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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정재효
  • 편집부
  • 등록 2005-10-12 14: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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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정재효

철저한 계획하에 이뤄지는 거침없는 작업
호방한 기운의 경남지역 옛도자기 계승한 세련미에 몰두 

정재효(43)씨의 분청자기는 경남지역 도자기의 투박함과 시원스러움을 담고 있다. 이 지방 옛도자기의 미감은 지역작가들에 의한 현대적 해석이 이미 오랫동안 진행돼 왔고, 100여개의 요장이 모여 경기권을 제외한 최대의 도자 밀집지역을 이루고 있다.

화장토의 다양한 표현과 요변에 의한 분청
그의 작품들은 한눈에는 남성적이고 거칠어 보이나, 깊이 바라볼수록 또는  손에 닿는 느낌은 따듯하고 부드럽다. 두툼하고 거친 기면에 흥겨운 어깻짓에서 나왔을 법한 활달한 분장은 때로 어둑하게 흐린 하늘에 날리는 눈보라가 되기도 하고, 햇빛에 반짝이는 잎을 가득 이고 있는 여름나무가 되기도 한다.
또는 섬세한 상감으로 풀꽃을 새겨 넣기도 하고 대나무 가지로 툭툭 산새와 물결무늬, 꽃게문양을 새겨 넣기도 한다. 별다른 색이 들어가지 않아도 붉은 사질 점토와 흰 화장토만으로 이렇게 다양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 분청의 매력이다. 여기에 시유한 유약의 미묘한 조성비율과 장작가마의 요변에 따라 또 그 맛이 달라지니, 한 작가가 평생을 작업한다 해도 무한한 변화를 시도할 수 있을 것이다. 분청작가 정재효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인근인 울산시 삼동면에서 조일요를 운영하며 작업하고 있다.
공예고등학교시절 평생 흙작업 결심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업성향
그가 도자기를 시작하게 된 것은 부산공예고등학교 재학시절부터다. 공예고등학교에서 도자기 수업을 받게 되면서부터 도자기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고교 졸업 후 이천·여주 지역으로 올라왔다. 이곳에서 도자기를 더 배우고 작업하면서 살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 80년대 여주·이천의 분위기는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다. 분업화된 공장으로 정형화된 그릇만 만들어야 했었고, 1년 반정도 여러 곳에서 공장일을 배우다가 다시 부산으로 내려와 진학을 준비했다. 디자인과가 각광받기 시작했던 당시의 상황에 편승해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했다. 시각디자인과에 다니면서 도자기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했다. 공예과로 전과하고 싶었으나 여의치 않아 도예재료학 수업 등의 전공선택과목을 수강하기도 했다.
학교를 마치고 그는 양산의 신정희요에서 가마일을 배웠다. 학교를 마치기 전부터 대학에 진학하기 전부터 틈틈이 그곳에서 가마 일을 도우며 배워왔다.
신정희요에서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작업성향을 배울 수 있었다. 늘 같은 데이터에 의한 태토나 유약의 조합이 아니라 실험과 실패를 거듭하며 색다른 맛을 찾는 방법으로 작업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더라도 그것에 안주하지 않고 더 좋은 것을 위해 다른 방향으로 새로운 실험을 시도한다. 실패 속에서 진보적인 결과물들을 찾아낼 수 있다.
그는 그곳에서 우리 골동품들이 갖고 있는 맛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됐다. 그러나 골동의 모습을 재현하기보다 그 맛을 닮고자 한다.“활달하고 호방한 기분의 분청을 만들고 싶습니다. 재현으로는 낼 수 없는 맛, 모방으로는 작가의 흥을 불어넣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전통의 미감이 그러하듯이 작자의 흥이 들어간 맛을 내고자 합니다.”

