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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 서병찬_무위자연 무유번조 자연유
  • 편집부
  • 등록 2021-07-27 17:42:02
  • 수정 2021-09-02 09: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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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유약,  세라믹의 옷②


도예가 서병찬

무위자연 무유번조 자연유

 

예술은 게으른 탐미주의자의 유유자적 신선놀음이 아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작가의 피땀 눈물까지도 로맨틱한 예술의 당연한 요소로 미화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상은 분열에 가까운 번뇌와 중노동을 요하는 극한직업이다. 하나의 영감이 작품으로 완성되기까지, 시각적 결과물은 발상을 기점으로 다듬어지고…다듬어진다.

글_서희영 객원기자 사진_이은 스튜디오

불은 장작을 태우고 나무장작의 소멸은 재를 남긴다. 이 고운 재는 불에 타지 못하지만 높은 열을 만나면 뿌연 재가 아닌 빛나는 유약이 된다. 나무는 죽어서 흙이 되지만, 장작가마안의 나무는 도자기를 단단하게 하고, 도자표면에 옷을 입힌다. 서병찬 작가는 유약을 시유하지 않고 자연유를 입히는 무유장작가마 작업을 한다. 그는 산새가 깊어 더 아름다운 경북 영천, 농가가 대부분이 이 시골마을 깊숙한 골짜기에 통가마를 짓고 작업하고 있다. 언제고 무더위가 시작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계절, 짙어 가는 푸른 산에 둘러쌓은 그의 작업장 마당엔 내부가 반질반질하게 광이나는 통가마와 새로 지은 작은 가마가 있다. 혼자 작업을 하면서 좀 더 다양하게 자주 소성을 하고 싶어서 작은 가마를 새로 지었다고 한다. 큰 가마를 채울 기물을 만드는 일도, 서른 시간을 넘게 불을 때는 일도, 큰 가마에 들어가는 장작 비용도 혼자 하는 작업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지금보다 자주 불을 때면서 자연유를 다양하게 시도하기 위해 가마 사이즈도 줄이고 가스를 겸해서 사용하는 가마를 지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자연유를 입히기 위해서는 장작가마가 필수지만, 처음 불을 올리는 과정에 가스불로 효율을 더하는 방법을 테스트해보고 새로운 가마를 지었다.

흙 물 불 바람 그리고 사랑 이 다섯 가지 원소는 영화 제5원소에서는 세상을 구했지만, 도예가에게는 도자의 기본재료가 된다. 흙 물 불 바람과 사랑혹은 sprit은 지구상에 인류뿐 아니라 무수한 생명을 만들고 그 생명은 다른 생명의 일부가 되며 유기적으로 지속된다. 서병찬 작가는 형상을 바꾸지만 사라지지 않는 자연의 순환에 깊은 영감을 받아 그의 작업 모토로 삼았다. 그는 이 정신적 영감을 시각화하기 위한 첫 번째 재료로 흙을 선택했다. 우리는 몇백 년을 한자리에서 살아온 크고 오래된 나무를 대할 때면 누구나 경외감을 갖는다. 하지만 발아래 채이는 흙에 담긴 영겁의 시간은 쉽게 떠올리지는 못하곤 한다. 흙에 담긴 지구상의 생명 역사를 우리는 감히 알 수 없어 더욱더 존중이 필요하다.

 

본질적인 의미전달을 위한 작품


도자는 여러 제작단계를 거치면서 각각의 단계마다 활용할 수 있는 기법과 요소들이 다양하다. 때로는 이런 다양성에 치기어린 열정이 더해지면 정체성을 잃은 과한 작업물이 나오기도 한다. 서병찬 작가의 대학원 시절이 그랬나 보다. 대학원 재학시절 작품 품평회때에 지도교수였던 자넷 드부스Janet Deboos 교수의 말이 그의 작업방향에 전환점이 되었다.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과하면 작품이 산만하고 노력에 비해 그 효과가 반감된다. 더하기가 아닌 빼기를 더 연구해 봐야 할 것 같다”라는 가르침을 그는 지금도 생생하게 떠올린다. 서병찬 작가는 한국에서 공예과 재학시절 나무, 섬유, 금속과 함께 도자공예를 접했다. 대학졸업 무렵, 점토의 가변적 특성과 도자 제작과정에서 화학적 물리적으로 변화되는 특성들을 더 알고 싶어 유학을 결정했다. 그렇게 한국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디딘 첫발은 호주국립대학교Australian National University로의 유학이었고, 그곳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호주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는 동안 배움을 준 여러 교수, 작가들과의 교류 중에 무유장작가마를 접하게 되었다.

