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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간사이 지방의 한국도자기를 찾아서
  • 편집부
  • 등록 2005-10-12 13:4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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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간사이關西지방의 한국도자기를 찾아서

글+사진 곽선옥 _ 도예가, 단국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도예전공

지난 6월 22일부터 25일까지 짧은 기간 일본에 있는 한국 도자기를 보기 위해 간사이(關西)지방의 중심인 오사카, 교토의 몇 곳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이번 답사는 금년 4월 23일부터 6월 19일까지 제3회세계도자비엔날레 기간에 조선관요박물관에서 개최한 〈청자의 색과 형〉 특별전을 본 감흥을 잊지 못한 이유도 있고, 우리나라에 남아있지 않은 명품도자기를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비롯되었다. 이전에도 몇 번 일본을 간 적은 있지만, 일본에 소장된 한국 도자기를 실견하기 위한 답사는 처음이라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특히, 일본에 관서 지방을 답사지로 선택한 것은 근대 이전 한일 교류의 중심지이기에 많은 한국의 문화재가 남아있다는 것을 한국도자사 시간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다.

6월 23일 : 오사카역사박물관 -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오사카는 일본문화의 여명기인 아스카시대飛鳥時代 : 6세기 말∼7세기 중엽에 한반도를 비롯한 대륙의 문물을 받아들이는 문호로서 교통의 요충이었으나, 요도가와강의 토사에 의한 퇴적으로 항구의 기능을 잃어 단지 지방 도시로의 기능만 하였다. 그러다가 일본 전역을 최초로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그 위업의 상징으로 1583년 오사카성을 구축한 이후 급속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이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지배 하에 들어가면서 일본 전역의 영주들이 바치는 조공이 지나가는 경로가 되어 물자교역의 중심지로 재 부상하였다. 현재는 수도인 도쿄東京 다음으로 발달된 도시로 초현대적인 고층빌딩이 즐비한 상업도시이지만, 도시의 이곳저곳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이 잘 보존되고 있는 곳이다.

오사카역사박물관
오사카성에서 15분 정도 조경이 뛰어난 성을 걸어 내려가면 NHK본사 건물과 붙어 있는 오사카역사박물관이 있다. 이 박물관은 약 1350년경 전의 나니와 왕조의 궁전 터 위에 건물을 세워 유명한 곳인데, 1층 로비 바닥을 자세히 보면 유리를 깔아 둔 곳에 옛 궁전의 유구가 그대로 남아있어 천여 년 전의 세월을 느끼게 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0층으로 올라가 내려오면서 도시의 탄생과 성장, 영화를 누리던 시기, 근대까지 시대별로 전시해 놓았다. 영상과 멀티미디어, 당시를 그대로 복원한 거리풍경 등은 재미있는 볼거리를 많이 제공하여 마치 옛날 오사카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전시가 잘 되어 있다.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
이 미술관은 동양도자기를 2,000여점 소장하고 전시·연구하는 세계적인 곳이다. 1982년에 설립되어 1,000여점의 아타카安宅 컬렉션과 351점의 이병창 컬렉션, 기증유물 333점 등으로 구관의 아타카 컬렉션과 신관의 4개의 전시실을 갖추고 있다. 아타카 컬렉션이란 이전에 아타카 산업회사가 수집한 동양 도자기를 말하며 중국도자기 144점, 한국도자기 793점, 베트남도자기 5점, 일본도자기 2점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 도자기는 고려와 조선의 도자기가 주를 이루는데, 고려자기는 모든 청자의 기형과 문양을 망라하는 고려청자의 대표작들이며, 조선자기는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의 발달과정을 한 눈에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유물을 가지고 있다. 도자기 연구자로 유명한 하야시야 세이조林屋晴三는 “아타카 컬렉션은 다기를 제외한 분야에서 근대이후 일본에 수집된 한국 도자기를 집대성한 것이다”라고 평하였다. 또한 이병창 컬렉션은 한국도자기 301점과 중국도자기로 50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평생을 수집한 막대한 수집품을 어디에 두고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던 그는 재일 한국인에게 용기와 긍지를 심어주고 한국도자기의 매력을 널리 세상에 알리기 위하여 이 미술관에 기증하면서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본인의 집과 땅도 한국도자기 연구기금으로 기증하였다. 이병창 컬렉션과 아타카 컬렉션의 만남으로 오사카동양도자미술관은 명실공이 한국도자기의 전시와 연구의 핵심기관이 되었다. 그러나 일본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우리의 명품 도자기를 보면서 “고故 김용두선생 같이 우리나라에 유물을 기증해 주셨으면 좋았을텐데”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6월 24일 일정 교토박물관 - 락쿠박물관 - 다도자료관 - 고려미술관
교토국립박물관
일본의 3대 박물관 중의 하나인 쿄토박물관은 1889년 근대화를 지향하던 일본이 전통문화가 없어지는 것을 보호하기 위해 개관하였다.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박물관 본관에서는 매년 여러 차례의 특별전시회을 개최하고, 1966년 개관된 신관에서는 소장품과 기탁품 약 12,000건 중 고고, 도자, 조각, 회화 등 여러 분야에 문화재를 전시하고 있다. 특히 상설전시실은 유물의 보호를 위해 수시로 전시물을 바꾸고 있는데, 문화재들의 보존 상태가 너무 좋아 우리의 문화재들과 비교하여 아쉬운 점이 많았다. 특히 내가 관심이 가는 도자관은 일본 도자기가 잘 전시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중국 도자기들에 비해 한 구석에 몇 점의 도자기만이 전시되어 있는 한국 도자기들을 보면서 국가적인 차원으로라도 유물을 대여해 다른 나라의 도자기와 격이 맞는 유물로 전시되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도자료관
쿄토 중심에 있는 사립박물관인 다도자료관은 일본 다도에 관한 자료를 전시·보관하는 곳이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시연 장소가 바로 있어 말차末茶와 다식을 맛볼 수 있는데, 기모노를 잘 차려입은 여인이 다례를 통해 차를 시음하게 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같은 외국인들에게도 일본의 다도를 접할 수 있게 한 것이 매우 흥미로웠다. 마침 전시실에서는 다실에 걸어놓는 시문에 대한 전시회를 하고 있었는데, 무릎을 끊고 천천히 전시물을 관람하는 일본인들을 보면서 “일본인들에게 있어 차는 무엇일까”와 “우리들의 박물관 견학 태도와 차이가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를 고민해 보았다.

