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돋보기(21)]
백자 청화 용무늬 전접시
白磁靑畵雲龍紋楪匙
글_김대환 상명대 석좌교수·문화재 평론가
「백자 청화 용무늬 전접시白磁靑畵雲龍紋楪匙」 조선시대 | 높이 2.8cm 입지름 22.8cm 굽지름 12.3cm
조선 초기에 만들어진 전접시는 평편한 몸통의 끝부분에 좁은 폭의 전이 둘러져 있으며 넓고 낮은 바닥 굽은 몸통의 균형을 유지하는데 편리하게 만들어졌다. 굽은 외면이 경사지게 역삼각형으로 만들었고 약간 경사지게 올라온 전의 끝부분은 살짝 둥글다. 이 시기에 제작된 전접시는 대부분이 무늬가 없는 순백자인데, 왕실용으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에는 고가의 청화안료로 무늬를 넣기도 하였다.
전접시의 무늬는 새 꽃무늬, 물고기무늬, 게무늬, 산수 인물무늬, 용 구름무늬, 꽃 넝쿨무늬, 한시 등 매우 다양하다. 그러나 현존하는 ‘청화백자 전접시’는 대부분 주거지나 가마터에서 출토된 파편으로 온전한 형태의 유물은 손꼽을 정도로 귀하다. 현재까지 알려진 조선초기에 제작된 온전한 ‘청화백자 전접시’는 국내외 모두 10점 정도에 불과하다. 사진1~6)
사진7)의 「백자 청화 용무늬 전접시」는 조선 초기에 제작된 온전한 작품으로 국내외 유일하고 몸통의 형태와 발색이 아름다우며 청화 안료로 그린 용의 문양은 최고 수준이다. 몸통에 그려진 용과 구름무늬, 전 부분에 그려진 파도 무늬는 짙은 남색을 띠고 있으며 그림 솜씨는 도화서 화원의 작품으로 왕실용으로 추정된다. 왕을 상징하는 용의 무늬는 함부로 사용할 수 없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몸통 중심부의 용은 발가락이 세 개이며 사실적으로 묘사했고 앞발과 몸통 사이에는 서기가 달려있어서 뒤로 날리고 있으며 몸통의 중심부는 한번 꼬여있다. 머리 위로 올라와 날리는 얼굴의 수염과 턱수염, 날카로운 이, 동그란 눈, 뒤로 뻗은 뿔 등을 섬세하게 묘사했다. 몸통의 가장자리인 전에는 파도 무늬가 둘러져 있고 얼굴 앞에는 서기가 서려 있는 여의주가 떠 있으며 발아래 세 군데에 구름이 떠 있는 모습으로 방금 물에서 뛰어올라 하늘 위에서 비상하는 용의 웅장함을 표현한 것이다. 짙은 남색을 띠는 청화 발색 사이로 맑고 투명한 유약 속에는 작은 기포가 형성되어 있으며 산화된 유약의 기포 속에는 보존처리 이후에도 침윤된 흙물이 남아있다. 사진8, 9) 몸통 바닥 굽은 넓고 낮아서 안정적이며 역삼각형의 굽에는 모래받침 흔적과 흙물이 남아있고 굽에 묻은 모래를 곱게 갈아낸 흔적이 있다. 사진10, 11)
얼마 전 서울 청진동 유적지의 발굴과정에서 용무늬전접시의 조각이 출토되었는데 몸통 뒷부분의 일부였지만 사진7의 작품과 유사한 그림의 구성과 크기로 추정할 수 있다. 사진12) 이 전접시의 용도는 잔 받침이나 음식물을 담는 용도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몸통의 가운데 부분에 원형의 홈이 난 것은 잔 받침용으로 사용된 것이 확실하다. 사진13)
조선 초기에 제작된 고가의 청화백자는 건물지와 무덤에서 출토되고 있어서 실제로 사용하기도 하고 일상생활에 사용하다가 부장용으로 매장하거나 애당초 부장용으로 제작한 경우도 확인된다. 검소함이 강조되던 유교사회 이지만 고가의 부장품을 사용하여 편안한 망자의 사후세계를 정성껏 기원하는 인간의 본성이 훗날 최고의 문화유산으로 후손들에게 남겨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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