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 Review / 성 석 진
까치호랑
이를 투영한 상상적 귀향
호랑이는 본디 무서운 짐승이지만 인간의 효행을 돕거나 인간의 도움을 받으면 은혜를 갚고, 성묘하는 효자를 등에 실어 나르거나 시묘살이하는 효자를 지킨다. 또한 은혜를 갚기 위해 좋은 묏자리를 찾아준다는 속신도 있다.
성석진의 호랑이는 이런 속설에 나오는 친근한 듯 해학스러운 표정을 가지고 있다. 지난 2월 아름다운 차 박물관에서 열린 <까치호랑이>전에서 정갈한 다기형태에 등을 있는 힘껏 구부린 호랑이 도조를 마주하며 자연스레 상상적 귀향으로 이어졌다. 성석진은 “그릇이 갖는 쓰임새도 중요하지만 쓰임이 다한 후에는 오브제로써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작업한다”며 작은 오브제 하나에도 눈길을 줄 수 있는 시선을 마련해 두었다.
지난 해에는 이상향을 꿈꾸는 집을 모티브로 해 자신의 작업에 조각했다. 연못으로 둘러싸인 집은 마치 조선시대의 정자에서 보여지
는 이미지를 연상시키듯 자신의 이상향을 나타냈다.
눈에 보이는 현실에서 멀어지려는 듯한 그의 심상은 작업공간을 찾아갔을 때 알게 되었다. 여주에 위치한 작업실은 산을 등지고 전경은 넓지막하게 트인 조망을 지녔다. 바로 그 옆에 크지 않은 호수가 있었다고 한다. 겨울이 되면서 물이 말라 지금은 비명을 지르며 가뭄의 흔적이 남은 터만 있을 뿐이었다. 비오는 날 호수에 띄워놓은 연꽃의 심상에서, 호수가 일렁이는 심상에서, 일상에서, 그는 눈에 보이는 것을 찾으려고 했다. 주변의 환경을 작업에 담아가며 이어나가다보니 그의 작품에서 계절의 묘한 흐름이 느껴지기도 했다. 작품마다 맥락이 다르고 전개방식이 다르고 표현방식이 다르지만 그 역시 중요한 의미화 방식은 다를 게 없었다.
또한 그는 바다보다 숲을 좋아한다. 그래서인지 다양한 나뭇잎모양이 많다. 느껴봐야 만져볼 수 있고 만져봐야 느낄 수 있다. 몇 시간 동안 손잡이에 붙여질 조형물 하나를 만들고 다듬어도 오랜 눈길과 손길로 지루해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성석진에게 있어 무작위의 작위성은 없다. 하지만 “실용성이 없는 그릇은 만들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실용성을 갖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작위성은 있어야 한다”고 전한다.
그는 “물레작업은 손맛과 감성이 묻어나고 그 사람의 개성이 드러나며 또한 자신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
어 좋다.”고 말한다. 서울대학교 공예과를 졸업한 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예술대학원에서 작업을 이어나갔다. 자신을 위한 공부에서 벗어나 사회적인 공예가가 되기 위해서였다. 일본의 문화와 낯선 환경을 인지하는데 2년여의 시간을 보낸 뒤 그는 전통물레에 근거해 작업성향을 가진 동경예대로 진학을 결심하게 된다. “대학원 1학기 당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는데 평가critic받는다는 기분에 너무 떨었다”며 “이 당시의 쓴소리가 더 큰 채직으로 돌아와 지적당했던 부분을 다시 보완하고 싶은 생각에 더 열심히 했다. 달라진 작업을 빨리 보여주고 싶어서 두 번째 개인전도 서둘렀었다”고 전했다. 그는 매년 일년에 두 번씩 개인전을 가졌다. 그는 전시를 통해 만난 사람들과 열정적으로 대화하고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한다. 그릇으로써 쓰임도 사람과의 관계에 의해 풀린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있어 전시공간은 모두를 설득하고 관계를 잇는 장소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릇의 쓰임새가 불편하다거나 자신의 작품변화에 관심을 갖고 격려와 독려해주는 이도 만날 수 있어 전시가 끝난 후, 그는 작업에 보다 탄력을 받게 된다.
지난해 여름 갤러리 담에서 열린 <청백淸白>전에서는 주로 백자를 선보였다. 백자는 청자와 달리 형과 색으로부터 자유롭고 번잡함이 없는 담백함과 검소함을 특징으로 어떻게 바라보아도 좋다. 백자에 푸른빛의 색이 주를 이뤘다. 그렇다고 분청작업에 소홀히 한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다만 비율을 한쪽으로 크게 두며 보여줄 따름이다. 외형적 형태보다 그의 내면에 흐르는 계절의 미감에 맡기고 형태미에서 물러나 자신의 감성으로 재단하는 것이 옳다는 그의 생각이다. 봄과 여름에는 주로 백자를, 가을과 겨울에는 분청들이 보여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찻주전자의 손잡이나 향로의 손잡이에서 호랑이의 오브제를 보면 성석진의, 성석진다운 분청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들의 형태와 빛깔과 크기의 조화로움에서 성석진의 분청이라는 말이 나오고, 높아지고 낮아지고, 깊어지고 얕아지고, 물러서고 다가서고, 커지고 작아지고, 밝아지고 어두워지는 모습에서 성석진다운 분청이라는 말이 나온다. ‘타인의 취향을 견지하고 스스로의 느낌을 믿어라’고 말한 예술을 바라보는 한 관찰자의 시선은 성석진이 우리에게 그런 건네는 시선이 무엇인지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두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연주 기자 maigreen9@naver.com
1 찻잔의 손잡이를 장식하고 있는 호랑이 도조
2 아름다운 차박물관에서 열린 <까치호랑이>전
3·6 갤러리 담에서 선보인 <청백>전
4 동경예대 재학 중 작업했던 작품들
5 작가 성석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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