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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5_백자 철화 포도넝쿨무늬 전접시
  • 관리자
  • 등록 2024-12-02 16: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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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 교수의 문화재 기행 45]


백자 철화 포도넝쿨무늬 전접시

白磁鐵畵葡萄紋搌楪匙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사진1) 「백자철화포도무늬 전접시」조선시대 17세기, 지름: 18.5cm, 높이: 1.5cm, 굽지름: 11cm


임진왜란이 평정되고 전후의 정치적 사회적 격변기가 시작되는 17세기에 도자기의 모습도 예전과는 다르게 변모한다. 전쟁으로 인한 왕실의 재정 상태는 고갈되어 더 이상 값비싼 청화안료의 수입이 불가능해지자 대체 안료로 저렴하고 생산이 쉬운 산화철안료를 사용하여 왕실용 도자기를 제작하게 되는데 철화백자의 본격적인 생산의 시발점이 된다.


  『광해군 일기』에 “전쟁을 치른 후 연회나 제례용 화준이 하나도 남지 않아 청화안료를 구입하여 번조하려 했지만 현재 사 올 수 있는 길이 없습니다...”라는 대목과 인조 16년(1638년)에는 왕실 대례에 사용할 ‘청화용준靑畵龍樽’이 없어서 임시방편으로 다른 의례기를 사용한 기록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왕실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철화백자는 이전의 청화백자의 기형에 안료만 바꿔진 형태로 제작되기 시작하지만 청화안료에 비해서 그림을 도자기의 몸통에 그릴 때 붓이 잘 나가지 않고 농담 표현이 쉽지 않으며 잘 번지고 휘발성이 강하여 번조과정에서 문양의 일부분이 사라지는 시행착오를 겪게 된다. 그래서 왕실용 철화백자이지만 간략화되고 희화화된 작품이 생산되었고 조선초기의 청화백자처럼 섬세하게 그려진 철화백자는 매우 희귀하다.


  사진1의 「백자 철화 포도무늬 전접시」는 17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왕실용 작품으로 경기도 일대의 관요에서 납품된 것으로 추정되는 희귀한 유물이다. 조선 초기의 전접시 형태로 낮고 넓은 굽과 몸통의 주변으로 얇은 전이 둘러져 있으며 굽바닥의 유약은 일부를 제거하고 가늘고 고운 모래 받침을 사용하여 번조하였다. 사진2, 3) 바닥 굽 일부에는 흙물이 붙어있으며 진한 철화안료에는 산화된 곳에 흙물이 흘러든 자국이 선명하다 사진4, 5)


  접시에 그려진 포도무늬는 풍요와 다산을 상징하는데 왕실 화원화가 솜씨로 능숙한 필치와 섬세함이 명인의 경지에 이른 작품으로 철화의 농담이 절묘하며 세련되었다. 접시의 상단 중앙에는 커다란 포도잎을 배치하고 양옆으로 자연스럽게 뻗어 나온 넝쿨이 아래쪽으로 늘어져 있으며 접시의 가운데는 먹음직스러운 한 송이의 포도를 크고 작은 알갱이를 잘 배치하여 감상하는 이의 지루함을 상쇄시킨다. 이런 사례는 일본에 소장된 명품 조선초기 청화백자 전접시에도 나타난다. 사진6, 7)


  이 작품의 대단함은 붓질이 잘 안되는 철화안료를 사용하여 그려진 수준 높은 포도 문양과 그려진 무늬를 도자기에 그대로 안착시키는 사기장의 절묘한 기술이 맞아떨어진 것으로 화원화가와 왕실관요 사기장의 예술혼이 혼연일치된 명작이라 할 수 있다. 


<본 사이트에는 일부 내용이 생략되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세라믹코리아 2024년 12월호를 참조바랍니다. 정기구독하시면 지난호보기에서 PDF 전체를 열람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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