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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동 한국세라믹총협회 명예회장
  • 편집부
  • 등록 2005-03-24 23:00:40
  • 수정 2015-05-13 10:3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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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세라믹스에서는 1950년대 이후 우리나라 세라믹 산학연을 이끌어왔으며 앞으로 세라믹계를 이끌어갈 젊은 세라미스트를 키우는데 공헌한 세라믹 원로들로부터 우리나라 세라믹 산학연의 발전과정에 대한 소회와 함께 현재 근황, 후학들에게 주고 싶은 교훈 등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합니다. 월간세라믹스는 언제나 한국 세라믹 산학연 원로들에 대한 무한한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으며 이번 원로초대석 란이 원로들에게는 세라믹과 함께 했던 삶을 회고하는 자리가, 젊은 세라미스트들에게는 원로들의 교훈을 얻는 장이 되기를 바랍니다. 첫 만남으로 세라믹 산학계의 큰 어른이신 남기동 세라믹총협회 회장님과의 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 편집자주 - 성실한 마음으로 오직 세라믹스 분야의 한 우물을 파다! “성실하고 겸손하며 사랑하는 마음을 지녀온 것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지요.” 여든을 훨씬 넘긴 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신선한 미소로 말씀하시는 남기동 회장. 말씀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남기동 회장은 성실함을 이내 또 한번 강조하신다. 그도 그럴 것이 양송(陽松) 남기동 명예회장은 50여년 넘게 오직 세라믹 분야의 한 우물만을 파왔으며, 그 결과 그 우물에는 황금샘물이 마를 날이 없었던 것이다. 남 회장은 세라믹스의 발전을 위해 여념이 없던 그때 당시를 추억하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었다. “한 평생 동안 학생 시절, 연구원, 공무원, 대학교수, 학회장, 사회간부 등을 맡아오면서 단 하루의 결석, 결근 없는 완전 개근을 지켜왔어요. 이러한 성실한 마음은 지금도 변함없이 계속되고 있지요. 성실한 마음으로 차근하게 무언가를 이뤄간다는 것은 엄청난 발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세라믹 산학계의 큰 어른, 양송 남기동 회장과 시멘트와의 특별한 인연 남 회장은 1943년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응용화학과를 졸업할 당시 세라믹에 관련한 논문을 쓰면서부터 세라믹 분야를 향한 긴 여정을 시작했다. 남기동 회장은 세라믹 분야에 발을 내딛은 계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세라믹 분야를 선택했던 이유는 우리나라에는 세라믹 관련 자원이 풍부하며, 동시에 세라믹과 관련한 오래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남 회장은 1946년에 상공부 공업연구소 요업과장직을 맡아 전국 공업 행정전반의 사업을 책임지는 동시에 서울대, 한양대에서 강의를 병행하면서 세라믹 산업과 더욱 깊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내가 공업국 기관에 몸담고 있을 때, 그러니까 1954년의 일이었지요. 당시 한국에는 시멘트를 대부분 미국, 유럽 등지에서 수입해 왔는데, 이는 수송비가 엄청나게 비쌌죠. 그래서 정부에서는 나라의 재건을 위해 시멘트 사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시멘트 공장을 건설키로 했지요. 그때 시멘트 공장을 문경과 단양에 설립하자는 두 가지 제안이 나왔죠. 곧 지역별로 서로 다른 의견 쟁탈전이 벌어졌고, 이를 중재하기 위해 제가 UN에 국내 시멘트 공장 건설 진정서를 내고 문경에 대한양회 공장을 건립할 수 있게 했던 것이죠. 그때부터 시멘트는 나의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남 회장은 1960년에 한양대학교 요업과를 창설하고 대학생 및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으며 한국요업학회장직을 맡았다. “당시 내가 요업과를 창설하니, 다른 교수들은 요강만드는 학과냐며 저를 놀리기도 했지요. 요업과는 도자기뿐 아니라 유리, 시멘트 등을 포함하는 다양하고 우수한 특성을 가진 재료라는 것을 강조했어요. 그러면서 요업공학과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의 순으로 차차 생겨나게 됐지요. 한때 세라믹공학이 무시당했던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최첨단 산업, 차세대 성장 동력 산업으로 급부상하고 있으며 이에 젊은 학도들은 향후 세라믹 산업의 발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어 남 회장은 1962년부터 강원도 영월에 ‘쌍용양회’ 공장을 건립하고 15년간 이곳에 몸담았다. 이후 78년부터는 동양시멘트(주) 대표이사를 맡았다. 