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st 무토 전 성 근
글 손문수_공예갤러리 나눔 큐레이터
흙의 한계를 다스리는 넉넉한 심성
지난달 7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인사동에 위치한 한국공예문화진흥원에서 도예가 전성근의 아홉 번째 개인전이 열렸다.
이처럼 섬세한 작업을 하는 사람은 어떤 심성을 갖고 있을까? 완벽주의자일까? 아니면 무모한 사람일까? 어떤 생각을 하며 손끝을 움직인 걸까? 몇 해 전 인사동에서 전성근의 작품을 처음 보았을 때 갖은 호기심이다. 정교함의 극치에 달한 입체조각 같은 작품을 감상하며 적잖게 충격을 받았던 필자는 오래지 않아서 작가와 인연이 닿아 대면하게 되었고 작업실을 드나들며 짧지 않은 대화를 통해 답을 얻을 수 있었다.
“이중투각은 아무리 공을 들여도 수축률이 안 맞아서 터지는 일이 많아요. 좀 아쉽긴 해도 만들면서 재미 봤으니 그걸로 만족합니다.”
흙은 누구에게도 특별한 혜택을 주지 않는다. 특히 국내에서 사용되는 백자용점토는 청자, 분청, 조합토에 비해 파손율이 배 이상 크기 때문에 이중투각처럼 까다로운 작업에 사용하기란 녹록치 않다.
열흘씩 밤낮으로 몰입한 작업이 완성 직전에 터지고 갈라지는 상황은 부처님이 아니고서야 순순히 감당하기 어렵다. 하지만 전성근의 표정에는 고통이나 미련 따위는 없다. 소년같이 순한 눈빛으로 다시하면 된다고 말한다.
‘자신을 다스리고 흙의 한계를 다스리는 넉넉한 심성’ 그것은 전성근의 칼끝에 평정을 잃지 않게 하고 도예가로서의 덕목을 올곧게 한 원동력이다. ‘실패’를 하나의 과정으로 여기고 즐기는(?) 경지에 오르기 전에는 수도 없이 겪었을 상처일 텐데 피해가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는가? 전성근에게 ‘실패’란 결국 초월하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다는 깨달음이며 한편으로는 쉬운 길을 돌아서 험난한 길을 선택한 작가에게 감동과 교훈을 얻는 이유인 것이다.
22년간의 수련을 바탕으로 한 이번 전시는 입체에 가까운 과감한 조각기법과 투각기법을 보다 유연하게 구사하고 있다. 조각과 투각의 균형, 문양해석과 표현, 특히 한글을 소재로 시도한 자음·모음연작들은 절제된 여백의 미와 기하학적인 선·면처리로 현대조형감각을 십분 발휘했다. 이는 전성근의 삶에서 자연스레 탐구해온 한국고유의 미감을 자신의 것으로 새롭게 일궈낸 결실이다. 흙을 다루는 숙련된 솜씨와 함께 창작의 열정 또한 최고조에 달한 듯 보인다.
전성근의 손놀림을 보고 있으면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국내 도예가 중 이중투각과 조각기법에서 그만큼 깊고 섬세한 기량을 갖춘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필자의 견해로는 세계무대에서도 그와 견줄만한 도예가는 많지 않을 듯싶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는 “듣기 좋은 소리보다 부족한 것을 지적해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한다. 예술가 치고 쓴 소리를 듣기위해 귀를 세우는 이는 흔치않다.
전성근은 자신에게 고된 수련과 학습을 강행하면서도 또 다른 차원의 도약을 위해서 작품에 관한 토론시간을 아끼지 않으며 또한 자만하는 법이 없다. 남다른 열정과 표현에 대한 갈증이 크다는 것은 미래의 변화와 발전을 의미한다.
지난해 독일 텐덴츠박람회에 공예문화진흥원 초대작가로 참가한 전성근은 유럽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다. 국제무대에서 전문가들의 객관적인 평가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 특히 올해 완공될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국립박물관은 개관 후에 전성근의 작품을 정식으로 소장할 것을 약속했으며 또한 유럽각지에 그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순회전시기획에 관한 제의를 해왔다. 유럽의 이러한 관심들은 전성근에게 예술가로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좋은 기회이며, 국가적으로도 자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이같은 일련의 행보는 결코 우연히 얻어진 것은 아니다. 성실한 작가관과 무한한 잠재력에 기인한 것이라 하겠다.
전성근에게 공예의 범주를 넘어서 국제적인 아티스트로 도약하기를 기대하며, 필자는 가까운 미래에 해외에서 몰아칠 ‘전성근 돌풍’을 상상해 본다.
<더 많은 자료는 월간도예 2007년 4월호를 참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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