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hibition : Review
도정 박순관 수레질 30년전
2006.9.20 - 2006.10.3
공예갤러리 나눔
왜 박순관의
작품에
열광하는가
글 조명제 _ 시인, 문예비평가

이따금 선사시대의 유물이 발견되곤 하는 암사동 일대의 한강변을 뒹굴며 빗살무늬토기의 파편을 주워 놀던 한 아이가 원시 한민족 토기의 원형을 복원하고, 그 이미지와 제작 기법을 현대화함으로써 오늘날 세계적 도예작가로 우뚝 섰다. 대영박물관을 비롯한 세계 굴지의 박물관 너댓 곳에 작품이 소장되어 있는 작가 박순관, 그는 이렇듯 운명적인 작가이다.
2004년과 2005년을 연거푸 대구에 초대되어 개인전을 가졌던 박순관이 도예 입문 30년 기념전을 서울에서 열었다. 큐레이터보다 먼저 갤러리 앞에 나타나 문 따기를 기다린 애호가가 있었는가 하면, 부산에서 일찌감치 전화로 예매한 이도 있었으며, 밀양에서 원주에서 지리산 깊은 계곡 암자에서까지 몰려 온 관람객들로 오픈 당일의 오후 시간은 크게 붐비기 시작했다.
전시장은 여느 때와는 달리 평소의 상설 공간까지 박순관의 작품들로만 채워졌다. 색상과 질감에 있어서 청·백자나 분청의 도자류와는 엄연히 대조되는 자연유의 검은 색과 암갈색, 녹두색과 적벽돌색 등의 다양한 빛깔을 띤 작품들이 수레질의 강렬한 인상과 흡인력으로 말미암아 전시장을 압도하며 시선을 휘어잡았다.
“다과 먹을 시간이 어딨어요, 작품 봐야지.”(J 교수),
“박순관의 작품을 알고 나면 다른 부류의 작품들은 싱거워져요.”(수집가 L씨), “대성황이로구먼!”(P 시인), “요 몇 년 사이 이런 호황은 처음이예요.”(관장 L씨)와 같은 수많은 대화나 감회어린 언사는 도예가 박순관의 인기를 실감케 하기에 충분했다. 30년 기념전이었지만 작가는 모든 요식을 없앤 채 관람객을 맞고 작품을 설명해 주는 방식을 취했으며, 저녁 회식자리에서 감사의 인사로 답례했다.
우리는 왜 이처럼 박순관의 인간과 작품에 매료되고 열광하는가. 일반에게는 아직도 낯설고 대중성이 없는 무유의 장작가마 작업을 고집해 온 작가는 지난 30여년 동안 외롭게 자신의 독자적 스타일을 천착해 왔는데, 이제야 애호가들의 미의식에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수레질과 꺼먹이 기법이 각인된 때문일까. 아무튼 그의 작품에 대한 뜨거운 반응은 무엇보다도 먼저 안주함이 없이 기존의 양식에 도전하는 도발적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창적 세계를 개척해 왔기 때문일 터이다. 고갈됨이 없는 아이디어와 기법의 다채로움으로 그는 눈 밝은 품평가마저도 따돌리고 항상 한 발 앞서 가 버린다.
다른 하나는 그의 어리숙한 듯 넉넉한 늘푼수의 미학이 메마른 현대인의 원초적 심층을 흔들어 깨우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의 작품은 대체로 어딘가 모자란 듯해 보이는데, 허술한 듯 정교하고 정교한 듯 허술한 그 양극의 아슬한 경계선 어디쯤에서 해학적 미학이 형성됨을 보여준다.
