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추천하는 작가
권상인의 청자의 세계
글 이기주 _ 경성대학교 공예디자인학과 명예교수
그늘에 묻혔던 명성일본 쿄토예술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귀국 후 1988년부터 모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1992년 서울소재 갤러리 빙에서 문을 연 개인전은 아직까지 진부하게 선진국류의 조형포름을 모방하고 있었던 한국도예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 전시회는 KBS 9시 뉴스에 방영될만큼 물의를 일으켰고 당시 40대의 오브제작가들 사이에 유행하는 전시형태가 되어 10여년간 지속한 것으로 기억된다. 2년 후 199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한국 현대도예 30년 전」에 출품한 작가들 중 설치미술 성향의 작품이 눈에 띠게 많아진 것은 92년 권상인의 전시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견해이다.
1994년 가을 일본 아이치겐 도자자료관 완성기념 특별기획전인 <국제 현대도예전>에 「은하의 문」이 초청되었다. 이 전시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미국의 피터볼코스, 이태리의 자우리 카르로, 일본의 이사무 노구치, 스즈키 오사무, 스페인의 카사노바 크라우디 등 소위 오브제의 전설적인 작가들과 함께 출품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권상인은 이태리, 스페인, 일본의 저명한 화랑들로부터 지금까지 10회에 걸쳐 초대전을 연 성과를 거두고 있다.
전통으로 귀의歸依
정보가 극대화되어진 오늘날 세계무대에서 개성있는 예술은 작가가 태어나고 성장한 지역의 전통을 본질로 딛고서지 않으면 안된다. 1998년 유럽전시 작품 중 어쩌다 끼어 넣은 몇 점의 백자나 청자로 만든 화병이나 연적을 보고 환호하며 갖고 싶어하는 스페인과 이태리 사람들을 보고서 아마도 권상인의 마음은 전통적 형form과 유약에 심취하기 시작한 것 같다. 이후 스페인 콜도바 시립미술관 초청전시에서 실험적으로 청자와 백자로 만든 화병과 연적을 선보였는데 30여점이나 되는 작품이 모두 매진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후 몇 차례의 스페인 전시를 통하여 청자로 만든 화병과 연적에 매료된 감상자들과 전시 때 마다 매진되는 작품을 보면서 진정한 의미의 공예가로서의 개안開眼이 된 것이다.
한줌 흙덩이의 포름
도예란 손아귀에 잡히는 한줌의 점토로 표현한 조형적 형태이지만 이것이 효과적으로 형상화되고 성공적으로 번조되어졌을 때 수백 혹은 수천 kg의 점토로서 거대하게 소조塑彫한 조각상이 발산하는 감흥보다 역동적일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이 땅에 꽃 피웠던 지난 날의 청자와 분청, 백자의 표면기법들을 융합하여 선조들의 해학을 심도있게 파악하여 곁들이는 권상인의 작품은 전통적 형form과 기법, 유약에 머물러 있지 않고 현대미학을 흡수하고 있는 특별한 작품세계이다. 미묘하게 좌우대칭을 피해가면서 성형된 작은 기형위에 전통적으로 사용된 목단, 떡살, 물고기 등의 문양 등을 채택하되 단순화함으로서 도예에 있어서 전통의 요소들이 변용되어 시문되어있다.
문진文鎭이 화병이 되기도 하고 오브제같은 연적硯滴이 있는가하면 벼루같은 수반水盤이 벽걸이 화병으로 둔갑된다.
십이지신十二支神의 동양적불교사상이 채택된 쥐, 소, 토끼, 용, 뱀, 말, 양, 원숭이, 닭, 개, 돼지의 동물형動物形이 연적위에 입상으로 성형되었으나 「이 동물의 군상들을 동세動勢로 배치하여 불교의 윤회輪廻사상을 조형언어로 설명하고 있다」1)
성글게 음각이나 양각으로 시문된 문양은 청자유약의 두텁고 얇게 시유되는 우연의 효과로 유도되어 깊게 패인 음각문일 경우 짙은 청색의 문양을 표출시킨 표면장식이 되고 있다.
맺는말미국에서 액션 페인팅이 유행한 후 이 회화양식은 최초의 아메리카니즘으로 자리잡히고 이에 영향 받은 아직 젊었던 피터볼코스에 의하여 도자기의 형태가 해체되었다. 임진왜란이후 조선시대의 발달된 도자기 번조 기술은 일본으로 건너가 에도시대 이후 번조기법이 계속적으로 축적되어 일본류의 도자문화가 형성되었는데 일본 나름의 도자기 문화를 바탕으로 제2차 대전이후 1950년대로부터 일본의 전통적 도자기 형식을 타파하는 의미에서 서구적 미술양식을 도자기에 접목하여 오브제의 영역을 개척하고 하나의 일본적 조형작품의 장르로서 꽃피어왔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미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19세기말 이후 맥이 끊어진 도자기 문화의 상황에서 1970년 이후 오브제 형식의 도예품들이 밑도끝도없이 범람한지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다. 20세기 중엽 미국과 일본의 전통도예에 대한 의식적 저항에서 생성된 오브제 작품경향을 필연적 과정을 거치지 않고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유행시킨 반세기의 경험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는가?
이 시점에서 고려와 조선조 시대의 관요와 민요에서 생산했던 찬란한 우리 도예문화에 맥박을 다시 짚어본다는 입장에서 권상인의 청·백자 세계는 의미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작가 권상인 약력
경성대학교 공예학과 졸업
쿄토 시립예술대학 대학원 졸업 동대학 미술학예연구원 과정 수료(자격증 취득)
쿄토 공예섬유대학 대학원 공예과학연구과 공예학박사학위 취득
개인전 17회 (1986~2006, 한국 일본 스페인 이태리 인도네시아 등)
초대전
1994 국제 현대도예전(일본 아이치겐 도자자료관 특별기획전), 한국현대도예 30년전 초대(국립현대미술관)
1996 메이데쯔 백화점 초대 2인전-Hayashi Hideyuki / 권상인(일본 나고야)
2003 갤러리아트21 동양의 도예작가 초대출품(콜도바, 스페인)
작품소장 : 일본 아이치겐 도자자료관, 일본 사가역사자료관, 필리핀 대통령 관저, 인도네시아 대통령 관저
현,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공예디자인학과 교수
sikuwn@ks.ac.kr
1) 十二支(십이지)의 군상(群像)의 동세적(動勢的) 표현은 아마도 작가가 90년대 초에 발표한 광대무변한 우주공간에 존재하는 성군(星群)들의 풍경을 인간의 의식으로 창출해냈던 것과 마찬가지로 십이지의 동물들을 군상화하여 윤회의 공간과 시간을 표현하고 있다.
필자약력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개인전 12회, 초대전 다수
한일도예대학 운영위원장
국제도예대전 운영위원장(1994~ )
일본 가나자와미술 공예대학 객원교수(1993)
일본 시가라키「陶藝의 森」 초청작가(1997)
한국공예대전 심사위원, 운영위원역임 (2000~03)
제16회 봉생문화상 전시부분 심사위원장(2004)
현,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공예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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