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예과 출신인 나에겐 어떤 직업이 알맞을까?
각 분야 전문가 8인의 ‘나의 직업 나의 생활’을 들어본다
졸업시즌을 맞으면서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사회 초년에 입문하는 이들의 가장 큰 고민은 “앞으로 어떤 직업을 갖고 삶을 영위해 갈 수 있을까?” 일 것이다. 학창시절을 보내며 쌓아온 도예라는 전공분야를 십분 발휘할 수 있는 직업 7종(큐레이터, 숍매니져, 타일디자이너, 아동도예교사, 작가, 문화센터조교, 기자)을 골라 각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전문가 8명을 만났다. 직업에 관한 소개와 생활 등을 살펴볼 수 있는 7개 동일 질문에 대한 답변을 인터뷰 형식으로 정리해 보았다. 그들이 말하는 ‘나의 직업, 나의 생활’을 들어보자.
큐레이터
이름 : 이혜정
직업 : 도자전문 큐레이터
직업연차 : 3년
나이 : 50세
약력 : 이혜정은 서울출생으로 이화여자대학교 도예과 및 동 디자인대학원을 졸업했다. 현대도예가회, 진로도예지명전, 도림전, 2001세계도자엑스포초대 ‘한국현대도자전’등 전시에 작가로 참여했으며 이화여대, 서울여대, 한양대, 서울산업대, 국민대대학원 강사를 역임했다. 현재 영암도기문화센터 큐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대학졸업후 현 직업을 갖게된 동기는 ?
도예가로서 전시활동 및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던 중 이대박물관과 영암군청의 산학연계의 결실인 ‘영암도기문화센터’의 탄생이 매우 참신하게 생각돼 도예가로서 개인의 작업을 미루고 공적 책임감을 갖고 이일을 선택하게 됐다. 평소에 도예가 한국의 대표적 문화예술임에도 불구하고 내재된 경쟁력에 비해 정작 사회의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책임도 느끼고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다.
현재 직업에 대한 구체적 성격은 ?
내가 일하는 곳은 국내에 몇 개 안되는 도예전문박물관으로 전시기능, 생산공방, 뮤지엄숍, 체험 및 워크숍, 야외공연장까지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이곳에서 도예가 출신의 큐레이터로서 전시기획, 도자기디자인 및 유약개발, 뮤지엄 숍의 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보수는 얼마나?
연봉 약 2,500만원 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점은 ?
국내 특히 도예계에서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개념자체가 모호하다보니 일의 범위를 정하고 추진하는 방법들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직장이라는 곳이 크던 작던 하나의 조직으로 움직이는 곳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행정지원팀과의 조율에 많은 어색함을 느꼈다.
가장 보람을 느낄때는 ?
내 직장이 위치한 전라남도 남원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의 땅 끝에 가까운 외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그러나 매년 관람객들이 늘어나는 것을 볼 때, 또한 오랜 기간 고생해서 준비해온 전시가 열리고 좋은 작가들을 발굴했을 때, 좋은 평을 받았을 때 가장 보람을 느낀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은 ?
어떤 직업이든 준비된 사람에게 더 좋은 기회가 오는 법이다. 학예사 시험제도가 있으므로 자격증을 갖추어 놓거나 외국어 하나쯤은 구사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외적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큐레이터란 직업은 박식하면서 창의적이고 인적 네트워크도 넓을 수록 도움이 많이 된다. 기회가 주어졌을 때 열정과 성실함으로 그 분야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
본인은 ‘영암도기문화센터’의 내용상 기초골격을 세운 초창기 멤버였다. 어느 정도 기반이 잡혔다고 생각되면 능력 있는 후배들에게 이 자리를 내주고 도예가로서의 자리로 돌아가 개인작업에 매진하고자 한다.
아트숍 매니져
이름 : 김성민
직업 : 아트숍매니져
직업연차 : 4년
나이 : 36세
약력 : 김성민은 서울 출생이며, 서울산업대학교 도예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한국공예문화진흥원 기획 연구부 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갤러리블루 사업부 이사직을 맡고있다.
대학졸업 후 현 직업을 갖게된 동기는 ?
