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 INTERVIEW
김란영
나니쇼 수석디자이너 | 34세 | 10년차
KENT UNIV. CERAMIC ART WORKSHOP(OHIO, USA)
경기대학교 도예과 졸업
아름다운 우리 식탁, 거실전(롯데 화랑, 서울)
99목포도예공모전 대한민국도자전(목포도자기엑스포, 목포)
세계도자엑스포 대한민국도자전 특별상(세계도자기엑스포,경기도)
광주비엔날레 아트상품전(가나아트, 서울)
‘공+감’전(공예문화진흥원, 서울)
세계도자기엑스포 ‘나니쇼’ 런칭전(도자기엑스포, 광주)
독립예술제 아티스트벼룩시장전(독립예술제,서울)
제1회 개인전 ‘별-나니를 만나다’전(멀티스페이스 키친, 서울)
KOREAN ARTS 초대전(갤러리쿄, 도쿄)
디자인페스티벌(예술의전당, 서울)
광주디자인프레비엔날레 DESIGN IS COoFF전(비엔날레전시관, 광주)
런던디자이너스블럭 ‘Star of petit prince’전(Familoes, 런던)
도쿄디자이너스불럭 REVOLUTION 1968(UN University, 도쿄)
TOKYO DESIGN FESTA vol.21(TOKYO BIG SIGHT, 도쿄)
사랑애 3인전(인사아트사이드, 서울)
리빙 디자인페어 Graft Gallery 초대전시 ‘The Lightdreams’(COEX,서울)
현재 운영하고 있는 나니쇼에 대한 자세한 소개
나니쇼는 김란영작가가 디자인한 공예상품을 제작, 판매하는 브랜드입니다. 나니쇼는 일상생활을 반영한 공예상품 가치를 소중히 여기며, 흙이 가질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을 생활에 접목시켜 도자기의 새로운 시장과 컨텐츠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김란영작가와 매니저인 박효진실장, 그리고 2명의 제작어시스트로 구성되어 있는 나니쇼는 일산본점과 쌈지길의 직영점, 온라인 나니쇼닷컴을 중심으로 디자인소품 시장에 포진해 상품을 판매하고 있으며 1년에 한두 차례 국내 및 해외전시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나니쇼를 운영하게 된 동기 혹은 계기는
나니쇼는 일상생활을 반영한 공예상품에 대한 고민으로부터 비롯되었습니다. 졸업 후 제작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당시 활동하고 있던 노래 동호회의 친구들에게 10만원씩 투자 받아 제품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생각한 바를 걱정하거나 머뭇거리기보다는 바로 행동으로 옮기는 과감함으로 나니쇼를 구체적으로 만들어갔습니다. 흙이라는 원료로 단지 오브제로써의 작품이 아닌 실제 생활에서 쓰이는 상품을 시도하고, 식기류 뿐 아니라 일상생활 소품으로써의 도자제품을 제작하는데 목적을 두었습니다. 2000년부터 전체적인 기획과 상품 개발이 시작돼 2001년 세계도자기엑스포를 통해 런칭 되었는데, 기존의 도자 장신구와는 다른 새로운 제품으로 소비자들에게 인식되었습니다. 이것은‘First move advantage’라 칭할 수 있을만한 모험적인 시도가 되었습니다. 누구도 하지 않았던 첫 출발로 경쟁업체, 벤치마킹할 대상도 없이 도자기 시장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며 입성하였습니다.
본업의 연봉은? 본업 외에 기타수익이 있다면
연봉은 2400만원입니다. 한 달에 200만원인 셈이며 이 정도면 제 자신에게 특별히 부족함없는 적당한 댓가라고 생각합니다. 나니쇼를 통한 모든 이익은 다시 새로운 상품을 개발하는데 쓰이고 있으며, 모든 책임은 대표인 제가 맡고 있습니다. 나니쇼의 상품판매 이외의 수익은 외부디자인개발, 컨텐츠 컨설팅, 나니쇼 워크샵 등을 통해 얻게 됩니다.
자신의 일에 있어 가장 보람을 느낄 때와 가장 힘들 때는
나니쇼 제품을 가치 있는 상품으로 인정해주는 소비자를 만났을 때와 제대로 된 디자인이라며 칭찬해주는 회사를 만나 협력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때 가장 보람을 느끼며 나니쇼 구성원들의 삶이 나니쇼로 인해 흥미진진해 지는 것을 볼 때 뿌듯합니다. 반면에 공들여 제작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맞는 적당한 댓가를 받지 못하고 팔릴 때와 비용이 부족해 상품개발에 최선으로 주력하지 못할 때 가장 힘듭니다. 또한 디자인과 공예산업에 뒷받침이 되어주지 못하는 사회 환경을 실감할 때 힘듭니다.
나니쇼를 운영해 나가는데 본인에게 꼭 필요한 3가지가 있다면
첫째, 자유로운 정신·둘째, 구성원간의 결속력·셋째, 성실함
새로운 제품을 위한 아이디어는 어떤 방법으로 찾아가는지
새로운 제품을 위한 아이디어는 모든 생활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히 어딜 가서 무엇을 보아야한다는 것은 없습니다. 생활 구석구석 색다른 눈으로 상상력을 펼치다 보면, 좋은 상품이 나오게 된다고 믿습니다. 상상력에는 실용성이 뒷받침 되어야 하며 좋은 상품이 나오기 위해서는 끝까지 상품에 대한 애정과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애정이란, 보살핌이란 무엇이며, 상품을 만들 때 과연 아이디어가 어디서부터 흘러나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을 따져 보는 것부터 시작해서 상품의 포장, 마무리, 사후AS까지 꼼꼼하게 완벽하게 준비하는 자세가 좋은 제품을 탄생시킬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 전공자들을 위한 조언
과연 자신이 얼마나 성실한가를 먼저 따져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또한 자신이 매사에 즐거운 사람인지 판단해 보고, 만약 그렇다면 이 길에 들어서도 무방할 것입니다. 도자기 뿐 아니라 공예를 포함한 디자인, 즉 예술문화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일반인에 비해 갖추어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며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책임감이 필요하며 제작한 상품에 대해서도 제작과정 만큼이나 휴먼스킬과 영업, 마케팅, 경영에 있어서 동일한 노력이 있어야 자신의 이름을 내 건 공방을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
나니쇼의 2007년 계획은 3가지입니다.
첫째, 브랜드 고급화 : 중국에서 밀려오는 OEM의 값싼 디자인소품으로 인해 가격경쟁력이 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 가운데 스페셜 에디션, 고급 부자재 사용 등을 통해 브랜드를 고급화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향후 나니쇼의 제품 객단가는 2만원 정도 상향 조정될 것입니다.
