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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전성근
  • 편집부
  • 등록 2003-07-05 14:34:38
  • 수정 2016-04-16 05: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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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精緻)하고 집요한 세기(細技) - 글/우관호 홍익대학교 도예과 교수 무토(撫土). 여주나 이천 등지에서 흔하디 흔한 ─窯, ─도예 등의 수식어가 없는 전성근의 공방이름이다. 무토의 “撫”는 “어루만지다, 누르다, 손에 쥐다, 사랑하다, 따르다, 치다, 두드리다” 등의 뜻으로 이름 그대로 풀이하면 흙을 어루만지면서, 손에 꼭 쥐고, 사랑하는 행위에 목적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나아가 “그렇게 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작업장의 이름만큼이나 주인인 전성근의 삶 또한 남다른 데가 있다. 오십세주 한주전자 앞에 놓고 나눈 인터뷰를 정리해보자. 1959년 경북 고령출신으로서 ─그의 말을 빌리자면─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칼을 잡았다. 동네 사람들의 도장 파주기와 판화를 시작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할 때까지 그의 관심은 줄곧 그림에 있었다고 한다. 중도에 학업을 그만두고 그가 경험한 것들은 목공예, 불교조각, FRP조형물 등 다방면에 걸쳐 있었고 그런 일들은 자신의 기량을 더욱 완숙시키는 촉진제가 되었다. 1984년에 이르러 그는 경주의 월성요업에서 처음으로 도예를 접하였고 1년 후 여주로 옮긴 후 지금까지 한눈 팔지 않고 같은 길을 걸어오고 있지만 정녕 자신의 가마를 짓고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남짓이다. 남들보다 2배 이상의 급료를 받고 조각사로 일하다가 자신의 가마를 가지게 되면서 부딪치는 가장 큰 문제는 생계였다. 따라서 지금도 그는 돈 안되는 작품을 꾸역꾸역 하면서 짬짬이 원샷잔과 민속주병 등을 만들어 작업장도 운영하고 두 아들 공부도 시키고 있다고 하였다. 이상이 이번 글을 위해 취재한 전성근의 삶의 여정이며 겉으로 드러난 현재 상황이다. 실제 필자가 전성근을 알게 된 것은 1년여 전이었다. 작년 여주의 국제도예워크숍을 참관하던 중 한쪽에서 절묘한 솜씨로 투각을 하고 있는 그를 보았다. 사실 필자는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의 사업 중 하나인 「한국의 도자기가마 100선」의 편집을 위해 전국의 가마를 취재하였기 때문에 어지간한 작가들의 작품과 성향에 대해서는 거의 꿰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워크숍에서의 전성근은 초면이었고 긴 통병을 가득메운 투각솜씨는 아주 인상적이었다. 더욱이 이중 투각의 문양 하나하나마다 입체감이 뚜렷한 조각은 발군이었다. 그날 저녁 회식자리에서 간단히 인사만 하고 매우 정교한 솜씨를 가진 작가라는 생각을 한 채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2002년 3월부터 8월까지 광주 조선관요박물관에서 개최한 조선도자수선 전시장에서 다시 그를 떠올렸다. 연화문 필통과 연적 등의 투각 백자들을 보면서 우연찮게 전성근의 솜씨와 기량이 오버랩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한국의 도자기가마 100선」을 차근차근 들여다보면서 그와 같은 작가들을 몇사람 확인하였으나 생각보다는 그 수가 적었으며 백자에 비해 청자가 압도적이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왜 백자투각을 하는 작가들이 없을까? 물론 작가들 마다 성격과 기량은 다르지만 분청이나 청자는 쉽게 눈에 띠는데 비해 백자는 그것도 이중투각과 조각을 병행하는 경우는 드물까 하는 것이었다. 억측인지는 몰라도 백자투각의 경우는 다른 양식의 것에 비해 파손율도 많고 오랜기간의 숙련을 거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라는 판단을 해보았다. 한마디로 기피하는 양식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어쨌든 전성근의 백자투각은 요즘 보기 드문 것으로써 소위 ‘장인정신’과 ‘공예성의 본질’을 정확하게 대변하는 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구수한 ‘흙맛’과는 다른 ‘흙맛’ 즉, 정치(精緻)한 세기(細技)의 결과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전성근은 반 건조된 기물위에 밑그림 없이 바로 문양을 새긴다. 기역자 상감칼의 각도를 적절하게 바꿔가면서 마치 종이위에 연필로 그리는 필치로 문양의 윤곽을 파낸다. 빠른 속도로 문양을 만들어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구도를 잡는 솜씨는 가히 달인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작가자신도 나름대로의 소명의식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도예를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고 물레질을 잘하는 것도 아니며 나 자신의 관심과 재능을 도자기에 반영시키다보니 자연스럽게 한 길을 걷게 되었고 앞으로는 투각과 조각을 병행하여 좀 더 정교한 작품을 하고 싶다. 크기에 연연하기 보다는 작고 정치한 작업을 통해 강렬한 효과를 나타내고 싶다. 따라서 평면에서 깍고 투각할 뿐 덧붙여 묘사하지는 않는다. 노작(勞作)이긴 하지만 얕은 두께에서 뚜렷한 표현을 하는 것이 진정한 세기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현대도예 또는 도조가 횡행하고 수많은 가마들에서 전통의 계승을 위해 노력하지만 과연 얼마만큼의 다양성을 지향하고 있는가하는 자문을 해본다. 글의 중간에서도 언급했지만 백자에 대해 탐닉하는 경우는 드물며 투각과 조각을 통해 백색의 절제미를 추구하는 작가는 더더욱 흔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돈 안되는 백자투·조각의 길을 가겠다는 전성근의 의지는 여러가지 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필자약력 1958년생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동 대학원 졸업 개인전 5회(서울, 쿄토, 후쿠오카) 작품소장(서울신문사, 서울시립미술관, 금호미술관, 토 아트 스페이스) 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조교수 전시실에 진열된 백자 작품들 백자칠보이중투각호 백자목단문이중투각병 백자투각식기류 작업실 한켠에서 번조를 기다리는 기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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