대학원 졸업 후 작가 생활과 함께 대학 시간강사직을 맡아 활동했다. 당시에 도예계 문화상품유통의 시장성에 미흡함을 깨닫고 젊은 작가 위주의 모임을 결성, 판매기획전을 열며 매니지먼트에 흥미를 느꼈다. 또한 비전공기획자가 아닌 도예나 공예를 전공한 전문기획자의 부재와 필요성을 깨달은 것이 이 직업을 선택한 계기로 작용했다.
현재 직업에 대한 구체적 성격은 ?
도자상품을 포함한 공예상품을 위탁, 매입, 컨텍, 가격결정, 판매하는 일을 맡는 직업이다. 이 직업의 가장 중요한 것은 우수한 작가 관리이다. 또한 유통과 판매를 위해 작가의 작업실(공방)을 방문하고 기존 상품을 선택하거나 구매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작가와 함께 의논하고 개발을 유도, 진행하는 일도 중요하다.
보수는 얼마나 ?
연봉 3000만원이다. 상품매니져는 경험과 능력으로 그 위치가 결정되기 때문에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수입에 큰 차이를 보이는 직업이다. 예를 들면 의류디스플레이 매니져의 경우는 감각과 능력여하에 따라 상상의 초월하는 수입이 생길 수도 있다. 아트숍매니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직장별로 보수의 차이가 많은 편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점은 ?
작가들과 매니져의 보이지 않는 견해차가 생길 때이다. 매니져는 상품으로 접근해 유통과 판매구조에 맞출 생각을 하는데 작가는 그 상품을 작품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터무니없는 고가를 내세울 때가 많다. 또한 상품을 기획해 주문하고 생산했는데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도 힘들다.
가장 보람을 느낄때는 ?
제가 선택한 상품이 잘 팔릴 때이다. 판매에는 일품판매가 있고 연계된 지속판매가 있다. 유통과정에서 후자까지 연결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나와 함께 시작한 작가들이 경험을 쌓으면서 발전한 모습을 보일 때 보람을 느낀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작가의 상품이 선택 되서 큰 호응을 얻어 새로운 상품과 시장으로 연결될 때는 이 직업을 선택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은 ?
사람을 많이 상대하고 상업적인 성격을 많이 지닌 직업이기 때문에 됨됨이 (성격)가 가장 중요하다. 편한 성격의 소유자면서 어떤 말이든 잘 받아줄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상품유통에 필요한 관련인사들을 많이 아는 소위 마당발이 되야한다. 내 핸드폰에는 150여명의 이름과 연락처가 있다. 상품디자이너를 비롯해 상품을 팔 수 있는 장소와 관계자, 상품을 팔아줄 구매자, 상품 홍보물를 잘 만드는 인쇄소 등 이들은 내게 능력과 힘을 실어주는 정보원이자 고객이다. 그것이 기본이 되면 좋은 상품을 볼 줄 아는 안목과 판단력은 자연히 생긴다.
앞으로의 계획은 ?
문화상품유통의 가장 큰 장점은 관공서의 제도를 활용해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 장점을 활용해 국내작가들과 함께 해외에서 기획판매전을 갖고 싶다. 각 나라의 문화와 정서에 맞는 상품군을 구성해 진출해보고 싶다. 이후 내 기획이 국내 도예문화상품의 폭넓은 발전 방향을 제시 했다는 평가를 받았으면 하는 것이 개인적인 바램이다.
타일디자이너
이름 : 정성민
직업 : 타일디자이너
직업연차 : 4년
나이 : 33세
약력 : 정성민은 1971년 서울 출생으로 서울산업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 도자공예과를 졸업했다. 대학원졸업후 동기들과 함께 2년간 공방을 운영했으며 산업미술전과 산업디자인전에서 입선한 경력을 갖고 있다. 현재 동서산업(주) 기술연구소 타일디자이너이며 북악CD회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대학졸업 후 현 직업을 갖게된 동기는 ?
