어난 매화와 대나무를 한층 더 돋보이게 하고 한겨울 속의 곧은 선비정신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조선 초기에 어떤 방법으로 이렇게 성숙한 금채백자를 만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고수의 사기장과 어느 문인 화가의 간절한 바람이 한 점의 예술품으로 승화되어 후손들에게 안기게 되었다.


사진1_「백자금채 매죽문 소병白磁金彩梅竹文小甁(매화)」조선시대 | 높이 14cm, 입지름 4cm, 바닥지름 5.5cm


사진2_「백자금채 매죽문 소병(대나무)」
사진3_ 바닥굽
사진4_ 금채 매화(부분)
사진5_ 금채의 현미경 사진(100배)

*본 기사는 월간도예에 연재되는 칼럼으로, 도자문화 이론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고자 본지에 후속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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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대환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재 보존학을 전공했으며 40여 년간 국내외 발굴현장과 유적지를 답사하며 문화재를 연구했다. 지난 15년간 대학교 박물관과 국공립박물관에 신라금동불상, 고려청동탑, 고려청자, 고려도기, 조선백자, 고려와전, 벼루, 출토복식 등 5천여 점의 유물을 무상 기증했다. 주요 저서로는 『박물관에서 볼 수 없는 문화재1,2』가 있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문화재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span>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21년 7월호를 참조바랍니다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를 다운로드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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