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전문 갤러리의 필요성
국내 도자전문갤러리 실태
글+사진 홍성희 _ (재)세계도자기엑스포 도자연구지원센터 연구원
필자약력
홍익대학교 도예과 동대학원 졸업
현, (재)세계도자기엑스포 도자연구지원센터 연구원
<우리 도자 이야기>, <나만의 도예공방 만들기> 등
기획, 편집
20세기 예술의 개념이 변화하면서 갤러리 공간은 회화와 조각 뿐 아니라 공예, 디자인, 판화, 나아가 건축과 서예까지 포함하게 되었다. 또한 갤러리의 기능이 미술관이나 박물관과 차별화되어 기획, 대여의 형태로 명확히 구분되면서 도예나 사진 등 특정매체에 대한 고도의 전문성이 강조되는 것이 추세다. 이러한 변화양상 속에서 국내 도자전문 갤러리들이 걸어온 그간의 자취를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도자전시문화의 현 주소를 읽어보고자 한다.
도자전문 갤러리의 태동
국내 도자전문 갤러리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 도예계의
이슈들과 시장변화와 함께 진화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5년 한일협정이 체결되고 일본인들의 한국 방문이 자유로워지면서 전통도자기의 수요가 급증하자 이천을 위주로 가마들의 생산이 활기를 띄게 되었다. 약 10년 동안 일본인들에 의하여 호황을 누렸던 이천 전통도예 요장들 중 일부 요장들은 서울 고급호텔 주변의 아케이드나 김포공항 등지에 판매숍을 열어 적극적인 판매방법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지금의 전문도자 갤러리와는 여러 면에서 다른 점이 없지 않지만 도예가들과 화상들이 손을 잡고 직접 특정 소비자의 취향을 반영한 물건을 기획하고 판매한다는 점에서 현재 운영되고 있는 도자전문 갤러리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다.
본격적인 전문도자갤러리의 시작은 1985년 10월 인사동의 토 갤러리 개관을 시작으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서울미대 조소과 출신의 조각가로 시작한 우병탁은 1983년 김포공항에서 도자기숍을 운영하며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도자기를 판매하다 인사동 토도랑의 전신인 토아트를 인사동 한빛은행 근처에 오픈하였다. 화재사고를 계기로 1990년 인사동의 ‘토도랑’과 압구정동의 ‘토아트스페이스’ 등 도예전문화랑을 운영하며 본격적인 한국도자전문 갤러리 시대를 열었다. 당시 ‘토도랑’과 ‘토아트스페이스’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품위주가 아닌 30~40명의 청년도예가들을 육성하였을 뿐 아니라 미국이나 유럽작가들의 작품도 선정해 자체 기획전시를 갖는 등 한국도예를 해외에 알리고 해외도예작품들을 국내에 소개하는 창구역할을 했다. 또한 ‘토도랑’이 생활자기나 다기위주의 소품 전시였다면 ‘토아트스페이스’ 는 젊은 작가들의 단체전을 위주로 특화 운영하는 등 서양화와 동양화가 양분하고 있는 한국 전시문화 속에서 한국도예전문 갤러리의 필요성과 기능을 절감하고 있던 도예계에 의미 있는 존재였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IMF를 기점으로 2003년 말 ‘토아트’라는 이름으로 이천에 내려온 이후 지역 도예가들을 중심으로 또 다른 모습의 도자전문 갤러리로 변모하고 있다.
생활자기를 위주로 하는 상업 도자전문 갤러리의 대두
1990년대 도자전시의 화두는 ‘사회화 내지 상업화’였다. 이는 1980년대 후반 치러진 올림픽의 영향으로 문화상품에 대한 사회적 수요에 편승한 결과기도 했지만 1990년대 후반 몰아닥친 불황으로 인해 거품이 빠진 서울의 수많은 화랑들이 미술상품으로서 공예품의 유통에 관심을 가진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록 자생적인 개혁은 아니었으나 예술지상주의로 흐르던 우리 한국 도예계 전반에 걸친 획기적인 변화였다. 소위 작가주의를 배격한 소규모 공방도예가들과 해외 유학파 도예인 등이 주도한 고급생활자기 브랜드 가 기존화랑의 상업적 수요와 잘 부합하여 고급공예품의 양산과 보급에 현재까지 앞장서고 있다.
