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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허상욱
  • 편집부
  • 등록 2004-04-22 21:47:25
  • 수정 2016-04-08 17:3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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엷은 안개가 덮인 듯한 포근한 박지분청 만들고자 분청의 다양한 과정은 기다림이 반복되는 작가의 유희 3월에 내린 뜬금없는 눈이 봄볕에 녹아 경기도 양평 들판이 박지분청 같다. 허상욱(35) 도예가가 추구하는 박지분청도 그런 느낌이다. 봄눈 녹는 들판 같은, 옅은 안개가 깔린 아스라한 분위기의 분청빛이다. 대학재학시절 분청사기에 깊은 감흥 젊은 사람들에게 한국의 전통적인 미감이 마음으로 와 닿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기발한 아이디어나 서구적인 디자인에 익숙하고 중고등학교에서 그나마 배우는 미술이론도 서양미술사에 국한되어 있다. 대학에서의 미술이론도 서양의 근대미술을 다루는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박지분청기법의 작품으로 근간에 드러나기 시작한 도예가 허상욱(38)은 국민대 학부3학년에 재학 중이던 93년도에 호암미술관의 분청사기 특별전에서 받은 감동을 기억하고 있다. 그때 우리나라에만 있는 분청사기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자신의 작업도 분청으로 밀도 있게 진행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후 국민대학교 출신 선배도예가인 송정인씨와 지도교수인 노경조 교수의 영향으로 작업의 방향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최근 작업 박지분청 심도있게 탐구 대학원과 실습조교 기간을 거치면서 물이 오른 물레기량은 그의 1회 개인전에서 한껏 발휘됐다. 50센치 안팍 넓이의 대형발과 항아리들이 주를 이룬 이 전시에는 검정색, 갈색 재유로 시유된 작품들로 전체적으로 에너지가 넘쳤다. 문양도 짧고 강하게 그은 사선을 반복적으로 사용하거나 두텁게 귀얄 분장했다. 2회 개인전에는 1회전에 비해 작품의 크기가 많이 줄어들었지만 내용면에서는 훨씬 섬세해지고 감성적으로 변모한 것을 알 수 있다. 박지분청과 귀얄분청 등의 작품들을 접시, 향로, 물항아리 등으로 덤벙기법과 귀얄, 박지 등으로 기법을 다양하게 구사했다. 최근 그의 작업은 박지분청으로 좁혀졌다. “너무 일찍 분청작업으로 방향을 굳히고 작업해왔기 때문에 사고가 딱딱해 지는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그래도 좀더 깊이있게 해보고 싶어서 박지분청만 하고 있습니다.” 관심이 다른 데로 옮겨지면 다른 작업을 할 수도 있지만 지금은 박지분청을 즐겨 작업한다. 작업과정을 유희과정으로 여기며 분청사기제작의 과정 과정을 즐긴다. 작가는 부드러운 흙으로 성형하고 적당히 건조되면 그 위에 분장하고 구획을 나누지 않고 자유롭게 화면을 채운다. ‘살살 긁어대기 시작하면 풀잎이 살아나고 꽃봉오리가 피어나기 시작한다. 흙의 색감 또는 질감에 따라 확연히 피어나기도 하고 안개 속에 감추어지기도 하며 빗속으로 숨어들어가기도 한다.’ (제2회 경기도 세계도자비엔날레 한국도자 특별전 도록중 작가의 글) 대부분의 도자작업이 그렇지만 분청사기 작업에는 과정의 변이에 따라 여러 가지 경우가 생긴다. 흙의 무른 정도와 시문의 시기, 긁어낸 정도, 태토와 유약의 색, 소성환성 환경 등에 따라 각색의 분청사기가 된다. 작업하는 사람에게도 작품을 보는 사람에게도 분청사기의 이런 점에 더 끌리지 않나 싶다. 허상욱 도예가 역시 매 과정에서 생기는 작은 차이에 매료된다. 시원한 면분할과 간결한 선의 모란문 분청 분청사기에는 모란문이 가장 흔하게 사용된다. 전통적으로도 모란은 부귀영화를 상징하며 민가에 널리 사용됐다. 실제 넉넉한 크기의 모란꽃과 잎은 작가의 분청사기의 화면에서도 시원시원한 면분할을 보여준다. 허상욱의 박지분청에도 모란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 선적인 요소를 줄여 몇몇의 간결한 선과 널찍한 면으로 시원하게 구성되고 분장을 긁어낸 부분에 어렴풋이 남아있는 화장토가 동양화에서의 공기원근법과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한다. 허상욱 작가는 조선의 목가구들에서 비례감을 배우고 박물관에 유수한 경이로운 옛 도자기들을 스승으로 삼는다. 이밖에도 작은 꽃과 풀포기에 대한 관심도 남다른다. 작은 것들이 갖고 있는 완벽한 조화에 감탄을 감추지 못 할 때가 많다고 한다. 때때로 고라니가 출몰하는 인근 야산을 오르며 풀한포기, 나무한그루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배운다. 다기, 머그, 접시 등의 소품들도 그의 작업방향과 맥락을 함께해 박지분청 일색이다. 쓰임으로 인한 형태의 제한이 비교적 적은 연적이나 향꽂이 등에는 조형적인 요소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석탑, 복어, 집 모양을 활용하기도 하고 작은 풀포기를 그려 넣기도 한다. 분청은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한 결과물 공장에서 나오는 흙의 한계성을 벗어나려고 인근의 흙을 섞어 사용하기도 하고 때로 경남 산청 등 소문난 지역에서 흙을 갖다 써보기도 했다. 운전 중에도 공사를 하느라 땅을 파헤쳐 놓은 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유심히 보게 되는 것은 흙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당연한 일이 돼버렸다. 흙을 퍼가는 게 왠지 행인의 이목을 끌까 계면쩍어 몰래 퍼오기도 했다. 유약이 완전히 녹아 맑게 표현된 박지 분청보다 자주 살짝 엷은 안개가 드리워진 듯 아련한 느낌을 내기 위해서는 소성과정 또한 까다롭다. 유약과 소성에 관한 실험이 거듭되고 그가 추구하는 ‘엷은 안개 드리운 박지분청’이 안정적으로 나올 때면 그는 또다른 과제를 찾을 것이다. 초심을 상기하며 한결같은 마음으로 도예가 허상욱의 작업공간은 어느 도예가의 작업실보다도 깨끗하다. 흙을 다루는 곳이기 때문에 의례 먼지가 쌓이고 물레주변에는 흙물이 튀기 나름이지만 그의 작업장에는 흙물이 튀어 말라붙은 데도 없고 뽀얀 먼지도 없다. 신을 벗고 들어가야 하는 작업장에는 전기물레와 목물레가 나란히 자리해 있고 구옥의 서까래를 기둥으로 만든 건조대에 촉촉한 기물들이 단정하게 정리돼 있다. “작업을 즐기기 위해서는 주변이 먼저 정리되고 제 마음이 정리되어야 합니다. 어수선함 속에서 고매한 작품이 나올 수 없죠.” 허상욱 도예가는 최근 한향림갤러리 개관기념 초대전(~5월 24일)과 계룡산 철화분청축제(4월8일~12일) 초대전시에 참여하고 국민대학교 사회교육원 실기강사로 출강중이다. 이밖에 2회 개인전 후 여러 가지 일정으로 계획에서 미뤄놨던 3회 개인전에 대해 구상하기도 한다. 미술관에서 본 분청사기의 강한 감흥에 휘말려 시작한 작업이니 만큼 그때의 충격과 설레임을 지속적으로 상기하고 이어간다면 늘 한결같이 작업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다. 서희영 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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