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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의 민간 도자기 자주요(磁州窯)와 조선 분청사기의 연관성에 관한 소고
  • 편집부
  • 등록 2004-01-26 15:5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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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의 민간 도자기 자주요(磁州窯)와 조선 분청사기의 연관성에 관한 소고 글/사진 곽수령 중국 북경 청화대학 도예학과 석사과정 중국 송대(宋代)의 민요자기인 자주요(磁州窯)는 백색 화장토와 짙은 태토간의 색의 대비, 백색 화장토와 흑색 화장토간의 대비를 이용하여 선명하면서도 명쾌한 장식기법의 효과를 창조함으로써 독특한 멋을 자랑한다. 조선(朝鮮)의 민요자기인 분청사기(粉靑砂器) 역시 화장토를 이용한 여러가지 장식 기법으로 당시 조선인의 자유분방한 창조정신과 해학미를 훌륭히 표현해내고 있다. 즉 이들은 화장토를 적극 이용하여 다양한 장식기법의 표현을 위해 노력한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겠다. 이들은 또한 후술하듯이 기타 세세한 기법적인 측면에서도 상당히 유사한 점이 많다. 필자는 이들의 연관성에 주목하여, 이 글을 통해 자주요와 분청사기의 특징 및 기법의 연관성에 대해 서술하고자 한다. 먼저 화장토를 이용한 장식기법은 기원전부터 사용되어 왔다. 안데스의 토기를 비롯해 멕시코나 과테말라, 코스타리카의 토기에서도 화장토 분장장식을 한 유물이 발견되었다. 유약이 생겨나기 이전부터 화장토는 동서양의 서로 다른 문명에서 동시에 사용되어져 왔고, 화장토라는 분장백토는 문명이 생겨나는 그 순간부터 오늘날까지 그 재료의 속성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 도예 속에 정착한 하나의 보편화된 재료라 할 수 있다. 화장토가 도자역사상 일반화된 재료로 정착된 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우선 다른 문화권의 영향을 받는 과정에서 모방을 통한 유사기법이 생겨났다고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가 오랜 세월을 유사한 작업환경 속에서 흙과 유약이라는 기본재료로 작업하는 과정을 통해 화장토 기법이 여러 곳에서 자연스럽게 개발된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의 경우, 백색 화장토는 일찌기 진대(晉代)부터 응용되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에는 자태(瓷胎)의 청회색을 덮어 가리기 위해 분장되어졌다. 조선의 분청사기 역시 태토의 결함을 감추기 위해 화장토를 사용했는데, 후술하듯이 자주요의 화장토 이용기법이나 유하채문(釉下彩紋)기법, 진주획화(珍珠劃花)기법, 획화(劃花), 각화(刻花)기법 등과 상당히 비슷한 면이 많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의 자주요와 조선의 분청사기 사이에는 어느 정도의 관련성이 있을 개연성이 상당히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는 이와 관련된 연구가 전무한 실정이다. 따라서 자주요의 여러 기법을 상세히 알아보고 이를 분청사기의 기법과 비교함으로써 분청사기 기법의 연원에 대해 연구하는 것은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1. 자주요(磁州窯)의 생성과 발전 중국 송대(宋代)에 자주요(磁州窯)는 하북성 자현 팽성진(河北省 磁縣 彭城鎭)에 있던 화북(華北) 최대의 민간 도요지였다. 현재는 송대 이후에 화북 일대에서 만들어진 같은 종류의 도기를 총칭한다. 그 중심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현재 하북성 자현의 관대요(河北省 磁縣 觀臺窯)이고, 또 다른 하나는 하북성 한단시의 팽성요(河北省 邯鄲市 彭城窯)이다. 이 두 지방은 송원(宋元)시기에 자주(磁州) 지방에 속해 있었는데, 그 지방명으로 인해 자주요로 불리게 되었다. 자주요계는 당대 북방민요의 전통을 계승했고, 상품의 종류 또한 매우 다양했다. 백자, 흑자, 청자, 문양자기, 저온삼채 등이 있어서, 다방면으로 각기 다른 수요를 만족시켰다. 자주요에서 생산된 훌륭한 상품은 정요(定窯)자기와 필적할 만하다. 특히 작품표면에 무늬가 없는 백자의 경우는 오히려 정요(定窯) 자기의 상품가치를 능가할 정도이다. 