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도예가 장지원
  • 편집부
  • 등록 2004-06-18 11:46:54
  • 수정 2016-04-07 09:32:11
기사수정
삶의 작은 요소들을 담담히 담아낸 그릇들 적절한 쓰임새를 갖는 수다스럽지 않은 편안함 도예가 장지원(50)의 그릇은 포근하다. 환원불이 아닌 산화불에서 번조해 흔히 말하는 유백이라고 말하는 백자 빛보다 좀더 따뜻한 색을 갖는다. 대부분 물레 작업으로 이루어지는 작가의 그릇엔 그의 사춘기시절의 꿈과 삶의 이상이 담겨있기도 하다. 지난 4월, 5회개인전 그간의 물레작업과 금박 옻칠 도자 선보여 지난 4월 장지원 도예가의 다섯번째 개인전이 서울 인사동에서 열렸다. 물레로 빚어 일그러트린 사각 접시를 비롯해 적당히 변형한 여러 그릇들은 자유분방한 듯하지만 겹쳐놓았을 때 더 화사해 보일 만큼 일정한 변화를 갖고 있다. 자신의 그릇이 누군가의 식탁 위에 놓이고 화목한 가족들의 식사를 담아낼 수 있다는 것에 만족감을 느낀다고 하니 전업도예가 치고는 꾀나 소박하다. 그의 작품들은 사용자가 난해해 할만한 긴장감이 없고 그릇으로서 솔직하고 꾸밈이 없다. 지난 전시에 처음 선보인 금박옻칠도자기도 금박으로 장식 했다기 보다 금이 갖는 화려함 자체를 자신의 그릇에 한면 더한 듯 대담하면서도 담담하다. “금박작업을 더 많이 해보고 싶었는데 몸에 옻이 올라 많이 할 수가 없었어요. 글쎄 계속 할 수 있을지 어떨는지 모르겠어요. 제 몸이랑 옻이랑 싸워봐야 알겠죠.” 도예가이자 주부인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쓸만한 그릇을 빚어낸다. 무거운 그릇이 음식을 담아 나를 때나 설겆이를 할 때 얼마나 불편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런 그의 그릇들에 대해 동덕여자대학교 미술학부 정진원 교수는 “물레로 성형된 그릇에 절제된 자국이 남아있을 뿐 장식과 치장없이 말없이 놓여져 있다. 무덤덤한 흰 색의 그릇들은 아무 주장이 없는 듯, 삶의 영욕의 굴레가 응어리 없이 녹아져 버린 듯 그저 편안하게 만들어졌다”고 기술했다. 작업초기부터 기(器)를 토대로 작업 물레성형 후 물리적 변형만으로 절제된 표현 4회(2000년)개인전부터 본격적으로 그릇 작업만 해왔는데 그전에도 항아리나 화병 등의 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1회개인전은 물레작업으로 성형한 화기들을 주로 선보였다. 이때에도 이미 물레작업 후 물리적으로 변형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화병의 한쪽 면에 봉긋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는 당시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딸아이의 젖가슴을 표현한 것이다. 지나치게 현실적인 주제를 쓰임이 있는 작품에 담을 경우 쓰임에서 동떨어지거나 수다스러워지기 쉽다. 하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다행히도 지나침이 없다. 이외에도 키가 낮 은 그릇형태의 꼬마들, 음양의 굴곡이 맞물리게 표현된 연인들·부부·노인 등의 제목을 붙인 화병들은 장식이 배제되고 절제된 설명으로 인간의 삶(특히 여성의 삶)을 담담하게 표현했다. 2회 개인전에서만 물레작업과 기를 벗어나 벽걸이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색소지를 이용한 판작으로 회화성이 강하다. 연리문기법을 단순화해 화려하지 않고 흙이 갖는 본래의 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담백한 색으로 「보도블럭 사이에 핀 꽃 한송이」를 담아냈다. 자신의 삶과 생활 속에서 만나는 작은 것들을 무심히 흘려보내지 않고 따뜻한 감정을 이입하고 작은 것에 깊이 사유하는 그의 섬세함이 묻어난다. 원로도예가 김석환 선생의 장녀 행복한 가정을 꿈꿨던 소녀시절 원로도예가 김석환 선생의 장녀인 그는 유년시절 지켜본 모친의 활발한 작가활동이 오히려 자신은 작가로서 성공하기보다 좋은 엄마가 돼서 행복한 가정을 꾸릴 것을 다짐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어머니가 워낙 열정적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집안 살림이나 가족들은 뒷전이었어요. 그래서 전 어려서부터 스위트홈을 꾸리고 싶은 꿈을 갖게됐어요.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식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을 만들게 된 것도 그 영향이 많다고 생각되요.” 소녀시절 꿈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나 일치 했는 지는 몰라도 이미 대학 도예과에 진학한 것부터가 모친의 영향이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덕분에 대학시절부터 집에 있는 어머니의 작업장에서 작업할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 길을 가게 된 것”이라며 작가대 작가로 모친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덧붙인다. 곁에서 바라보기에도 대담하고 씩씩한 말투나 꾸준히 작업하는 모습은 그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지금 장지원씨는 대전에 자신의 가정과 작업장이 있어도, 서울 친정집 어머니의 작업장에서 주로 작업하고 있다. 작업을 선보일때 상품으로서의 가치도 중요 어려워도 꾸준히 작업해야 한다고 자신의 그릇이 어떤 음식을 담아도 편안하게 어울리기를 바라기 때문에 자연히 장식이 배제되지만 그릇만으로도 식탁에 꽃이 될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릇을 만들고자한다. “그런 제 그릇이 마음에 들어 대가를 지불하고 사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사합니다. 어느 집에선가 그릇으로 제 역할을 톡톡히 해낼 꺼라는 생각에 흐뭇해집니다.” 현재 한남대학에 출강중인 장지원 도예가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도 상품가치가 있는 작품을 만들도록 지도한다. 91년부터 2~3년에 한번정도 개인전을 열고 있다. “어머니로서 아내로서 늘 제 손을 필요로 하던 일들이 어느 순간부터 가벼워지고 중년을 넘기면서는 오히려 공허할 만큼의 시간이 생겨요. 주변에 작업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 그들 나름대로 취미를 즐기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작업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살았을 까 하는 안도감마저 들어요.” 그는 특히 젊은 여자 후배들에게 작업을 놓지 말고 꾸준히 작업할 것을 당부한다. 서희영기자 rikkii@naver.com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02이삭이앤씨 large
03미코하이테크 large
대호CC_240905
EMK 배너
01지난호보기
09대호알프스톤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