락쿠박물관
락쿠는 1525년에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조지로Chojiro에 의해 처음으로 시도되었다. 그 후 조지로의 자손들이 현재 15대에 이르기까지 락쿠 가문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간 곳에 세워진 박물관이다. 박물관 내부는 지극히 일본적이었으며 한국적인 것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세계적으로 락쿠를 처음 시작한 사람이 한국인이라는 사실 조차도 모르는 동료들에게 약간의 설명을 하면서 이것 역시 우리가 잃어버린 ‘우리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려미술관
이 박물관은 천년의 역사도시 쿄토京都 한국인이 세워 운영하는 한국박물관이다.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고려미술관은 1989년 재일교포 고故 정조문 이사장이 평생에 걸쳐 일본에서 수집한 1,700여점의 우리나라 문화재를 기증하며 개관했다. 박물관 부지가 마땅하지 않아 자신이 살던 집을 헐고, 그 위에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 137평의 박물관을 건립하였다. 경상북도 예천 출신인 정조문은 1925년 부모님과 함께 일본에 건너가 교토에 정착. 30세를 전후해 사업으로 경제적 기반을 닦기 시작했다. 1955년 일본교토의 한 고미술상 앞에서 30cm 정도 크기의 백자호白磁壺를 발견하고 50만엔에 1년 할부로 구입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가 말한 “조선문화재병”에 걸려 돈이 생길 때마다 일본으로 반출된 한국의 문화재를 수집했다. 그의 이러한 정열을 당시 교토대 우에다 마사아끼上田正昭교수는 “일본권력자에 의해 빼앗긴 조국의 미술품을 모으겠다는 결심도 대단하지만 그것을 일본에서 되찾겠다는 집념은 경탄할 만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모은 미술품 한 점 한 점에는 그의 땀과 눈물과 피가 스며 있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미술관의 이름을 통일왕조 고려에 대한 그리움과 분단되어 있는 조국을 아우를 수 있는 의미에서 고려미술관이라 하였다. 정문 앞의 정겨운 석인상의 서 있고, 경내로 들어서면 작은 정원에 한국의 오래된 사찰에서나 보았음직한 고려시대 오층석탑과 석등들이 세워져 있다. 1층의 전시실에는 백자철화어문호白磁鐵畵魚文壺를 비롯하여 권돈인과 김정희가 그린 산수도山水圖 등이 전시되어 있고, 2층으로 올라가면 조선시대의 어느 선비 방을 재현한 공간이나 화각삼층장, 나전칠기장생문반 등의 문화재들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한 벽면에 한국 문화재 관련 도서들이 진열되어 있고 열람과 사진 촬영이 가능해 인상적이었다. 특히 이 미술관은 보여주는 미술관으로 만족하지 않고 계간지 『일본 안의 조선문화』와  연보 『고려미술관연구기요』 등을 발간하고, 1989년에는 고려미술관 부설 연구소를 개소하여 매월 제 3번째 금요일 오후에 연구 강연을 하고 있다. 이런 고려미술관의 노력에 반한 강인구 교수는 2004년 6월 고대사 관련서적 3200권을 기증하였다. 이곳에는 우리민족의 문화를 찾아서 학문적 가치를 부여하고 학술자료로 제공하려는 선진적인 사고를 가진 연구자의 노력이 숨어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가 세월이 흐름에 따라 흐려지는 것이 애석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이 미술관을 찾는 한국인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아니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조금이라도 힘이 될까 하여 2층에 비치된 방명록에 한줄 글을 남기고 미술관을 나오니 고 정조문 이사장의 미술관 개관사가 떠올랐다. “조국의 미술 공예품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모든 장인이 그러한 풍토가 베풀어준 은혜를 담뿍 받아들이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동포인 젊은이들이여, 반드시 알아 두세요. 당신들의 민족은, 하루하루의 생업 그 자체를 문화로 승화 시키는 풍요를 지니고 살아왔습니다. 당신에게도 그 풍요로운 생명력이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이번의 개관에 있어 저는 많은 사람들이 우리 조국의 역사와 문화를 바르게 이해함으로서, 진정한 국제인이 되는 걸음을 걷게 되기를 바라고자 합니다. 조선, 한국의 풍토에서 자란 아름다움은 지금도 더욱 일본에서 사상, 주의를 뛰어넘어 말을 걸어오고 있습니다. 부디 마음을 기울여 그 소리를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는 당부는 점차 우리의 것을 자연스럽게 잃어가는 우리 세대들에게 한 재일교포가 외치는 민족사랑의 울림이라는 생각이 든다.

