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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철화 박지 보상화문 대반
  • 편집부
  • 등록 2021-08-27 16:42:10
  • 수정 2024-07-04 16: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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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돋보기5]

 

청자철화 박지 보상화문 대반
靑磁鐵畵剝地寶相華文大盤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 문화재 평론가


  새로운 문화재의 발견이 그동안 정설처럼 믿어졌던 통념을 깨뜨리는 경우는 많다. 이번에 소개하는 ‘청자철화 박지 보상화문 대반 靑磁鐵畵剝地寶相華文大盤(사진1)’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청자의 박지기법剝地技法을 처음으로 밝혀내고 박지기법의 통념을 바꾸는 역할을 한 경우이다.
그동안 우리 도자기의 박지기법은 조선시대 분청사기 제작기법 중에 한 방법으로만 인식되었고 분청사기 제작자에 의하여 자연히 생성된 것으로 믿어왔다. 조선 분청사기의 박지기법은 그릇을 빚고 나서 몸통에 백토白土로 분장을 하고 문양을 그린 후에 문양의 바탕을 파내고 시유 하여 소성한 것이며 주로 호남지방에서 제작하였다.(사진2)
그러나 박지기법을 사용한 고려청자의 새로운 등장과 발견은 이런 잘못된 통념을 바꾸게 하는 충분한 계기가 되었다. (사진3)의 청자파편은 청자매병의 몸통과 굽 부분이 일부 남아있는 형태로 부안 유천리에서 출토되었으며 몸통에 산화철안료를 칠하고 문양의 외곽선을 따라서 바탕의 산화철안료를 파내는 박지기법으로 제작하였다. 완형은 아니지만 고려청자의 제작기법 중에 박지기법을 사용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출처가 분명한 자료로 필자가 유천리에서 수습하여 부안 청자박물관에 기증하였다.
  (사진1)은 낮고 넓은 커다란 접시 형태의 그릇으로 몸통의 내 외면에 산화철안료를 붓으로 칠했다. 내면에는 불교에서 상상의 꽃인 보상화 한 송이가 큼직하게 자리 잡았고 주위로 연결된 넝쿨 문양의 줄기와 잎을 역동적으로 새겼으며 그릇의 외면에도 잎과 줄기의 넝쿨 문양이 활달하게 표현되어 있다. 붓으로 칠한 산화철안료 위에 문양을 음각으로 그리고 문양의 외곽선을 따라 바탕을 파낸 흔적이 남아있으며 산화철안료가 남아있는 문양 부분과 산화철안료를 파낸 바탕 부분의 요철이 선명하다.(사진5) 산화철안료를 사용하여 붓으로 직접 문양을 그려 넣는 철화청자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항목이다.
안정적이고 낮은 굽에는 8곳에 내화토 받침을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으며 굽바닥의 유약은 일부를 닦아냈다. 유약은 기포가 많은 비취색으로 두껍게 고루 시유 되었으며 12세기초 전라북도 부안지역의 관요작품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철화안료를 사용한 박지기법의 유일한 완형 고려청자로 한국도자사의 한 부분을 메워줄 만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유물이다.
現存하는 고려시대의 철화청자는 대부분이 산화철안료를 사용하여 직접 문양을 그려 넣고 소성한 것이며 박지기법을 사용한 철화청자는 알려진 유물이 없었다. 그래서 고려청자의 제작기법 중에 박지기법은 제외되어온 것이다. 그러나 박지기법으로 생산한 고려청자의 등장은 고려청자의 제작기법을 확대하여 연구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게 되었다. 아울러 같은 시기에 중국 송宋나라의 자주요磁州窯에도 박지기법의 도자기가 생산되고 있었는데 고려청자의 박지기법과 송나라 자주요의 박지기법은 어떤 관계가 있었을지 상호 비교 연구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었다.
  고려청자의 철화 박지기법이 조선 분청사기의 박지기법에 영향을 준 것은 확실하며, 유독 호남지방에서만 많이 나타나는 조선 분청사기의 박지기법은 고려청자의 대표적 왕실관요(전라북도 부안, 전라남도 강진)와 같은 지역권으로 생산지도 같다.

 


사진1 「청자철화 박지 보상화문 대반」 입지름: 28cm 바닥지름: 15.3cm 높이: 5cm | 고려시대.


사진2 「분청사기 박지철재 모란문 편병」


사진3 「청자철화 박지 연판문 매병」편


사진4 청자대반의 바닥면

 
사진5 박지기법의 확대 부분

 

*본 기사는 월간도예에 연재되는 칼럼으로, 도자문화 이론을 대중적으로 소개하고자 본지에 후속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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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대환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문화재 보존학을 전공했으며 40여 년간 국내외 발굴현장과 유적지를 답사하며 문화재를 연구했다. 지난 15년간 대학교 박물관과 국공립박물관에 신라금동불상, 고려청동탑, 고려청자, 고려도기, 조선백자, 고려와전, 벼루, 출토복식 등 5천여 점의 유물을 무상 기증했다. 주요 저서로는 『박물관에서 볼 수 없는 문화재1,2』가 있으며, 현재 상명대학교 석좌교수이자 문화재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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