요컨대, 원시적 건강성이 살아 있는 토기시대의 토속미학과 디지털시대의 초현대적 조형미학이 작가의 뜨거운 불꽃 속에서 녹아 융합된 자연유 수레질의 세계는 안목 있는 애호가들을 매료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수종 철화분청전
2006.8.30 - 2006.9.17 갤러리 담
대지로부터 흙,
그리고 도자기
From earth to clay to vessel
글 샬롯 헐릭 _ 예술고고학 박사, 빅토리아&알버트미술관 객원큐레이터
번역 전신연 _ 도예가
이수종은 한국 전통 도예에 대한 독특한 해석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작가이다.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대만, 독일, 영국, 그리고 미국 등지에서 여러 차례의 그룹전과 개인전을 가져왔으며, 그의 작품들은 국내 다수의 컬렉션을 위시해 타이페이 시티 박물관, 중국 국립 미술관, 빅토리아 & 알버트 박물관과 로얄 온타리오 박물관 등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 뮤지엄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수종의 작품은 한국의 전통 도자 예술, 특히 분청사기에 근거한다. 분청기법이란 도예가들이 폭넓게 사용하는 장식기법인데, 인화기법, 박지문양기법, 상감기법, 투각기법과 음각기법 등이 잘 알려져 있다. 또한 기물에 화장토로 생동감 있고 자유스런 붓질에 의한 문양을 입히는 귀얄기법, 백토로 입혀진 기물에 철분 안료를 사용하여 장식적으로 붓으로 문양을 그려 넣는 담금 분장 기법 등이 시유 이전에 유행했던 기법이었다. 이수종은 이와 흡사한 장식기법을 사용하면서 태토의 질감과 분청의 원시적이며 간결한 미를 의식적으로 추구하였다. 그의 많은 작품들이 흰색 화장토를 이용해 즉흥적으로 그려진 것이다. (그는 때로 붓 대신 손가락을 이용한다) 어떤 작품들은 산화철을 써서 그려진 비구상적인 구도를 갖는데, 소성 후에는 선명한 갈색이 나타나게 된다.
기존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분방함과 혁신적인 형태로 잘 알려진 분청처럼, 이수종의 작품들은 자연스럽고 제약받지 않는 형태에서 간결하고 깔끔한 우아함을 드러낸다. 그의 작품은 매우 다양해서 비구상 조각적인 것부터 접시, 쟁반, 주전자 등의 실용적인 용기들까지 도예의 여러 분야를 망라하는데, 특히 작은 사발부터 넓은 어깨의 화병까지 많은 수의 용기를 찾을 수 있다. 그는 사발에 대해서 특별한 의미을 부여하면서 “사발은 그저 간편한 용기가 아닌, 문화의 정의를 함유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사람이 인생을 직선적이고 합리적, 이성적인 방식으로만 살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하면서, 사발이 그에게는 인생의 그러한 혼돈과 완벽하게 정의되지 않는 상태를 담아내는 상직적인 역할을 한다고 이야기한다.
소성 후에 단단하게 굳어지는 것이 도자의 특성임
에도 불구하고, 이수종의 많은 작품에서는 오히려 따뜻하고, 부드러운 소성 전의 젖어있는 흙의 유순한 느낌이 나타난다. 질감, 색상, 형태 등을 통해서 그의 작품들은 그가 다루는 재료의 고유한 기본적인 특질을 훌륭하게 그대로 드러낸다. 이수종은 도예가는 자연인이 되어야 하며, 흙을 그 과정의 자연스런 한 부분으로 보아야 한다고 느낀다고 한다. 그러므로 그는 흙과 대항하여 싸우기보다는 그것의 본래의 아름다움이 나타날 수 있도록 한다. 따라서, 그는 작가가 의도했던 모양에 맞추기 위해 흙이 지칠 때까지 매만지거나 고치는 방식을 택하지 않을 뿐더러, 화장토나 물감의 적용에 있어서도 흙을 완전히 뒤덮어서 태토 고유의 성질이 감추어지게 하는 기법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대신에 아주 불규칙하고 자연스러운 그의 작품의 표면에서 종종 그의 손가락으로 눌려 찍힌 자국과 울퉁불퉁하게 제멋대로 굳어진 화장토 방울을 찾을 수 있다.
최근에 그는 이러한 분청기법의 아이디어를 좀더 현대적인 방법인 흙그림이라는 형태로 작품에서 반영시키고 있는데, 주상과 회화를 넘나드는 표현을 표면이 고르지 않은 흙판 위에 응용하는 것이다. 이수종은 과거의 전통도예에서 영감을 받은데서 그치지 않고, 한국 전통 도예 기법과 미적 가치를 재해석하여 완벽하게 현대적인 작품으로 재탄생시킨 도예가이다.
유정민 <RAINBOW>전
2006.9.8 - 2006.9.12
갤러리 한집 한그림
사유되는 색
글 우관호 _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교수


지난 9월 8일부터 12일까지 이태원의 갤러리 한집 한그림에서 열린 유정민의 개인전은 대학원을 마치고 신진작가의 길로 들어서는 출발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출품작들은 대학원 과정에서 제작하였던 작품들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들이 주를 이루었으며 새롭게 시도되는 실험작들도 한두 점 눈에 띠었다.
