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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화魏華 구상정신具象精神의 실천實踐
  • 편집부
  • 등록 2006-09-09 13:5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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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화魏華  구상정신具象精神의 실천實踐

글+사진 우관호 _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교수

어느 작가나 마찬가지듯이 웨이화에게도 작품배경은 존재하고 있었다. 그의 거주지이면서 제작의 근거지는 중국 남동부의 대도시 광조우에서 약 1시간 가량 떨어진 포샨佛山이란 지역으로 현재 중국최대의 타일과 위생도기의 생산지이다. 그러나 원래의 포샨은 스완공즈石灣公仔로 대변되는 민속공예품인 노벨티의 전통적인 산지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환경적 배경과 함께 웨이화는 중국현대도예를 이끄는 리더집단의 한 작가로서 자리매김을 하고 있으며 아래와 같이 정리하여 그의 작품과 작업관을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째, 그는 다른 도예가들에 비해 작품의 소재선택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스타일이다. 굳이 도자를 고집하지 않고 나무를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모래만으로도 작품을 하며 탁월한 서예실력으로 그림을 그려내는 등 자기표현에 있어서 매우 적극적이고 분방하면서도 남다른 표현능력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목조작품에 대한 평론의 일부를 빌어 보면 웨이화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매끄러운 표면. 세련된 곡선, 풍부하면서 변화있는 유기적인 형태들은 생명체의 활발하고 자유로운 운율을 마음 깊숙이 전달하고 있다. 또한 밖으로 확장하는 듯한 세련된 곡선에 의한 형태는 고저장단이 있으며 긴장과 이완 그리고 질서있는 리듬감 등을 갖추고 있다.”
 
또한 이 평은 웨이화가 가지고 있는 조형의 기준 또는 방향에 대해서도 암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세련된 곡선, 변화있는 유기적 형태 등은 웨이화의 다른 작품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둘째, 웨이화의 작품에는 인체 또는 인물 그리고 그와 유사한 이미지의 유기물들이 주로 채택된다. 인체의 경우에는 비교적 구체적이면서 약간 왜곡된 형태에 패러디를 느낄 수 있는 스타일과 세부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상징성이 강하게 표현되는 양식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에 한가지를 더 보태면 소위 신스완공즈新石灣公仔로 불리는 스완의 노벨티가 차용된 양식들이 있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스타일은 1999년부터 현재까지 지속적으로 만들어지고 있으며 인물들의 표정이나 남녀의 배치 그리고 인체의 왜곡 등으로 비추어 보면 현실적이고 사회적인 내용들에 대한 패러디를 느끼게 하는 작품들이라 할 수 있다.
특히 1999년의 작품 「Wiseman」은 비교적 생략된 형태이긴 하지만 큰머리와 짧은 목 그리고 거만한 눈 표정 등으로 현대지식인들에 대한 패러디를 잘 나타내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후 2003년의 「Photo Series」에서는 인물들의 표정들이 좀 더 구체화되고 군집화되면서 사람과 사람사이의 문제 그리고 남녀간의 문제 등으로 관심을 돌리게 된다. 그리고 2005년부터 제작된 「King」시리즈의 작품들은 크기도 커졌을 뿐 아니라 작품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보다 직접적으로 변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2005년의 작품 「KingⅠ」은 누가 보아도 그 내용을 확실히 짐작할 수 있는 제목과 표정, 구성 등으로 연출되고 있다. (사진 1~5)
「Identity」시리즈의 작품들은 대략 2000년 이후부터 제작된 것으로 보여 진다. 이 작품들은 완전히 생략되고 왜곡된 두상들로서 아랫쪽에 옷을 나타내는 것들이 없다면 간결한 볼륨의 추상적 형태로 밖에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웨이화는 아래쪽의 은근한 묘사로 그것이 인체의 두상임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작품을 눈여겨보면 두상의 앞과 뒤에 여러 가지 문자들이 찍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들을 여기에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크고 작은 영어와 중국어 활자들을 이용하여 나름대로의 메시지를 표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웨이화는 이 작품들의 명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자신과 중국문화의 정체성 등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기 시작한 것으로 생각된다. (사진6)
한편 2000년부터 새롭게 제작하기 시작한 「Figure column」 혹은 「Figure wall」 시리즈는 앞서 말 한대로 웨이화의 근거지인 스완에서 생산되는 작은 노벨티 즉 스완공즈石灣公仔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 스완공즈는 그 크기와 모양이 천차만별인 것으로 사람의 모양부터 집, 다리 심지어는 동물과 곤충에 이르기까지 작지만 세밀하게 만든 것을 말한다. 이러한 작은 도자제 노벨티들은 어항이나 분재, 화분 그리고 작은 실내정원 등을 꾸밀 때 사용하며 여러 가지를 조합하면 하나의 작은 세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다양한 것이 특징이다.
웨이화가 자신의 작품에 스완공즈를 도입한 것은 그렇게 생경한 사실은 아니다. 그는 오랫동안 스완에서 작업을 해왔고 그 주변에는 그것들을 파는 가게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다만 웨이화는 그동안의 작품에서 스완공즈를 사용하는데 생각이 미치지 못하였고 또 그러한 레디메이드 오브제들이 자기의 작품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 나아가 어떤 재미를 가져다 줄지 상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던 와중에 그는 스완공즈가 가진 매력을 발견하였을 것이고 그것들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조형언어를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웨이화의 이러한 변화에 대해 평론가 순전화孫振華는 다음과 같이 평하고 있다.