잔손질 흔적 없는 호방함
하동지방의 질 좋은 사질점토와 도석 사용
그는 거침없이 빠르게 만들어낸 경쾌한 느낌의 도자기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작업한다. 작업을 하기 전에 깊이 생각하고, 구체적인 디자인을 계획한 후 거침없이 작업하는 편이다. 잔손이 많이 가게 될 때의 잔잔한 느낌은 그의 투박한 분청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시원스럽게 뽑아낸 물레선이 갖는 경쾌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위해 고심합니다.” 분장시에도 손가락에 화장토를 묻혀 귀얄처럼 휙 바르기도 하고, 손가락 끝에 고인 화장토를 턱턱 처대기도 한다. 덤벙분장위의 조화문을 대나무 가지로 그려 넣은 작품에서는 섬세함보다 툭툭한 경상도 남성의 성격이 엿보인다. 
분청흙과 옹기토 등의 흙에 인근지역의 흙을 섞어 쓴다. 하동지방의 질좋은 사질점토들과 핑크-C라고 불리는 도석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이 지역 작가들의 특혜이기도 하다. 인근지역의 흙을 사용하고 인근지역 출신으로 지역인들의 감성과 잘 맞아떨어지는 작업덕분인지 찾아주는 이도 많다. “일본문화의 유입이 서울쪽보다 빠른편이어서 그런지 이쪽 지역에는 차인구도 많습니다. 차인들을 통해 다도구를 더 잘 알게되고, 점점 좋아지는 다구들은 한번 인연을 맺은 손님과 관계를 꾸준하게 이어줍니다.” 잎차다기는 물론이고 하동 김해 웅천 등의 사발 도요지를 갖고 있는 지역으로 역사적인 기반과 그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때문에 도예가들이 생활하기에 괜찮은 지역이라고 한다.

<옛그릇 연구회> 통해 얻은 영감
지역인들에게 인정받는 찻그릇과 작품들
인근지역의 차인들 중에는 골동도자기를 수집하는 이들도 몇몇있다. 이들과 <옛그릇 연구회>라는 소모임을 갖고 함께 감상하고 도요지를 답사하며 우리 옛그릇을 연구한다. 이들 중 국보급 다완을 소장한 사람들이 있어, 옛 도자기들을 보는 것은 물론이고 직접 만져보며 샅샅이 살펴볼 수도 있다. “운이 좋은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재현작을 만들지는 않지만 좋은 그릇을 보고 좋은걸 느끼며 많은 영감을 갖게 됩니다.”
정호다완처럼 크게 알려지지 않은 우리 그릇들 중에도 못지않게 훌륭한 것들이 많고, 거기에서 때때로 현대적인 세련미가 느껴지기도 한다.
“장작가마가 어려운 이유는 장작가마의 맛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장작가마로도 가스가마처럼 말끔하게 불때는 것은 오히려 쉬운 일이지만, 가마 안에서 불이 적당히 머물고, 적당히 애를 태우면서 타올라야 장작가마다운 요변이 생깁니다.” 가마를 지을 때 의도적으로 이런 부분들을 예상해서 짓는다.
도예가라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마음에 드는 도자기가 늘 나오는 것은 아니니까, 새로운걸 만들고 싶어 발버둥치게 된다. “늘 제자리인 것같아 상심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나 멀리 돌아봤을 때면 좋은 작품 뒤에는 그런 고심했던 날들이 있었음을 상기하게 됩니다. 마음에 안들었던 부분들이 그전보다 조금 나아졌고, 다시 고심후 또 조금 나아졌다는 데에서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도예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함

그는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차선의 길을 만들어 놓으면 안된다고 말한다. 작업을 배우기 위해 그를 찾는 후배들에게도 ‘성실함’을 가장 강조한다. 도자기가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으로 매진해야 한다. 자신이 가야할 길이라고 정했다면 꾸준히 그리고 능동적으로 배워야 한다. 전화로 묻는 것보다는 찾아가서 보고 묻는 것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자세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리고 그렇게 성실히 배우고 정열을 쏟으면 성과도 있기 마련이다.

그는 지난해 11월에 부산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다. 30여년에 이르는 작업경력에 비하면 의외의 전시경력이지만, 찻그릇이나 전통미감을 주제로한 굵직한 기획전시에 단골로 초대되는 작가이기도 하다. 몇 해전(2003) 서울에서 김상만씨와의 2인전 외에는 특별히 서울 전시를 선호하는 것 같지 않다. 그는 현재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좋은 재료로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되고, 자신의 그릇을 찾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고교시절부터 꿈꿨던 소망을 이룬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지금보다 더 나은 도자기를 만드는 미래의 자신을 꿈꾸고 있다. 

서희영 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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