대부분은 얕은 반구형, 사면체 등의 내부에 소위 색면추상이라고 불리우는 형식에 기반을 둔 다채로운 색띠들의 집합체라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을 회화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이미 지나간 유행의 답습 내지는 아류라고 비하할 수도 있을 것이며 공예적인 입장에서 본다면 현란한 장식패턴의 나열 등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작품들은 또래의 작가들이 간과하기 쉬운 면들을 차분하게 통찰하고 실천에 옮긴 결과라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우리는 상감청자, 인화분청, 초기 청화백자 등에 대한 기억들을 가지고 있다. 그것들은 여타의 유물들에 비해 섬세하고 치밀한 문양 또는 그림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한마디로 많은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유정민의 작품들은 위의 것들과 내용적인 면에서 별도의 세계에 있지만, 공력 하나만은 그것들에 비해 손색이 없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작품의 내면을 가득 채우는 기하학적 선들은, 또는 가늘고 긴 면들은 꼼꼼한 계산과 치열한 수공정신이 없으면 이루어지기 힘든 것들이며 발색을 위한 기술기반 또한 어느 정도 완성단계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하드웨어적 바탕위에 한가지
더 덧붙인다면 색들에 대한 독창적인 가치관이 분명히 구축되어 있고 그것을 구현하려는 소프트웨어 즉 조형의지 또한 확고하다는 사실이다.
“색은 감각적인 것으로서 시각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색을 보는 사람마다 그 체험은 상이하다. 사람마다의 감정 상태에 따라서도 같은 색을 보더라도 다르게 느낀다. 보통 슬픔과 죽음 등의 어두운 심리 상태에서 흑과 백의 색을 본다면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기쁨이나 즐거움의 심리 상태에서 본다면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것이다.”
짧고 서툰 표현이긴 하지만 이 말은 유정민에게서 색이란 시각적 기표만이 아니라 감성적이면서 직관적인 기의로 인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작품에서 색은 색으로 읽혀지는 방치된 진리가 아니라 관찰되고 사유되는 정신적 대상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명확히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유정민의 작품에 대한 지극히 개인적인 소감이며 또 앞으로 그가 작가로서의 길을 가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격려성 발언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번 전시 전체를 보는 느낌은 그렇게 달갑지 않았다. 글의 끝머리에 굳이 이렇게 까칠하게 구는 것은 그가 가지고 있는 작품에 대한 생각과 경외심 등이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며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이 가지기 쉬운 우연성, 즉흥성 그리고 무의식중에 자행되는 물성추구 등에서 일찌감치 비껴서 있는 태도에 비해 작품의 크기나 포름 및 공간구성 등에서 사뭇 안타까운 점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기열 개인전 Ero사항
2006.9.14 - 2006.9.27
얼터너티브 라이브하우스 Lydian
에쿠우스와
에로스
글 홍성희 _ (재)세계도자기엑스포 도자연구지원센터 연구원
일반인은 어릴 적에 경험했던 성적유희를 공상 속에서 되풀이하지만 창조적인 작가들은 이 꿈을 사회가 용납하는 내용으로 설득력 있게 바꾸어낸다. 결국 예술은 에로스를 현실에 맞게 변용시켜 관객의 에로스로 대리만족시키거나 승화시키는 장치인 셈이다.
지난 몇 년간 박기열은 말馬과 성性을 화두로 에로스와 그 이면에 감춰진 인간의 욕망을 상기시켜오고 있다. 그의 초창기 작업들이 슈퍼맨, 스파이더맨 등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미디어 영웅들의 희화화된 권력과 은유적 희화화를 매우 노골적인 표현을 동원해 표현해나갔다면 대학원시절부터는 줄곧 다양한 장치들을 배제하고 말과 인간의 성기性器와 성적상징 등을 결부시켜 보다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되 매우 은유적인 표현방법들을 취하고 있다. 이것은 그가 전기前期의 다소 팝아트의 가벼운 조롱에서 벗어나 신화적인 오브제를 등장시킴으로써 자신의 논리를 더욱 구체화하려는 변화의 양상 속에 서 있음을 보여준다.