대학 졸업 무렵은 나에게 있어서 도자기에 대한 두려움. 아쉬움과 부족함이 함께 공존하는 시기였다. 취업과 진학이란 묘한 갈림길에서 나에게 도자기를 가르쳐주신 은사님의 권유로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원 2년간은 학부시절의 미진했던 부분과 새로운 지식을 충족할 수 있는 기간이었다. 나만의 방향과 색을 찾을 수 있었다. 대학원을 마칠 무렵 도예를 위해 투자한 6년의 시간을 모두 새로운 작업으로 표현하고 싶었다. 도예의 특성상 전공을 살려 취업을 한다는 것은 현실상 매우 힘들었다. 여러 직장을 찾던 중 지금의 타일·위생도기 제조업체인 동서산업(주)에 지원, 입사하게 됐다.
현재 직업에 대한 구체적 성격은 ?
동서산업의 R&D(기술연구소)팀 디자인실에서 타일디자인 부분을 맞고 있다. 주거공간인 주택을 포함한 아파트의 욕실, 발코니, 바닥, 건물의 내외장 등에 쓰이는 타일제품을 개발하는 일이다. 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대리점, 모델하우스, 건설사 등 시장조사를 통해 경향을 파악하고 건축이나 자재, 타일 등의 전체적 동향을 분석한 후 디자인 방향을 결정한다. 주제가 결정되면 자신이 의도하는 디자인으로 최대한 표현한다. 완성된 디자인은 필름과 아트웍(Art-Work) 생산라인으로 보내지고 개발팀과 함께 실험실(Lab)에서 샘플제작을 한다. 그럼 비로서 하나의 제품이 나오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도자기를 만드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보수는 얼마나 ?
연봉 2100만원 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점은 ?
회사에서는 1년이면 2번, 1월과 9월에 신제품을 출시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필요한 것은 좋은 디자인과 좋은 제품을 만들기위한 팀원들과의 호흡과 협동심이다. 팀원들사이에서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점인 것 같다.
가장 보람을 느낄때는 ?
육체적 정신적 고생과 노력을 통해서 만들어진 제품들이 출시돼 좋은 평을 받을때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다. 물론 혹평과 실패했을 때도 있다. 이런점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도자기를 만드는 모든 사람들이 느끼는 공통점일 것이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은 ?
전공을 살려 나름대로 안정적인 직장에서 제품을 통해 자신만의 감각적인 표현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극 추천하고 싶다. 이 직업을 희망한다면 대학시절 모든 과목에 충실해야겠지만 특히 이 일에 있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컴퓨터(2D)부분과 캐스팅, 전사, 유약 등에 관심을 가져두면 도움이 될 것이다. 다양한 디자인 공모전에 많은 참여기회를 갖는 것도 중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
이 직업에 종사하면서 좀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이태리, 스페인 등 외국으로 나가 선진기술과 디자인공부를 더하고 싶다. 가장 큰 꿈은 최고의 디자이너가 돼 내가 디자인한 제품을 직접들고 세계 페어에 나가는 것이다.
도예교사
이름 : 최명자
직업 : 아동도예교사
직업년차 : 5년차
나이 : 44세
약력 : 최명자는 경남 마산 출생으로 한양여자대학 도예과를 졸업하고 인천교육대학교 사회교육원 아동미술지도자과정을 수료했다. 개인전은 2회, 현재 토담도예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며 부평YWCA복지관에서도 아이들에게 도예를 가르친다.
대학졸업 후 현 직업을 갖게 된 동기는 ?
졸업 후 개인 작업실을 운영해오다 인근 지역 주민들이 자녀들을 위한 도예교실프로그램을 요청해와 가르친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관심을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아동전문도예교실로 알려지게 됐다.
현재 직업에 대한 구체적 성격은 ?
즐거운 직업이다. 순수한 동심을 가진 아이들과 함께 흙을 만지는 것이 즐겁다. 흙을 주무르고 물레에 올려 돌리는 흙놀이를 가르친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재미난 생각들을 흙으로 만들어 낸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들의 가르침에 대한 욕심 때문에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지 못하고 강압적인 교육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아이들의 창작 욕구를 감추게 한다. 내 직업은 흙을 통한 자유로운 표현으로 창작욕구를 해소시키는 좋은 교육이다.
보수는 얼마나 ?