둘째, 2008년 해외페어준비 : 몇년 전부터 시작된 불황은 한국에서 장기전이 될 것 같습니다. 해외 페어 및 전시를 통해 나니쇼 상품들을 국내보다 해외시장에 중점적으로 판매할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셋째, 오프라인매장 확대 : 디자인소품 판매의 온라인시장은 처음에 공예상품을 취급하는 듯 했지만, 현재는 문구 등이 강세로 이어지고 있어 나니쇼만의 독특한 공예상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해 줄 오프라인매장이 절실합니다. 유통망으로 국내의 몇 개 브랜드와의 협력을 통해 오프라인매장 확대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변성주 INTERVIEW
변성주
유리공예업체 아울코리아 대표 | 32세
국민대학교 공예미술학과 졸업
전 장터닷컴 상품마케팀 팀장
전 아크로피아 마케팅 팀장
전 위니아만도 특판 영업기획 팀장
현 아울코리아 대표
아울코리아를 소개 한다면
아울코리아는 투어밸리여행사와 협력한 공예체험여행을 시작으로 급변하는 사회와 더불어 다양해지는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 공예작품과 상품을 개발하고 아이디어 상품을 수입/유통하는 전문 기업입니다. 아울코리아의 사업분야는 유리공예를 중심으로 하는 공예품 및 아이디어 관련 상품을 유통하는 부문과 서비스부문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특히 많은 시간과 정성을 들인 독창적인 유리공예를 알리는데 취지가 있고 더불어 국내 공예산업발전에도 이바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난해에는 2만 여명 규모의 삼성반도체 임직원과 가족들의 유리공방체험을 진행해 도약단계에 들어섰고 싸이월드 타운에서 추천 및 최우수 사이트로 선정돼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리공예 분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지만 앞으로의 전망은 매우 밝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아울의 의미는 함께라는 아우르다의 순우리말로, 아울코리아가 많은 사람들과 유리공예를 아우러져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담은 것입니다.
유통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와 대학재학 당시의 준비와 노력은
도예가로서 성공의 자신감과 노력이 부족했던 저는, 좀 더 나은 진로를 모색하기 위해 선배님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도예가인 한 선배님의 말씀 중 “현실적으로 작가와 유통업체 간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적절한 유통업체를 찾기가 너무 힘들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아이디어 상품 및 공예품의 유통에 대한 마케팅Maketing 지식을 쌓기 시작하였으며, 국내외 온·오프라인의 시장구조 및 유통구조에 대한 실무적인 경험을 좀 더 빨리 쌓기위해 졸업 전 쇼핑몰 MD로 사전취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학부시절에 유리수업이 전공과정에 있어 유리공예에 대한 매력을 일찍이 알게 된 점도 있습니다.
현재 매출과 기타수익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 유리공예품 유통에 대한 매출은 거의 없습니다. 아니, 지금은 손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유리공예의 시장성은 홍보부족으로 아직 미비합니다. 홍보 및 유통사업은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시작한 것으로 장기간의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유리공예상품은 이제 갓 유통을 시작한 단계이고 아이디어 상품은 이를 유지하기 위한 부책으로 상호보완을 해주는 거죠.
유리공예는 유럽,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이미 널리 알려진 공예분야로써 작가들의 작품활동을 통해 창출되는 예술품이나 실생활에 쓰이는 공예품들로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유리공예에 종사하는 작가의 수도 적고 현실적으로 유리공예작품을 유통하는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유리공예라고 하면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콜라병도 유리인데’라고 생각하는 분이 많아서겠죠. 하지만 저는 이러한 인식들을 바꾸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유리공예 체험, 공예체험여행, 방송 및 인터넷사이트관련 홍보 등등이 있겠죠. 체험을 해봐야 이것에 대한 가치를 알 수 있고 그에 대한 작품의 가격 책정부분을 실감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현재의 손실은 향후 더욱 더 나은 발전에 대한 투자이기 때문에 손실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ROLE MODEL이 있다면
현재의 사업상 ROLE MODEL을 찾기가 어렵고 다만 사업경영상의 모델은 있습니다. 처음 공예체험여행으로 업무제휴를 했던 투어밸리 여행사 대표님입니다. 경영노하우뿐만 아니라 지난 1년간의 힘든 싸움에서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신분입니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전공자들에게 조언
첫째로 적성에 맞는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하고 싶은 일과 적성은 같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너무나도 큰 차이가 있습니다.
둘째 나의 전공과 어떻게 접목을 시킬 것인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을 먼저 사용해야합니다. 맨 바닥의 지식으로부터 싸우는 것 보다 알고 있는 지식을 이용하는 것이 빠른 길입니다.
세번째 학창시절과 사회생활은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여야 합니다. 가장 큰 부분은 등록금을 내는 것과 급여를 받는다는 것,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2달씩 있던 것이 하계휴가 3일로 바뀐다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가장 큰 오해입니다. 사회는 보이지 않는 경쟁자들과 시합을 벌이는 경기장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미리 인지하고 준비한다면 사회 초년생으로서 인내와 끈기로 사회에서도 큰 꿈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끝으로 제 좌우명은 비에 젖지 않는 바다입니다. 절대 좌절하지 말아야 할 시점에서 이 말을 떠올리며 용기를 냅니다. 그만큼 앞으로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낙오되지 말라고 전하고 싶네요.
2007년의 계획
사업을 운영하는 사람으로서 수익률을 얼마만큼 내느냐 하는 것이 가장 관건입니다. 좋은 아이템이나 상품을 바로 인지하고 선택해 재빨리 유통을 하고, 판매량을 늘리고 이것을 매출로 이어 상승시키는 단계가 현재의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수익률을 내는 시점이 2~3년 이상으로 넘어가면 그땐 경영이 어려워진다고 봐야죠. 그래서 설립이후의 과정을 거울삼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수익률이 나도록 열심히 뛰어야죠. 솔직히 수익률이 난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2-3년 이내에 수익률을 지속적으로 창출해낼 수 있어야 협력업체들로부터 지원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고 유리공예를 활성화할 수 있는 홍보와 유통도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현재 공예유통에 관한 사업계획은 10~15년 장기계획을 세워둔 상태이고 그중 2008년~2010년 이내에 공예산업 전반적인 유통솔루션 개발이 진행될 계획입니다. 그 솔루션 계획은 앞으로 능력 있는 작가들과 함께 전시회 및 기타 작품의 유통을 위해 손잡고 호흡할 수 있는 win-win 시스템으로 새로운 공예산업발전에 이바지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2007년은 도약의 시기가 되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다양한 업체들과 함께 업무제휴를 맺었고 이를 통해 판로를 보다 넓게 개척해 나갈 것입니다.
