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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배의 옹기막이야기(8)
  • 편집부
  • 등록 2006-11-06 14:4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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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배의 옹기막이야기(8)
4 2·사이

글+사진 이현배 _ 옹기장

지난 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놓친 영화가 있다. ‘사이에서’란 영화다.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땡기는 영화인데 황해도 별신굿 만신 이해경선생이 출연했다하니 더더욱 궁금했다. 언제 가마불이 한창일 때 이해경선생이 마이산에 기도를 하러 왔다가 옹기점엘 들렸더랬다. 큰불이었을 때였는데 밤새 산기도를 하고도 거의 하루종일 불앞에 앉아계셨다. 불이란 게 어느 정도 세력을 형성하게 되면 불이 불을 부르는, 그래 잡아끄는 힘이 갈수록 커지기에 가만히 들여다보다보면 넋을 놓고 보게 되는데 ‘불이 참 이쁘다’하면서 한 없이 보고 계셨다. 

옹기일을 막 익힐 때였다. 옹기선생께서 빚으라 하는 것을 빚고 나면 키가 높다, 낮다 하시면서 퇴짜를 놓기 일쑤였다. 심지어 머리카락 하나가 높다, 머리카락 하나가 낮다고도 하셨다. 수긍할 수 없었던 나는 반발심에 잣대를 들이대보기도 했는데 그렇다고 잣대로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참으로 난감했다. 비슷한 이야기를 리빙아츠 선생께도 들었는데 리빙아츠 선생은 ‘실오라기 하나를 잡아내야한다’고 했다.
그렇게 답답하게 살다가 그 이치를 조금 알 게 된 것이 무녀가 작두위에 올라서는 것을 보면서였다. 시퍼런 날 위에 몸을 두는 것이 희한했고, 또 신이 오르면 어찌 그런 행위를 하게 되는지를 궁금해 하다가 그게 바로 우리 같은 중생에게 이승과 저승을 함께 보여주기 위함임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칼날이 바로 이승과 저승의 사이이면서 교차점으로 날이 잘 설수록 이승과 저승의 간극이 그만큼 줄어드는 것이었다.
할 수 있는 훈련으로 1.8리터 패트병에 물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물을 넣으면서 늘어나는 정도를 보려 했는데 보이질 않았다. 그러다 무녀가 작두위에 올라서는 것을 보고서는 패트병의 경우 분명 물이 담길 때 늘어나는 정도를 볼 수 있는 눈이 밝은 눈이 아니라 물이 있다 없다의 문제를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던 것이다.

만신 이해경선생께 그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작두날을 그렇게 이해한 것은 옳다 한다. 본래 작두날을 타기 전에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숫돌로 날을 세우는데 심지어 혀로까지 날을 세우는 것은 날이 무디면 오히려 베일 수 있기 때문이란다. 다만 우리 일이 구심력을 중심에 두고 원심력을 이용하는 모순 속에 그릇을 빚는 것과 다르게 당신께서는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 입신해야하는 게 다를 것 같다했다. 

사이, 이 말은 나에게 매우 각별하다. 옹기도, 내 삶의 의미도 바로 이 ‘사이’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내가 옹기에서 의미를 찾게 된 것은 다니던 학교를 휴학하고 고물장사를 할 때였다. 리어카를 끌고 다니면서 고물을 엿으로 바꿔주는 일이었기에 엿장사라고 했다. 고향에서 하다 보니 아는 사람을 만나는 게 스물 하나라는 나이에 큰 고역이었다. 그래 장사를 하기보다는 버려진 쓰레기에서 줍는 일이 많아져서 안 되겠다싶어 들어가고자 하는 집의 장독대를 궁금해 했다. 일단 그 집 대문에 들어서면 장사가 이루어지기에 작은 계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장독대 위치란 게 참으로 절묘했다. 오륙 십 평의 대지위에 일이 십 평의 시골집, 그리고 텃밭과 함께 자리한 장독대의 위치(포지션)는 바둑판에서의 포석과 같은 거였다. 햇빛이 잘 들어야 하는데 외부의 부정을 타지 않게 하기 위해 대문간에서 멀어야하고, 부엌과는 가까워야 하면서도 정갈한 자리여야 하는 그야말로 대접받는 자리도 아니고 소외받는 자리도 아닌 그 어떤 ‘사이’에 자리했던 것이다. 그래 나도 나의 삶이 이 사회에서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랬다. 그때 나는 옹기장이를 소망했던 것이 아니라 장독대 위치처럼 그런 삶을 소망했던 것이다.

4 2 , 그릇을 빚으면서 쓰임이 있는 그릇이기를 바라다보니 늘 물대접이 문제였다. 물대접을 올리면 이미 국대접으로 일반화되어 혼란이 생기고, 물잔을 두면 서양식이 되어 어색하다. 그래 물대접과 물잔 ‘사이’를 빚었다. 이름도 그대로 했다. 그래 이 물건 사이다. (이름값을 하느라고 물만 담아내는 게 아니라 손님과 주인사이에서 음료를 담아내기도 하고, 큰 찌개그릇과 개인 사이에서 앞접시로 쓰이기도 한다)

나 돌아가고 싶다. 모든 일의 동기가 되었던 초심을 회복하고 싶고, 그 초심을 이루고 싶다. 또 그릇을 빚는 일 또한 우리의 그릇이 완성된 형태로 정립되었던 조선 중기에서 후기로 넘어가던 시기의 옹기의 역할로 한정시켜 일하고 싶은 거다. 옹기는 역시 장독이다. 나는 그 장독을 한없이 짓고 싶다.

필자 이현배 옹기장은 전라북도 진안에서 ‘손내옹기’를 운영한다. 이메일은 jilba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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