도예교실을 시작한지 2~3년차쯤에는 수강아동들이 많이 늘어나 80여명까지 된 일도 있었다. 당시에는 월 수입이 200~300만원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강습을 하는 일이 너무 힘들어 욕심을 버렸다. 현재는 월 평균 수입이 120만원정도이다. 일주일에 2회 각 15명씩 총 30명의 아이들을 가르친다. 매일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입이 작은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점은 ?
가끔씩 수강아동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수업이 있다. 그 수업은 아이들이 흙작업에 몰두하지 못하고 산만해져서 교육 진행이 잘 안되기도 한다. 그래서 가능하면 1회당 15명 이하로 유지, 교육한다. 아동도예교육은 어른들을 상대하는 것보다 잔손이 많이 가는 것뿐이지 큰 어려움은 없다.
가장 보람을 느낄때는 ?
3~4년 째 꾸준히 도예교실에 나와 배우는 아이들이 있다. 그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흙작업이 아이들에게 주는 정서적 안정과 창의성을 이해하고 자녀들을 도예교실에 보낸다. 그런 부모님들을 만날 때, 그 아이들과 함께 흙을 만지면 즐거워 할 때 보람을 느낀다. 지난 2001년 6월에는 부평구청미술관에서 아이들만의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어 큰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당시 전시장에는 지역 유치원과 학원들이 단체 관람이 계속 이어지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은 ?
아동도예교사는 아이들을 사명감으로 대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직업이다. 이 직업을 선택한다면 평생을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주어진 여건 안에서 꾸준히 해야 한다. 그러면 경제적 수입은 무난히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직업을 갖기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은 대학시절 배우는 기초 도예과정에 관심을 갖아야 한다. 창의력을 발휘하는 아이들과의 흙 작업에는 변수가 많다. 따라서 흙 다루는 다양한 방법과 요령을 능숙하게 익히는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
아동도예교실은 아이들이 쉽게 찾아 올 수 있는 도심에 자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아이들에게 도심 안에서 흙을 만지며 놀 수 있는 좀더 넓은 공간을 제공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내년 경에는 정신지체아동과 장애아동들을 위한 도예치료과정을 공부해 아동도예교육의 영역을 넓혀보고 싶다.
작가Ⅰ
이름 : 김종인
직업 : 공예가
직업연차 : 12년(1회 개인전을 시작으로)
나이 : 46세
약력 : 김종인은 서울출생이며 영국 유학, 웨일즈 카디프예술대학교 도예전공 석사, 영국런던대학교 골드스미스 대학에서 도예전공 학위를 수여했다. 개인전은 6회 가졌으며 2002오스트리아 도예아트페어와 95년버몬트아트센터에 초대작가로 참여했다. 현재 현대화랑아트숍 전속작가, ‘마니·미니·재미가게’ 기획자로 활동 중이며 개인작업과 함께 서울 이태원에 ‘Antiques+김종인의 artwares숍'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졸업 후 현 직업을 갖게된 동기는 ?
영국유학시절 학교에서 익히는 지식, 지혜, 기능을 현장 속으로 직접 접목시킬 수 있도록 교수들이 유도하고 실천과 실습을 지도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배움의 실천을 <공예-도자-사회-나 삶(현장)>을 이야기하는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이 나만의 역할이라고 생각해 작가생활을 시작했다.
현재직업에 대한 구체적 성격은 ?
작가 김종인은 ‘세상의 나와너’를 작품으로 표현한다. ‘세상=공예’라고 생각한다. ‘세상의 나와 너=공예가와 너’는 도자조형이냐? 도자공예냐? 등의 이분법적 장르구분에서가 아니라 ‘사회속에서의 도예(공예)’를 만들어 보여주어야 한다. 공예성의 본질인 야나기무네요시의 ‘실용+美’의 이야기를 다시 꺼내지 않더라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속에서의 공예성은 부엌 찬장안에 들어앉아 있는 식기만을 원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쓰레기만 하는 공예성’의 제한적이고 협의적인 공예성은 ‘보아서 즐기고 쓰는 공예성’으로 가야하며 이를 공예가들은 제시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보고, 즐기고, 쓰는 artwares'를 만든다. 즉, 쓸때는 철저히 쓰고 쓰지 않을 때는 독립적인 오브제로써 벽면에, 테이블 위에서(그림, 판화가 놓여지고 걸려지듯) 장식의 맛=기쁨+행복감을 주는 작품을 만든다.
