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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서르게이 이수포프
  • 편집부
  • 등록 2004-05-17 21: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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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최석진 _ 도예가 고등학교를 개조한 건물 2층에 있는 그의 작업실은 거의 비어있는 듯 보였다. 크지 않은 작업대와 판 성형기, 한쪽 구석에 차분히 자리한 안료와 유약들, 책과 작은 소파가 전부인 그의 공간에서 유난히 쌀쌀했던 바깥 날씨를 차단한 듯 나즈막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음악과 안온하고 따뜻한 기운은 그의 환상을 엿보는 듯 했다. 이수포프는 러시아, 지금의 유크레인(Ukraine)에서 도예가인 어머니와 화가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어머니의 도자 작업실에 가서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했었다는 그는 자연스럽게 미술 전문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창의적인 것보다 테크닉 중심으로 교육받게 됐다. 7년 간 회화 판화 조각 등 여러 분야를 접할 수 있었다. 그는 드로잉과 유화를 전공으로 선택했다. 학교를 졸업한 후 2년간의 재시험 끝에 리투아니아(Lithuania)에 있는 도자 대학에 입학하였다. 그는 대학에서 매 학기마다 배우는 여러 테크닉에 몰입하였고 배우는 즐거움으로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다고 한다. 학교 선생님들이 도예의 가치는 ‘기능성’이라고 강조해 그는 장식이 없는 예쁜 주전자를 만들어 친지들에게 선물하곤 했다. 또한 여름 방학 때마다 어머니의 주선으로 마욜리카 공장, 본차이나 공장, 양변기 공장 등등 여러 다양한 곳에서 실습을 했고 방학이 끝난 후에는 곧 개인전을 했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이미 매우 성공적이었으며 유명했다. 이미 회화의 상당한 기술을 습득한 그는 입체표면의 회화적 표현이 평면보다 효과적일 것이라는 생각으로 도예와 회화를 결합하는 작업을 계획했다. 그가 보여준 오래된 작품에서는 도자 표면마다 넘쳐나는 표면장식 도안 그림들을 볼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한 후 몇 년간 개인 작업실에서 작업했는데 당시 작품 하나를 팔면 두 달은 살 수 있었다. 그러던 즈음 라트비아의 예술 심포지움에서 미국 도예가를 만났고 결혼과 함께 미국으로 오게 되었다. 미국에 온 후 얼마간 혼란의 시간이 있었다. 개인이 운영하는 사기업이 무엇인지, 세금·크레딧 카드가 무엇인지 전혀 몰랐었고 상당히 빈곤했었다고 기억했다. 사실 러시아에서의 예술가들은 미래가 없었다고 한다. 경제적 상황으로 예술에만 모든 노력을 기울일 수 없었다. 반면에 미국에서 예술가로서의 삶은 그에게 많은 자유를 느끼게 했다. 미술을 지지하는 사회적 기반, 예술을 지원하는 충분한 재정, 나 자신을 표현 할 수 있는 자유, 이런 것들이 그를 미국에 머물게 했다. 미국에서의 많은 가능성에 그의 미래를 투자 할 수 있었다. 미국에서 그의 존재를 알리게 된 것은 1996년도 스미소니언 공예쇼에서이다. 당시 이국적이고 신선한 그의 작품들은 많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는데 세밀하게 그린 주전자를 1천 달러에 판매했다. 그 후 두개의 에이전트를 만나게 되었고 지금은 딜러인 페린갤러리(www.ferringallery.com)를 통해 독점적으로 그의 작품을 판매하고 있다. 8년 동안 같은 에이전트에서 작품전 워크숍 등을 기획하고 시카고와 뉴욕 SOFA(The International Expositions of Sculpture Objects & Functional Art)를 통해 작품을 판매하며 작가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의 작업은 형상적(figurative)이다. 인간이나 인간과 짐승을 결합한 형상을 많이 볼 수 있다. 그가 작품의 소재로 인체를 사용하는 이유는 인체라는 공통 언어는 많은 사람들에게 쉽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새로운 시장, 미국에 그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같은 점토, 같은 색, 같은 표현으로 자신을 인식하도록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 스타일을 만들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디테일하게 표현된 그의 작품에서는 캐릭터화 된 인류가 갖는 여러 조건들에 대한 대비(Contrast)에 온 심혈을 기울인 듯 보인다. 