빼기와 본질에 대한 사유는 그가 시각적 영감보다는 정신적 영감에 관심을 갖는 것으로 이어졌다. 지구상에 수많은 생명들, 식물이나 동물, 더 나아가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지구상에서 생겨난 것들은 다시 지구의 일부로 돌아간다. 원시부터 인간은 이러한 순환의 고리 중 일부였고 많은 동양의 도가道家를 비롯해 많은 종교와 수양이 이 대자연에 순응을 말한다. 서병찬 작가는 대학원 졸업당시 이런 정신적 영감을 주제로 논문을 쓰고, 전시를 열었다. 남미의 마야, 잉카, 아즈텍 문명과 북아메리카대륙의 인디안과 에스키모라 불리던 이누잇, 고대이집트, 호주 원주민들에 종교와 예술에 나타난 사상과 표현법이 현재까지 작업하는데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는 “점토 자체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며, 그의 작품은 삶의 주기적인 시작과 소멸 그리고 흙 물 불과 같은 요소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한다고 전한다.

“우리는 무언가를 처음 시작할 때 그 미래가 어떻게 될지 결코 알 수 없다. 깨지고 찢어지고 배우고 성장하는 과정이 삶이다. 내 작업과정은 흙과 내가 소통하고 흙이 그 내재된 능력의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하는 단계일 뿐 어떤 결과가 될지 알수 없어 미성숙하고 미래가 불확실하다.”


장작가마와 자연유


서병찬 작가는 유학시절 자연유 번조를 처음 접하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청자와 백자의 발전으로 한국에서는 확장되지 못한 무유번조는 1500년 전 한국에서 시작된 기법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호주에서 이를 탐구하고 다양하게 이용하는 작가들을 만나면서 작가자신도 무유장작가마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십수 년간 무유번조기법에 대한 연구를 지속하다 보니 2018년 프랑스에서 열린 유럽 장작가마 컨퍼런스에 초대되어 ‘한국의 자연유 번조’에 관한 발표를 하기도 했다. 이때의 발표를 참관한 콜 미노그Coll Minoque, The log book 공동발행인의 요청으로 아일랜드의 장작가마 번조 계간지인 『The Log Book』 76호에 그의 작업에 관한 이야기가 실려 유럽에서도 장작가마작가로 이름을 알렸다.

한국에서 이어져 온 전통 장작가마기법과 달리 무유소성은 열린기법이다. 방법이 자유로운 만큼 연구해야 할 부분도 많다. 전통도예가마가 소나무를 주로 사용하고 철분이 많은 소나무 피죽을 벗겨 사용하는 반면, 서병찬 작가는 의도치 않은 색변화를 볼 수 있어 피죽을 그대로 사용하기도 하고, 나무도 구할 수만 있다면 종류를 가리지 않는다. 어떤 나무가 더 좋다가 아니라 각각의 특성이 있고 활용하기 나름이다. 기본적으로 나무재가 내려앉고 녹아 유약이 되는 무유소성에 소금이나 소다를 활용하기도 해 특유의 색을 내기도 하고, 최근엔 탄소를 가둬carbone trick 검푸른 빛을 내는 기법을 시도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서병찬 작가는 “장작가마 자연유 작업뿐 아니라 가스가마, 유약번조 작업도 합니다. 가마는 표현 도구일 뿐 작품을 만드는 주제는 일치한다. 도구에 따라 표현방법이 달라지고 시각적 결과물이 달라지는 것뿐이다.” 말한다. 때로는 거칠고 투박하거나 용도에 따라 부드럽고 매끈하거나 다르게 표현되지만, 그의 작업물에 담긴 정신적 영감은 같다는 말이다.