여타 상품들의 수준 역시 높아 당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자주요의 가마터는 북방의 중원(中原)지역에 아주 방대하게 형성되어 있는데, 그 중심 가마터 이외에 하남성의 수무당양욕요(河南 ), 우현의 배촌요(), 학벽집요(鶴壁集窯) 등이 있다. 자주요는 북송전기(北宋前期)에 구워지기 시작했는데, 금대(金代)에도 여전히 번성, 발전했으며 명대초기(明代初期)에 중심 가마터인 ‘관대요’(觀臺窯)가 폐요되었다. 1950년대 초기에 저명한 도자연구 학자인 진만리(陳万里) 선생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후로, 1958년과 1964년 잇달아 발굴과 조사가 진행되었다. 자주요의 경우 중심가마가 영향을 끼친 가마들이 비교적 넓게 분포하고 있는데, 이는 매우 보기 드문 경우이다. 이것은 자주요의 상품이 당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기반을 확보한 가운데 왕성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이다. 2. 자주요(磁州窯)의 특징 자주요의 자기는 기법의 종류가 매우 다양한데, 화장토 이용기법으로 백유각화기법(白釉刻花技法)과 백유획화기법(白釉劃花技法), 백유유하흑채회화기법(白釉釉下黑彩繪畵技法),백유유하장채회화기법(白釉釉下醬彩繪畵技法),진주획화기법(珍珠劃花技法) 등은 조선 분청사기와 장식면에서 상당히 비슷한 점이 많다. 자주요의 태질은 조질이고, 태색 역시 비교적 짙은 색이다. 이 단점을 감추기 위해 태토 위에 한 겹의 화장토를 바른 후 투명유를 시유한 것이 마치 분청사기의 풍치와 흡사하다. 주지하다시피 분청사기의 기본적인 특징은 철분이 있는 회청색의 사기질 그릇 위에 백토를 입혀 여러 가지 장식기법을 사용한 자기이다. 즉 태질의 단점을 감추기 위해 화장토로 장식을 했다는 점에서 자주요 자기와 분청사기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자주요는 백색 화장토와 짙은 태토간의 색의 대비, 백색 화장토와 흑색 화장토간의 대비를 이용하여 선명하면서도 명쾌한 장식기법의 효과를 창조함으로써 또 하나의 독특한 멋을 자아내고 있다. 이외에도 채화(彩畵), 획화(劃花) 등 많은 장식기법이 있으며, 독특한 예술적 매력을 지니고 있다. 자주요의 상품 종류는 사발, 접시, 관, 화로, 도침, 주전자, 병 등 일용기물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매우 다양한데, 동일한 종류 안에서도 기형이 다양해진다. 예를 들어서 도침은 둘레가 원형인 것을 비롯하여 장방형과 나뭇잎형 등이 있는데, 여자아이가 누워있는 도침은 정요의 영향을 받은 듯하다. 병의 형태로는 입이 넓은 장경병, 입이 좁은 장경병, 표주박 형태, 육관병 등이 있고, 관으로는 입이 넓은 단지 형태의 기물이 있다. 기물의 형태에 있어서는 분청사기나 자주요나 각기 나름대로의 개성을 지닌 형태를 가지고 있다. 자주요의 기물에서는 분청사기의 편병 형태는 없다. 대신 주로 상하로 긴 매병 형태가 많다. 3. 자주요(磁州窯)의 기법 자주요의 주요기법에는 백유각화기법(白釉刻花技法)과 백유획화기법(白釉劃花技法), 백유척화흑채기법(白釉剔花黑彩技法),진주지획화기법(珍珠地劃花技法), 백유유하흑채기법(白釉釉下黑彩技法)이 있다. 이외에도 백유녹색반점문양기법(白釉綠色斑点紋樣技法), 저온삼채기법(低溫三彩技法) 등이 있다. 소재로는 목단, 연꽃, 곡선의 풀잎 등이 주로 쓰이고 있고, 이방 연속 혹은 사방 연속식으로 문양을 배열했다. 풍만한 잎들이 마치 아라베스크의 문양처럼 기물을 빙빙 감돌며 휘감아 올라가는 형태이다. 이 문양들은 당대와 오대의 고상하고 우미한 자태를 잘 드러내고 있다. 1) 백유각화기법(白釉刻花技法)과 백유획화기법(白釉劃花技法) 자주요는 각화 장식기법을 썼는데, 자주요의 백유각화기법(白釉刻花技法)과 다른 형식의 도자기의 각화와는 큰 차이점이 있다. 정요(定窯)와 요주요(耀州窯)는 도구인 칼을 쓰는데 있어서 그 ‘도법(刀法)’을 아주 중요시여긴다. 정요와 요주요의 도공들은 문양을 조각할 경우 칼의 각도를 약간 비스듬이해 대는 순간 바로 양음각을 표현해내는데(미리 어떤 문양의 전체적인 밑그림이나 스케치가 없이도), 그만큼 도공들의 감각과 테크닉이 뛰어남을 알 수 있고, 그 조형적인 느낌의 변화가 매우 다양했다고 한다. 그런 반면 자주요의 각화는 정요와 요주요의 그것만큼 정확하지는 않다. 우선 뾰족한 대나무 도구를 이용하여 선으로 문양을 표현한 다음, 문양을 제외한 부분의 여백을 파내어 화장토 장식으로 표현하였다. 백유각화기법은 무늬 이외의 백토부분을 긁어내는 조선의 분청사기의 박지기법과 유사하다. 