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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이노우에마사유키(井上雅之)
  • 편집부
  • 등록 2003-07-05 17:39:22
  • 수정 2016-04-15 14: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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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은하 도예가 일본의 요업은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의 조선침략에 따른 조선도공의 납치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도모하게 된다. 일본으로 끌려간 조선도공들이 하기(萩), 다카도리(高取), 사츠마(薩摩)등의 여러 지역에서 도기가마를 발전시켰을 뿐만 아니라, 아리타(前田)에서는 자기(磁器)소성에 성공하기도 한다. 이후, 일본자기는 유럽 여러 곳으로 수출되는 등, 중국과 조선에 비해 뒤늦게 출발하지만 도자기 발전에 탄탄대로를 달리기 시작한다. 우리는 흔히 일본을 도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모방에 능한 나라라고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민예론1)의 야나기므네요시(柳宗悅)와 그에게 영향을 받은 하마다쇼지(浜田庄司), 도미모토캔키치(富本憲吉), 가와이간지로(河井寬次郞) 등, 조선도자기가 지닌 아름다움과 고도의 가치를 인정할 줄 알았던 혜안의 인물들을 바라보며 우리가 지금까지 일본에 대해 지녀왔던 비평적인 입장만을 고수할 것이 아니라, 훌륭한 것은 찬양하며, 바람직하다고 느끼는 대상을 모사하고 더욱 발전시켜 나갈 수 있었던 그들의 지혜를 높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더욱이 해를 거듭해갈 수록 조선 도공에 의해 전해진 비법으로 생산된 많은 도자기들은 그 외형과 감성의 표현에 있어서 일본특유의 것으로 정착되어 발전해 나갔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점이 높이 살 일이라고는 해도 한국이 일본도예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음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다. 심지어 일부 일본작가들 사이에서는 자신들의 독창성을 부정하는 학파가 생겨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을 안고 있는 일본의 현대도예는 어떠한가. 현재 일본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를 소개함으로써 일본의 현대도예의 전반적인 동향을 조명해보고자 한다. 일본의 현대도예는 역사상, 혹은 조형상 일반적으로 세 개의 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겠다. 그 첫 번째는 전통적 기술에 의한 개인주의적, 미술 공예적인 도예이며 두 번째는 쓰임에 입각한 민예계 혹은 크라프트계의 작업, 그리고 세 번째는 소데샤(走泥社)2)를 실마리로 출발한 전위계, 오브제계의 조형이다. 여기서 말하는 도예계에서의 오브제는 미술계의 오브제와는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순수미술계에서 언급되는 오브제는 프랑스어로, 1910~1920년대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 운동을 배경으로 등장한 ‘물체’를 뜻한다. 유명한 듀상의 작품, 《샘》(1917)은 변기를 소재로 한 것으로 물질이 갖는 의미를 異化하여 버리는 현대미술의 직접적인 루트로 자리 잡고 있다. 이와 같은 작품들은 대개 기성품과 일상용품, 혹은 자연물이나 폐품을 구성하여 제시되는데,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작가의 손재주를 중시하던 종래의 예술작품의 가치관을 흔드는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 그후 오브제는 과거의 조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유형의 입체작품에도 자주 도입되었는데, 이 모두 작품이 지닌 상징성등 기술이외의 측면이 부각된 것이다 다시 말해, 국어사전에 소개되고 있는 오브제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서양미술사상의 의미를 뜻한다. 이에 반해, 오늘날 일본 도예계에서-물론 한국의 도예계에서도-이용되고 있는 오브제는 일반적으로 비실용적인 입체조형 전반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오브제도 하고 식기도 하는 작가」와 같이 사용되는......물론 역사적으로 볼 때, 일본의 도예계에서도 야기가즈오(八木一夫)의 《자므자씨의 산책》(1954)등의 작품에서 드러나듯이, 일부 초기의 오브제의 경우 초현실주의 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야기가즈오가 초현실주의 화가인 에른스트나 미로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러한 감상상의 의미와는 달리, 작품 성립의 방법 면에서 볼 때 소데샤의 작가들의 오브제는 도예의 조형성을 되묻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예를 들어 《자므자씨의 산책》은 물레로 성형한 피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물레로부터의 발상이면서 종래와 같이 물레에 의존하지 않고 물레를 하나의 도구로 간주한 것이다. 