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축대 찾아, 돌뿌리 하나 빼면 와르르
실패학을 통해 본 세라믹산업의 참가치
지난달 21일, 22일 양일간 장관을 포함한 200여명의 농림수산식품부 직원들은 ‘농식품부가 망하는 길’이라는 주제로 밤샘 토론을 펼쳤다. 일종의 실패학을 통한 조직의 성공방정식을 도출하기 위한 자리. 발상의 전환은 때로는 골치 아픈 문제를 명확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실패학에 근거해 ‘대한민국 소재산업’이 망하는 길은 무엇일지, 또 이를 가장 반길 이는 누구일지 우리도 한번 고민해 보는 것은 어떨까?
“와타나베 실장, 일한FTA에 따른 첨단소재산업의 경쟁력 유지 방안이 필요하니 서둘러주세요”
“기한은 언제까지 입니까?”
“총리대신 방한전에 보고드릴 예정이니 서둘러주세요”
“첨단소재라면 한국은 걱정 안하셔도 좋습니다. 차라리 중국에 대한 전략마련이 시급한 상황입니다”
“자네는 한국실장이 아닌가? 소재산업이랄 것도 없는 중국보다는 삼성이나 LG를 무너뜨릴 전략이 시급하단 말일세”
“제가 파인세라믹스실장을 맡아봐서 잘 압니다. 융복합 첨단소재의 근간을 이루는 세라믹소재에 대한 기초 통계조차 없는 한국은 절대
소재강국이 될 수 없습니다. 차라리 희토류 반출 제한을 통해 글로벌 소재기업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중국이 더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한국은 정말 걱정 안해도 된다는 건가?”
“정 염려되신다면 저희 경제산업성 파인세라믹스실의 명칭이나 바꿔주십시오. 요업건재과라는 전담과가 있음에도 파인세라믹스실이라는
특별조직을 운영하고 있는 이유를 한국정부가 알아서 좋을 게 없으니까 말입니다”
“알았네. 그러면 명칭은 융복합 첨단소재실 정도가 좋겠군”
“맞습니다. 아마도 한국은 산업기반이 열악한 세라믹소재를 대기업 위주의 금속, 고분자 소재와 버무려 놓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영세한 세라믹기업들은 대기업의 그늘에 가려 영원히 제 목소릴 낼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삼성이나 LG가 세라믹을 하더라도 한계가 있을 거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가는 화살도 모아놓으면 꺾기 힘들 듯 한국의 세라믹기업들도 뭉치면 또 모르는 일이니까 말입니다”
“세라믹이 없으면 나노나 융복합 소재도 없다는 걸 그들도 알게 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그들이 그걸 알게 됐을 때는 이미 한국의 세라믹산업은 중국에 의해 흔적도 없이 초토화되어 있을 테니까요”
일본 경제산업성의 한국실 와타나베 실장과 그의 상사. ‘대한민국 소재산업이 망하는 길’을 묻기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들이다. 그들이 나눈 가상의 대화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추진중인 세라믹산업 발전전략과 WPM프로그램 등 소재산업 육성전략은 일절 대입하지 않았다. 이유는 말 그대로 추진 중인 상황. 그리고 일본과 중국이 추진중인 전략 또한 대입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대화에서처럼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대한민국 소재산업은 세라믹소재의 취약함에 발목이 잡혀 스스로 붕괴되는 상황이 연출될까? 물론 대한민국은 그들의 생각처럼 그리 허술하지는 않을 것. 하지만 딱히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대한민국 소재산업, 세라믹이 가장 취약
만에 하나 일본이나 중국에서 대한민국 소재산업의 발전을 저해하기로 맘을 먹는다면 그 먹잇감은 단연코 세라믹. 3대 소재 중 산업기반이 가장 취약하기 때문이다. 금속소재는 이미 포스코라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한 글로벌 기업이 버티고 있고, 고분자 소재는 삼성화학, LG정유 등 대기업이 즐비한 상황에서 이들과의 전면전보다는 열악한 산업기반과 중소기업 위주의 세라믹산업을 공략하는 것이 누가보아도 합당한 먹잇감일 것. 더욱이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전 세계시장의 70%를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100% 독과점 일때는 전략물자 지정을 통해 10배 이상의 폭리를 취할 수 있는 반제품 형태로의 수출을 유도하고, 또 경쟁국에서 시제품 생산을 개시하면 절반이하로 공급해 판로를 막는 방법으로 고사시키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독보적 기술, 중국은 희토류 광물이 무기
중국은 더욱 더 여유롭다. 바로 세라믹소재의 기본원료인 희토류(희유금속) 때문.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90%를 차지할 만큼 석유 대신 희토류를 쥐고 있다는 중국은 광물 상태의 해외반출을 제한하며 글로벌 원료소재기업의 생산라인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이는 가전하향 정책과 맞물려 중국의 산업구조를 단순 조립이 아닌 기술집약형 산업구조로 빠르게 전환하며 국내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에 치명적인 악영향으로 작용될 전망. 폭발적인 가전 수요를 잡기위해 기술유출 논란에도 불구하고 삼성과 LG가 차세대 LCD패널 공장 증설에 사활을 걸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이 LCD패널 공장 하나가 가동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부품소재기업의 동반진출이 당연지사. 결국 중국은 광물→원료→소재→부품→모듈완제품에 이르는 제조업 전반의 부가가치를 자국내에서 소화할 수 있게 된다. 반대로 대한민국의 부품소재산업, 특히 원료소재 기반이 취약한 세라믹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점점 더 설자리를 위축받게 되는 셈이다.
축대 균열은 토사유출의 경계신호
비탈진 언덕위의 건물을 지탱하는 단단한 축대도 시간이 흐르고 균열이 생기면 힘없이 뽑히는 축대석이 있기 마련. 이 축대석 하나 빠진다고 당장에 건물이 붕괴될까? 물론 그럴리 만무하다. 다른 축대석들로 힘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를 서두르지 않으면 결국 큰 비 한 번에 축대와 건물은 붕괴되기 마련이다. 빗물에 조금씩 유실된 토사로 축대 내부에는 물길이 생기고 이 물길이 더 큰 토사 유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원도 시장도 빈약한 대한민국 제조업을 지탱하고 있는 소재산업이라는 축대에서 세라믹은 어쩌면 힘없이 뽑히는 축대석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한민국 제조업을 떠 받치고 있는 축대석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흔들리는 이 축대석과 그 토대를 단단히 다져넣지 않으면 겉으로는 멀쩡한 듯 보이는 축대안의 토대는 이내 빗물에 쓸려 더 이상 건물을 지탱할 수 없는 그 저 텅빈 공간이 되지 않을까.
망하는 길을 경계해야 성공방정식
농림수산식품부가 그들 스스로 망하는 길을 고민한 이유는 바로 이를 확실히 알고 경계한다면 성공의 길로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 흔히 말하는 실패학을 통해 농림식품수산부의 성공방정식을 도출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와타나베 실장이 말했던 세라믹산업의 결집을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아마도 대한민국 세라믹산업의 Hub기관인 한국세라믹기술원의 기능부터 축소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달 22일 통폐합과 지방이전 논란으로 어수선한 세라믹기술원에서 맞이한 폭설이 더욱 을씨년스러웠던 까닭은 바로 ‘세라믹’이 아닌 ‘대한민국 소재산업’의 어두운 미래가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안광석 기자 dora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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