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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비평과 한국도예의 발전
  • 편집부
  • 등록 2003-07-05 17:14:09
  • 수정 2016-04-15 17:5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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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립각─비판적인 말 걸기와 대꾸하기 글/김영민 한전프라자갤러리 큐레이터 1. 비평(critic)은 근본적으로 비판적인 기능을 수행한다. ‘사물(대상인 그 무엇)’을 해석하고 그것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 포함하고 있는 비판적인 성질 이전에, 사물에 대해서 그것답지 않은 면을 찾아내고 확성기를 통해서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비평이 가지고 있는 본래의 성질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비평은 사물과 항상 긴장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역할에 따르는 역할행동을 잃게 된다. 다시 말하면, 비평은 사물과 긴장관계에 놓이는 것에서 시작하며 ‘그’ 긴장관계 설정은 사물과의 대립각 형성을 통해서 출발한다. 비평과 사물은 좀처럼 서로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으며 서로 바라보며 서로에 대해서 시시비비를 따지고 각각에게 ‘정체’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긴장은 피곤하긴 하지만 상호 견제 속에서 긍정적인 변화를 추동하는 역할을 한다. 비평은 사물을 늘 긴장케하여, 비평과의 관계 속에서 변화를 이끌도록 유도하며 사물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면서 비평이 말하는 비판이 그릇되었음을 중명하려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일종의 동업자이다. 그러나 그 동업은 서로가 서로의 존재방식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자신의 위치를 만드는 ‘예각의 겨눔’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러한 불편한 동거를 통해서 사물과 비평은 자신들을 고양한다. 2. 조형예술 전부분에서 비평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지 퍽 오래되었다. 실제로, 비평부재라는 말에 크게 이의를 달지 못할 정도로 비평이 지지부진하다. 비평의 부재에 대해서는 가치 확정적이지 않은 시대적 조류라든가 언술적인 정의 자체가 그다지 힘을 가지지 못하는 문화의 비확정적 경향의 확산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가장 큰 이유는 비평이 사물과의 동거에 있어서 불편을 감수하려 하지 않는 다는 것으로 보인다. 긴장보다는 이해를 통해서 그들을 옹호하거나 그들의 논리를 ‘말’로 설명하는 것을 1차적 기능으로 삼는 언어로의 번안이나 해설을 비판보다 우선시함으로써 서로의 긴장을 해소하고 일종의 공동체적 가치관을 만들어낸 듯싶다. 사물이 비평에게 요구한 바인 ‘우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라’는 요구를 대부분 받아들임으로써 비평은 사물의 참고서가 되고 있다. 일부는 비평의 사물에 대한 복속일 수도 있고, 일부는 제휴일 수도 있는 이러한 관계의 징후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그러한 징후의 첫 번째 경우로 들 수 있는 것이 지나간 사물에 대한 비평의 태도이다. 비평은 현재의 사물을 옹호하기 위해서 지나간 사물에 대해서 날카로운 각을 세워 그들을 재단한다. 이것은 우선, 사물이 가할 잠재적인 위협을 현저히 줄일 수 있을 뿐 아니라(과거의 사물은 현재에 영향력을 거의 가지지 못한다), 현재의 사물을 강화함으로써 현재 동거인과의 관계를 보다 유연하게 할 수 있다. 지나간 사물에 관한 이러한 태도들은 비평이 사물에게 보내는 일종의 ‘윙크’이다. 두 번째 징후로 들 수 있는 것은, 비평이 좀처럼 전선(戰線)을 형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재에 만들어지는 사물에 대한에 대한 논의를 위한 장이 마련되지 않고 있으며 비평 스스로 그것을 마련하려 노력하지 않는다. 늘 논의의 중심은 사물이 그들의 입장을 설파하는 것이고, 비평은 마치 감초처럼(달지만 크게 약효는 없는) 그들의 설파를 ‘어렵거나’ 쉬운 말로 옮겨 ‘권위를 부여하거나’ 설명한다. 아마도 힘의 균형이 깨진 결과로 보이며, 그들은 우호적인 그러나 일방적인 동업자가 된다. 비평의 부재를 드러내는 가장 심각한 징후는 비평에 대해서 사물 자체가 전혀 긴장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비평이 사물에 대해 대립각을 세우지 못하고 우호적인 동업자가 됨으로 해서 생긴 결과이기도 한 긴장감 문제는 서로 ‘각을 세워주는(모양을 내준다는 것을 시정잡배들은 각을 세워준다고 말한다)’ 방식으로 예각을 둔각으로 변화시킴으로써 발생한다. 