앞으로 발빠르게 진행할 수 있는 Global wellbeing idea culture land 건설을 위한 유통업체가 되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이 훈 INTERVIEW
이 훈
미국 미시간 그랜드 밸리 주립대학교 도예과 부교수 | 40세
뉴욕 알프레드 대학원 졸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 7회, 초청강의, 세미나, 워크샵 13회, 개인전 17회, 단체전 다수
현, 미국 미시간 그랜드 밸리 주립대학교 도예과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조교수
간단하게 자기 소개를 한다면
미시간 그랜드 밸리 주립대학교에는 2004년도부터 재직해왔습니다. 2002년 알프레드 대학에서 도자 석사과정을 수료하고 개인전 및 그룹전, 미국내외의 레지던스 프로그램과 퍼포먼스 설치작가로, 아티스트 창작 프로그램 등에 다수 참여해왔습니다.
대학재학 당시 현재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했는지
1995년에 서울산업대학교 도예학과를 졸업하고 진지하게 전업작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개인전이나 그룹전, 큐레이터, 국제적인 워크샵, 그리고 전임강사로서 가르치는 것 등 좋은 경험을 하게 되었죠. 이 시기를 통해 국외로 떠나는 것에 많이 생각했습니다. 더 이상 아트북이나 잡지를 통해서가 아니라 좀 더 넓은 곳에서 현대 예술을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 1997년에 마침내 미국의 여러 프로그램에 지원하는데 용기를 냈습니다. 그때 당시에도 또 다시 학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6개월이 넘도록 모든 상황을 진지한 시각으로 관찰하고, 탐구하면서 여러 프로그램에 지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알프레드 대학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습니다.
알프레드 대학에서의 경험은 흥미로웠지만 꽤나 엄격했습니다. 석사과정은 16명의 학생들과 6명의 교수님들의 상호간 토론하는 수업으로 소중한 경험 중의 하나입니다. 알프레드대학에 있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싶었기 때문에 교수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하였습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가하는 동안 전문적인 작가 양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베미스 센터The Bemis Center for Contemporary, Omaha, Nebraska의 전적인 후원으로 두 번의 개인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역할에 대한 이해와 새로운 의문은 개인적으로 비쥬얼적인 향상으로 이어졌습니다.
레지던스가 끝나갈 무럽, 비자문제를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이것은 곧 미국에 계속 머물 것인지 아니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미국에서 제 분야에 부합하는 포지션을 온종일 찾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교수가 되기까지는 레지던스 프로그램 또는 전시에 지원하는 것보다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알프레드 동문들의 도움으로 미쇼리 캔사스Kansas City, Missouri 전문대학의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서 포지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교수로서의 포지션은 찾았지만 전문적인 작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기회 또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하면서 가르치느냐 또는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포기하느냐에 대한 부분은 차츰 학생들과 상호교류를 통해 풀리게 되었습니다. 일년동안 학교에서 머물면서 도예 전공 교육자를 위한 새로운 지원서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30여 번 이상의 지원서 제출과 15번의 인터뷰를 통해 마침내 3곳에서 기회를 얻는 행운이 오게 되었습니다. 결국 저는 그랜드 밸리 주립 대학교의 도예과 부교수의 포지션을 선택하게 되었죠.
한국대학과 미국 대학의 도예교육을 비교한다면
한국의 학생들은 대부분 비슷한 커리큘럼을 가집니다. 특히 도예과는 말입니다. 미국의 대학 시스템 내에서 운영되는 도예과 커리큘럼은 다릅니다. 미국 내에는 졸업생과 비졸업생의 레벨로 나뉘어진 소수의 예술학교들이 있습니다.
첫째. College of Ceramics:이것은 학사(BFA)와 석사(MFA) 학위자에게 해당하는 주립대학교입니다. 대부분 도자 예술 뿐만 아니라 공학인 주요 과정에 포커스를 맞춥니다. 순수예술과 공학을 졸업함으로써 학생들은 매달 지원금을 비롯한 장학금을 제공받을 수 있습니다. 알프레드 도예과가 좋은 예입니다.
두 번째. Academy of Arts & Art Institute:일반적으로 이 프로그램은 학사(4years)와 석사(2years) 학위자들에게만 제공됩니다. 크랜브룩 예술 아카데미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 번째. University & College:대부분의 국립 및 사립 대학이나 전문대학들은 이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전문대학보다 4년제 대학이 규모가 크며 두 가지의 다른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데 순수미술 프로그램과 교양수업의 차이입니다.
미술대학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1학년까지 그들의 전공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기초적인 1학년 단계가 끝나면 미디어뿐만 아니라 다양한 예술 영역을 접하게 됩니다. 궁극적으로 몇몇 학생에게는 복수전공을 연계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몇몇 대학이 얼마 전부터 이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 예술학과에 재학중인 학생들의 경향은 개인적인 미디어를 통해 다른 영역과 비교하며 연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학생들에게 어떤 전공이나 중점부분을 요구하지 않고 그들이 흥미로워 하는 예술분야를 선택할 수 있게 합니다. 예를 들어 도예분야 안에서 핸드 빌링이나 코일링의 입문보다 재료로써의 흙을 현대적인 감각에 맞게 표현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몇몇 한국의 대학에서 앞으로 비슷한 프로그램을 발전시킬 계획이라면 이같은 교육시스템을 관찰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자신의 일에 있어 가장 보람을 느낄 때와 힘든 때는
교육자로서 저는 사회의 우수한 일원이 되는 학생들을 돕는 것을 통해 만족과 기쁨을 얻습니다. 반면에 작가로서, 제 자신의 작업을 위한 시간을 갖는 것에서 종종 어려움을 느낍니다. 제 작업은 시간과 특정한 장소를 필요로 합니다. 그것이 유별나게 도전하는 작가로 인식되도록 하는 것 같습니다.