오브제는 20세기 서양미술사상에서는 종래의 예술의 의미를 되묻는 것이며, 일본의 전후(戰後) 도예사상에서는 도예라는 조형의 성립을 새로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국 두 경우 모두 전위(前衛)의 기운 속에서 오브제가 등장하였다는 점은 동일하지만 순수미술세계에서는 오브제가 수작업의 부정으로 통하는 의미에서의 비 조형적인 것을 가리키는 과거의 용어가 된 반면 전후 도예계에서의 오브제는 도예조형을 의미하는 일상적인 단어로서 21세기, 오늘날에 와서, 점점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점은 현재 우리 한국에서도 동일하다고 할 수 있다. 위의 세 개의 영역은 21세기인 오늘날에도 일본 현대도예의 세 개의 기둥으로 간주되고 있다. 그것들과 함께, 일본 현대도예에는 또 하나의 새로운 영역이 존재한다. 전후 현대미술의 세계에 급속히 퍼져 정착한 인스탈레이션과 믹스미디어등의 기교를 흡수하여, 특히 70년대부터 80년대의 걸쳐서 표현의 폭을 크게 넓혀 온 작품군(群)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 陶, 나무, 금속 등을 결합, 배열, 나열하는 등 무기적인 공간에 유기성을 주는 듯한 작품, 광범위한 소재선택과 공간 구성 등의 작품, 믹스미디어의 작품 등이 이에 속한다. 이것을 필자는 네 번째의 영역으로 구분하고자 한다. 작가Ⅰ. 이노우에마사유키(井上雅之) 이번에 소개하고자 하는 작가, 이노우에마사유키(井上雅之)가 이 네 번째의 범주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가라고 볼 수 있다. 이노우에마사유키는 동경(東京)의 다마(多摩)미술대학의 은사인 나카무라긴페이(中村錦平)의 작업을 처음 접하면서 현대도예계의 발을 들이게 된다. 그는 본인이 제작한 그릇을 깨서 그 파편을 앗상블라쥬한 작품<사진1> 등에서 볼 수 있듯이 , 80년대 도예의 새로운 전개를 리드해 온 작가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흙과 물레의 관계를 객관화하여 바라보고, 도예의 프로세스, 그 자체를 표현의 요소로 간주하면서 종래의 도예관에 강한 자극을 주어왔다. 그의 작품은 그 길이나 크기 면에서 기존의 스케일과는 비할 수 없이 웅대하다. 이렇듯 호방하고 거대한 파도와도 같은 그의 작품에서 그때까지의 편엽한 도예론을 거부하는 그의 무서운 힘이 느껴진다. 1980년대, 물레로 성형한 후 쪼갠 부분을 재구성하는, 다시 말해 도예의 기본수단의 하나인 물레성형의 「해체」를 통해 가볍게 자신의 기법으로 교체해 버리던 이노우에마사유키의 손은 21세를 전후하여 「판 성형」으로 향한다. 판성형은 손자국을 남기지 않는 성형법으로, 초심자들도 쉽게 시도해 볼 수 있는 반면 손을 잘못 댔을 경우 본래 의도했던 형태를 얻어내지 못할 위험이 있다.『「판」은 형태가 정해져 버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사용하고 싶지 않았는데, 실제 사용해보니 예상 밖으로 전혀 그렇지 않아......』라고 한 작가의 말대로, 그의 판에 의한 작업은 「판」성형의 이미지를 일신하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배 형태의 방형 (MS-0015) <사진2>와 (MS-0016) <사진3>은 같은 방법으로 쌓아올려, 눕혀 놓은 것이다. 그의 판 작업은 아무렇게나 성형한 듯한, 뒤틀림이 있는 개개의 조각이 「성장」을 수반하는 동시에 강인함을 늘려가고, 대담한 모습으로 변모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것은 마치 수많은 각각의 구멍으로 이루어진 벌집이 끊임없이 늘어나고 누에나방의 유충들이 쉴 세 없이 성장하고 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뽕나무 잎 대신 조인트용의 볼트를 먹고 밀랍대신 접착제를 묻히며, 세포를 하나씩 늘려 나가는 것이다. 방해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단지 흙의 조형의 상식인 중력과의 싸움만이 존재할 뿐이다. 배와 같은 형태의 (MS-0015)는 판에 의한 대작으로서는 두 번째에 속한다. 바닥에 세워진 채 견딜 수 있도록 하기 위해 피스 사이에 쿳션재나 조인트를 위한 볼트의 조임 방법 등, 이노우에마사유키만의 경험과 계산에 의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무게가 700㎏가량이나 되는 거체가 전시실에서 유유히 늘어나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라고 할 수 있다. 그 당당한 체구는 그의 작품의 하나의 매력으로 보는 이에게 다가온다. 초기의 비교적 작은 앗상블라쥬로부터 근래의 거대한 사이즈의 대작까지 이노우에마사유키의 작품은 결국 완성도 높은 형태추구를 그 목표로 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노우에마사유키가 지닌 세련된 조형감각과 마주하게 된다. 다시 말해 도예의 프로세스에 몰두하면서, 최종적으로는 그 행위를 확실하게 자신의 쪽으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동시에 그의 판 시리즈는 이노우에마사유키의 또 하나의 자질인 행동하는 힘으로부터 강하게 발로하고 있다. 