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라믹 없이는 소재정책 불가능, 통합논의도 세라믹이 주도해야
지난 5월 독립기관으로 새롭게 출범한 한국세라믹기술원의 미래가 다시 안개 속에 휩싸였다. 지난달 15일 서울 르네상스호텔에서 개최된 부품소재기술상 10주년 기념 ‘소재산업 발전을 위한 세미나’에서 소재전문 연구기관의 통합방안이 공개적으로 거론됐기 때문이다.
장은공익재단이 주최하고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주관한 이번 세미나에서는 일본소재산업 현황 및 시사점과 국내 소재산업현황과 발전방안이라는 2개의 세션으로 진행. 부품소재산업 정책의 소재부품산업 정책으로의 전환에 따른 심도있는 주제발표와 종합토론이 진행됐다. 하지만 이날 행사장은 지식경제부 정재훈 주력산업정책관의 축사와 함께 술렁이기 시작했다. 정 정책관은 “세계 4대 소재강국 진입을 위한 발전전략을 9월까지 수립할 예정으로 소재별 전략기술지도와 자원확보방안, 소재통합연구기관 등 인프라구축, 수요기업과의 연계강화 방안 등이 담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출범 3개월만에 통합논의, 한국세라믹기술원은 왜 몰랐나?
지경부의 공식적인 부인속에 올 초부터 다양한 미확인 루머들이 떠돌았지만 한국세라믹기술원이 독립법인으로 새출범하고, 또 임채민 차관이 참석한 가운데 첨단세라믹산업 발전전략이 발표되면서 이같은 소문들은 낭설로 굳어지는 듯 했다.
하지만 한국세라믹기술원이 정식 출범한지 채 석달도 지나기 전 연구기관 통합건이 주력산업정책관의 입을 통해 공론화 된 것이다. 더욱이 신성장동력산업의 핵심소재인 첨단세라믹산업발전전략의 세부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세라믹기술원은 이같은 내용을 전혀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했던 세라믹계 인사들의 당황스런 표정에서도 이같은 사실은 여실히 드러났다. 반면 이날 세미나에서 ‘국내 소재산업의 현황 및 발전방안’을 발표했던 재료연구소 조경목 소장은 일본물질재료연구기구(NIMS)와 한국 재료연구소(KIMS)와의 연구비(1,900억 VS 514억)와 연구인력차(1,683명 VS 358명)를 거론하며 “선진국의 거대한 연구개발 및 인력과 경쟁하기 위한 바람직한 공공연구기관 체제를 모색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즉, 일본 NIMS와의 단순 비교에서 화학연구원이나 세라믹기술원은 배재한 채 재료연구소만 거론한 것은 차재하고 재료연구소가 타 소재기관을 흡수통합 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될 수 있는 대목이다.
숨어서 추진하는 의도를 정책은 의심해봐야
복수의 소식통에 따르면 지난해에 이어 이번 통합건 역시 재료연구소의 몇몇 핵심인물 주도로 소리 없이 추진되어 왔다는 것. 부품소재정책에서 소재부품정책으로의 의미있는 전환에도 불구하고 특정기관의 주도로 진행중인 연구기관 통합 건으로 인해 국가발전의 핵심정책이 빛을 잃는 다는 것은 참으로 불행한 일. 이날 세미나에서는 ‘위험성이 큰 소재분야 연구자들의 노후보장을 위한 제도적 연구’와 ‘프레스가공기술, 열처리기술, 절삭기술, 성형기술 등의 소형재산업의 발전방안’ 등 소재산업의 발전을 위한 의미있는 논의들이 다양하게 개진됐다. 그러나 이날 이후 행사관련 화제는 줄곧 소재연구기관 통합건으로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의미있는 소재관련 정책들 통합논의에 묻혀
소재산업의 발전을 위해 세라믹, 금속, 고분자 3대 소재분야가 힘을 모아도 아쉬운 상황에서 소리 소문없이 특정기관의 입맛에 맞게 통합안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 세라믹계는 뒷통수를 맞은 듯한 충격에 빠져있다. 특히 독립기관 출범과 첨단세라믹발전전략이 발표 된지 불과 석달 만에 이같은 소식을 접한 세라믹계는 조직적인 반대 움직임마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을 만큼 이번 발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렇다면 세라믹계는 소재연구기관 통합에 무조건 반대해야 하는 것일까? 상황은 그리 단순하게 흘러가고 있지는 않다. 우선 화학연구원도 이번 통합안에 조건부 동의했으며 ‘한국물질재료연구소’라는 기관 명칭까지 정해졌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더욱이 소재산업 육성을 위한 정부의 의지만큼 통합연구기관에 대한 혜택도 클 것이라는 소문. 들리는 바에 따르면 리스크가 크고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한 만큼 PBS제도가 아닌 연구비 전액을 보장하고 소재관련 연구는 통합기관만 전담하도록 한다는 내용들이 주된 골격이다. 과제를 따기 위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 연구자들로서는 솔깃할 수밖에 없는 문제. 하지만 세라믹계 여론은 부정적인 기류가 대세다. 그동안 세라믹계 여론수렴 없이 타 분야의 일방적인 흡수통합추진 사례들이 있어왔고, 이번 역시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 초 불미스러운 사건의 분위기 쇄신용으로 이번 통합안을 주도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고 있는 상황에서 그 진정성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하지만 이번 통합방안에 대해 무조건 반대만 하는 것은 세라믹산업은 물론 대한민국 소재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국가경쟁력 차원에서 통합논의 반대만 할 수는
