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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도자기의 발전역사와 가능성
  • 편집부
  • 등록 2004-08-21 11: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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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도자기의 바람직한 재현과 발전방향 전통도자기의 발전역사와 가능성 글 이대영 _ 조선도예 대표 우리는 ‘전통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도자기의 창조’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고 또한 많이 하게 된다. 옛 것을 똑같이 모방하여 재현해 내는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대한 바램을 나타내는 의미일 것이다. 지역 도자기 축제 행사장을 찾는 많은 사람들이 예년이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고 이 요장이나 저 요장의 도자기가 비슷비슷하고 특징과 개성이 없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맞는 말이고 그렇게 생각되어질 수 도 있다. ‘전통을 바탕으로 한 이 시대에 맞는 새로운 도자기를 창조한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우리 전통도자기의 발달과정을 살펴보면 참으로 긴 세월이 흘러서 조금씩 변화 발전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고려시대의 청자로부터 조선시대의 분청사기, 백자로 발전되어 오는 과정이 거의 1000년에 걸쳐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전통도자기 문화의 재현과 발전 방향을 말하기 전에 우선 옛 도자기가 제작되었던 시대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친 상황이 도자기 문화와 어떠한 관계를 갖고 발전되어 왔는가를 단편적으로나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전통 도자기를 일반적으로 나누어 본다면 고려시대의 청자와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중국의 절강성 월주요에서 제작되어지기 시작해서 신라를 거쳐 고려에 전해진 청자는 그 시대 상류층의 수요에 따라 중국과의 교역을 통한 물량확보와 더불어 국내 생산의 필요가 당연시 되었다. 중국과의 무역을 통해 중국의 문물을 익히 접해온 고려의 지배계층은 보다 많은 청자의 필요성에 의해 중국과 교류가 활발했던 서남해안 일대에 청자요지를 유치하게 된다. 초기 청자를 거쳐 11세기에 이르러 문양과 색상이 보다 진전된 청자가 선을 보이게 된다. 이 시기에는 정치적으로 중앙 집권제가 정착되어 물질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새로운 문화 상품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 문화상품의 하나가 청자로 만들어진 갖가지 제품들이다. 고려시대의 전성기인 12세기에는 중앙 귀족들의 문화적 욕구와 물질적인 풍요가 일반문화와 더불어 청자 발전을 절정기에 이르게 했다. 이 시기에 상감 기법이란 새로운 기법이 생겨나고 문양도 정교해지고 비색 또한 밝고 투명해 진다. 왕권이 쇠퇴하면서 정치가 불안해지자 도자기에 대한 수요도 줄어들고 이에 따라 도자기 문화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고려의 청자가 쇠퇴하면서 조선시대에 이르러 분청사기라는 좀 더 변화된 도자기가 생겨난 것이다. 14세기 중간부터 발전하기 시작한 분청사기는 전국적으로 생산지가 분포되어 귀족부터 평민들까지 폭 넓게 사용하는 대중적인 도자기로 발전하게 되었다. 청자가 중국에서 받아들여져 우리만의 독특한 상감청자 기법을 개발해 발전됐듯이 분청사기 또한 우리민족의 정서를 대표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도자기 분야로 발전하였다. 분청사기를 ‘청자가 쇠퇴하면서 백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발생한 도자기’로 청자보다 격이 떨어지는 도자기로 보는 의견들도 있지만 청자가 상감 기법으로 인하여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분청사기 또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을 수 있을 만큼 인화 박지 조화 철화 귀얄 덤벙 등 다양하고 자유스러운 분청만의 독특한 멋이 있다. 