보수는 얼마나 ?
‘Artware’를 소개하고 마케팅을 담당하는 상업화랑 혹은 비영리 대형 미술관의 아트숍의 전속작가로 활동할 당시에는 아트숍측에서 내 아이템을 전매하고 고객관리를 해주었다. 당시 수입은 평균 월 200~300만원 정도였다. 전속작가활동을 마친 현재는 개인전을 통한 판매수익과 대학시간강사, 외국인 대상 도자기 프로그램 레슨 등으로 생활한다. 또한 올해 이태원 엔틱가구거리(Antique Area)내 소규모 숍을 마련해 직접 운영하게 돼 작게나마 도움이 될 것 같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점은 ?
“…도조(ceramic sculpture)를 하시던 분이 왜 그릇을 만드세요?”이다. (이미 언급했지만) 난 늘 그 시간과 공간축에서 공예가로서의 역할, ‘공예는 사회다’를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획일화된 생각에서 벗어나 누구든 ‘좋은 공예, 아름다운 공예’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먼저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가장 보람을 느낄때는 ?
흙으로 만든 것은 도자기라서 싸고, 같은 흙이라도 조각은 비싸고의 인식을 불식시키는 문화의식이 서서히 자리잡아가고 있음을 느낄때…. 즉, 6~7만원짜리 유니크(unique)한 머그를 사서 차 한잔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 6~7백원짜리 머그의 재미난 패턴디자인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에 희망을 느낀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은 ?
본지에서 기획한 이 기사의 의도대로 도예(공예)를 전공했거나 관심있는 이들은 그 관심의 영역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서 제 역할을 해주어야 한다. 도예과(공예과)는 ‘어정쩡한 작가’만 만들어 놓았다는 불안(나만의 편견인가?)을 현장에서 보며 공예나 도예, 사회 안에는 작가, 교수, 매니져, 오너, 평론가, 기자 등등 각 분야가 공존하고 있어야 도예문화가 발전한다고 강조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나는 왜 이것을 해야 하는가?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 하고 싶어도 취업이 안되니까 다른 것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면 그 시간과 에너지로 나의 확고한 주체성을 찾아 길을 떠나라 그럼 어느새 내가 그 길에 서있고 걷고 있다는 그 맛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
얼마전 마련한 숍 운영을 통해 더 적극적으로 나의 공예성을 찾아 나가게돼 기쁘고 <마니·미니·재미가게 -2003. 4. 2~4. 8 - 한국공예진흥원 별관 1, 2층> 기획을 통해 차세대 공예인(재학생 공모)도 육성하고 mini art fair 개념의 장을 공예인 공동체로 만들어 갈 예정이다. 우리들의 매상(埋想)인 수공예 길드(guild)처럼. “그 사회가 요구하는 도예가의 길(공예가의 길)을 함께 걸어갈 동지를 구합니다!!!”
작가Ⅱ
이름 : 문지영
직업 : 공방작가
직업연차 : 7년차
나이 : 32세
약력 : 문지영은 1971년 서울 출생이며 단국대학교 도예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개인전은 3회, 단체전 20여회를 가졌으며 대한민국공예대전 입선 4회, 토·아트페어, 한·일도예페스티발에 참가했다. 현재, 예닮도예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대학졸업후 현 직업을 갖게 된 동기는 ?
대학시절에는 다양한 도예작업을 해왔다. 당시 야나기무네요시의 도예관에 빠져있던 나는 스승의 영향으로 전통이라는 부분을 새롭게 해석하는 능력을 갖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면서 그릇에 대한 매력을 느끼게 됐다. 누구보다도 좋은 그릇을 만들어야겠다는 욕심이 생기면서 현대적이면서 한국적인 도자기를 만들고 싶다는 꿈을 그리게 됐다.
현재직업에 대한 구체적 성격은 ?