본업의 연봉은? 본업 외에 기타수익이 있다면
교수로서 월급은 $3000,00(280만원)에서 $7000,00(650만원)까지 학교의 유형에 따라 달라집니다. 추가적인 수입은 초청작가의 워크샵과 강의에 대한 사례금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종종 시간작업은 학교나 정부를 통해 지원되는 보조금으로 부분적이나 전체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기도 합니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전공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예술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예술의 의미나 의의에 대한 과정을 필수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반면에 예술은 단지 학구적인 입증을 요구하는, 즉 눈에 보이는 고고학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더욱 공부하며 탐구하고 작업하는 것은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의지가 있는 누구에게든 말하고 싶습니다. 공부를 마친 후에, 공부하면서 쌓아온 지식, 경험, 관계들을 사용하며 어려운 길을 기쁘게 찾으라고 말입니다. 유학생들이 특별한 이유없이 단지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몰라서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얘기를 종종 들을 때면 매우 안타깝습니다. 그것이 매우 어렵고 모든 힘을 고갈시킬 정도로 치열한 과정임을 이해합니다. 그러나 분명 그건 가능한 일이고 자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가치있는 일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College Art Association(CAA) 잡 포스팅job posting에 따르면 조교수, 초빙교수, 초대작가, 전문대에서 4년제 대학까지의 부교수를 유지하기 위한 방책으로 매년 예술대학교수 포지션을 최소 15~20번 정도 오픈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한 한국유학생들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2007년의 계획은
이 부분은 일년 계획으로 대학에 보고한 프로젝트로 대신하겠습니다.
첫째. Excellent Teaching-도예과 교수로서, 독립적인 연구뿐만 아니라 학부생들의 졸업전시를 위한 자문과 매학기 3개의 클래스를 맡게 됩니다.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서는, 도예과 커리큘럼, 스튜디오와 시설, 재료 향상 및 유지, 기술자와 전임강사, 작업하는 학생들을 감독하고 평가합니다. 또한 인턴이나 전시, 초청작가 워크샵, NCECA나 Chicago SOFA와 같은 컨퍼런스conference 필드 여행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둘째. Professional Activity-이번 여름에는 중국 상해의
셋째. University & community Service-아트Art, 디자인Design, 고대 그리스 로마The Classics Department 분야의 공동 연구 프로젝트로서 많은 학문 분야와 관계가 있는 명성있는 수업을 강의할 계획입니다. 참가자들은 학술적으로 연구하며 디자인하고 고대 그리스 도기류의 병vase의 원형을 근거로 창작하게 됩니다. 저는 세라믹 프로그램 게스트로 참가하게 됩니다. 특히 아티스트의 관점과 상반적인 전문가의 학과와 관한 내용이 될 것입니다. 또한 오는 5월에 국제적인 세라믹 아티스트들과 함께 전시와 워크샵을 한국에서 선보이기로 했습니다. 본 대학 아트 갤러리 디렉터인 헨리 매써Henry Mathews와 함께 2008년 가을에는 한국 도예작가를 초대해 그들이 머무는 동안 작품을 만들고 학생들과 상호교류하며 개인적으로 전시를 가지도록 도와줄 계획입니다.
임미선 INTERVIEW
임미선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학예실장 | 40세 | 8년차
홍익대학교, 도예과 졸업
홍익대학교 동 대학원, 공예유리과 졸업, 경기미술대전, 특별상
홍익대학교 부설 도예연구소 연구원
The Oriana Prize for the Applied Arts 98'
영국센트럴 세인트마틴미술대학 강사Central St,Martins College of Art & Design
영국왕립미술대학원Royal Colleage of Art 졸업, 도예유리과 펠로우
캐나다 밴프아트센터,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Artist in Residency)
대통령표창
재단법인 세계도자엑스포 전시과장
재단법인 세계도자엑스포 홍보팀장
현재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학예실장
홍익대학교 도예유리과 겸임교수
현 직장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에 대한 소개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은 그 명칭에서 설립목적과 운영방향을 모두 설명하고 있습니다. 클레이아크 즉, 건축도자를 전문으로 하는 경상남도 김해에 설립된 미술관입니다. 아시다시피 세계 최초의 건축도자 전문 미술관이며, 지난 2006년 3월 24일에 개관하여 현재까지 기획전 2회, 특별전 4회, 국제건축도자학술회의 1회, 워크숍 1회 등을 개최하였습니다. 저희 미술관의 가장 큰 특징은 ‘새로움’입니다. 전시기획에서부터 시설 및 조직운영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도 기존의 개념이나 형식을 따르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은 김해토기의 발상지인 김해지역이 미래의 도자산업을 이끌 ‘건축도자 발전’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더불어 그 내용과 업적들을 세계와 공유하며 현대의 도시문화와 산업예술을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데 있습니다. 전시관, 연수관, 체험관, 수장고, 매표소 등의 주요시설과 미술관 아트 숍, 카페테리아, 도자점(세미나실), 야외매점 등의 부대시설 그리고 클레이아크의 상징 조형물인 ‘클레이아크 타워’등의 건축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전체면적은 42,162㎡입니다. 각각의 시설들은 전시, 학술, 체험, 교육, 창작연수, 문화이벤트 및 관람편의 등 미술관의 다양한 프로그램과 쇼핑, 음료, 식사, 물품대여 등 관람객들에게 편의제공을 위한 다양한 공간과 시설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예연구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클레이아크 김해 미술관 학예연구실장으로서 제가 맡고 있는 업무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전시·학술 기획, 진행 및 총괄
둘째. 미술 및 도자체험 교육 프로그램 기획, 총괄
셋째. 미술관 및 미술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사업의 홍보·마케팅 기획, 총괄
넷째. 각종 문화이벤트 및 창작연수프로그램 등 기획, 총괄
다섯째. 기타업무(사업 및 예산 계획수립, 의회 등 업무보고, 대외협력)
미술관에서 추진하고 있는 각종 사업을 총괄하여 책임지고 있는 자리로서, 전시 및 학술연구 사업을 중심으로 기타사업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따라, 학예연구실장이라는 자리는 그 역할과 임무가 각기 다르리라 생각됩니다. 주어진 여건(설립목적, 운영방향, 조직구조, 시설, 예산 등)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학예연구실장이라는 직업은 관련분야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예술행정 경험과 대내외적인 네트워크 등이 요구되는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이 직업을 선택하게 된 동기나 계기는
도예과를 졸업하고 처음부터 이 직업을 선택하려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저의 경우에는, 우연히 이 길에 들어섰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홍익대 대학원 시절, 부설 도예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던 경험이 아마도 이 길을 걷게 된 최초의 동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인 계기는 1998년 영국유학을 마치고 1999년 캐나다 밴프 아트센터에서 아티스트 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한 다음 귀국할 때였습니다. 당시, 도자기엑스포 조직위원회(현, 재단법인 세계도자기엑스포)에서 ‘2001 세계도자기엑스포’ 행사를 앞두고 ‘세계도자문명전-서양부문’의 외국인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를 진행할 사람을 찾고 있던 중 도예를 전공하고 영어가 가능하다는 이유로 제가 선택되었습니다. 이 전시를 진행하면서 IAC 회장과 스위스국립박물관 큐레이터를 역임하신 루돌프 슈니더 박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분에게서 전시의 A, B, C를 배웠습니다. 정말 좋은 전시를 훌륭한 선생님께 배운 뒤 이 일에 대한 즐거움과 어려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를 지망하던 도예과 졸업생이 큐레이터라는 직업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 직접적인 계기였습니다.
