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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정 영
  • 편집부
  • 등록 2004-10-20 01:18:55
  • 수정 2016-04-05 01:4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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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과 기질로 작업하는 대기만성형 도예가 불안정한 장작가마의 요변 즐기며 분청그릇에 몰두 흰 구름이 간간히 떠있는 하늘 위로 간헐적인 검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좀더 가까이 다가가니 도자기 장작가마가 각 칸의 불구멍과 굴뚝으로 붉은 불꽃을 내뿜고 있다. 지켜보고 서 있자니 봉통에 나무를 채워 넣으면 훅하고 검은 연기를 뿜어내고 이내 불길이 치솟고 잠시 잠잠한 듯하다가 다시 장작을 채워 넣으면 또 검은 연기와 불길이 춤을 춘다. 경기도 이천에서도 장호원과 접한 한적한 지역인 군량리에서 가마를 때고 있는 사람은 도예가 정영(40)씨다. 힘에 겨운 듯 씩씩거리는 모습이 가마나 작가나 마찬가지다. 긴 번조시간동안 잘 나오길 바라는 마음뿐 32시간에서 40시간가량 꺼지지 않게 불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쉽지 않은 일일 테지만 도자기가 소결되는 1300도 이상의 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작가들이 말하듯 자기와의 싸움이 더욱 관권이다. 지루한 시간동안 오로지 결과물이 잘 나와 주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예측할 수 없는 요변이 이번에는 어떤 결과물을 내어줄지 기대감에 힘든 작업을 지속해나갈 수 있다. 불이 꺼지고 하루 이틀 식히는 시간은 도자기제작의 가장 지루한 시간이다. 작가는 항상 급하게 기물을 꺼내보다가 뜨거운 기물에 데곤 하는데 또 다시 가마가 식기를 기다리는 동안 슬쩍 뜨거운 기물에 손을 대게 된다고 한다. 자신을 소진하는 작업이 에너지 창조의 과정 “좋은 음악이나 그림처럼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싶습니다. 우리 옛도자기들을 보면 종종 그런 감동을 받곤 하는데 사실 요즘 만들어진 도자기에서는 좀처럼 그런 감흥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작품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자 하는 것은 도예가도 마찬가지이다. 정신적 육체적, 에너지를 투자한 작업 활동은 작가자신을 소모하는 일이며 작품은 그렇게 작가의 일부분을 소진한 부산물이다. 작가 정영의 바램도 작품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것은 한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그릇에 대한 성찰이다. 때때로 전통도자기를 모방하면서 한계를 느끼게 되고, 어려운 부분을 넘지 못해 현대적인 미감 혹은 자신만의 무언가로 대치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고민하게 된다. 쉬지 않는 작업은 작가의 에너지를 소모해 작품을 만들어 내는 일일 뿐 아니라 작가 자신의 새로운 에너지를 창조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자연스러운 기형에 장작가마 산화번조로 편안한 도자기 작가 정영의 그릇들은 분청기법을 사용하면서 장작가마 번조 중에 굴뚝을 막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 산화번조 기법으로 완성한다. 발그스레한 불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는 항아리와 다기 등이 편안하게 느껴진다.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따로 성형해 붙여 만든 항아리와 다기는 정형화 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곡선을 만들어 낸다. 작업을 거듭할 수록 경직된 느낌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형태나 문양 유약 등의 구애받지 않는 작업이 가능해졌다. 무심한 듯 그려 넣은 철화가 기형과 조화를 이루기도 하고 때때로 다분히 의도적인 해학을 느끼게도 한다. 재가 날라 붙거나, 부분적으로 환원이 일어나거나, 가마천장에 붙어있던 티끌들이 내려앉아 기물에 불규칙적인 변화를 주기도 한다. 