사람과 동물, 남과 여, 결백과 사악, 사랑과 폭력, 생과 사에 대한 많은 표현은 단적으로 ‘good’과 ‘bad’의 대조를 통해 더욱 리얼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것에 대해 서르게이는 “예술은 삶과 같다. 대조를 통해 어둠과 빛, 죽음과 삶을 조명한다. 익숙한 것에 대한 다른 감정을 느끼게 하고 싶다. 일상에서 공간과 시간에 따라 에너지가 바뀐다. 밝은 낮에서 밝은 면을 보고 어두운 밤에는 어두운 면을 보게되 듯 나는 매일 만나는 상이한 감정이 흥미롭다” 또한 “표면의 드로잉은 심볼이며 언어이다. 도자기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스스로 이미지를 생각하게 하여 감상할 수 있게 하고자 한다.”라고 말한다. 디테일하게 표현한 금속성의 작은 조소 작품에서 고독한 영혼의 공허한 표정, 성적 에로틱과 같은 다양한 소재가 감상자로 하여금 그의 작품 세계로 끌어들이는 갈고리 역할을 하는 듯 하다. 이수포프는 작품을 하기 전 여러 스케치를 한다. 그의 스케치북에서 연필로 그린 섬세한 러시아풍 인체 드로잉을 볼 수 있었다. 먼저 형태를 계획하고 일련의 같은 모양 작품을 5개 정도 만든다. 손과 발 같은 작은 부분을 제외한 몸체는 대부분 판 성형으로 완성하는데 성형 후 여분의 점토는 하나하나 모아서 모두 재활용하며 작품 성형 후 실내온도에 따라 스프레이를 뿌리고 비닐로 싸서 서서히 건조한다. 형태가 적당히 건조되면 그의 마음에 품었던 이야기들을 표면에 페인팅 하기 시작한다. 페인팅 단계가 가장 힘든 부분이라는 그는 연필을 사용해 스케치를 하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표면에 그림을 그린다. 주로 시판용 도자 물감과 유약을 사용하는데 명확한 선을 그리기 위해 경계부분, 외곽선에 액체왁스를 바른다. 그의 작품은 그림으로 덮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밑면을 포함한 작품의 모든 표면이 그림으로 포장되어 있다. 특히 작품의 바닥 면에 세밀히 그린 그의 그림은 완벽한 크래프트맨 쉽을 느끼게 한다. 그는 좋은 작품을 대할 때면 바닥 면을 보고 싶어진다고 한다. “작품의 바닥 면은 물체를 손으로 들어 올렸을 때만 볼 수 있다. 그것은 작품을 완성한 예술가에 대한 경의를 의미한다.”고 한다. 그의 작품은 대개 1만6천불에서 3만불 정도에 팔리고 있다. 올해는 5월 뉴욕 소파와 6월 메사추세츠에서 작품전을 앞두고 있다. ferrin 갤러리 기획으로 오는 6월에 열릴 전시는 러시아에 사는 그의 부모와 화가인 동생이 초대돼 함께 가족전시를 할 계획이다. 미국에 온지 10년째인 그가 어떻게 유명 작가가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행운이다. 미국인들은 새로운 작품을 원한다. 내 작품은 이국적으로 다른 어떤 것에 대한 흥미 때문인 듯 하다” 라며 덧붙여 “유능한 딜러(good dealer), 유익한 판촉(good promotion), 양질의 슬라이드(good slide)” 때문이라고 말한다. 작업실에서 10분 정도 떨어진 그의 집에는 그가 제작한 판화, 크리스마스 선물용으로 만들었다는 소품, 지금과는 다른 이전의 작업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나는 도예가이기를 원하지 않는다. 점토는 단지 나의 도구일 뿐이다.”라는 그는 앞으로 판화작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그는 매일 아침 8시 반경 작업실에 나와서 오후 10시쯤 집으로 돌아간다. 매일 오후 수영을 하고, 2~3시쯤 늦은 점심을 먹고 난 후 다시 스튜디오로 향하는데 작업을 제외한 그의 일상은 없는 듯 보였다. 매일 매일 거울을 닦듯 습관처럼 반복되는 그의 작업 생활에서 비춰지는 또 하나의 예술가의 길을 보았다. 필자약력 1990 B.A./M.F.A. 도예전공, 아트 인스티튜트 오브 탈린, 에스토니아 2003 ‘트랜스-미션’ 아트앤 사이언스박물관 2003 Triennial 9 Form and Content (독일, 뉴욕) 2001 NCECA 시범초청작가 1996~ 현재, SOFA (시카고, 뉴욕, 마이아미) 1990~ 2001 22회 워크숍, 슬라이드발표 2001 Louis Comfort Tiffany Biennial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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