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3-백자 철화매화대나무무늬 항아리
  • 세라믹코리아 편집부
  • 등록 2024-09-30 17:40:32
기사수정

[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3]


백자 철화매화대나무무늬 항아리

白磁鐵畵梅竹紋壺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사진1 「백자철화매화대나무무늬항아리」 조선시대 16세기 말. 높이: 22.8cm, 입지름: 11.2cm, 굽지름: 15cm


도자기를 장식하는 여러 기법 중에서 산화철안료를 사용하여 도자기의 표면에 그림을 그리거나 상감을 하기 위해 파낸 곳을 메워 넣는 것이 철화기법, 철화상감기법이라고 하는데, 철화기법은 고려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관요나 지방요를 막론하고 널리 사용되었으나 철화상감기법은 조선 초기 15세기에 일시적으로 사용되다가 사라진다.


고려시대의 철화청자는 전기부터 후기까지 널리 사용되었고 조선시대는 16세기 계룡산 철화분청사기에 집중적으로 등장하면서 17세기 임진왜란 이후에 철화백자가 널리 제작되기 시작한다. 수입에 의존하던 값비싼 청화안료는 전쟁 후에 국가재정의 어려움으로 수입이 곤란해지자 저렴하고 제작하기 쉬운 철화안료를 사용하여 본격적으로 철화백자를 생산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도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넓게 분포되었던 조선 전기 관요를 구심점으로 화원화가의 솜씨로 보이는 세련된 그림과 양질의 철화백자가 생산되었고 그 외 지역에서는 추상적인 무늬와 민화풍의 그림이 더해진 거칠고 해학적이며 투박한 민간용의 지방 철화백자가 생산되었다. 


사진1의 「백자 철화매화대나무무늬 항아리」는 16세기 후반경에 경기도 광주 부근의 관요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으로 조선시대 철화백자의 시원이 되는 중요한 유물이다. 풍만한 몸통과 밖으로 벌어진 입은 전형적인 조선 전기 항아리의 형태이고 안정적인 바닥 굽은 안굽처럼 깎아내고 모래받침을 사용하여 소성한 흔적이 남아있다. 몸통의 그림은 화원화가의 솜씨인 듯 당시 즐겨 그렸던 사군자의 매화꽃 나무와 대나무를 세련되고 유려한 솜씨로 그려 넣었다. 사진2~5)


철화안료의 발색은 진한 밤색과 검붉은 색을 띠고 있으며 산화철 안료의 그림 부분에는 흙물이 침투하여 오랜 기간 매장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사진6~8)

16세기 중반 이전의 청화백자와 비교하면 매화와 대나무의 무늬가 간략화되고 여백이 늘어났으며 몸통에 유약은 얇게 시유되었다. 오사카 동양도자박물관에 소장된 사진9의 「백자청화 매화대나무무늬 항아리」와 비교하면 매화나무를 주무늬로 삼고 대나무는 종속무늬로 그려 넣는 방법과 몸통의 형태도 같지만, 그림의 간결함이 느껴진다. 


철화청자나 철화분청, 철화백자는 우리나라 도자기의 장식에 함께해 온 철화안료의 바탕이 된 작품들이다. 관요나 지방요를 막론하고 시대의 분위기와 정서가 함축된 철화자기들은 강렬하고 활달하며 개성이 넘치는 고품격의 그림이나 때로는 자유분방하고 익살스러운 추상화가 등장하기도 한다. 어쩌면 시대를 가장 잘 반영한 철화자기들이 우리 민족의 속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24년 10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 전체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02이삭이앤씨 large
03미코하이테크 large
대호CC_240905
EMK 배너
01지난호보기
09대호알프스톤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