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쿠의 재조명
라쿠의 활용과 미
글/사진 이재은 대구예술대학교 장식예술디자인학과 교수
16세기말 일본 교토에서 발견된 라쿠는 다도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태생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와비-물질적 풍요에서 오는 한적하고 일탈의 경지를 희구한 끝에 도달하게 된 일본 중세적 미의식-로 알려진 중세 일본의 미의식을 다도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새로운 차 미학의 등장과 함께 그것을 담아내려는 매개체로서의 새로운 다완이 요구됐다. 이러한 요구는 조선시대의 소박하고, 거칠고, 겸손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막사발을 통하여 와비 차 미학을 완성하고자 했던 차명인 센-노-히큐에 의해 계획됐다. 그 자신과 도공 쵸지로와의 협동작업을 통하여 라쿠다완을 만들게 된 것이 라쿠 도자기 탄생의 배경인 것이다.
이 시대 라쿠 도자기의 특징으로는 가마들은 작고, 나무나 숯으로 소성 하였으며, 물레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만들었으며, 단순하고 자연스러운 형태를 만들기 위해 상당히 두꺼운 흙가닥으로 쌓아 올린 것이다. 또한 내부와 외부 굽을 다듬기 위해 금속성 도구들을 사용하여 깎아내는 방법을 이용하고, 급열과 급냉 방법을 이용하여 뜨거운 가마에서 각각의 기물을 꺼내 유약의 색상을 고착시키는 소성방법을 사용하였다.
16세기말 일본에서 시작하여 현대에 이르는 약 400년동안 이어져온 라쿠는 20세기초 일본에서 라쿠소성에 대하여 경험하였던 영국인 버나드 리치의 「도예인의 책」을 통해 서구세계에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라쿠라는 새로운 형식의 도자소성기법을 알게 된 여러 도예가들 중 미국의 도예가 폴 솔드너는 전통적인 라쿠소성기법과는 다른 새로운 접근방식에 의한 현대라쿠소성기법 즉, 후소성환원이라는 독창적인 기법을 재창조하였다. 이 새로운 기법은 전통적인 라쿠소성의 급냉방식에서 큰 차이를 보여주는데, 전통라쿠의 그것과는 달리 급냉후 가연성있는 물질 -톱밥, 나뭇잎, 신문지, 고무 등등- 과의 접촉을 통하여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색상을 얻어냄으로써 단조로울 수 있는 저화도 소성을 흥분과 설레임의 소성으로 바꾸어 놓았다.
1960년대에 시작된 폴 솔드너의 이와 같은 후소성환원 기법은 표현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현대의 도예가 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물론 도예 표현 영역의 확장이라는 개념으로 규정지어 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 라쿠라는 용어가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외국에서 라쿠를 경험하고 돌아온 도예가 들에 의해서 처음 소개된 이후 90년대를 기점으로 하는 우리나라 도예 워크숍행사의 양적인 증가와 더불어 많은 워크숍 및 세미나에서 라쿠소성기법을 보여줌으로써 일반인 및 도예가 들에게 새로운 소성기법의 하나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그러나 결코 짧지만은 않은 국내 라쿠역사에 비추어 볼 때 라쿠소성기법의 활용은 아직 활발히 진행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라쿠의 재료 및 기술상의 어려움 때문에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큰 요인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동안의 많은 위크숍을 통하여 라쿠소성기법이 소개되기는 했어도 1년에 한두번 정도인 행사에서의 정보습득은 라쿠가마의 제작, 재료의 활용, 그리고 소성후 과정에서의 기술적인 문제들과 같은 복잡한 과정을 이해하기에는 큰 어려움이 있다. 특히 재료적인 측면에서 볼 때 현재 제시되고 있는 유약 조합의 대부분이 외국에서 생산되고 명명되어진 재료가 주종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재료에 대한 전문적 지식 없이는 재료자체의 성질을 파악하는 것도 힘든 실정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낯설고 힘든 부분들의 실질적인 대치방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라쿠는 대중들의 외면 속에 외톨이로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개인적인 흥미 또는 소성기법의 성격이 자신의 작품방향과 맞지 않는 경우일 수도 있겠으나, 오랜 고화도 소성 자기문화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우리의 도자문화정서상 저화도 소성인 라쿠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라쿠는 소성의 특성상 급열과 급냉에 의한 열 충격으로 강도가 약하여, 유약은 전체적으로 균열되기 때문에 식기로는 사용될 수 없어서 실용적이지 못하고 장식적 성향이 강하다. 실용성을 전제로 하는 도자기의 제작에는 형태적·기법적 제한이 요구되고 있는 반면, 실용적 기능이 배제된 장식적 기능의 도자표현 범위는 점토가 지니는 물성의 한계를 제외한 모든 표현방법에 있어서 자유롭다.
이것은 곧 점토의 선택에서부터 소성의 방법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서의 자유로움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온소성이냐 저온소성이냐에 대해 어떠한 편견을 갖는 것은 잘못된 시각일 것이다. 단지 그것이 어떠한 방법으로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였는지가 더 우선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50여년의 라쿠소성기법의 역사를 갖고 있는 서구의 라쿠도자기들은 그 표현의 방법이나 형태에 있어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다수의 라쿠 작품들을 소성의 특성상 용기를 기본으로 하는 크기가 작은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으나, 작가 자신의 기술적인 노하우에 따라 규모가 큰 도자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실내·외를 포함하는 도벽작품들에 이르기까지 라쿠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색상으로 장식되어 자신들만의 작품세계를 표출하고 있다.
이와 같이 전통적인 다완으로서의 용기에서 시작되어 현대의 미학적인 관점으로 재해석되어진 라쿠도자기의 의미는 시대적 상호보완관계에 의해 전개되어 왔던 일반 도자기의 발전과 같은 맥락으로 새로운 도자미학의 의미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약력
경희대학교 도예학과 및 동대학원 졸업
미국 롱아일랜드 대학원 도예전공 졸업
개인전 2회 및 그룹·초대전 90여회 출품
국제도예대전 운영·심사·초대작가
목포국제도예공모전 초대작가
익산 한국공예대전 심사위원 역임
현, 대구예술대학교 장식도자디자인학과 조교수
1 ‘라쿠 도벽’ Lena Andersson 作
2 ‘라쿠찻잔’ Left : 라쿠가문의 9대 료뉴 作 Right : 다카하시 도하치 作
3 ‘Italic Teapot’ James Lawton 作
4 ‘Raku Vessel’ Rick Foris 作
5 ‘Les Africanes’ Daphne Corregan 作
6 ‘Terrace’ Andrew Osborne 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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