이러한 변화가 내포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물 내적인 변화 동력원을 소멸시킨다는데 있다. 사물이 내적인 구조를 가지고 그 구조의 변화에 의해서 전개되는 현대미술의 논리가 미술외적인 요인에 의해서 뒤틀어지고, 내적 논리는 단지 명분으로만 존재하는 양상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명분의 이면에는 미술외적인 이익들이 자리 잡게 된다. 사물의 방황은 이렇게 시작되며, 힘에 논리에 의해서 길들이거나 길들여진 결과이다. 이제 비평은 부재하거나 산발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3. 도예의 경우는, 문제가 조금 다를 수 있다. 도예의 경우도 위의 이야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정체’에 관한 부분이 비평의 부재를 부르는 부분이 존재한다. 목적이 상이한 동일재료의 분류체계인 도예는 영역이 다른 문제들을 동시에 포괄해야하는 난점을 어떻게 소화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현대에 들어 태생적으로 안게 되었다. 미술과의 연계선상에서 살펴야 하는 부분과 산업적 생산 속에서 자리매김해야 하는 부분이 상존한다. 그것이 도예의 정체를 이루는 장점이며, 그래서 기존의 사물에 대한 비평방식과 접근방법을 달리하는 포괄적인 비평이 요구된다. 불행하게도 도예에 대한 비평은 대부분의 경우 현대미술에서 그 도구를 빌어 왔거나 미술사학의 방법을 번안해서 이루어졌다. 따라서 도예에 관한 비평은 이제 ‘시장’에 대해서 좀더 진지한 -그래서 매우 지루하고 교양 없으며 명료한-관점들의 수용이 요구되는 것이다. 미술에서 빌려 온 비평의 방법들의 부족분을 메우는 생산물(product)로써의 도예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들이, 위에서 말한 일반적인 사물에 대한 비평에 더해져야한다. 인구통계학적으로 보면, 도예에는 두 가지 직업이 존재한다. 하나는 조형예술가로써 흙을 주재료로 사용하는 사람들이며 다른 하나는 필요한 용기를 만드는 사람, 즉 공예가이다. 전자는 예술가로 분류하여 희소가치의 생산재로써 가지고 있는 사회적 역할을 부여하고 후자는 생산자로써 시장 지향적으로 분류한다. (이렇게 분류한다고 해서 사실에 근접한 통계를 잡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자든 후자든 많은 사람들이 병행하고 있는 직업의 사회적인 지위가 보다 우월할 경우 그 우월한 지위를 자신의 사회적인 정체로 삼는다.) 이러한 분류는 도예가 가지고 있는 양면성을 드러낸다. 예술과 생산 사이에 위치를 점하고 양자를 포괄하는 개념으로의 도예가 존재한다면, 도예에 대한 비평도 ‘그’ 양자 사이에서 발언해야 한다. 현재 도예에 관한 비평은 (정직하게 이야기 하면, 부재하지만) 생산물로써의 성격에 관한 부분에서의 심도 있는 논의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비평은 도예에 대해서 예술적으로 시비가는 일을 멈추지 않고 되도록 상처 입히려 노력하는 가운데에서도 아직까지 비평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경제학이나 통계학 그리고 사회학 같은 살 냄새나지 않는, 인문학 이외의 방법들을 통해서 도예와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 4. 근본적으로 비평의 부재는 비평자체의 책임이다. 비평은 비평이라는 일을 수행함으로써 자신들의 생존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비평행위가 비평하는 자의 생계를 보장하지 못한다면, 그 비평은 사라져야 한다. 비평은 사물에 대해서 ‘돈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비평해야 하며 자신 스스로 ‘돈을 보아야’ 한다. 그러나 비평은 그 행위를 통해서 행위 자체가 돈이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되는 것에 유리한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현재의 비평 흡사 부르디예가 말하는 문화자본과 닮아있다. 부르디에(P. Bourdieu)가 말하는 문화자본은 세상의 지배와 피지배를 벗어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실은 그것을 더욱 견고하게 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비평 또한 사물에 비판적인 것처럼 표면이 처리되어있지만 실재로는 ‘사물의 힘’을 강화하고 기생하는 것처럼 보인다. 비유하자면, 위인전 대필 작가의 글쓰기를 닮아있다고 할까?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예술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과정 (재)한국공예문화진흥원 운영위원 서울산업대, 단국대, 경기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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