백유획화기법(白釉劃畵技法)은 백색 화장토를 바른 기물 위에 뾰족한 도구를 이용하여 선으로 문양을 표현하는 기법인데 이 역시 분청사기의 조화기법과 비슷하다. 2) 백유척화흑채기법(白釉剔花黑彩技法) 백유척화흑채기법(白釉剔花黑彩技法)은 백유척화기법(白釉剔花技法)과 매우 유사하다. 그 구체적인 기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기물 위에 백색 화장토를 바르고, 또 한 겹의 흑색 화장토를 바른 후 어느 정도 말랐을 때, 뾰족한 공구로 문양을 그려낸 후 문양 이외의 흑색 화장토 부분을 도구로 긁어내면 흑백이 분명한 시원스런 느낌을 주는 문양이 생긴다. 이 기법은 중국 민간 종이 공예 장식기법의 고상한 운치를 맛보게 해준다. 이렇게 밝고 선명한 흑백대비의 조화를 이룬 독특한 느낌의 예술이 바로 자주요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 기법은 분청사기에는 없는 기법이지만 백색 화장토를 바른 후에 흑색 화장토를 한 겹 더 바르는 차이가 있고, 여전히 분청사기 박지기법과 유사하다. 3) 진주지획화기법(珍珠地劃花技法) 진주지획화기법(珍珠地劃花技法)은 백유각획화기법(白釉刻劃花技法)의 일종인데, 이 기법은 당대(唐代)와 오대(五代)의 온화하고 기품있는 도안을 사용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문양 중 어란(魚卵)과 같은 작은 원무늬들은 당대 금은기(金銀器)의 조각 공예방식을 모방한 것이다.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섬세함을 더해주고 있다. 이 기법은 15세기 중반에 인화문을 촘촘하게 찍어 표현하는 방식과 매우 흡사하다. 또 분청사기의 경우 동그란 무늬들을 찍은 것으로 돗자리 문양이라고도 부르는 승렴문(繩簾紋)과 매우 흡사하다. 이 기법의 작품들이 가장 많이 생산된 곳으로는 북송(北宋) 시절 하남성의 등봉요(登封窯)를 꼽을 수 있는데, 이곳에서 제작된 ‘쌍호랑이문양병’이 진주지획화기법의 대표작이다. 4) 백유유하흑채기법(白釉釉下黑彩技法) 백유유하흑채기법(白釉釉下黑彩技法)은 자주요 최고의 뛰어난 예술 성취이다. 우선 붓을 가지고 흑색 안료를 가지고 그림을 그렸는데, 화공은 마음 가는대로 그림을 그렸다.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것은 당대의 장사요(長沙窯) 때부터 시작됐다. 장사요(長沙窯)의 유하채회화조화(釉下彩繪花鳥畵)에서 이미 ‘사의화법(寫意畵法)’1)이 최초로 개발되었는데, 자주요에는 ‘사의화법’이 여러 세기동안 지속되어 사용되었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사람들의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기법은 화장토와 색채의 대비를 정교하게 운용하였고, 선명한 흑백대비를 통해 서로 반전효과를 이루고 있으며 각종 각화기법이 장식미감을 높여주고 있다. 그리고 당대의 장사요는 자신만의 독특한 공예적 특징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서 소탈한 유하채회화 및 기물 위에 싯구를 적어넣은 장식 등은 자주요가 계승, 발전한 장사요의 특징들이다. 그 대표적인 기물의 형태가 바로 도침(陶枕)인데, 도침 역시 자주요의 대표적인 기물 중 하나이다. 도침은 머리의 경혈을 자극하여 머리를 맑아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작가들은 도침 같은 다면체의 기물에 오히려 다양한 표현을 할 수 있는데, 전통적인 회화 격식의 표현을 하는데 있어서는 더욱 편리한 구성조건이다. 소재는 주로 인물, 산수, 화조, 시가 등인데, 시가 곁들여진 작품일 경우 도자기라는 기물에다가 회화와 문학을 동시에 결합시킨 일종의 종합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소재는 서민생활이 지니고 있는 농후한 민간 색채를 잘 표현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서민들의 생활 모습이나 영희(), 희곡, 산수, 곤충, 물고기 등을 표현했는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은 행복을 기원하고 자손의 번창, 집안과 나라의 평안을 바라는 일반 백성들의 마음을 잘 표출하고 있다. 중국 근대 도자 연구가로 잘 알려진 진만리(陳万里, 1892~1969) 선생이 저술한 「도침」외에도 도침에 관한 연구자료가 많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도침이 예전에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을 거라는 짐작이 간다. 