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재된 조선백자의 조형성을 끌어내는 작가
청신한 기운의 백자로 동시대인들에게 귀감되고자
도예가 정희균(38)의 백자는 정겹다. 흰색이 주는 긴장감이 그의 백자에서는 느껴지지 않는다. 흰빛은 때로 따뜻하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하다. 그것은 그의 백자가 조선백자의 편안하면서도 간결한 멋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자신이 조선백자의 아름다움에 동요되는 것은 자신안에서 흐르고 있는 잠재된 조형감과 상통하기 때문이라고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과거백자의 외형을 모방하는 작업이 아닌 자신안에 흐르고 있는 조형감을 이용한 현대의 백자를 만드는 도예가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정희균의 작품에 대해 일본의 도예평론가 이데카와 나오키는 “조선시대 백자의 전통을 기반으로 한 안정감과 함께 정희균씨 나름의 창의가 더해져 청신한 기운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민족적인 전통과 개인적인 미의식의 이상적인 결합이 미래를 향한 ‘공예’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평했다.
한국 첫 개인전, 조선백자를 근간으로한 작품 선보여
음영 변화준 청백자와 일상적인 소재의 청화백자 등
기자가 정희균씨를 처음 만난건 지난 5월, 서울 강남의 인데코 갤러리에서였다. 그는 4년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귀국전을 열었다. 한국에서 첫 개인전을 위해 준비한 작품은 유학기간에 꾸준히 연구해온 청백자와 청화백자들이었다. 흰태토에 푸르스름한 청자유계열의 유약을 시유해 환원소성하는 기법으로 제작된 청백자는 우리에게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조선시대 ‘백태청자’라는 이름으로 드물게 만들어진 작례가 있다. 이밖에 정자(亭), 포도넝쿨, 건어물 등의 문양을 담고 있는 청화백자 등 모두 조선시대 백자의 기법과 조형성을 이용한 작품 20여점을 선보였다.
청백자는 선문(線紋)을 새기거나 면을 쳐내 유약이 고인부분과 옅게 시유된 부분의 유약 빛이 다르게 나타난다. 면치기 항아리의 경우 젖은 상태에서 시도하기도 하지만 때로 완전히 건조된 상태에서 시도한다. 세세한 칼의 놀림으로 깎여나간 큰 면안에서의 미묘한 음영의 변화가 생기게 된다. 그는 원료를 조합해 만들어낸 백토가 아닌 자연상태에서 채취해 탈철과정만을 거친 백토를 사용한다. 푸른 안료는 코발트에 정재율이 높은 밤피재를 섞어사용하며 망간이나 철을 첨가해 다양한 푸른 색을 낸다. 소성시간은 18∼20시간 정도로해 은근하면서도 숙성된 환원의 색을 찾아낸다.
청화백자의 푸른 문양은 성형이 완성된 후에 첨가된 것이 아니고 성형과정에서부터 문양이 함께한다. 코발트 빛 사이사이로 보이는 기물 표면에 덧붙인 유동적이고 부드러운 양각은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언뜻 보기에도 묽은 흙을 사용해 시문한 듯 한데 묽은 흙이 기물과 한몸을 이루려면 기물이 충분한 습기를 머금고 있는 상태여야만 가능하다. 때문에 꾀나 까다로운 작업이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된다. 작가는 “성형을 하고 굳기 전에 굽을 정리하는 등의 마무리를 끝내는 것이 중요하며 주사기를 사용해 시문했다”고 거리낌없이 자신의 기법을 말한다.
안정된 생활보다 목표를 위해 과감히 떠난 유학
다양한 백자를 직접 대면할 수 있었던 점이 인상적
일본국비유학장학생으로 박사학위 수여
정희균씨는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공예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치고 가야대학교 도예학부에서 전임교수직을 맡게 됐다. 가야대에 재직 중 과거로부터 자연스레 이어지지 못하고 급조된 현대도자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갖게 됐다. 그 시기 일본의 도예산업단지를 여행할 기회가 주어진게 그가 일본유학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됐다. 그곳에서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도자기술의 미학에 기초한 일본의 근대 산업화의 성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물레 등의 전통적 수법으로 오늘의 백자를 공부하고자 도쿄 국립예술대를 선택하기에 이르렀고 목표가 정해진 후 주저없이 학교를 사직하고 가족과 함께 일본으로 떠났다. “4년의 유학기간은 작업과 이론 뿐 아니라 전시회, 판매전 등으로 바쁘게 지났습니다. 그곳에서 만든 작품의 대부분을 판매할 수 있어 생활비에 많은 도움이 되었고, 그 자체로도 큰 공부였습니다.” 현재 그는 일본 도쿄의 도예전문 갤러리 '슌'의 전속작가이며 일본의 여러 갤러리에 상설작가로 활동중이다.
작가의 유학기간 인상적인 경험 중 하나는 국내에서 접하기 어려운 다양한 백자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문헌을 통해서만 접했기 때문에 실제보다 글로 표현돼 있는 제한적 이미지에 더 익숙해있던 조선의 도자기를 직접 만져보고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박물관에 전시된 채로는 알수 없는 무게감─기물의 형태와 크기에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을 직접 느껴보고, 내부나 굽안쪽의 시유여부, 기형과 문양의 관계 등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밖에도 일본에서 접했던 다양한 책들중에 이데카와 나오키의 ‘인간부흥의 공예─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를 넘어서’를 지난해 완역출간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는 우리나라 공예 및 문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공예론과 민예운동을 조목조목 되짚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열의에 찬 작업과 연구활동으로 도쿄예대 도예연구실 연구생을 수료하고, 일본국비유학 장학금으로 도예전공 박사학위를 수여했다.
작가가 주목한 미감 작품에 담아
동시대인들과 공유하는 백자 만들고 싶다고
정희균씨는 작품은 작가 자신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현대는 물건이 모자라서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 시기가 아니다. 불특정 다수의 기호에 맞추기 위한 작품은 작가 자신이 동감할 수 없는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다.”며 “오히려 자기가 느끼고 좋아하는 것을 추구한다면 단 한명이라도 그 작업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이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런 이유에서 그의 작품의 모티브는 기와 백자라는 큰 둘레안에서 일상의 경험과 작업과정에서 얻어진 발상을 소재로 사용한다. 특정한 방향을 고집부리지 않고 평범한 대상을 편안하게 담아낸다. 그가 문양으로 사용하는 구상적인 소재들은 그가 일상에서 접했을때의 느낌이나 분위기를 담아낸 것들이다. 시원스레 백자항아리의 윗부분을 덮고 있는 포도문에서부터 우리산자락의 완만한 곡선을 새겨넣은 큰접시 한가운데에 자리한 정자 등이 그렇다. 명태, 굴비 등의 건어물을 문양으로 사용해 푸근하면서도 해학적인 재미를 담아내기도 한다.
“전통도자의 근대화라는 것은 거창하게 혹은 경직되게 접근하기 보다는 오늘을 살아가는 각자가 느끼고 해석한대로 자신의 감각을 살려 즐겁게 만들어 가는 중에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라는 것은 조선시대의 그릇을 다시 만들어 현대인들에게 사용하도록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이 주목한 미감을 같은 시대와 환경속의 또다른 현대인과 공유하고자 한다. 정희균씨는 앞으로도 백자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작품을 제작하겠다고 한다. 오는 12월에 그가 전속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도쿄의 갤러리'슌'에서 전시가 있다.그는 전시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교직에 있게 되든 작가로 남게 되든, 그의 스승들이 그랬던 것처럼 작업하는 모습으로 각인되는 도예가가 되겠다고 다짐한다.
서희영기자 rikki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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