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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스 원로 초대석 - 이응상 공학박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 편집부
  • 등록 2006-03-22 15:12:00
  • 수정 2010-01-09 11: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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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믹스 원로 초대석
이응상 공학박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국내 처음 도자기 소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
“대학에서 도자기·유리와 같은 전통세라믹 과목들이 학생이 없어서 폐강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한양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에서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세라미스트를 양성해 온 이응상 박사는 국내 처음으로 도자기 소지를 체계적으로 연구한 학자로서 현재 전통세라믹 산업이 위축되고 연구개발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한다. 그러면서도 이 박사는 “산업의 형태가 전통세라믹산업중심에서 전자산업 중심으로 바뀌었으니 교과과정도 바뀔 수 밖에 없는 것 아니겠는가”라며 “전통세라믹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가 마련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나타낸다.
이응상 박사의 세라믹 입문은 한양대 화공과 3학년이던 58년 당시 화공과 교수였던 안동혁 박사의 권유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시 진로와 전공선택에 대해 안동혁 박사에게 문의를 드렸습니다. 그때 안 박사님은 우리나라에는 요업원료가 많으니 요업밖에는 할 것이 없다고 하셨고 저는 그 말씀에 따라 세라믹을 전공하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는 국가 기간산업으로서 요업이 매우 중요하게 여겨져 각 대학에 관련 학과가 생기기 시작했고 정부의 지원도 활발한 편이었다고 한다.
화공과를 졸업한 후 이 박사는 당시 이종근 박사가 있던 공업연구소에서 연수생활을 마치고 한양대 화공과 대학원에서 세라믹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다. “대학원을 다니면서 조교를 했는데 그때부터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이 후 한양대가 일본 와세다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으면서 68년부터 파견연구를 시작했고 69년에는 동경공대 무기재질연구소에서 외국인 연구생으로 연구를 했습니다”