개인작업실을 운영하며 현대 식생활에 맞는 그릇을 만드는 일이다. 한국음식에 잘 어울리는 그릇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한다. 전통적이지만 현대 상차림에 잘 어울리고 쉽게 쓸 수 있는 것을 만든다. 예를 들면 그릇의 전이나 굽을 없애는 변화를 주기도 하는 것처럼…. 어떤이는 “당신 그릇은 예쁘진 않지만 전통 한옥과 잘 어울린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옛 공예품의 풍만한 선을 좋아해 그릇에 응용한다. 그래서인지 내 도자기는 한국인의 정서에 잘 맞는 것 같다.
보수는 얼마나 ?
생활도자기 판매 수익은 월 평균 150~200만원 정도이다. 공방작가라는 직업의 특성상 수입이 불규칙하다. 공방을 처음 운영한 시기에 비하면 안정된 편이다. 현재 4곳의 숍에 그릇을 내고 있다. 2곳은 매입이고 2곳은 위탁이다. 작가 입장에서는 수입에 안정을 주는 매입을 선호하지만 구미에 맞는 숍은 그리 많지 않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점은 ?
도자기 작업의 어려움에 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은 내 직업과 생활에 대해 인정하고 격려하지만 일반인들의 견해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전시회를 갖는 작가의 모습은 화려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을 준비하기위한 육체적 힘듬이나 내면의 어려움이 그들에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지 못하면 이 직업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이 작업할 수 있는 반려자를 만나게 된 것이 큰 힘이 된다.(문지영씨는 오는 3월, 대학 동문인 도예가 김종훈씨와 결혼을 앞두고 있다)
가장 보람을 느낄때는 ?
내 그릇을 쓰는 사람들의 격려가 보람을 준다. 어느날 인가 늦은 시간까지 작업을 하고 있는데 내 그릇을 쓰는 한 고객의 전화가 걸려왔다. “차를 마시고 있는데 찻그릇이 너무 좋아서 작가분하고 대화하고 싶어 전화했는데 괜찮죠?”, “좋은 그릇 언제 또 볼 수 있죠?” 내가 좋아서 그릇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 그릇이 좋아서 나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을 만날 때 더욱 행복하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은 ?
그릇과 어울리는 자신을 알아야한다. 억지로 되는 일은 아니다. 그릇도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기 때문에 저절로 닮게 된다. 그것은 그릇도 상품이지만 작가 자신도 상품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릇을 만드는 사람으로써의 멋이 있어야하는 것과 자신에 대한 관리와 재투자의 중요성을 깨닫자. 음식담는 그릇을 만들려면 요리를 잘 할 줄 알아야 한다. 찻그릇을 만들려면 깊은 차 맛을 음미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쓰기좋은 좋은 작품, 작가다운 작가의 모습이 생기는 것이다.
앞으로의 계획은 ?
어떤 작가가 되야겠다는 것은 아직 고민 중이다. 작가로서 해보고 싶은 일들이 많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단지 양으로 승부하는 그릇보다는 정성이 담긴 나만의 그릇을 만들어 내 인정받고 싶은 생각뿐이다.
문화센터조교
이름 : 박찬호
직업 : 문화센터조교(전임교사)
직업년차 : 1년
나이 : 33세
약력 : 박찬호는 경남김해 출신으로 대구공업대 도자기공예과를 졸업하고 김해에서 3년간 개인공방을 운영하다 서울로 상경, 현재 동아문화센터에서 전임교사직을 맡고 있다.
대학 졸업 후 현 직업을 갖게된 동기는 ?
대학 졸업 후 고향에서 개인 공방을 운영하면서 지방에는 아직까지 일반 대중들의 도예문화 인식이 부족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반인들에게 체계적인 도예실습 교육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가장 필요한 것은 커리큘럼과 교육 방법이었다. 마침 서울과 지방을 자주오가는 한 도예가의 권유로 현 직장에 취직하게 됐다. 서울에서 도예실습교육에 대한 방법을 배우고 틈틈이 개인 작업 공간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매력을 느꼈다.
현재 직업에 대한 구체적 성격은 ?
동아문화센터는 학교수준의 도예교실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도예교실 조교 치곤 일이 많은 편이다. 수강생 관리를 비롯해 강사진을 고려한 강좌안배, 정규수업외 자유수업 시간 강의, 기자재와 재료관리, 시유, 번조 등을 도맡아 한다.
보수는 얼마나 ?