다마미술대학의 학생시절부터 이단의 물레청년 이었던 이노우에마사유키는 완성된 형태에서 항아리, 혹은 다완을 논하기에 앞서 「휘익~하고 형태가 생기는」물레 작업 자체에 반했다고 한다. 이노우에마사유키는 그 행위에 빠져드는 체질의 소유자로, 형태의 생성과 행위가 곧바로 연결되는 관계를 무엇보다 좋아했던 것이다. 마치 로봇의 이름과도 같은 그의 작품명은 보는 사람에게 특정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지 않다는 작가의 의도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혹은 그저 자신의 행위가 쌓여 가는 사실을 기록하기 위한 기호일 지도 모른다. 작품의 내용보다도, 행위의 존재 그것을 기록하는 코드인 것이다. 도예를 행위가 가장 직접적으로 형태로 변환되어 가는 종류의 예술로 본다면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이노우에마사유키의 액션은 틀림없이 이후에도 보다 커다란 스케일로 끊임없이 지속될 것으로 기대된다. 6m를 넘는 용형태의 작품(A-9731) <사진4>은 코일링을 기본으로 60㎝정도를 쌓고, 컷트 하면서 네 겹의 화장토를 바른 후 구워지고, 후에 볼트 등으로 조인트 하여 만들어진다. 도예의 기법으로서는 기본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점토 코일링기법을 반복함으로써 만들어진 형태는 어딘가 기상천외한 인상을 준다. 한편 (K-981) <사진5>은 블록상태의 점토를 중심에서 연결하여 서서히 넓혀 가는, 파도문양과도 같이 넓혀진 형태이다. 거대한 접시와도 같은 이 작품은 속박 없는 여유로움이 역시 충격을 준다. 1980년대의 혼미한 현대도예의 상태에 새바람을 불어넣은 그의 작품은, 본인의 작업을 한번 부수어 그것들을 복잡하게 앗상블라쥬 하는 것이었다. 그 작품들과 이번의 작품의 사이에는 얼핏, 커다란 격차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는 도예의 방법론에 있어서의 융통성이며, 동시에 회의적, 실험적이고자 하는 의미에서 작가의 위치는 일관하고 있다. (A-9731)은 도예작업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코일링 기법의 반복에 의해 성형하는 시도이며, (K-981)은 일반적으로 위로 쌓는 점토 블록을 옆으로 성형하는 실험인 것이다. 표면의 마무리작업에 관해서도 용해온도가 높은 화장토를 위에, 용해하기 쉬운 화장토를 밑에 바른다고 하는 도예의 일반적인 상식과는 반대로 하여 표면에 기포를 만들고, 그것을 부수어 독창적인 마티에르를 만들어내고 있다. 도예로서는 거대한 규모라고 볼 수 있는 그의 작품은 도예미술관의 내외를 자유롭고 창조적인 공간으로 바꾸어 놓고 있다. 시가라키와 세토의 흙을 1:1로 사용, 전기가마에서 1230~1250℃로 가스버너에 의한 환원소성이다. (다음 호에 계속) 1)민예(民藝):야나기므네요시(柳宗悅)가 처음으로 사용한 말로 일반서민의 日用工藝를 일컫는 말. “용도를 떠난 器의 아름다움은 의미가 없으며, 민예에 진정한 아름다움이 있다”하며 가와이간지로(河井寬次郞), 하마다쇼지(浜田庄司)등과 함께 민예운동을 전개 하였다. 2)소데샤(走泥社):현대도예의 원류 중 하나로 야기가즈오(八를木一夫)를 중심으로 스즈키오사무(鈴木治), 야마다히카루(山田光)등에 의해 결성된 그룹이다. 전후 혼란기에 쿄오토(京都)에서 탄생한 혁신적 도예단체인 소데샤는 당초 도예계의 인습타파를 목적으로 하였으며 그들이 만든 작품은 전통적인 기형이나 실용성에서 벗어난 것으로 당시 오브제야키라고 불리었다. 이는 흙과 불에 의한 입체조형으로서 회화와 조각등 현대미술의 동향과 접근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이 시기 해외에서 진행 중이던 추상적 도예의 동향이 소개되자 도예를 하나의 조형예술로서 다루는 도예가들이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사진1> 「KOK 85a-1」 1985년작, 69×30×38h㎝ <사진2> 「MS-0015」 2000년작, 88×262×93h㎝ <사진3> 「MS-0016」 2000년작, 217×104×100h㎝ <사진4> 「A-9731」 1997년작, 30×630×30h㎝ <사진5> 「K-981」 1985년작, 365×159×40h㎝ 「도예가 이노우에마사유키」 1957 고베시 출생 1983 다마미술대학 미술학부 회화과 유화전공 졸업 1985 다마미술대학 대학원 미술연구과 석사과정 수료 1985~87 다마미술대학 유화연구실 조수 1987~89 다마미술대학 연구실 조교 1991~98 다마미술대학 학부 도예과 강사 1998~ 다마미술대학 미술학부 공예학과 조교수 1990 AR·CO(비쥬얼 아트 커뮤니케이션 센터, 포르투칼) 초빙 체재제작 1998 EKWC(유러피안 세라믹 워크센터, 네덜란드) 초빙 체재제작 개인전 30여회, 단체전 80여회 필자약력 1964년 7월 19일 생 1987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과 졸업 1991 일본 다마미술대학 회화과 도예전공 연구과정 수료 1993 일본 다마미술대학 회화과 도예전공 대학원 졸업 1993~1996 홍익대학교 도예연구소 연구원 재직 1995~1997 홍익대학교 도예과 강사 개인전 5회, 단체전 4회 외 현, 여주대, 충남대, 홍익대 도예과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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