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로고

Top
기사 메일전송
기억의 산물, 도예가 송춘호
  • 편집부
  • 등록 2021-11-30 15:06:35
  • 수정 2021-12-15 11:15:27
기사수정

유약, 세라믹의 옷⑤


기억의 산물, 도예가 송춘호
 
글_서희영 객원에디터 사진_ 이은 스튜디오

 

분장된 분청 위에 옅은 붉은 반점들이 꽃잎처럼 담담히 피어있다. 장작가마에서 볼 수 있다는 매화 열꽃 꽃핌 현상이다. 장작가마처럼 재가 앉아 철과 반응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면 꽃이 핀다.

 

경주 인근 건천면에 터를 잡고 작업하고 있는 송춘호 작가를 만났다. 6년 전 직접 지었다는 작업실과 아담한 집이 그림처럼 맑은 풍광안에 놓여있다. 올해 2월 대구 대백 플라자 갤러리에서 개인전<기억의 산물> 2021.2.23~2.28을 연 송춘호 작가의 최근 작품은 덤벙분청 달항아리와 찻그릇들이 주를 이룬다. 기자의 선입견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에 첫 번째 호기심이 들었고, 장작가마작업을 기대했던 질문에 가스가마를 쓴다며, 전통도자기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꼭 그때처럼 작업해야 할까? 라고 반문하는 작가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4백 년 전 분청사기는 지금의 분청사기와 분명 다르다. 아무리 애써 같은 조건을 만들어도 당시의 도공이 될 수 없고 그가 사용한 흙과 화장토와 유약을 재현할 수 없다. 같은 가마 같은 도공이라도 늘 같은 조건의 불을 피울 수도 없기 마련이다. 물론 비슷한 조건을 만듦으로 변주의 범위를 조율할 수는 있겠지만, 이미 많은 전통도예가가 재현에 많은 에너지를 쏟아왔고 완벽한에 가까운 재현을 위해 현대의 편리를 포기하기도 했다. 송춘호 작가는 결코, 재현을 위한 노력이 헛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저는 좀 다른 시도, 현대기기를 활용한 더 많은 데이터의 축적이 용이해졌으니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한다.

 

우연한 효과가 만들어지는 가마환경

장작가마에 나온 분청사기처럼 불그스름한 꽃이 핀 송춘호 작가의 작업물들은 가스가마에서 소성된다. 그는 우연하게 접한 외국 자료에서 장작가마 효과를 내기 위해 가스가마에 숯을 넣거나 재를 주입하는 방법을 보고 새로운 시도에 대한 스위치가 켜졌다. 장작가마의 소성환경을 가스가마에 만들어주면 되는 게 아닌가! 그렇게 시작된 지속적인 실험으로 지금은 가스가마에 한쪽에 장작불을 넣을 수 있는 장치를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결과는 예상대로 원하는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제 작품을 보고 장작가마에서 나온 거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 실망하시는 분들도 있는데 한 번도 거짓말을 한 적이 없어 속임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애초에 유약이 토기가마에서 재가 앉는 현상을 보고 발전된 것처럼 장작가마의 우연한 효과로 얻어지는 결과물들은 우연한 효과가 생기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작업으로 시도할 수 있다.

송춘호 작가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생각은 편안한 작업물로 보는 이들에게 격의 없이 다가온다. 작가의 연륜이나 유명세보다 작품 자체의 미감과 적절한 쓰임의 요구를 충족하는 작품들은 각종 공예대전 수상과 판매로 인정받고 있다. “도자기를 공부하고 작업한 사람은 우리 전통도자기를 이해하는 게 필수라고 여겨왔고 그런 미감에 익숙해져 있지만, 도자기를 사용하고 구입하는 사람들은 다르다” 작가는 전통도자의 미감을 현대인들이 낯설어하지 않을 만한 욕구에 부합하는 새로움으로 제안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주어진 재료를 잘 다루기 위한 노력은 정성 들이는 마음과 손끝을 통해 사물로 표현되는 것이다. 숙련된 손이 조용히 공들인 사물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사물들은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작가노트 중에서>

 