요변은 장작가마 앞에선 작가의 마음을 불안과 기대로 두근거리게 하는 이유이다. 정영은 쓰임이 있는 것을 추구한다. “제가 느끼는 도자기는 쓰여 질 때에 가장 아름답고 가장 편안합니다. 저 또한 적재적소에 편안하게 쓰여지는 도자기 만들기를 소망합니다.” 접시나 사발 찻그릇 물잔 등 그릇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은 다 만든다. 목물레로 성형해 장작가마로 번조하기도 하지만 전기물레로 성형해 가스가마에 번조하기도 한다. 장작가마를 때다 보니 그 맛에 길들여져 가스가마 사용이 점차 줄고 있지만 가스가마의 안정성이나 효율성은 충분히 활용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장작가마 번조 후에는 바닥에 소결된 사질 흙을 긁어모아 분쇄기에 갈아서 분청토에 섞어서 사용한다. 이렇게 하면 조형토의 샤모트와 같은 역할을 하게 돼 성형력도 좋아지고 불규칙한 표면질감을 낼 수 있다. 그의 그릇 대부분을 차지하는 덤벙분청들은 대체로 묽은 화장토를 빠르게 바른 듯 얇게 발라져 있어 화장토가 흐른 자국이 남거나 속살이 비치는 경우가 많다. 때때로 귀얄을 사용하기도 하고 덤벙이나 귀얄한 위에 철화를 그리기도 한다. 1998년 1회 개인전과 2002년 2회 개인전의 작품들은 작가의 수련과정을 보여주는 작업이었다. 그는 단국대학교 도예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남양주에서 박종훈 교수를 사사하며 기량을 닦았다. 박종훈 교수는 “우리 옛 사기장을 선생으로 삼은 정영은 대기만성형이다. 그의 노력과 기질은 언젠가 큰 그릇이 될 것을 약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정영은 “도자기를 해서 자신의 대에 덕을 보려하지 말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아로새기고 있다. 대기만성형의 작가가 되기를 가르친 것인지, 대기만성형 기질만이 완고한 스승을 모실 수 있는 것인지는 알 수가 없으나 스승 제자간의 궁합이 맞는 격이다. 올해 제3회 개인전과 일본 초대전 이후 서울에서도 작업했었고 양주에도 있었다. 양주는 자신의 가마가 아닌 청소년수련원내의 도예교실의 강사로 일하며 작업했다. 그곳에서도 장작가마 작업을 할 수 있었다. 이천에 내려온 지는 3년이 지났고 비로소 정영다운 작품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게 됐다. 올해 5월에 3회 개인전을 열고 곧바로 일본의 시가라키에서 초대전을 열었다. “일본의 도자기 애호가들은 도자기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만들어질 때의 작가가 했던 생각 등에 관심을 많이 갖더군요.” 이지러진 형태의 항아리는 ‘성형해 놓은 것을 5살짜리 딸아이가 건드려 찌그러진 건데 보기 싫지 않아 그대로 완성했다’든지 ‘한 가마를 헐 때 제일 처음 꺼낸 어떤 접시는 내 눈에는 좋아보였는데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서울전시에 이어 일본까지 오게 됐다’라든지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고 그런 이야기가 담긴 그릇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가 정영의 장작가마는 오름이 완만하고 폭이 좁다. 혼자서 작업할 요량으로 작게 지은 가마가 지금은 내심 답답한 모양이다. 너무 좁아 재임하기도 힘들고 비만 오면 봉통이 물에 잠겨버린다. 새가마를 다시 짓겠다고 몇번이고 마음을 먹으면서도 요변이 많아 불규칙적인 가마가 결과물의 묘미를 주는 것이 좋다. 가혹한 현실에서 발전의 가능성 확인 대학에서 같은 과를 다녔고 결혼까지 하게 된 그의 아내는 늦은 밤 작업하는 작가의 말벗이 돼 주기도 하고, 30~40시간의 긴 번조시간동안 종종 쉴 수 있도록 힘든 일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작가는 무엇보다 도예가로 살고자 하는 자신을 이해하고 서두름 없이 바라봐 주는 마음에 고마울 따름이다.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현실이니까 생각하면 슬프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작가는 자신을 늦추지 않는다. “도예가들이 어려운 현실에 처한 것은 바꿔 말하면 스스로가 더 노력하고 발전해야 하는 상황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더 가혹하다면 더욱 발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희영 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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