회화 장식의 이러한 도침은 미국, 일본, 영국 등 각 대표급 박물관과 갤러리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도침의 다섯 면에는 자연의 풍경들이 가득 그려져 있는데, 붓의 필력은 당시 상당한 회화 수준에 이르렀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4. 자주요(磁州窯)와 분청사기(粉靑砂器)의 연관성 당송(唐宋)대에는 무역의 발달로 인해 도자기 상당수가 국외로 판매되었고, 그로 인해 조선업 역시 상당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지금까지 이 시기의 많은 도자 파편들이 한국을 비롯한 많은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되고 있다는 점에 미루어 볼 때, 아마 당시 우리는 중국의 기술을 모방하기도 하고 그 모방을 바탕으로 새로운 양식을 창조하기도 했을 것이다. 즉 모방과 창조를 반복하는 과정 안에서 분청사기라는 새로운 도자기의 조류가 생겨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자주요가 분청사기보다 약 400~500년 정도 앞서 제작되었다는 시대적 배경을 통해 좀더 설득력을 가진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자주요와 분청사기는 관요의 직접적인 간섭을 받지 않고 제작된 민예자기라는 공통된 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구체적인 제작기법 측면에서 봤을 때 자주요 자기와 분청사기는 태질의 단점을 감추기 위해 화장토로 장식을 했다는 점에서 기본적인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으로 문양을 표현한 다음 문양을 제외한 부분의 여백을 파내어 화장토 장식으로 표현하는 백유각화기법(白釉刻花技法)은 무늬 이외의 백토부분을 긁어내는 조선의 분청사기의 박지기법과 유사하다. 또 백색 화장토를 바른 기물 위에 뾰족한 도구를 이용하여 선으로 문양을 표현하는 백유획화기법(白釉劃花技法) 역시 분청사기의 조화기법과 비슷하다. 이와 함께 진주지획화기법(珍珠地劃花技法)의 작은 원무늬들은 분청사기의 승렴문(繩簾紋)과 매우 흡사하다. 이 외에도 백유유하흑채기법(白釉釉下黑彩技法)은 분청사기의 철화문에 영향을 주었을 개연성이 큰데, 이 철화문 기법은 조선 청화백자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중요한 기법이다. 자주요와 분청사기의 예술적인 성취는 청자나 단색 자기가 줄 수 없는 분위기를 시도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새로운 경지에 달했다고 표현하면 맞겠다. 그 독특한 분위기와 풍부한 테크닉은 도자발전의 흐름에 있어서 큰 영향력을 발휘했으며, 적극적인 공헌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자주요와 분청사기의 전통 장식기법은 현대 도예를 함에 있어서 어떤 새로운 가능성과 방향 제시를 해주는 신선한 매개체 역할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따라서 이들의 기법을 연구, 응용함과 동시에, 이들 상호간의 영향과 연관성에 대해 연구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관대요 자주요지(觀臺窯 磁州窯地) 좌 조선의 분청 상감 용무늬 항아리 (높이:49.2㎝, 구경:14.6㎝, 밑지름:21㎝) 우 송 진주지획화병, 자주요의 등봉요 (높이:31.9㎝, 구경:7.1㎝, 밑지름:9.5㎝) (위의 사진 ‘조선의 분청상감 용무늬 항아리' 상단부분의 문양은 마치 ‘자주요의 진주지획화병의 진주무늬'와 비슷하다) 자주요의 백유유하흑채 목단문병, 높이:38.2㎝, 구경:3.4㎝, 밑지름:10㎝ 송 백유유하흑채화도침( 높이:14㎝, 면적:31.5㎝X15.4㎝) 분청사기 박지문 목단매병(높이:26.1 구경:5.2 밑지름:9.5) 필자약력 국립 제주대학교 산업디자인 공예과 졸업 98,99,03년 제주도 공예품 대전 우수상, 장려상, 입선 수상 제29회 전국 공예품 대전 1999 청주 비엔날레 공예관 전시 01년,02년 북경 도자 학술 교류, 전시회 참가(고요지 답사 .일본,터어키,영국,한국,중국 등) 03년 절강성 용천현 '노위손'선생 작업실서 작업 03년 동경 세계 도자 학술 교류, 전시회 참가, 세미나 통역 현, 북경 청화대학 도예학과 석사과정 5학기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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