말에 대한 표현방식은 시대에 따라서 문헌, 유물, 구전설화, 신앙, 놀이, 현대적 상품 등에서 다양하게 나
타나지만 말에 대한 일반적인 관념은 “신성한 동물” “상서로운 동물”의 상징으로 수렴되고, 하늘의 사신, 제왕의 출현을 알리는 영물, 예언자의 구실, 영혼과 마을 수호신이 타는 동물, 장수. 선구자. 영웅 등 박력과 정력, 스피드의 대표적인 상징동물로 굳어져왔다. 박기열은 이번 전시에서 이렇듯 남성적인 상징으로 점철되어 있는 말馬과 벌거벗은 여자의 여체를 사진과 도예라는 다소 이질적인 예술장르 속에 함께 등장시킴으로써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영감의 원천’인 여성을 상대로 벌어지는 은밀하고 왜곡된 성적환상을 시각화하고 있다.
박기열의 여체는 과거 작가들이 여체를 좀 더 섹슈얼한 이미지로 포장하던 상습적인 방법들-담배, 침대, 욕실 등 퇴폐적인 장소나 오브제의 등장을 이용해 여성성을 극대화하던 전통적인 방법에서 벗어나 그 자리에 그가 만든 말 형상의 오브제를
대체시킴으로써 매우 은유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또한 사진역시 초점이 나가거나 흐릿하게 처리함으로써 몽환적인 분위기를 유도하고 덕분에 관람객들은 성에 관련된 것들은 무조건 감춰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오픈된 장소에서 예술이라는 장치아래 공공연하게 훔쳐보기의 은밀함을 즐길 수 있다.
박기열은 이번 전시를 통해 공예로서 완벽한 마무리와 조형성을 추구하기보다는 요즘 젊은 작가들 특유의 감성적이고 자극적인 메시지 전달에 좀 더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갤러리가 아닌 라이브공간을 전시장소로 선택한 것부터 디스플레이방법까지 하나씩 그의 선택을 짚어보면 윗세대들과 자신을 어떻게 구별해야 하는지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를 가늠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도예관이 유약과 흙이 만들어내는 전통적인 도예관하고는 거리가 있을지라도 도예의 재료와 기법, 작품의 크기 등이 작가의 의도를 극대화하기 위해 어떻게 최적화되어야 하는지, 나아가 흙만을 작업하는 도예가들과 타 장르와 도예를 접목하려는 작가와는 어떤 차별점과 특성을 갖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고려해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어차피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은 외마디 외침이 아니라 관객과의 상호소통과 교감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김갑순요 <흙이좋아요>전
2006.9.13 - 2006.9.19 인사아트센터
그릇의 마음
글 토시히사키도 _ 쿠레갤러리 대표
김갑순요 <흙이 좋아요>전은 예상하고 있었던 대로 한국 도예의 서민화와 대중화를 느끼게 해 주는 전시였다. 나와 김갑순씨의 만남은 몇해전 인사동의 갤러리였다. 그 인연으로 일본에 있는 본인의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도예가 김갑순은 차의 세계에 독자적인 접근으로 다가선다. 그의 찻그릇은 한국 차문화의 존재를 강하게 인상 지어 준다. 일본의 딱딱한 전차도煎茶道와는 달랐다. 보다 ‘쓰임(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중요하게 여기는 김갑순의 차그릇에 나는 공감 했었던 것이다.
이번 전시회의 흥미로웠던 점은 전시회의 도록이었다. 18명의 여성 작가가 각자 창작한 그릇에 자신이 만든 요리를 담았던 것이다. 자신이 만든 그릇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처음부터 생각하고 만든 도예가가 있을 것인가? 그릇이 먼저인가, 요리가 먼저인가?
전시에 참여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작가에게 물어 보고 싶었다. 김갑순은 제자들에게 도자그릇에 요리를 담는 것으로 무엇을 가르치려고 한 것일까?
필자가 상상하기엔 도예작가를 목표로 한다면 독자적인 표현을 확립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가들이 만든 요리가 담겨진 작품은 훌륭하게 그 사람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또한 도록에는 만든이들의 사진도 실려 있었기에 한층 더 돋보이게 하였던 것이다.
작가로서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것인가? 창작하는 즐거움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한 발 앞선 수준의 세계를 발견하고 싶은 것이다.
18명의 여성 작가의 그릇에 요리가 담겨진 전시회장의 풍경은 신선하고 상상력을 돋우게 했다. 이 전시회에서 가장 많은 수확을 얻은 것은 틀림없이 전시에 참여한 작가 개개인이다.
김갑순의 제자들의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일망一望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그릇의 마음’을 잡아내는 작가의 몇 년 후의 작품을 보고 싶어졌다.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그릇은 사용하기 좋고, 장식하기 좋은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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