국내에서 생활자기를 위주로 하는 상업 도자전문 갤러리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된 것은 2002년부터다. 2002년은 도예계 뿐 아니라 회화나 조각을 전문으로 하던 기존 갤러리들조차 본격적으로 상업화되기 시작한 해였다. 턱 높기로 유명하던 순수미술화랑들인 가나화랑, 현대화랑, 선화랑 등이 도예전시들을 열었을 뿐 아
니라 서미 컬렉션과 우리그릇麗, 크래프트 하우스, 핸드 앤 마인드, 크래프트 스페이스 목금토, 아티그램 등 공예전문화랑에서 정례적으로 그릇과 관련된 전시 및 판매전이 많이 열렸다. 이 시기부터는 인사동, 사간동 지역 갤러리들에서도 유난히 그릇전이라는 명칭으로 열린 전시가 적지 않았다. 대부분 산업자기보다는 장작가마에서 구워진 질박한 그릇부터 시대적 유행인 젠ZEN스타일의 그릇 및 핸드페인팅에 의한 화려한 그릇 등 다양한 그릇들이 전시의 성격을 빌어 소비자에게 어필해오고 있었다. 이러한 갤러리들은 공예갤러리를 표방하고 있지만 국내 고급생활식기 수요를 적절히 충족시키는 기능 뿐 아니라 주요 작가들의 개인전 및 기획전을 열거나 신인 작가의 작품을 발굴·육성하는 등 도자전문 갤러리의 역할을 일부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갤러리는 고급도자기판매점으로서의 기능이 더욱 강하다. 또한 도예계의 다양한 작품성향을 소화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이곳에서 소화되지 않는 조형성이나 실험성이 강한 전시들이 아닌 사발이나 실용적인 그릇을 주제로 한 전시들은 인사동 통인화랑, 인사아트센터, 가나아트센터, 갤러리 나눔 등에서 주로 열리고 있다. 이들 중 몇몇 갤러리에서는 도예계발전을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큐레이터를 두어 특정주제를 표방하거나 유명 해외 도예가들의 작품을 가지고 기획전을 열기도 하나 이들 갤러리에 소속된 전문큐레이터의 수도 부족하고 대여전시에 비해 경제적·인적 부담이 커서 그 횟수와 파장이 미비한 실정이다.
이러한 점들에 아쉬움을 느껴온 몇몇 도예가들을 중심으로 파주의 한향림갤러리, 양평의 몬티첼로갤러리 등 도자전문 갤러리를 표방하는 갤러리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설
립부터 도예작품에 맞는 전시공간과 여건에 대한 고민과 도예가의 입장에서 작가를 배려하는 노력들이 엿보이나 그러나 대부분 도심의 갤러리들에 비해 접근성이 용이하지 않고 대부분 전시 전문 인력이 부족하며 개인갤러리인 점 때문에 겪는 운영부담 등 여러 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
2006년 국내 도자전문 갤러리의 역할
갤러리는 작가의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공간이며 이를 계기로 작가와 작품 구입자 사이의 중개역할을 하는 미술계에서 또 다른 핵심적인 위치에 서 있다. 특히 외국의 갤러리들은 이 한 시대의 대표적인 미술가들을 발굴, 육성하며 이를 통해 하나의 미술사조를 형성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 활동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국내 도예전문갤러리를 표방하는 갤러리들은 성격이 모호하고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지나치게 소극적인 전시형태와 판매방법에 집중되고 있는 점 또한 문제점으로 지적되어왔다.
이렇듯 국내에서 제 기능과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도자전문갤러리의 부재함으로 인해 도예계에서 발생되는 문제점들은 늘어나고 있다.
첫째, 현재 우리 도예계는 과거와 달리 매우 복잡한 변화를 겪고 있다. 2000년대 이후 조형성이나 예술성을 강조하는 그룹전들은 급격하게 감소하였으며 그 자리를 대신해 식기 위주의 판매상품기획전들이 도예계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전시성격이 변화하면서 음식을 담아 전시하거나 테이블세팅을 도입하는 등 관람객위주의 전시방법들을 취하는 등 과거와 매우 다른 전시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또한 일부 도예인들 중에는 조형작업의 한계를 인지해 건축·인테리어를 염두에 둔 예술작품과 도자제품들을 빠르게 등장시키고 있다. 이렇듯 상업화되고 획일화되어가고 있는 도예계의 흐름은 제대로 된 도자전문 갤러리의 부재 속에서 평가되고 공론화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둘째, 이들 갤러리의 위상과 역할이 미약할수록 가장 큰 어려움에 봉착하는 이들은 젊은 작가들이다. 젊은 작가들이 그들의 본 역량을 발견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신진작가 발굴·육성프로그램들이 절실하다. 이들에 대한 관심이 미비할수록 향후 우리도예계의 인적인프라와 역량에 대한 예측은 급격하게 비관적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셋째, 제대로 된 도자전문갤러리에 대한 필요는 도자예술만의 특징 - 3차원 회화와 조형 성 - 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공간, 시설, 조명, 음향에 대한 요구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작품의 형태가 평면인지 입체인지에 따라 작가와 전시기획자가 관객과 소통하는 방법은 그 매체 특성에 따라 더욱 진중히 모색되고 탐구되어야 한다.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관객이 그 내용과 의미를 온전히 소통할 수 없게 된다면 결국 모든 예술장르가 대중성을 강조하는 현실 속에서 도예계는 점점 관객과 멀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작가들에게 걷는 임대료로 운영해 나가는 것이 대부분인 한국의 갤러리 풍토 속에서 갤러리 운영자들이나 큐레이터들에게 비교적 잘 팔리는 서양화나 동양화, 판화 대신 도자기에 맞는 전시방법과 장소를 갖춘 도자전문 갤러리의 활성화를 요구하기엔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제논리에서 벗어나 도자전문 갤러리의 수와 역량이 어느 때보다 시급히 강화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향후 우리 도예계의 발전과 비전을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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