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로렌스 부시의 풍경이 담긴 그릇
  • 편집부
  • 등록 2007-07-09 17:04:39
기사수정

로렌스 부시의 풍경이 담긴 그릇
Lawrence A. Bush

글+사진 최석진 도예가

“나는 사람들에게 가깝고 친근하게 사용 되는 것을 만들기 열망한다. 내 작업은 삶을 형성하고 삶의 질을 더해주는 것들과 관계하고 있다. 나는 상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실제의 용기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부시의 도자 세계는 다른 일상생활 용품과 마찬가지로 삶의 배경으로, 삶의 도구로 아름다운 실용 용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가 추구하는 도예는 촉각적이며 시각적인 세계로 도자기와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상호 교류에 깊은 의미를 둔다.

그는 미국 북서부 시애틀에서 성장했다. 대학을 다닐 당시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초반,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펑크 아트Funk Art의 활동이 활발했다.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에서도 로버트 아네슨, 켄 프라이스, 패리 워러시나와 같은 도예가들의 영향으로 현대 도자 예술의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히피, 전쟁 등의 사회적 이슈와 종교에 관심을 가졌던 미술 전공 학생이었다. 당시 워싱턴 대학 박물관에서 일본 도예콜렉션을 관심있게 보았다. 공예품들은 불교에 연관되어있는 듯 했다. 종교에 깊은 의미를 두었던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일본으로 가서 중이 되고 싶었다. 1974년 교토의 자그마한 절에 거주했는데 그곳에 몇 달 체류하는 동안 이질적인 문화를 통해 자신을 보았다. 그는 중이 될 수 없었다. 대신 그는 일본 도자기에 대해 경험할 기회를 가졌다.
일본에서의 생활은 그에게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상생활에서 하나하나의 물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 그리고 작은 것이라도 깊은 가치를 두는 것들에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생활에서 감상되며 쓰이는 것들, 그는 도자기의 기능성에 매혹했다.

부시는 미국으로 돌아와 9년간 건축업에 종사했다. 건축과 디자인은 전혀 다른 분야이면서 비슷한 점을 갖고 있다. 그에게 건물을 짓는 일과 도자기 성형은 동일한 의미를 갖는다. 일 년의 반은 건축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도예 작업실에서 일했다. 여러 곳의 작업실에서 거주 작가로 작업하며 ‘가마 짓기’ 워크샵을 통해 가르치기도 했다.
삼십대 중반이 되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의 일 년 동안 거의 모든 종류의 번조법과 점토 그리고 유약을 경험했다. 그의 작업실에는 수 백여 개의 컵과 접시들로 가득했다. 물레 성형으로 같은 크기로 만들어진 컵들은 마치 그림이 그려지기를 준비하는 흰 종이처럼 그의 손길을 기다렸다. 다양한 광택유와 무광유, 색유 등을 만들었다. 각각 다르게 시유한 컵과 접시들을 놓고 서로 조합하는 것을 연구했다.
그는 형태를 성형할 때 건축학적 입장에서 구조와 틀을 생각한다고 한다. 컵을 만들 때 손잡이의 위치와 전, 바닥을 건축한다. 기능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언제나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식기 세척기에는 어떤 도자기들이 알맞은가, 접시를 포개거나 나르기에는 어떤 형태가 용이한가 등을 생각한다.