첨단소재의 핵심주체인 세라믹계 만큼은 집단의 이해득실이 아닌 국가경쟁력의 대승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는 것. 추진과정의 진정성을 의심한다고 하더라도 정부의 소재산업 육성의지를 확인한 만큼 대한민국의 소재전문연구기관이 절름발이 형태로 출범하도록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정성 없는 통합논의에 무조건 찬성할 수만도 없는 일. 그동안 세라믹계가 소재연구기관의 통합을 반대해왔던 근본적인 이유는 규모의 논리에 밀려 세라믹이 흡수통합 될 것이라는 우려와 세라믹기술원이 수행하고 있는 산업지원 기능에 대한 대안 부재 때문. 다행히 첨단세라믹산업 발전전략의 수립과 공표로 인해 단순히 세라믹을 흡수통합하려는 시도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단 세라믹기술원의 산업지원기능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는 문제. 대기업 위주의 금속, 고분자소재산업은 재료연구소, 화학연구원이 아니더라도 산업지원 인프라가 충분히 구축되어 있다. 하지만 세라믹산업은 한국세라믹기술원의 역할이 절대적인 상황. 지난 5월 발표된 첨단세라믹산업 발전전략의 세부전략을 수립하고 있는 한국세라믹기술원은 세라믹산업 육성의 중추기관으로서 R&D 기능 외에 산업지원, 전략수립 등의 기능을 대폭 강화해야만 하는 시대적 요구에 직면해 있다. 즉 금속, 고분자산업과 현격한 산업 인프라를 보유한 세라믹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통합안은 그야말로 아랫돌을 빼어 윗돌을 고이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상황인 것. 때문에 장기적인 선행연구를 위한 소재전문연구기관의 통합을 위해서는 이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책 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안은 없나?
우선 소재전문 연구기관 통합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추진세력에 대한 진정성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무리하게 통합을 추진하는 것 보다는 큰 틀의 통합안을 마련한 후 충분한 여론수렴을 통해 유기적인 결합을 이루어 가는 것이 소재분야의 특성상 바람직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소재연구기관간의 현격한 격차를 해소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세라믹기술원은 화학연구원이나 재료연구소에 비해 예산, 인력이 현저히 부족해 이에 대한 확대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따라서 이번 기회에 세라믹기술원의 조직을 대폭 강화해 흡수통합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만 진정한 통합안도 도출될 수 있을 것이다. 세라믹없는 소재정책을 국회나 국과위가 추인하는 것은 애시 당초 불가능한 만큼 정부가 소재분야를 육성하고자 하는 의지가 분명하다면 그 첫걸음은 가장 취약한 세라믹기술원의 기능 확대에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소재정책은 곧 세라믹정책, 통합논의 세라믹이 주도해야
또한 한국세라믹기술원을 소재정책의 핵심지원기관으로 활용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신성장동력 분야 총 17개 산업 중 12개 산업의 핵심소재가 세라믹임에도 3대소재 산업 중 가장 취약한 분야역시 세라믹소재. 결국 대한민국의 신성장동력을 육성하기 위한 소재정책 역시 세라믹을 중심으로 수립될 수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부품소재정책의 핵심지원기관이었던 부품소재진흥원이 해체된 상황에서 지식경제부의 소재정책이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이제는 한국세라믹기술원이 그 빈자리를 채워야만 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세라믹기술원을 소재전문 시험분석 및 창업지원, 정책지원 등 소재통합연구기관의 대 민간 창구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할 가치가 충분하다. 수도권 소재기업의 시험분석과 창업지원에 대한 수요는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대안은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광석 기자 dora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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