선택과 집중

그렇다고 그가 쉬운 방법을 찾는 건 아니다. 덤벙분청이 주를 이루는 송춘호 작가는 생산량이 점차 줄고 있는 한국의 카올린을 직접 채취하고 수비해 사용한다. 광물채취에 대한 법률이 까다로워 개인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일이지만 광물사업자와 연계해 대규모 개발이 어려운 매장지에서 직접 채취한다. 경남 하동과 경북 합천의 카올린을 채취해 사용하는데 두 지역의 카올린은 순도나 질에 차이를 보인다. 순도가 높은 합천의 카올린은 장력이 좋아 주로 성형용으로 사용하고, 사질과 철분기가 있는 하동 흙은 화장토로 사용하는 편이다. 이것도 단순히 하동과 합천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고 등급이 나뉘고 색이 다르다. 두 지역의 7~8가지의 카오린으로 점토와 화장토를 조합하고 숙성시키는 방법과 과정을 달리하면 수많은 경우의 수가 나온다. 이 경우의 수를 가마 테스트까지 하려면 자주 소성해야 한다. “0.1루베 정도의 작은 가마에서 수시로 소성하는 편이다. 한 달에 두 번은 재벌을 하며 데이터를 만들어 가는 중”이라 한다.
수비한 흙을 사용하다 보니 흙의 점성을 올리는 게 쉽지 않다. 직접 수비한 흙을 기존소지를 섞어서 사용하지만, 수비한 흙 자체의 점도를 높이는 방법에 대한 실험도 그의 큰 관심사다. “흔히 미생물이 흙의 점도를 높인다고 알고 있다. 이병하 교수님 특강에서 제가 이 점도에 대한 질문을 했더니 미생물이 흙의 점도를 좋게 하는게 아니라 미생물이 갖고 있는 나노 분자상태의 물이 점토 사이사이에서 흙의 결속력을 좋게 하는 것이고 답하셨다.”
더불어 한 옹기장이 수비한 흙을 일년 이상 묵혀 꼭 겨울을 지나게 한 후 사용한다는 것을 티브이 다큐에서 봤다. 그냥 흙을 묵혀서 쓴다고 들었을 수도 있지만, 그는 “흙이 얼었다 녹았다 하며 물분자가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냉동고에 흙을 얼리는 실험을 하고 있다.” 여러 상태의 흙, 그 흙으로 만든 태토와 유약을 교차 사용하며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다. 작은 가마를 사용하며 한 달에 한두번씩 테스트할 수도 있어 비교적 짧은 시간에 많은 데이터가 쌓였다. 작업실 한켠을 채우고 있는 시편들이 반증한다. 이 밖에도 근처에 장작가마 작업하는 작가와 흙을 나누고 서로의 가마에 시편을 넣으며 교차테스트 하는 것도 데이터를 만드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

다양한 시도

송춘호 작가는 2016년도 옻칠작업으로 수상하기도 했다.대한민국공예품대전 국무총리상 「옻칠화형찻그릇세트」 그의 옻칠도자는 다른 옻칠 작품에 비해 옻칠을 한듯 안한듯 무유도자기의 거친 질감을 옻칠로 보완하는 정도로 작업했다. 반짝이는 옻칠의 느낌은 약하지만, 흙으로 빚은 도자기의 특징은 더 잘 드러나 있다. 어느 쪽이 옳고 어느 쪽이 틀린 것이 아니다. 반짝이는 옻칠의 기능적 장점과 아름다움이 있고, 도자기의 물성이 더 강조된 옻칠도자기의 조금 다른 매력이 있다.
항아리처럼 큰 기물은 덤벙기법이 까다롭지만, 자연스러운 덤벙기법이 항아리와 잘 어울린다. 대백갤러리 전시당시 다양한 크기의 덤벙분청 항아리들을 한반도 모양으로 설치해 이목을 끌기도 했다. 다관작업도 그가 즐기는 작업 중 하나인데 몸통과 물대 뚜껑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결합해야 하는 작업과정에서 다관 형태자체의 조형감은 물론이고 장식을 더할 수도 있고 손잡이와 뚜껑에 변화도 주는 즐거움이 있다.

중학교 시절 대학보다 실업고교에 진학하고 싶어하던 그에게 공예고를 추천해준 진로 선생님이 있었다. 살면서 경험하는 무수한 결정의 순간 중 때로 우연한 선택이 삶을 바꾸게 한다. 그렇게 부산공예고(현 부산 조형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해 물레동아리 선배들의 물레작업 모습에 매료돼 3년 내내 물레작업에 몰두했다. “물레만 잘하면 먹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당시 어린 식견으로 물레대장, 물레 아르바이트하는 고등학교 선배들이 제일 멋져 보였어요.” 그렇게 시작한 도예가의 길이 25년이 넘었다. 대학에 관심이 없는 중학생이 공예고에 진학하고 물레에 반해 도예에 빠져들었고, 뭔지 모를 깊은 관심은 다시 진학으로 이어져 대학원을 마친 도예가가 되었다. 경주에서 작업한지 6년째인 올해, 대구 한국수력원자력의 문화예술 지원작가에 선정되어 지원금을 받아 대백 플라자 갤러리에서 전시를 가졌다. “일하지 않고, 작업하자”고 스스로에 말하며 조금 더 주체적으로 작업하려고 한다. 자신이 즐겁고 만족스러운 작품을 만들다 보니 가장 송춘호다운 작품이 되었다.

 
산에서 채취한 원토는 여러 번의 수비과정을 거쳐 몸 흙으로 때로는 화장토로 유약으로 사용한다. 이러한 시간과 땀과 정성을 흙에 쏟는다. 흙과 불은 정직하고 냉정해서 아름다움을 조금 내어준다. 흙과 불의 아름다움을 조금 더 알기 위해 오늘도 흙을 만지고 있다. <작가노트 중에서>

 
도예가 송춘호는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을 졸업하고 다수의 한·중·일 교류전을 비롯해 일본 나고야, 대전 HOSA갤러리 대구 대백프라자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경상남도 미술대전 대상(2003)을 비롯해 대한민국공예품대전 국무총리상(2020), 경남찻사발전국 공모전 대상(2021), 대한민국분청도자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바 있다. 현재 경주에서 청학도방을 운영하며 작업 중이다.


본 기획취재는 국내 콘텐츠 발전을 위해 (사)한국잡지협회와 공동진행되었습니다.
----------------------------------------------------------------
온라인 기사_이연주 기자 / 온라인 홍보_이광호

 

기사를 사용하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해주세요.

https://www.cerazine.net

 

0
회원로그인

댓글 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02이삭이앤씨 large
03미코하이테크 large
대호CC_240905
EMK 배너
01지난호보기
09대호알프스톤
월간도예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