본업의 연봉은? 본업 외에 기타수익이 있다면
연봉은 5000만원입니다. 그 외의 수익은 대학의 시간 강사료와 원고료입니다.
대학재학 당시 현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했는지
대학을 다니던 당시에는 작가로서의 꿈을 키우고 있었기 때문에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대해 알지 못했었고 따라서 그에 대한 준비는 전혀 한 바가 없습니다. 다만 이론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대학원에서 석사논문을 작품논문이 아닌 연구논문을 쓴 것이 노력이라면 노력이라고 할까요? 다만 지금에 와서 지난 경험을 비춰본다면 작업에 대한 작가들의 생각과 태도를 조금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고, 그리고 이 분야에 대한 남다른 애정을 가진 것이 현재 이 분야의 전시기획자로서 일을 진행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일에 있어 가장 보람을 느낄 때와 가장 힘든 때는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전시참여 작가들이 만족해 할 때와 전시준비를 하면서 작가와 협력기관 등으로부터 적극적인 협조를 받을 때입니다. 그리고 기획한 전시나 학술행사에 대해 좋은 평을 받을 때 보람을 느낍니다.
반면에 가장 힘든 때는 행정기관의 지나친 간섭을 받을 때나 불필요한 행정적인 절차로 인해 어려움을 겪을 때, 그리고 기간, 예산이 부족한 사업을 진행할 때와 관계 기관 및 참여 작가들의 협조가 잘 이루어지지 않을 때입니다.
학예 연구사에게 가장 요구되는 자질은
우선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애정, 끈기)이 필요합니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좋아해서 하는 일은 플러스 알파의 힘이 나와 일의 결과도 대부분 만족스럽게 마무리되는 듯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지적인 호기심 또는 학문적인 관심이라고 할까요? 결국 ‘전시’라는 것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인데 어떻게 보여 줄 것인가가 항상 문제입니다. 알고 있는 내용을, 혹은 모르는 지식을 사람들과 함께 나눈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기 때문에 항상 연구하고 학습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속에 새로운 해석도 나오고, 발전된 견해도 피력하고, 더 많은 정보도 제공하고, 공유하는 모든 일이 전시의 중요한 역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강인한 체력을 요구하고 싶습니다. 전시를 기획하여 진행하고 마무리할 때까지 정신적인 에너지뿐만 아니라 육체적인 에너지의 소비도 만만치 않습니다. 전시는 책상 앞에 앉아 생각하는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작가의 작업실로, 전시장으로, 연출업체로, 인쇄소 등으로 뛰어 다니는 현장의 일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자질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 전공자들을 위한 조언
우선 본인들이 열정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던 시간을 생각해보고 현재 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을 존중하는 마음과 태도를 지녔으면 합니다. 좋은 작품을 만드는 예술가들이 있어야 좋은 전시를 기획하는 큐레이터도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더불어 이 분야에 대한 애정을 가졌으면 합니다. 그 기초위에 어려움도 극복하고 알아가는 즐거움도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지금 현재는 올 4월 24일 오픈 예정인 <아프리카AFRICAN SPIRIT>전 준비를 착실히 하는 것입니다. 기획전인 <세바스챤 슈티제의 아프리카 흙집 사진>전과 특별전 <흙집 퍼포먼스>전 그리고 <아프리칸 콜렉션>전이 동시에 오픈을 하기 때문에 바쁩니다. 그리고 조금 먼 계획이기는 하지만 번역서를 내고 싶습니다. 아직은 영어가 짧아서 감히 엄두를 못 내고 있습니다만 꼭 소개하고 싶은 책이 있어 앞으로 욕심을 내볼까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좋은 전시를 기획하고 멋진 작가들을 소개하다 보면 언젠가 저 같은 아마추어가 전문 큐레이터가 되어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장금일 INTERVIEW
장금일
핸드페인팅 체인점 세라워크 대표 | 42세
홍익대학교 도예학과, 동대학원 졸업
(주)오덱 기술연구소 재직
현 세라워크 대표
세라워크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핸드페인팅 분야를 선택한 동기
세라워크는 1998년부터 시작했지만 처음부터 핸드페인팅으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도자기 기술용역이라고 해야 할까요... 도자기나 타일, 전사지를 업체에 공급하는 일부터 출발했었습니다. 대학졸업 후 2년가량 서울 성산동에 공방을 운영했는데 생계조차 해결하기 어려웠었습니다. 일반들이 사용할 수 있는 산업도자의 대중적인 코드를 원했어요. 그때부터 산업도자기를 개인작업으로 가능케 하는 방법을 고민해왔구요.
이후에 동양화학 계열의 오덱 기술연구소에서 5년간 근무하며 도자기·타일 관련 장식재료를 연구하였습니다. 독일·이탈리아 등에서 세미나와 연수를 다니면서 선진 도자기 기술을 습득하는 한편 국내 산업도자기 업체를 상대로 기술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산업자기의 생산과 유통 등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퇴직 후 현장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세라워크의 핵심 노하우인 도자전용물감 세라컬러를 개발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도자기 업계가 핸드페인팅 도자기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는 벽에 먼저 부딪혀야 했습니다. 흙으로 직접 도자기를 빚지 않은 채 초벌 도자기만 가져다 그림을 그려 넣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응이었죠. 그래서 단순히 공급과 판매만 하기에는 곤란했고 이것에 맞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했습니다. 장식재료를 수입하고 판매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사용자들에게 쓰일 수 있게끔 기술까지 공급하는 마케팅 전략을 세운 것입니다.
초벌이전의 성형 부분이 남성적이라면 장식 부분은 여성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예가 출신의 80%가 여성인 점을 감안해 여성층을 타켓으로 우리 도예계에서 멀어졌던 부분을 흡수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착안했습니다. 또한 이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제대로 알고 있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백화점 및 페어, 해외전시 등에 적극 참여하면서 페인팅을 알리기 위한 홍보에 열중해왔습니다. 현재 핸드페인팅은 하나의 유행이 아니라 도예계의 새로운 장르로 인정받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창업후 4년 만에 홍대 본점을 오픈하고 지금은 전국에 프랜차이즈를 형성했습니다. 제작, 전시·판매, 기획·개발, 체험학습, 교육 등 복합매장의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세라워크의 특징입니다.