분을 바르고 그 위에 문양을 넣거나 문양의 여백을 긁어내는 조화나 박지기법, 분을 바른 붓 자국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귀얄, 기물을 분에 담그고 분장하는 덤벙기법 등도 우리민족 정서를 대변하는 새로운 표현기법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전국에 걸쳐 분포되어 있고 기법 또한 현대적이고 기하학적인 문양을 포함한 다양한 표현기법으로 15세기 이루어졌던 독자적인 우리문화 창조의 일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16세기 후반부터는 분청이 점차 줄어들면서 백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백자의 발달은 검소하고 소박함을 추구하는 성리학의 영향을 받은 양반계층의 사상에 따라 간결하고 소박함을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문양도 중국의 화려한 색상이나 문양의 영향을 받지 않고 지극히 제한된 색으로 간결 단순하게 표현을 하였다. 16세기말부터 17세기 초에 이르기 까지 두 번에 걸친 왜란과 병자호란은 백자 생산에 또한 어려움을 갖게 하였으며 특히 중국의 침략에 대한 반청나라 정서가 이 시대의 도자기에도 잘 나타나 있다. 청나라 도자기의 다양한 색상과 화려한 표현의 영향을 거부하고 더욱 검소하고 절제된 표현의 순백자가 발달하였다. 19세기 말부터 주변 강국들의 침략으로 국운이 쇠퇴해지고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혼란을 거듭하면서 조선의 왕조가 몰락하였다. 그로 인하여 백자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관요가 폐쇄되고 일본 등으로부터 수입되는 도자기가 많아지면서 백자의 발전 또한 쇠퇴한다. 일본통치 시대를 지나 6.25 전후까지의 정치, 사상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단절되었던 도자기 문화의 명맥을 잇는 칠기가 꾸준히 제작 되었던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이었고 전통 도자기의 발전에도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된다. 6.25 전쟁의 파괴에 의해서 많은 생활용기가 필요했고 칠기는 60년대 초반까지 최대의 전성기를 맞는다. 칠기가 금속이나 플라스틱 용기에 의해 밀려나게 되고 60년대 중반부터 일본과 단절 되었던 국교가 정상화 되자 그때까지 재현의 연구단계에 머물렀던 청자 분청 백자의 수요가 급증하게 되고 이에 맞춰 전통 도자기의 재현과 생산이 갑작스럽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의 역사는 단절되었었고 해방이후부터 다시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기껏해 봐야 6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짧은 기간에 비해서 전통도자기의 재현과 발전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화가 없는 것 같지만 전통 도자기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살펴보면 형태 색상 문양 등 모든 분야에서 많은 발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청자에서 분청사기, 백자에 이르기까지는 1000여년이 흘렀고 재현의 역사는 길게 보아야 60여년 밖에 안 된다. 해방 이후부터 60년대 까지를 우리나라 전통 도자기 재현의 연구 단계로 본다면 70~90년대는 발전의 단계로 볼 수 있으며 2000년대는 변화와 창조의 시대로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살펴보아 알 수 있듯이 도자기의 발전은 그 시대의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시대적 상황과 함께 발전과 쇠퇴를 거듭해 왔다. 마지막으로 앞으로 우리 전통도자기를 어떻게 재현·발전시켜야 하는지를 역사적인 사실에서 교훈을 얻어 몇 가지 정리해 보고자 한다. 첫번째는 우리의 사상과 철학을 담아내야 하고 두번째는 현 시대의 필요성과 시대를 앞서서 창조해 나가는 정신이 필요하며, 세번째는 정보화 시대에 맞게 좀더 빠르게 변화 발전 시켜야 하고 네번째는 과학적 근거에 의한 모든 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해야 한다. 다섯번째는 청자 분청 백자뿐만 아니라 그 이외의 다양한 도자기와 제작기법을 다양하게 연구해야 한다. 필자약력 1976년 조선도예 설립 일본 요코하마 한국도자 특별전 러시아 페테스브르크 한국 전통도자 특별전 일본 사쓰마 야끼 40주년 기념 한일 도자 교류전 한국 다기 명품 특별전 프랑스 파리 한국문화원 한국전통 도자전 이천도자기조합 경기도자기조합 이사장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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