최근 그는 램 프레스RAM로 수백 개의 같은 모양의 접시를 만들고 있다. 형태, 색상과 질감 등은 실제적으로나 개념적으로 자연을 모델로 삼는다. 그는 자신이 바라보는 일상 주변에서 소재를 택해 작품을 완성한다. 부시에게 도자기는 생활의 반영이며 그의 흥미와 열정을 나타내는 창구이다.
접시에는 자연을 담는다. 얼음이 섞인 프로비던스 강가에 백조들이 한가로이 떠 있다. 스산하고 낡아 살기 힘든 강기슭이 그의 손길로, 그가 더한 색상으로 친근하고 때로는 아름다워 보인다. 마치 관광 기념접시처럼 그릇 위에 풍경이 떠 있다.
그는 접시에 하루 약 여섯 개정도의 그림을 그린다. 시판하는 저온유에 도자용 안료를 첨가하여 색상을 내고 이것에 CMC고무풀을 섞어 수채화 물감처럼 사용한다. 보통 고온에서 초벌을 하고 여러 층의 유약을 바른 다음 원하는 색상을 얻을 때까지 반복해서 번조한다.
색채 학습같이 보이는 최근의 작품들은 풍경을 단순화한 후 색으로만 구성된 그림을 그린 것이다. 자연에서 객관적으로 선택한 색채가 그의 이미지로 주관적으로 쓰여지기도 한다.
부시는 지난 20여 년간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RISD, Rhode Island School of Design에서 도자 예술을 가르쳐왔다. 필자는 2004년도 RISD의 학생으로 가까이서 그를 보았다. 커다란 목소리의 유머러스한 그는 학생들에 대해서 사려 깊은 마음을 가졌다.
평소 학생들에게 관대한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수업시간만큼은 학생들에게 매우 엄격했다. 물레성형 수업 첫 번째 시간, 그는 학생들에게 물레의 역사와 기능에 대해 상세한 설명과 함께 ‘원통형 기 만들기’ 시범을 보였다. 그리고는 학생들을 한 사람씩 차례대로 앞으로 나오게 해서 자신이 가진 최대의 역량으로 원통형 기를 만들어 보라고 한다. 학생들이 모두 모인 가운데 자신의 실력을 그대로 내보이게 한다. 그리고 한 달여 뒤 과제는 60센티가 넘는 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 후 몇 주간 학생들은 밤낮으로 물레와 사투를 벌어야 했다. 부시는 필자와 대화에서 “우리는 모두 자신의 실력에 대해 솔직해야 한다. 자신을 알고 있을 때 우리는 더 나은 곳으로 갈수 있다”라고 그의 교육 철학을 설명했다.
또한 그는 그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기능’을 가르치는데 다양한 방법을 쓴다. 그 중 하나로 학생들에게 식당같이 도자기를 사용하는 장소를 방문한 뒤 그곳에 맞는 도자기를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과제를 준다. 그는 “대학생들은 식기를 많이 다루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기능성이 무엇인지 이해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학생들에게 레스토랑 같은 곳에서 도자기를 실제로 사용해 보게 한 후 소감을 듣는 과정을 통해서 기능성에 대해 스스로 배우도록 유도한다.
그는 학생들에게 “네가 좋아하는 것을 해라”, “자신에게 솔직해라”라고 강조한다. “학생들은 자기가 본 것, 경험한 것을 만든다. 그들 중에는 예술이란 이러해야 한다든지 좋은 예술품은 이런 것이다라는 선입관을 갖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힘은 자신의 의견, 자신의 깊이를 키움으로써 이루어진다.” 라고 전한다.
필자는 작년 NCECA행사가 열렸던 볼티모어에서 반갑게 그를 다시 만났다. 컨퍼런스가 끝나고 행사장 뒤편의 작은 카페에서 오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넉넉한 인품으로 도예계의 리더로서 훌륭한 자질을 지녔다. 사람들을 위한 건축 작업을 오래 한 때문인지 그에게서는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호의를 느낀다. 전날 RISD졸업생들의 모임에서는 많은 제자들이 그를 둘러싸며 반갑게 웃는 것을 보았다.

작가 로렌스 부시는 시애틀의 워싱턴대학에서 BFA, 뉴욕 알프레드대학에서 MFA을 마치고 1974 일본으로 건너가 도예를 수학했다. 1987, 2000, 2002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과 1993 뉴잉글런드 화운데이션 훠 더 아트 기금 수상, 2002 University of Hawaii의 ‘East/West Collaboration’참가, 교직원 발전기금 수상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현재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 도예과 교수이다.

필자 최석진은 이화여자대학교 도예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과 미국에서 개인전 9회, 버지니아 박물관 초대 작가, 버지니아 커먼웰스 대학 강사를 역임했다. 미국 현지에서 워크샵과 강의를 20여회 가져왔으며 현재 크랜브룩 아카데미 오브 아트에 재학 중이다.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monthly_cera
세로형 미코
03미코하이테크 large
02이삭이앤씨 large
오리엔트
미노
삼원종합기계
진산아이티
케이텍
해륭
대호CC_240905
01지난호보기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