대학재학 당시 현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했는지
재학당시나 졸업 후에 무엇을 해야하는지 자신에게 끊임없이 의문을 가지면서 졸업 후에 어떠한 목표없이는 대학원 진학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세라워크를 본격적으로 운영하면서 대학원에 진학한 후 세라워크를 보다 전문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했습니다. 공방이 하청업체라면 세라워크는 멀티업체입니다. 대중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상설전시장의 개념과 가르치는 모델로써의 교육, 샵과 공방에 인테리어 개념을 더한 것입니다. 도자기는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닙니다. 일종의 장치산업인거죠.
도예출신인들이 도예분야를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이야기입니다. 공방을 혼자 운영하기에는 수익이 나질 않아 혼자 운영하는데 어려움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태리 파엔자의 시스템처럼 전문화되면 대학에서 배출되는 도예종사자들의 수요를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초벌 이전의 성형부분을 줄이기만 해도 공간개념이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자신의 일에 있어 가장 보람을 느낄 때와 힘든 때는
핸드페인팅 분야는 익숙하지 않아 막연하게 생각하는 다른 도예전공 출신자들의 모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해 자신의 직업에 대한 목표와 방향을 정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때 보람을 느끼지 않을까요. 힘든 점은... 지속적인 의지가 필요하지만 완성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끊임없는 보완을 통해 완성해가야겠죠.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전공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본인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간접경험을 빌려 경험하지 못한 것을 믿지 않습니까. 머릿속에만 있다고 해서 현실화되어 이루어지진 않습니다. 다뤄보면서 느껴야 합니다. 끊임없는 행위 속에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하다보면 수많은 방향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작업량이 뒷받침되어야 하고 신념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모든 과정엔 어려움이 있지만 대부분 이러한 어려움을 두려움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떨쳐야 합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세라워크를 통해 보다 나은 인재들이 계속 배출된다면 작가적으로 수준을 끌어올려 고가의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또 다른 마케팅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작가브랜드로 공급하기 위해 이력과 경력을 갖추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즉 생산, 이익, 판매, 관리, 교육을 통해 작가브랜드로 판매할 수 있는 개념으로 이끌어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핸드페인팅의 고지를 점령한 사람이 없기 때문에 지금이 기회인 것입니다. 대중과 가장 친숙한 사각의 식탁 안에서 쓰이기 위해 승부를 내야만 합니다.
나보다는 우리가 무언가 되어야 합니다. 문화의 트렌드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수요와 규모를 갖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싸이월드 또한 많은 사람들이 찾으면서 크게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도자분야는 힘들지만 안정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끊임없는 시장개척을 통한 것이 이제야 성과를 드러냈다고 봅니다. 중국시장이 개방된다고 해서 혹자는 한국의 도예시장이 망할 것이라고 했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시장은 확대되면서 더 많이 생활도자가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본 것이죠.
현재 도자시장은 위축돼 있어 팔고사는 행위가 시급히 개선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목표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움직이는 것과 흥행의 시세에 따라 움직이는 것에 차별성을 둬야 합니다. 특별한 연출이 필요한 것이죠. 앞으로 제품에 차별성을 갖고 새로운 모습으로 나아갈 계획입니다.
최재훈 INTERVIEW
최재훈
일본 (주)이낙스 프로덕트디자이너 | 42세 | 15년차
아이치 현립 예술대학 대학원 미술연구과 디자인 전공수료, 석사(일본)
제6회 국제도자기전 MINO도자기디자인부문 그랑프리
제6회 국제도자기전 MINO도자기디자인부문 그랑프리 수상자 전
-기후현 현대도예미술관(일본, 타지미시)
제2회 세계도자비엔날레 생활도자부문 동상
일본의 도자기디자인전<실용과 미의 프로덕트>전 초대출품
-아이치현도자자료관(일본, 세토시)
도자신감각<최재훈전>-세계의 타일박물관(일본, 토코나메시)
제4회 국제공모전 <NAGOYA DESIGN DO!> 심사의원
제3회 세계도자비엔날레 생활도자부문 특별상
1994-1999, 2001, 2002, 2006 일본 GOOD DESIGN상 수상
세토시 신세기공예관 초대기획전 <최재훈, 이도마사노부 2인전>(일본, 세토시)
현, 일본 도자기 디자인 협회 부이사장
간단한 자기소개를 한다면
일에 있어서 제 자신은 세 가지의 얼굴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기업의 디자이너로서, 작품 활동을 하는 개인작가로서 그리고 한일디자인교류의 가교역활을 하는 자로서의 모습입니다.
현재 회사에서는 INAX 디자인언어개발과 선진디자인, 환경친화적인sustainable 디자인 스타일 프로젝트 등 INAX가 추구할 가치와 그에 따른 상품개발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입사 후 9년간 주택 및 비주택의 설비기기 디자인 개발에 종사하며 사업부의 상품개발의 주축으로 현장경험을 겸비해왔습니다. 사업부와의 지속적인 협력을 통해 제품개발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현재 INAX디자이너로 활동 중인데, INAX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한다면
일본의 6대 도요지로도 유명한 토코나메시Tokoname에 본사를 둔 INAX는 타일 건재, 욕실, 화장실, 부엌 등의 종합주택설비기기와 사업개발 등을 사업영역으로 하는 기업으로써 1924년에 창업되었습니다. 현재 직원 11,781명과 함께 일하고 있으며 일본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베트남 등 해외사업도 전개하고 있습니다.