개인적으로 정확한 금액을 밝히기 어렵다. 사회초년생이 중소기업에서 받는 초봉 수준이다. 9시 30분에 출근해 7시 30분까지 일을 하지만 업무시간외에는 개인 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틈틈이 도자상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것이 생활에 도움을 준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점은 ?
강사선생님들이 따로 있지만 정규수업시간외에는 내가 직접 가르치게 된다. 150여명의 회원을 혼자 상대하는 것이 어렵다. 도예를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 수강생들이기 때문에 간혹 무리한 의욕과 아이디어로 성형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것을 이해시키고 설명하는데 어려움도 있다. 또한 수강생 대부분이 여성이고 주부들이라서 특유의 시샘(?)이 많은 편이라 힘든 점도 있다.
가장 보람을 느낄때는 ?
처음 수강을 시작한 회원의 성형물이 가마에서 나올 때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보람을 느낀다. 수강생들은 나의 할머니, 어머니, 누나 같은 분들이다. 가족같은 분위기가 조성돼 정겨움이 생겨 하나라도 더 자세히 가르쳐 드리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은 ?
봉사와 배려하는 마을을 가져야 한다. 또한 도예를 처음 접하는 수강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와 흙을 대하는 순수한 마음을 이해할 수 있어야한다. 기술적으로는 도자기 성형과 관련한 전 제작과정을 파악하는 능력을 지녀야한다. 특히 가마 다루는 문제가 가장 중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도예실습 지도방법과 운영에 대한 더 많은 경험을 쌓아 고향에 내려가 작은 도예교실을 운영하고 싶다. 도자기를 만들고 가르치며 소박하게 살고 싶은 것이 꿈이 있다.
기자
이름 : 서희영
직업 : 도예전문지 기자
직업연차 : 2년
나이 : 27세
약력 : 서희영은 서울출생으로 국민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하고 현재 월간도예 취재부 기자로 활동 중이다.
대학졸업 후 현 직업을 갖게 된 동기는 ?
졸업 후 미술관이나 갤러리 관련 일을 하고 싶었으나 수요에 비해 과인력 상태인 실정상 여의치 않았다. 미술관 안내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관련분야 취업을 꾸준히 탐색했다. 때마침 ‘월간도예 기자’ 모집 공고를 보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고 지금까지 기자생활을 하고 있다.
현재 직업에 대한 구체적 성격은 ?
국내 유일의 도예전문 월간지인 ‘월간도예’의 기자이다. 한달에 한권의 책을 만들어야 하는 일이 주된 업무이다. 월말이면 한달 취재계획을 세우고 1일~15일사이 취재하고 15일~25일사이 기사작성과 편집을 해야 한다. 도예와 관련된 정규직 회사원이 돼 일정 보수를 받으면서 도예계의 일들에 동참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수는 얼마나 ?
연봉 1700만원이다.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든점은 ?
월간으로 전문잡지를 만드는 회사는 대부분 소규모이다. 최소의 인원으로 매달 책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취재기자, 사진기자, 편집기자를 넘나드는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매달 반복되는 과정이 가끔 매너리즘에 빠지게도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반복되는 업무와 일상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아닐까.
가장 보람을 느낄때는 ?
매달 인쇄된 책을 받을 때마다 보람과 아쉬움이 교차한다. 힘들게 준비한 기사가 책으로 인쇄됐을 때가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지만,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은 항상 남는다. 작가는 아니지만 도예인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 직업의 장점이다.
이 직업을 희망하는 후배를 위한 조언은 ?
도예 전문지의 기자는 도예 전분야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솔직하게 전달하는 것이 기자의 역할이다. 자신의 직업과 인생에 대한 뚜렷한 계획이 없으면 다른 사람의 직업을 한없이 부러워하며 갈팡질팡하기 쉽다. 만약 당신이 기자가 되고 싶은데 스스로 글 솜씨가 없다고 판단된다면 늦지 않았다. 매일일기를 써보자!!!
앞으로의 계획은 ?
도예 전문지 기자로서 알찬 전문지식을 쌓고 싶다.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면 그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리라 생각된다. 더 큰 매체의 기자, 도예전문 비평가, 학예사, 공방작가 등 여러 직업에 대한 가능성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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