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은 더 큰 발전을 위한 또 다른 시작’
2월말 정년퇴임을 앞둔 김환 교수를 만나기 위해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건물을 찾았다. 1층 맨 끝번에 위치한 김환 교수의 방에 들어서자 김 교수는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김 교수의 방의 물건과 책장의 책들은 비워있었다. 김 교수는 ‘지난 연말부터 책상과 책장을 정리하고 있었다’며 ‘서랍 속의 수많은 명함들을 보면서 많은 추억이 떠오른다’고 말했다. 이어서 김 교수는 ‘34년 4개월 동안 재직하면서 경험했던 모든 것을 잊을 수 없을 거 같다’며 첫 강의, 제자들과의 만남, 세라믹학회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겸손도 가식도 아닌 시종일관 솔직한 모습으로 인터뷰에 응했다.
오는 2월 24일이 정년퇴임식인데 감회는 어떠신지요.
서울대학교에 부임하여 첫 강의를 하기위해 3층에 있는 강의실을 찾아 계단을 올라가는데 난간을 잡아야 할 정도로 다리가 후들거리고 앞이 캄캄하던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정년을 맞이하게 되었다니 정녕 세월의 무상함을 이럴 때 말하던 것인가...? 홀가분한 마음입니다. 어께에 짊어진 짐들 중에서 하나를 내려놓은 기분입니다. 잠시 섭섭한 생각도 스쳐가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34년 4개월 동안 재직하면서 아무런 실수 없이 지내왔고 무엇보다 건강한 몸으로 퇴직할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년퇴임을 앞두고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지난 연말부터 책상과 책장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말 할 수 있지요. 책상 서랍 속의 수많은 명함들을 정리하며 그 들과의 인연과 만남을 다시 한 번 기억하는 시간을 갖고 있습니다. 때로는 전혀 기억이 안 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요즘 같이 명함에 얼굴 사진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많은 책들과 학술 잡지는 극히 일부만 소장하고 필요한 분들께 분양하고 있지요.
퇴임 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반년 전부터 주위에 있는 많은 분들이 저에게 물어 오던 질문입니다. 저 역시 퇴임 후 무었을 할까? 또 무었을 할 수 있을까 많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로또에 당첨되어 일확천금을 얻게 된 사람이 그 많은 돈을 어디에 써야할지 모르는 것과 같이 이제 갑자기 많은 시간과 여유를 갖게 되었으니 비슷한 경우라 할까요? 이번 3월 신학기부터 모 사립대학교에 강의를 나가기로 되어있고 국가 출연연구소에서 수행하는 연구에 자문 역활을 하기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여건이 허락한다면 제가 초대 소장으로 6년간 겸직하였던 “한국 석회석 신소재 연구소”(단양군 소재)에서 연구를 계속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보람을 느끼셨던 일이나 인상 깊은 제자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대학교수는 학생들을 교육하고 연구를 통해 전문직으로 길러내는 직업이라 할 수 있지요. 나는 34년 이상 재직하면서 17명의 박사와 47명의 석사 학위 자를 배출 하였는데 그 중 8분이 대학교수를 비롯해 국가출연 연구소와 기업연구소에서 근무하며 훌륭한 업적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저의 연구실을 거쳐 간 제자들이 국가와 사회의 중요한 위치에서 봉사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중에는 연구에 실증이 난 것인지 모르겠지만 변리사시험에 수석합격과 동시에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변호사로 활동하는 제자, 그리고 나의 연구실에서 연구하던 치과재료(Apatite)와도 관련 있는 치과의사로 변신한 제자가 있어 어떻게 과감하게 전공을 바꾸게 되었는지 그 동기와 계기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80년 광주사태로 학교가 갑자기 폐쇄되어 학생의 출입이 엄격히 금지 되었는데 연구실에서 철야 실험을 하다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실험실 안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던 제자.... 그때 잘 보살피지 못한 것이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2002년도에 세라믹학회 회장도 하시고 세라믹에 대한 애정이 남다를 거 같은데 과거 세라믹에 대한 인식과 현재 세라믹에 대한 주변인식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1980년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광 화이버, 초전도체, 각종 센서, 세라믹엔진, 우주 왕복선의 발사 성공과 함께 내열타일 등으로 인해 제 2의 석기시대라 불리 울 만큼 세라믹 붐이 일어나고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도 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와 투자를 시작하였지만 불과 20여년이 지나지 않아 그 열기도 식어 버린 것이 현실입니다. 그 이유는 파인 세라믹스라는 것이 새로운 공정기술이 필요하고 실용화하기 까지 연구개발에 많은 시간과 투자비용이 크다는 점이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IMF를 겪게 되어 지속적인 투자가 어려웠던 게 원인이라 볼 수 있지요. 하지만 이제 우리나라는 세계 7대 무역국으로 성장하였고 일본과의 무역적자가 소재수입에 큰 부분인 만큼 다시 한 번 세라믹스 산업에 대한 연구와 투자를 확대해 나아가야 할 시기라 생각합니다.
교수임기동안 만족할만한 성과는 무엇입니까
연구 분야에서는 그동안 국내 학술지에 86편, 국외 학술지에 75편의 논문과 8건의 특허를 등록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구 성과의 업적은 모두가 우수한 두뇌의 제자들과 함께 이루어 낸 것으로 때로는 밤을 새워 실험한 제자들의 덕분에 가능했다고 생각하며 이 기회를 빌어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한국 석회석 신소재 연구소’를 세우는데 처음부터 기여한 것이 보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년퇴임 기념의 일환으로 퇴임식과 심포지엄을 후배들이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기분인지.
사실 지난여름 제자가 찾아와 정년 퇴임식을 준비하겠노라고 할 때 솔직히 나는 제자들에게 민폐가 될까 주저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저의 연구실을 거쳐 졸업한 동문들이 이를 계기로 한번 만나는 계기로 삼고 싶다고 하고 나 역시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제자가 있어 오래 만에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에 추진을 허락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퇴임식과 더불어 이루어지는 심포지엄은 저의 연구실 출신 중에서 우리나라 대기업의 최고 관리 및 연구의 책임을 맡고 있는 선우식 전무(조선내화), 김진영 전무(쌍용머터리얼)와 최병현 박사(세라믹 기술원) 등 각자의 전문분야에서 주제 발표를 해주어 보다 의미 있는 퇴임식이 되어 보람과 긍지를 느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세라믹코리아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공학에서의 학문과 기술은 매우 빠르게 변화 발전하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와 달리 서로 다른 학문이 연계된 융합기술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어제의 연구결과가 오늘의 새로운 정보가 되지 못하고 오늘의 기술이 앞으로 언제까지 활용될지 모르는 경우가 많으며 이는 반도체의 기술 발전 경험에서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세라믹스는 미래 산업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가 될 것입니다. 특히 다른 분야의 기술과 융합시켜 나갈 때 새로운 기능을 발현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환경이 곧 기술이기 때문에 환경을 고려한 세라믹산업으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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