고령사회, 지구환경, 주택의 장수명화, 건강, 쾌적을 축으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특히 대외적으로 친환경에 대한 회사활동이 크게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합니다. 기업은 경제기관임과 동시에 문화기관이여야 한다는 이념으로 갤러리 및 출판사업과 더불어 지난해 10월에는 체험형의 뮤지엄인 <INAX라이브뮤지엄>을 오픈하였습니다. 세계의 타일박물관, 가마가 있는 광장 자료관, 타일라보 등 문화사업을 겸비한 종합기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INAX에 입사하게 된 계기는
계명대학교 산업미술학과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한 후 자동차디자이너를 꿈꾸며 아이치현립예술대학으로 유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원 진학 후에 세계적인 도자기디자이너 모리 마사히로 선생님과의 만남으로 제 인생의 큰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모리선생님의 수업을 통해 보다 생활에 밀접한 도자기디자인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그 후 2년간을 선생님께 지도를 받았습니다. 대학원을 졸업할 시기에는 공업디자이너로서 현장실무경험이 절대적으로 뒷받침 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모리선생님과 상의해 주식회사 INAX의 기업실습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프레젠테이션 결과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정사원으로 채용되는 기쁨과 보람을 얻었습니다. 모든 것이 모리선생님과의 만남에서 비롯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대학 재학당시 현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했는지
대학에서 공업디자인을 전공하였고 대학원에서는 도자기디자인을 전공하였습니다. 현재 INAX에서 화장실, 세면, 수전금구 등의 설비기기 디자인, 그리고 부엌 등의 주택기기 디자인, 선진디자인, 각종 전시회의 전시계획 등 다방면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공업디자인과 도자기디자인 이 두 가지를 전공한 것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결국 기업 내에서는 제품디자이너 겸 디자인디렉터로, 개인적으로는 도자작품을 제안하는 작가로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두가지 전공이 기초가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문가란 경험과 실적을 갖출 때 전문가가 되는 것입니다. 대학당시에는 그저경험과 지식, 실적을 조금씩 축적하는 노력으로 주어진 과제에 충실하며 과제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달성하기 위해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표현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했던 것 같습니다.
본업의 연봉은? 본업이외의 기타수익이 있다면
회사의 연봉은 약700만엔(5,400만원) 정도이며 기타수익으로는 공모전의 상금이나 디자인세미나 강사료, 작품판매 등의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게 자주 있는 것은 아닙니다.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3가지를 고른다면
사랑하는 마음·통찰력·센스
디자이너에게 중요한 덕목은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정직한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의 삶, 내 가족의 삶, 나아가서 이웃의 삶을 생각한다면 반드시 사랑이 담기고 성실이 담긴 디자인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디자인한 것은 애착을 갖게 하고 우리의 삶을 감동시키며 오래 기억될 것이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할 것입니다. 또한 디자이너는 많은 정보와 조건 속에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통찰력이 필요한 것이지요. 즉, 자신의 디자인이 사용자들의 생활에 어떤 공헌을 할 수 있을까를 꿰뚫어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센스는 표현하는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생각의 방법과 착안에 있어서도 역시 센스가 필요합니다. 언제나 다양한 각도로 사고하고 제안할 때 새로움이 창출된다고 봅니다. 그러한 새로움을 최고의 센스있는 표현으로 구현화하는 능력이 중요하겠지요.
디자인을 하는데 있어서 영향을 주는 것은 무엇인지, 또한 새로운 아이템을 위한 뉴스는 어떤 경로로 접하는지
삶을 사는 사람들의 생활입니다. 그 사람들 또는 그 사회, 그 나라의 문화적 배경과 추구하는 가치관을 심도있는 분석과 정확한 파악을 통해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결정케 하는 중요한 요인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디자인은 그것만으로 해결되지 않습니다. 관련되는 정보와 가치제공을 위한 기술과 생산력, 프로모션 등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회사에서는 관련 사업의 최신 정보 등을 언제나 열람할 수 있어 자주 찾고 있습니다. 물론 쇼룸이나 국제전시회, 인터넷정보 등 많은 매체를 통해서 접하기도 합니다. 상품의 새로운 아이템은 결국 생활자를 통해서 발견됩니다.
제 작품의 아이템은 위와 같은 전 프로세스를 밟을 필요가 없을 경우가 많습니다. 오히려 제가 원하고 좋아하는 표현을 생활 속에서 또는 자연 속에서의 발견하고 구체화합니다. 그래서 언제나 사물을 보더라도 제가 가진 감성과 경험을 접목시켜 재해석하고 그것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일에 가장 보람을 느낄 때와 힘든 때는 언제인지
자신의 존재가치를 인식하고 수행, 평가를 받았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낍니다. 회사 업무에 있어서는 자신의 디자인이 생활자의 삶에 공헌하고 그들로부터 감동의 말을 들을 때가 가장 보람이 큽니다. 개인작가로서는 작품을 통해 새로운 계기와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을 때가 아닐까요. 제6회 국제도자기전 미노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던 제 작품은 당시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잘 융합하고 현 시대의 첨단 과학의 기술을 도자 작품에 잘 접목시킴으로써 새로운 도자기디자인의 방향성을 제시하였다는 평을 받은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힘든 때라면 실내 디자인 디렉터로서 자기 적성과 특성에 맞지 않은 일, 또는 하기 싫은 일 등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수행해야 할 때 입니다. 그런 경우에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생각을 전환시키고 합리적으로 진행하고자 많은 노력을 합니다.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 주는 것이 될 것이니까요.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 전공자들에게 조언을 해 준다면
디자인계든 작가의 진로를 택하든 많은 경험을 하시길 원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전과 목표를 세우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근성을 가지고 탐구하길 바랍니다. 다른 분야의 전문인들과의 교류도 좋은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경험이 자기 안에서 관계성을 가지고 자신의 언어가 되고 표현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최상의 표현을 얻기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선입관을 갖고 판단하지 말고 자유로이 발상하고 가치 제안의 폭을 넓히시기 바랍니다. 도자기의 테크닉과 기술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나 생활을 읽는 눈을 가질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어떤 디자이너가 되길 원하는지?
기업이 문화기관임을 밝히고 있는 INAX의 기업마인드 하에 회사업무와 개인의 작가 활동을 병행하며 상호효과를 창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자 합니다.
실내디자이너로서는, 생활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생활자에게 제공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업무도 그러하지만 장르를 넘어서 다채로운 영역의 디자인연출이 가능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습니다.
작품활동에 있어서는 작품의 범주를 확대하여 주택뿐만 아니라 마을 또는 공공장소의 오브제, 기념물monument 등에도 도전하고 있습니다. 이 역시 생활과의 관계성을 확대하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도자디자인교류를 통한 상호발전을 위해 가교적 역활을 꾸준히 이어나가며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를 통해 서로의 정체성을 갖고 공생할 수 있길 원합니다.