 

 

연구와 기록으로 체득된 데이터


장작가마에서 완성되는 서병찬 작가의 작품들은 표면이 거친 트임 작업물들이 많다. 태토를 꼬아 결을 만들고 뭉툭한 태토를 바닥에 내리쳐 길게 늘여준다. 태토는 물리적 방향에 따라 길게 늘어나지만 다듬어 주지 않은 표면은 균열된다. 이렇게 흙의 물성을 이용해 성형하는 과정은 흙과 교감하는 첫 번째 단계다. 재료를 깎아내는 작업방식과 달리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흙을 쌓아 올리는 방식은 그가 도자를 좋아하는 또 다른 이유다. 흙 작업을 통해 흙의 능력과 한계를 끌어내고 늘려지고 터진 흙은 가마 안에서 불을 견뎌내 한계를 넘어선 모습을 드러낸다. 2006년 이곳에 가마를 짓고 작업을 시작해 불을 땔 때마다 장작을 넣고 온도의 변화를 열심히 기록했으나 이제는 그러한 기록들이 쌓여 체득된 데이터에서 변주하기를 더 즐긴다.

서병찬 작가는 작업과정의 유연함을 유지하고 싶다는 생각에 충실하며 다양한 작업을 해왔다. 때로는 수용적이고 유연한 작업방식이 작가 자신을 대변해줄 수식어를 갖지 못한다는 한계를 지니게 한다. 그렇다고 장작가마 자연유번조만을 고집하기에는 여러 가지 한계들이 따른다. 도자작가로 20여 년을 작업했으나 늘 고민이 생긴다.

 

“나는 흙이 내게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여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그것을 조작하거나 원하지 않는 일을 하도록 속일 필요가 없다. 흙이 불을 만나면 그 삶은 더 강해지고, 단단해지고, 부드러워진다. 어떤 흙은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어떤 것은 평범한 삶을 살 것이고, 어떤 것은 자신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흙과 불은 내 작업을 통해 나와 많은 것을 공유한다. 이것이 내가 흙과 소통하고 주기적인 삶의 시작과 소멸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작가노트 중

 

 

해외교류 활동


서병찬 작가는 호주유학을 마친 후 캐나다 밴프센터The Banff Centre에서 6주간 레지던시 작가활동을 했다. 이전 대학원 재학시절 첫 레지던시 경험을 토대로 밴프센터에서의 활동은 작가로서 첫 행보라 할 수 있었다.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이 서로 교류하며 새로운 곳을 여행할 수 있다는 데에 큰 매력을 느껴 되도록 많이 참여하려 한다. 이후 꾸준히 레지던시활동을 이어오고 있으며, 레지던시 외에도 2018년 프랑스 유럽장작가마 컨퍼런스 발표, 2019년 리투아니아에서 열린 6주간의 파네베지스panevezys국제 도자 심포지엄 등에 참여해 해외작가들과 교류했다. 현재 해외교류가 멈춰진 상황이지만, 상황이 좋아지면 기회가 닿는 어딘가에서 새로운 활동을 하고 또 다른 작가 자신과 만나게 될지 기대하고 있다.

도예가 서병찬은 2005년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캐나다 밴프센터 레지던시 후 귀국 후 경북 영천에서 작업장과통가마를 축조하여 자연유 번조작업을 하고 있다. 현재, 한국통가마협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본지 2017년 2월호에 <트레인 통가마의 축조 방법과 번조 방법 및 과정>을 소개했다. 2003년 대학원 재학시절 호주 나라반다 콜리지Narrabundhah college 레지던시를 시작으로 캐나다 리투아니아 프랑스 등 여러 나라를 다니며 레지던시, 워크숍, 컨퍼런스, 심포지움 활동에 참여했으며, 7회의 개인전과 다수의 전시를 통해 작품을 선보였다.

 

본 기획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해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진행되었습니다.
<온라인 기사_이연주 · 이예은 기자, 온라인 홍보_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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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cerazin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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