이로써 남 회장은 세라믹 산업계, 학계, 연구계 등 모든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한 세라믹 산학계의 큰 어른으로서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문득 78년의 일들이 떠오르네요. 동양시멘트에서 근무할 시절, 당시 2차 오일쇼크로 인해 기름값이 엄청나게 오른 적이 있었어요. 그때 제가 6개월 동안 기름대신 석탄을 연료로 전환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고, 이로써 연료값을 3분의 1이상 절감할 수 있게 됐어요. 이 기술을 개발해 기술부문에서 ‘3·1문화상’을 받은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남기동 회장은 이외에도 대한요업총협회 기술상, 한국요업학회 공로상, 대한화학회 공로상, 한국화학공학회 공로상, 서울대학교 서울공대 대상, 제1회 성옥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는 등 세라믹 분야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장 잠재력 지닌 세라믹 분야 기술개발로 국제 경쟁력에 도전해야 할 것 남 회장은 현재 대한요업총협회 명예회장으로 지난 84년부터 개최되고 있는 ‘한·일 국제 세라믹스 세미나’의 조직위원회 명예회장직을 맡고 있으며, 올해에도 일본 나고야에서 개최될 세미나를 위한 사업 준비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최근 전통세라믹스 분야는 인건비 상승 등의 고비용 체제로 변화되어 점점 경쟁력을 상실함에 따라 부가가치가 높은 고품위의 제품이나 신소재 등의 기능성 세라믹 분야로 옮겨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전통세라믹 분야의 침체가 안타깝기는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피할 수 없는 산업변화의 순리라고 생각됩니다. 따라서 무한한 성장 잠재력을 지닌 세라믹 분야의 기술개발에 힘써 국제 경쟁력에 도전하는 정신을 길러야 할 것입니다.” 남기동 회장은 현재 젊은 학도들의 활발한 연구 활동을 위해 우수한 연구논문 발표자에게 기금을 수여하는 ‘양송상’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젊은 학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은 한길을 가되, 자기개발을 게을리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글로벌 시대를 맞이하여 세계에서 으뜸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특히 능통한 외국어 구사는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본인 역시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독일어,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일본어, 인도네시아어, 영어 등 6개 나라의 언어를 능통하게 구사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실상 이러한 능력은 제가 세라믹스 분야에 몸담고 있을 때도 엄청난 도움이 된 것이 사실입니다.” 남기동 회장만의 특별한 건강법…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사는 것 이어 남 회장은 “소재산업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산업을 지배한다”며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MicroSoft社의 Bill Gates사장, 우리나라에서 최대의 이익을 내고 있는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도 세라믹 소재를 이용한 것으로 우수한 기능성을 가진 소재개발에 부단히 노력하면 결국엔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어떤 일이든 성실함과 겸손함으로 즐겁게 일하는 태도를 최고로 생각하는 남기동 회장의 건강법은 특별했다. “저희 집에는 상비약으로 세 가지의 약을 구비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치약, 구두약, 파리약입니다. 약이란 쓰면 쓸수록 부작용이 더 커지는 법 아니겠습니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즐겁게 사는 것이 저의 건강함의 비결입니다.” 윤나리 기자 대한요업총협회 회장으로 활발히 활동하던 1986년 당시의 남기동 회장 남기동 회장은 올해로 22회를 맞이하는 ‘한·일 국제 세라믹스 세미나’의 조직위원회 명예회장으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남기동 한국세라믹총협회 회장 주요 약력 1943.9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 응용화학과 졸업 1946.1 상공부 공업연구원 요업과장 1956.9 대한양회 문경시멘트공장 건설 1959.4 상공부 공업국 기감 1960.4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요업공학과 창설 주임교수 1960.8 한국요업학회장 1962.5 쌍용양회공업(주) 상무이사 1975.1 한국화학공학회 회장 1977.1 대한화학회 회장 1978.9 동양시멘트(주) 대표이사 사장 1982.9 한국요업총협회 회장 1984.10 한·일 세라믹스 세미나 조직위원회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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