 

답사후기
2박 3일의 일정으로 일본 속의 한국도자기를 둘러보기는 역부족이다. 일본의 관서에 있는 몇 곳의 도자기 관련 박물관과 미술관을 돌아보면서 우리 조상이 만든 도자기가 먼 타국에 그리 많이 있다는 것이 내겐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리의 도자사가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 있지않고 나의 조국과 민족이 힘이 없을 때 빼앗기고 잃어버린 문화재들이지만, 세계적인 문화재로 인정받고 있음에 안타까우면서도 자부심을 느꼈다.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린 우리의 것들. 그것들은 내게 많은 화두를 남겨 주었다. 답사 내내 나를 따라다녔던 그 물음. 그 물음에 대한 답은 물론 우리 스스로가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문화유산은 우리나라에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루라도 빨리 외부에 있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되찾아 와야 하며 그것을 되찾을 만한 환경적 조건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우리 것을 찾으려고 할 때 비로소 그것이 우리 것이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언급해야 할 것이다. 일본 속의 우리 문화재를, 아니 세계 속의 한국 문화재를…
여행을 마치며 다른 나라의 정신문화유산마저도 그들의 문화로 만들어가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과연 우리의 후손들에게 일본속의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설명할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문화민족의 자손이기를 자처하는 우리이기에…
이번 답사를 계기로 우리 문화재에 대한 목마름은 일본이나 미국, 유럽으로 계속 될 것이다. 우리가 지키지 못한 역사의 흔적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 찾아가 나의 숨결을 불러일으키려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또한 고독하게 일본 속에서 한국을 찾고 있는 고려미술관에는 우리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이 필요한 것 같다. 그리고 일본이라는 지역에 우리의 것을 사랑하고 아끼던 한 분의 삶이 우리 민족에게 던진 한 마디는 우리 모두의 과제이자 의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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