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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 도예전 - 천진함으로 빚은 기와집
  • 편집부
  • 등록 2006-01-24 17: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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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호 도예전
2005.9.28 - 2005.10.4 경인미술관

 

천진함으로 빚은
기와집

 

글 이현주 _ 목사

 

수년 만에 도예가 김문호를 만났다. 관상전문가는 아니지만 안색을 살펴보니, 반짝거리는 눈빛은 여전한데 얼굴전체가 많이 착해졌다. 부드러워졌다는 뜻이다. 세상에 이름이 좀 알려지면 스스로 망가지는 아까운 사람들이 꽤 있던데 이 사람은 아직 그런 낌새를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도 뭔가 세상에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은 여전해 보인다.
예술가가 수레라면 의욕은 말馬이다. 그의 말이 이처럼 건강해보이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러나 말은 주인의 다스림 아래 있어야 한다. 의욕을 부리되 의욕한테 부림당하지는 않는, 여기에 묘미가 있다. 그의 샘솟는 의욕이 본인과 세상을 좀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쪽으로 잘 다스려지기를 빌면서 작업실에 늘어선 기와집들을 구경한다.
집마다 문이 있는데 열고 닫을 수가 없다. 그러니 문이라기보다 차라리 구멍이다. 기와집보다 구멍들이 먼저 보인다. 도공은 혹시 저 구멍을 보여주려고 기와집을 빚은 건 아닐까? 그래도 상관없고 아니어도 상관없다. 아무튼 내 눈에는 집보다 집에 난 구멍이 더 커보인다. 뭐 이런 식으로 제멋대로 봐도 괜찮다는 전제 아래 여기 이렇게 진열돼 있는 물건들 아닌가? 보는 눈들이 다른 만큼 다른 모양 다른 의미로 존재하는데 진짜 예술품의 생명이 있는 것이니까.
작가에게 먼저 밑그림을 그리고 흙을 만지느냐고 물어봤다. 아니란다. 밑그림 없이 흙을 빚어 상판을 만들고 나서 그것들과 상의하며, 말하자면 빚어지는 대로 빚는단다. 밑그림을 그려보았지만 그대로 된적이 한번도 없으며 오히려 본인의 의도에서 엉뚱하게 벗어난 형상이 빚어질 때 맛과 생기가 느껴진단다. 그렇다면 한 번 더 속으로 안심이다. 이제 이 도공은 형상을 빚어내는 게 자기 혼자만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러니 이 사람 앞에는 문 활짝 열고 아래로 바닥으로 흐르는 길만 남았다. 그래서 마침내 바다에 이르면 도예가 아무개라는 이름 훌훌 벗고 그냥 사람 아무개로 살아가겠지, 얼마나 근사한 축복인가? 예술가든 정치가든 농부든 학자든 그 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앞에 아무 수식도 붙지 않는 순수 인간이 되는 거기에 인생의 보람과 목적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한 도공에게 흙을 다듬어 그릇을 빚는 일이 사람으로 되게 하는 길이 아니라면 그일로 해서 높은 명예를 얻고 산 같은 재물을 쌓았다 한들 그게 다 무슨 허망이랴?
이것들은 분명 도예가 김문호의 작품이지만 그가 혼자서 만들어낸 것들은 결코 아니다. 흙이 없다면 물이 없고 불이 없고 공간이 없다면 무슨 수로 도공의 솜씨가 빛날 수 있겠는가?
25년이 넘도록 흙을 다듬고 그릇을 빚으면서 여기에도 길이 있고 그 길을 벗어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 ‘순리의 법도’를 이제 조금 눈치 채게 되었다는 도공의 말 한마디는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몰래 안심토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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