“웨이화의 신공즈작품을 보았을 때 매우 기뻤다. 여타의 과거의 작품에 비해 구상과 추상의 변화는 차치하고 중요한 것은 그의 취향이 변화하였고 나아가 일종의 새로운 감각을 찾았으며 그것은 곧 유희성과 통속성, 은어 그리고 유머가 있기 때문이다. … 중략 … 신공즈에는 역설성이 있다. 사람들은 정면성과 보편성 그리고 장엄함과 엄숙함으로 가득찬 조각적 기념비에 익숙해져 있다가 신공즈들을 보았을 때 그것의 패러디와 유머에 더욱 더 큰 힘이 있음을 알게 된다. … 중략 … 고전주의의 조각앞에서 사람들은 엄숙함과 깊은 사유 그리고 격앙하는 감정을 느끼고 현대의 조각앞에서는 망연함과 경악 그리고 공포 등을 느낀다면 웨이화의 신공즈와 같은 작품앞에서는 가볍게 웃으면서 보이지 않는 강제와 압박 그리고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것을 느낄 것이다.”

순전화의 평처럼 웨이화의 스완공즈는 확실히 유머가 있다. 작품의 세부를 들여다보면 볼수록 그 안에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정치와 이념을 넘어서는 재미가 들어 있다. 그러나 웨이화의 스완공즈와 같은 작품이 반드시 그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주지하지 않으며 안된다. 숱한 미술가들이 오브제를 도입하거나 차용하였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따라서 웨이화의 스완공즈는 지금의 중국 현실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며 앞으로 그가 어떻게 발전시켜 나아가느냐에 따라 다시 평가되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웨이화의 작품 상당수가 색이 배제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한두점을 제외하고는 그 흔한 투명유약도 바르지 않는다. 그냥 유약없이 구워내거나 오래된 장작가마를 이용하여 흙과 불맛만을 드러낼 따름이다. 이는 그가 색을 사용하는 것을 기피한다기 보다는 오히려 형태의 면밀함과 재료의 질감을 부각시키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상 세가지 사실을 종합하여 보면 웨이화라는 작가는 기교나 기술 보다 작품의 내용에 더 큰 관심을 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아가 그의 작품의 명제는 항상 작품의 내용을 보조하거나 강조하는 역할을 하며 보는 이로 하여금 수긍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또한 그의 작품은 대단히 사회적인 성격이 강하다. 사회비판적인 성향의 것도 있는 한편 계몽적이고 서사적인 작품들도 적지 않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들은 오랜 전통속에 내재되어 있는 중국인의 내면적 속성을 기반으로 제작되어지기 때문이다.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보수적이고 전통적인 그의 사고는 자신의 논고 “구상정신具像精神 - 중국당대도예격국중적인물창작中國當代陶藝格局中的人物創作”의 첫머리에 인용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라는 몬테규Montaigue의 말로 대변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작가 웨이화는 1963년 후난성湖南省 장지아지에張家界 출생. 1989년 광조우廣州 미술학원 졸업 후 1996년과 2002년 두 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외국의 단체전에 다수 참가하였으며 현재 광조우 미술학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필자 우관호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와 동 대학원 공예디자인과를 졸업하고 개인전 5회(서울 후쿠오카 교토)와 한일현대도예4인전(이타미시립공예센터, 일본), 싸이코드라마(성곡미술관, 서울), 국제도예초대전(포샨, 중국), 한미일 현대도예 교류전(긴자갤러리, 일본), EX:CHANGE(마이애미, 미국) 등 국내외 단체전 100여회를 가졌다.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도예유리과 부교수에 재직 중이다.

1 「Wise man」 10×8×24cm, 1999
2 「Photo series-Happy New Year」 49×30×60cm, 2003 
3 「King 1」 130×60×80cm, 2005
4 「Figure Wall 1」 200×300cm, 2003
5 「Figure Wall 1」 detail2
6 「The Gate of Asia Art」 1400×1800cm, 2005

< 더 많은 사진자료는 월간도예를 참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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