한양대 등에서 세라미스트 양성에 전력, 일주일에 35시간 강의하기도
이응상 박사는 3년간 연구생으로서 연구한 결과를 종합한 ‘Kaolin-석영-장석계 자기소지의 소결과정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 73년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SEM, 편광현미경 등을 사용하여 체계적으로 도자기 소지에 대한 연구를 수행한 것은 아마 국내에서는 처음이었을 것”이라고 이 박사는 자부했다. 한양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로 돌아온 이응상 박사는 이 때부터 도자기 관련 강의를 본격화했다. “주로 도자기와 원료, 소결재료 등에 대한 강의를 했습니다. 한양대 뿐 아니라 경희대, 홍익대, 이화여대 대학원, 연세대 등으로도 강의를 나갔고 많을 때는 일주일에 35시간을 강의한 적도 있습니다. 고등학교 선생님보다 강의시간이 더 많았던 것이죠. 60~70년대는 선생님이 절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전력을 기울여 강의를 했던 시절이었습니다”라고 이 박사는 회상했다.
이응상 박사는 당시 한양대 요업과에 연구기자재를 도입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지금은 성능이 우수한 고가의 장비와 분석기기를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충분히 갖추고 있지만 당시 국내에는 관련 장비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일본으로부터 차관이 들어오면서 한양대 요업과에 6만불이 배정되었습니다. 큰 금액이었지요. 그때 들어온 기자재가 x-ray, 주사 전자현미경, FACOM 전자계산기, 편광현미경, 실리코니트 전기로 등입니다”
이 같은 연구기자재의 도입으로 다양한 연구와 함께 학생들의 실험 실습 교육이 가능해졌다. 이에 대해 이 박사는 “기기의 도입전에는 전기로 발열체가 니크롬선이어서 1000도 이상 올릴 수가 없었고 그에 따라 고온열처리 실험이 어려웠습니다. 실리코니트 로와 가스로가 들어오면서 비로소 고온소성 실험이 가능해졌던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한양대내 도자기 공장 운영… 학생들에게 현장실습 기회 마련
학생들을 정열적으로 가르치는 한편으로 이응상 박사는 도자기 전공자로서 당시 한양대내 도자기 공장의 운영을 맡기도 했다. “80년대 말까지 이 공장을 맡았는데 참 힘들었습니다. 지금의 도자기 공장들과는 달리 자체적으로 소지, 유약을 다 만들어야했기 때문입니다. 청자, 백자 등을 만들어 학교 선물용으로 주로 공급했는데 유명 호텔의 한정식용으로 제품을 공급한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만들었던 도자기가 지금도 어딘가에 있을 것입니다.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또 많은 경험이 되기도 했습니다. 공정별로 설비를 모두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 대한 감각을 익힐 수 있었고 학생들에게도 현장 실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같은 현장 실습을 했던 학생들은 이후 실제 세라믹 현장에서 국내 세라믹 산업 발전을 위한 많은 역할들을 수행하게 되었다.  
도자기 현장에 대한 감각을 갖고 있던 이 박사는 당시 요업공장들의 애로기술에 대한 지도를 수행하기도 했으며 한 옹기공장과는 공동으로 무연 유약을 개발하기도 했다. “공업화의 초기 단계에 업체들에 대한 기술지도 등의 봉사를 한 것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라고 이응상 박사는 말한다.
97년 정년퇴임까지 이응상 박사는 약 110여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11명의 박사와 50여명의 석사를 배출했다. 정년퇴임 후에도 3년간 대학원 강의를 하는 등 정력적인 활동을 한 이응상 박사에게도 아쉬움은 있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더 잘했으면 했다”는 것이다.
이응상 박사가 37년간 재직했던 한양대와 함께, 많은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곳은 ‘세라믹학회’이다. 72년부터 학회 간사를 시작하여 92년 93년 학회장을 맡기까지 학회 발전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이응상 박사는 방배동에 위치한 학회 사무실을 마련할 때도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전통세라믹 발전 위해 정책적인 배려 있어야…
이처럼 오랜 시간을 세라믹 연구와 세라미스트 양성, 세라믹학회 활동에 바쳐온 이응상 박사는 후학들에게 “뉴세라믹 뿐 아니라 전통세라믹에도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라는 말을 전하고 있다. 이 박사는 “전통세라믹을 등한시 하고 있는 것이 학생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전통세라믹 업체들이 현상유지에만 만족하지 말고 변하려고 하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정책적으로 전통세라믹 분야에 연구비를 책정해주고 학생이 사회에 진출할 때 나름대로의 대우를 받도록 국가에서 정책적 배려를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학생과 교수들이 전통세라믹에 관심을 갖지 않겠습니까”라는 전통세라믹 발전 방안에 대한 고견을 내놓으며, 전통세라믹과 후학들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번 나타내고 있다.
박미선 기자 

 

이응상 박사 약력
1960년 한양대 화학공학과 졸업
1963년 한양대 화학공학과 공학석사
1973년 일본 동경공업대학 무기재료 공학박사
1960년 국립공업연구소 연구생
1961년~1965년 한양대학교 조교
1965년~1997년 한양대학교 교수
1967년~1968년 이화여자대학교 강사
1968년~1969년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원
1969년~1972년 일본 동경공업대학 연구생
1973년~1997년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강사
1973년~1975년 연세대학교 강사
1977년 일본 과학기술성 무기재질연구소 연구원
1985년 동경공업대학 공업재료연구소 객원연구원
1990년 동경공업대학 공업재료연구소 객원연구원
1990년~1993년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부학장
1992년~1993년 한국요업학회 회장
1995년~1997년 한양대학교 산업대학원 원장
1997년~현재 한양대학교 명예교수
1965년 상공부 표준공업규격 심의위원
1981년 상공부 정책자문위원
1989년 ISO공업표준규격 심의위원
1989년 국방부 군수품 규격 심의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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