홍종숙 INTERVIEW
홍종숙
푸드 데코레이터(식공간 연출가) | 38세
서울산업대학교 도예학과 학사. 석사 수료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테이블 데코레이션과정 수료
Ecole des Fleuristes de Paris 수료
세종대학교 일반 대학원 조리외식 경영학과 박사과정
Table&Flower Deco 전
한국 식탁전 전국순회전
한국공예가협회 크리스마스전시(세계도자기엑스포 이천)
한일 수교 40주년 기념 한일 식탁교류전(일본 교토 니조성)
토야 테이블 웨어 페스티벌 동상 수상
일본 이타미 도예공모전 입상
한국 뉴질랜드 교류전
대한민국 산업 디자인전 입상
여주대학 푸드코디네이션과 겸임교수
Foodndish 실장
현재 여주대교수로서 학생들에게 강의하고 있는 내용은
현재 여주대학에서 테이블코디네이션과 식공간 연출, 전시기획 등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테이블 코디네이션은 식공간을 목적과 기능에 맞게 합당한 공간으로 기획, 디자인, 연출, 조정하는 것으로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이끌어, 인간의 오감에 유쾌한 자극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이 직업을 갖게 된 이유는
제가 좋아하는 도자기, 요리, 공간연출, 꽃꽂이 등을 공부하다보니 현재 이 직업을 갖게 되었습니다. 처음 테이블코디네이션 공부를 시작 할 때만 해도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대학원 재학시절 음식 자격증을 다섯 개나 딸 정도로 워낙 음식에 관심이 많이 있었고 제가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고 테이블 세팅을 하고 공간연출을 해서 전시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산업대학교 대학원 도예석사 과정과 숙명여자대학 테이블 데코레이션과정을 동시에 같이 공부하며 푸드 데코레이터로 준비되었던 것 같습니다. 식공간 연출은 생활에서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생활의 비타민 같은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식문화에 있어서 매일 제대로 갖추어 놓고 먹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번쯤 시도해 봄으로써 한층 업그레이드 된 식문화를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준비된 음식뿐 아니라 갖춰진 테이블 셋팅으로 인해서 훨씬 더 풍성한 식사시간을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현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 어떤 준비와 노력을 했는지
도자기는 전공이었던 까닭에 무엇보다 열정을 가지고 작업했고, 음식은 어렸을 때부터 항상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대학원 재학 시절 한식, 양식, 일식, 제과, 제빵 등 다양한 종류의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도예학과를 졸업한 후 숙명여자대학교 디자인대학원 테이블 데코레이션 과정을 수료하고 테이블데코에 필요한 다양하고 폭 넓은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 파리에서 꽂꽂이과정 Ecole des Fleuristes de Paris을 수료했습니다. 현재는 조금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자 세종대 주류외식경영학과 박사과정에 있습니다.
본업의 연봉은? 본업 외에 기타수익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정확한 액수를 말하기 어렵습니다. 강의 외에는 프리랜서로 일하기 때문에 고정적이지 않습니다. 때로 외부강의를 하기도 하고 외식업체 컨설팅 일을 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일에 있어 가장 보람을 느낄 때와 힘들 때는 언제인지
아무래도 가르치는 직업이다 보니 학생들과 함께 할 때 보람을 느낍니다. 제가 가르친 것을 이해하고 자신의 아이디어로 디자인해 오는 것을 보면 마음까지 뿌듯합니다. 푸드 데코레이션을 가르치고 있지만 학생들이 음식뿐만 아닐 음식을 담는 식기, 그릇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함께 공부하고 토야 테이블 페스티벌에 참여해 좋은 결과를 얻어내기도 했는데 이 때 참 보람있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빈 공간에 제 디자인 컨셉으로 공간이 하나하나 채워질 때 보람을 느낍니다. 물론 그렇게 하기까지 많은 고민으로 씨름을 하지만요. 가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내 자신이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낄 때 힘이 듭니다. 부족함을 느끼기에 더욱 열심히 공부하고자 합니다.
푸드 데코레이터에게 꼭 필요한 3가지를 고른다면
성실과 인내와 창의적인 감각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떤 분야에서든 자신이 속한 조직에서 성실은 기본입니다. 그리고 어떤 자리에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쉽게 해내기란 어렵습니다. 따라서 인내와 노력은 꼭 필요한 요소입니다. 본인이 재미있는 일을 하다보면 금방 시간이 지나가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 까닭에 저는 자신이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업할 때 새로운 아이템을 발견하는 방법은
어떤 컨셉의 주제가 정해지고 그 주제에 맞춰 아이디어를 내야 할 때 책이나 자료 수집을 통해 발견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자료 수집한 것을 통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꿈에서도 보이던데요. 그리고 무엇인가에 대해 몰두해서 생각을 많이 하는 편입니다. 예전에 한번은 운전중에 생각에 잠겨 있다가 사고가 날 뻔한 적도 있습니다. 꿈에서 고민하고 생각한 내용들이 나타날 정도로 깊이 생각합니다. 꿈에서 나타나는 이미지들을 가지고 컨셉을 잡아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 전공자들을 위한 조언
먼저 자료조사를 통해 정말 자신이 좋아하고 쉽게 포기 하지 않을 수 있는 일인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특히 학교를 졸업하고 직업으로 이 일을 하게 되는 경우 경제적인 부분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은 아무리 오래해도 지루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노력하면 어느 순간 본인이 바라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남들이 나를 바라보기도 하더라구요. 또한 현재 학부에서 도예를 전공하면서 그릇의 쓰임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 했으면 좋겠습니다. 손잡이나 전 부분 등 쓰임에 따라 조금만 신경을 써도 더 편하고 쓰임새 있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으로써의 그릇이 ‘용’의 의미와 별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문화적인 부분으로 접근하며 공부해야 하는데 이것은 그릇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베이스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민족인지, 우리의 식문화는 어떠했는지, 임진왜란이전과 이후의 도자기 발달은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가다 보면 우리 민족의 독특하고 지혜로운 식문화을 비롯해 민족의 정체성까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 것이 비록 많이 남아있지 않아서 아쉽기도 하지만 좋은 것은 취해서 현대에도 지혜롭게 접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들은 대부분 자기만의 것을 구축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욱 열린 마음으로 서로간의 연합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어떤 푸드 데코레이터가 되기 원하는지.
3월 코엑스에서 열리는 리빙페어에 Foodndish라는 이름으로 참여할 예정으로 현재 준비 중에 있습니다. Foodndish는 그릇을 제작하는 작가들과 그릇을 사용하는 외식업체들을 연결해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Foodndish는 백소연, 라기환, 문지영씨를 포함한 7~8명의 작가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 도자기 공부를 시작으로 음식, 공간, 외식, 경영 까지 점점 폭을 넓혀서 공부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대학 재학시 은사님께서 동일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 외에 타분야의 다양한 전문인을 많이 만나보라고 하셨기에 조리장, 인테리어 전문가, 외식경영자 등 여러 전문인과 만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 가운데 개인적으로 그릇을 제작하는 작가 뿐 아니라 그릇을 사용하는 외식 관계자들도 만족해 하는 제대로 된 도자 식기의 필요성과 절실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가와 외식업체간의 중간 역할을 제가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계획을 위해서 지금도 공부하고 있고 점차 일을 진행해 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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